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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서울, 등잔 밑이 어둡다 서울 시민청 군기시유적전시실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서울, 등잔 밑이 어둡다 서울 시민청 군기시유적전시실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5.11.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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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옛 서울 시청 건물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서울 시민청 한켠에는 조선 시대 유적지가 발굴 모습 그대로 전시 중이다. ‘군기시유적전시실’. 조선시대 병기제조를 담당하던 군기시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란다. 여기서 발견된 블랑기자포를 비롯한 총통, 철환 같은 무기류뿐 아니라 백자와 동전, 기와 같은 생활용품들도 구경할 수 있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옛 서울 시청 건물 지하에 서울 시민청이 있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과연 등잔 밑이 어두웠다. 서울 도서관을 이용하거나 시민청 행사를 보기 위해 여러 번 찾은 옛 서울 시청 건물에 조선시대 유적과 유물 전시관이 있을 줄이야. ‘군기시유적전시실’이라는 간판을 본 듯도 한데, 아마도 ‘군기시’라는 이름이 낯설어 그냥 지나친 듯하다. 전시실이 자리잡은 곳이 시민청 한쪽 구석인 탓도 있을 것이다. 

지난 2013년 서울 시민청이 문을 열 때부터 이 자리를 지켰다는 군기시유적전시실 내부는 밖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제법 널찍한 공간이 유적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고, 전시실 곳곳에는 이곳에서 발견된 무기와 생활용품 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 초기에서 근현대로 이어지는 지층의 단면이 켜켜이 쌓인 세월의 두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백자 조각들을 발견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근대 문화유산 속 조선 초기 문화유적
이곳에서 군기시 유적이 발견된 것은 서울 시청 신청사를 짓기 위한 공사를 시작하던 2008년 3월이다. 부지조성을 위해 땅을 파자 조선시대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 가운데는 백자와 동전 같은 생활용품들도 있었으나, 화살촉과 총통, 철환 같은 무기류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곳이 조선시대 병기제조를 담당하던 군기시가 있던 곳이라고 보았다. 구체적인 명문이나 자료가 나오지 않아 아직은 ‘추정’이지만 말이다. 당시 옛 서울 시청이 이미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었으니, 근대 문화유산 속에서 더 오랜 문화유적이 발견된 셈이다. 여기서 나온 유물들은 대부분 조선 초기의 것들로 추정되니, 600년 서울의 역사가 서울 한복판에 켜켜이 쌓여있던 셈이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서울 시민청의 벽에는 서울 시민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볼 수 있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전시된 유물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보물 제861-2호로 지정된 ‘불랑기자포’다. 서양에서 쓰이던 대포가 명나라로 들어오면서 ‘불랑기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 이름 그대로 조선과 일본까지 전해진 것이다. 불랑기(佛狼機)는 게르만족의 한 갈래인 프랑크(Frank)족을 음차한 것인데, 당시 이 대포를 전해준 포르투갈인들을 중국에서는 ‘불랑기’라고 불렀단다. 불랑기포는 발사틀 역할을 하는 모포(母砲)와 실탄을 장전한 후 모포에 넣는 자포(子砲)로 나뉘는데, 군기시유적지에서 발견된 것은 자포였다. 여기에 쓰여진 ‘가정(嘉靖) 계해(癸亥)’라는 명문이 이 자그마한 총포가 보물로 등재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서울 시청 부지를 수직으로 자르면, 아래는 조선 초기, 위에는 근대 유적층을 볼 수 있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군기시유적전시실의 불랑기포가 보물이 된 까닭
가정(嘉靖)은 명나라 세종의 연호이고, 계해(癸亥)는 천간지지로 살펴본 해의 이름이다. 즉 ‘가정 계해’는 서양력으로 1563년이 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우리나라에 불랑기포가 처음 들어온 것이 임진왜란 때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당연히 책보다는 유물에 적힌 명문이 우선한다. 더구나 1563년에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쓰여진 불랑기포 3점이 이미 발굴된 바 있으니 더욱 확실하다. 실록의 기록은 블랑기포에 대해 잘 모르고 쓴 것일 가능성이 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에 이미 블랑기포를 만들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진 것일 수도 있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15점의 승자총통이 열과 압력으로 녹아 붙은 채 발견되었다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서울 시민청에 자리잡은 지구촌 공정무역카페.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엉겨붙은 수천 점의 화살촉 . 2015년 12월 사진 / 구완회 기자

군기시유적전시실에는 불랑기자포 말고도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수십 점의 백자 그릇과 조각들, 무더기로 나온 화살촉과 철환들, 나무 망치와 빗 같은 생활용품들도 눈길을 끈다. 또한 조선 시대와 근대의 석축과 건물지들을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시내에 나왔다가 잠시 시간이 난다면, 특히 아이와 함께라면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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