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4월호
[슬로시티 & 리프레시 여행] 푸른 산과 물에 막혀 시간도 쉬어 간다 경북 청송 덕천마을 & 외씨버선길
[슬로시티 & 리프레시 여행] 푸른 산과 물에 막혀 시간도 쉬어 간다 경북 청송 덕천마을 & 외씨버선길
  • 주성희 기자
  • 승인 2014.08.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여행스케치=청송] 청송은 첩첩산중 오지다. 아무리 여유를 찾기 위해 나선 길이라지만 창창한 산을 겹겹이 두른 그곳에 들기가 막막했다. 헌데 막상 들고 보니 나오기가 더 막막했다. 눈 닿는 곳마다 청청한 산수가 가로막아 세월마저 가던 길을 멈추는 통에 발걸음을 돌리기가 못내 아쉬웠던 탓이다. 

 
청송읍 파천면에는 오래 되고 느려서 더 빛나는 슬로시티 덕천마을이 있다. 청송 심씨 집성촌으로 조선시대 한옥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오랜 세월 전통문화를 지켜온 마을의 풍경 속에 발을 담그면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다 슬며시 멈추는 듯하다. 바삐 몰아친 일상에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돌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송소고택을 지키는 심재오 장주 내외.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청송 예찬이 시작되는 외씨버선길
오지 청송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휴식을 찾아 떠난 길이 너무 멀면 부담스러워 주저할 만하다. 하지만 청송에 도착하는 순간 리프레시 여행지로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깨닫는다. 오지인 만큼 천혜의 자연이 잘 보전돼 있는 청송은 공기부터 다르다. 군의 60% 이상이 소나무로 덮인 ‘푸른 솔’의 고장 아니던가. 빽빽한 산림이 뿜어내는 깨끗한 공기에 도시생활에 찌든 몸과 마음이 대번에 가뿐해진다. 

읍에서 덕천마을까지는 4km 거리. 구경도 할 겸 천천히 걸어갈 참이다. 마침 마을까지 이름도 이번 여행 목적에 꼭 맞는 ‘슬로시티길’이 이어져 외씨버선길 길해설사 홍영숙 씨에게 동행을 청했다. 외씨버선길은 청송 주왕산에서 강원도 영월 관풍헌까지 200여㎞에 이르는 도보 여행길인데, 청송을 지나는 1~3 코스 가운데 두 번째 코스가 슬로시티길이다. 

“청송은 울면서 들어가 울면서 나온다고 합니다. 오지로 가는 길이 고되 울면서 들어가는데, 일단 들어오면 이곳의 풍경과 인심에 반해 떠나기가 싫어 또 운다는 이야기입니다.”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사랑채 대청 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슬로시티길의 시작점 운봉관에서 만난 홍영숙 씨가 청송 자랑을 늘어놓는다. 홍영숙 씨는 외씨버선길 해설과 청송 관광 안내를 겸하고 있다. 남편 직장을 따라 청송에 온 외지인인 그가 청송을 알리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니 청송에 대한 기대가 자못 부푼다.

“슬로시티길이 길은 참 좋은데 그늘이 거의 없어 한낮에 걷기에는 무척 더워요. 여유를 찾는 여행인데 더위로 고생하지 말고 딱 힐링 하기 좋은 구간만 걸어볼까요?”

외씨버선길을 훤히 꿰고 있는 홍영숙 씨의 맞춤형 길 안내를 받아 슬로시티길의 중간지점인 벽절정으로 향한다. 벽절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절한 벽절 심청 선생을 기려 세운 정자다. 벽절정 뒤 솔 냄새가 솔솔 풍기는 별동산의 조붓한 오솔길을 따르면 청송 심씨의 본향 덕천마을이 나온다.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99칸의 송소고택은 심부잣집이라고도 불린다. 정원 뒤편엔 헛담을 쌓았다. 아녀자가 대문을 드나드는 모습이 사랑채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쌓은 것으로 남녀가 유별했던 조선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덕천마을 만석꾼의 집에서 누리는 여유
덕천마을은 고려가 망하자 은둔의 길로 들어선 악은 심원부의 후손이 600여 년간 뿌리내린 청송 심씨의 본향이다. 청송 심씨는 조선 500년 간 세종대왕 왕비인 소헌왕후를 비롯해 왕비 셋, 부마 넷, 정승 열세 명을 배출한 명문가. 마을의 중심에 자리한 송소고택(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50호)에 청송 심씨 가문의 위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심호택이 1880년 경 건립한 99칸 대저택이다. 99칸은 조선시대 사가에서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였다. 

“130여 년 전 증조부가 불이 활활 타오르는 꿈을 꾸고 이곳에 집을 지으셨대요. 집을 완성하기까지 13년이 걸렸답니다.” 

홍살을 설치한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심호택 3대손이자 심처대의 10대 주손 심재오 장주가 팔작지붕을 얹은 큰 사랑채 대청마루로 안내한다. 심재오 장주에게 전해들은 만석꾼의 징조는 꿈뿐만 아니다. 집 앞으로 천이 흐르고 여인의 가슴처럼 봉긋하게 솟아오른 조산이 병풍을 치듯 고택을 감싸고 있는 배산임수의 터로 풍수지리상 재물이 쌓일 수밖에 없는 자리라는 것. 기운이 좋은 터에 자리 잡은 덕인지 이 집안은 만석도 모자라 이만석의 부를 누렸다고 한다. 대청에 앉아 만석의 부를 가져다준 지세를 눈으로 훑다 보니 이 집안의 엄청난 재력보다도 마루에 엉덩이 댄 한 자리가 탐나기 그지없다. 안주인이 공들여 가꾼 정원과 고택을 둘러싼 산줄기가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워 바라보노라니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머릿속이 말갛게 비워지는 듯하다.    


집은 ‘ㅁ’자 형태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 한옥 구조다. 3000여 평의 대지에 집안의 어른이 머문 큰 사랑채와 큰 아들 내외가 기거한 작은 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 곡간, 방앗간, 마구간 등을 갖추고 있다. 구경만으로 아쉬울 때는 하룻밤 머물러 가도 좋다. 사랑채와 행랑채, 별채 등 대부분의 방을 일반에 개방한다. 

고택 앞에 비치된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다. 송소고택의 둘째 아들집 송정고택과 동생집 창실고택 등 마을에 자리한 5채 한옥의 담장을 흘깃대며 페달을 밟는 동안 한적하지만 정감 있는 마을의 풍경이 가슴 속에 천천히 새겨진다.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하늘을 향해 치솟은 절벽 사이를 지나면 장쾌한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용추폭포가 가까워진 것이다.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걸음마다 비경 풀어놓는 속 깊은 주왕산 
청송에 왔으면 주왕산은 걸어볼 일이다. 청송의 숲이 지닌 싱싱한 자연의 에너지를 오롯이 담아갈 수 있다. 주왕산에서 시작하는 외씨버선길 1코스 18.5km를 걸어도 좋지만 모두 걷기에 시간도 체력도 모자라다면, 주왕산의 주 계곡 주방천을 따라 용추폭포와 절구폭포, 용연폭포까지는 반드시 거닐어보자. 내딛는 걸음마다 절경을 토해내는 주왕산의 속살에 반하지 않을 이가 없다. 휠체어도 오를 수 있을 만큼 평탄한 데다 맨발로 걸어도 좋은 흙길과 데크가 이어져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주왕산에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웅장한 소를 이룬 용연폭포.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주왕산국립공원안내센터에서 출발하면 얼마 가지 않아 주왕산의 상징인 기암(旗岩)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 이름은 중국 당나라 시대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한 주왕이 이곳에 깃발을 세웠다는 전설에서 따왔다. 주왕은 신라 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주왕굴에서 최후를 맞게 되는데 그가 죽으면서 흘린 피가 주방천으로 흘러내려 수달래로 피어났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대전사로 들어가면 기암의 우람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약 7000만년 전 화산 폭발 후 풍화 침식작용을 거치면서 이러한 걸작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암 외에도 주왕산에는 바위로 병풍을 두른 듯 기기묘묘한 암봉이 즐비해 과거 석병산이라 불렸다.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대전사 경내에서 바라본 주왕산의 수문장 기암. 2014년 9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주방계곡을 따라 기암괴석과 폭포의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뒤돌아서 다리 사이로 돌을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 떡 찌는 시루와 닮았지만 옆에서 보면 사람의 형상을 한 시루봉, 학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는 깎아지를 바위벼랑 학소대가 차례로 눈을 홀린다. 이어 하늘을 향해 치솟은 석벽 사이를 지나면 장쾌한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폭포의 시작이다.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용추폭포, 절구처럼 움푹 팬 바위 절벽에서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절구폭포, 2단 폭포가 웅장한 소를 이룬 용연폭포까지 감탄이 절로 터지는 장관의 연속이다. 안내센터에서 용연폭포까지는 왕복 3시간이면 충분한데 휴양지에서 3일을 보낸 것보다 힐링 효과가 뛰어나다.

INFO.
덕천마을 송소고택

숙박료 5만원부터
주소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15-2 

외씨버선길 청송객주
주소 경북 청송군 청송읍 월막2리 381-4

Tip 청송 여행 백배 즐기기 
달기약수백숙 먹기
우리나라 3대 약수의 하나로 꼽히는 달기약수는 철분과 탄산을 다량 함유해 위장병, 신경통, 빈혈 등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온다. 달기약수로 끓인 토종닭 백숙이 청송의 명물 먹거리. 약수터에서 34년간 백숙을 내온 부산식당은 엄나무, 오가피, 황기, 헛개나무, 녹두 등 몸에 좋은 약재를 아끼지 않고 사용해 진하면서도 담백한 국물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2인분 3만5000원.
주소 경북 청송군 청송읍 약수길 24

청송솔기온천에서 온천욕하기
솔기온천은 알칼리성 중탄산 나트륨천으로 신경통, 근육통, 피부질환, 노화방지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는데, 수질이 깨끗하고 매끄러워 여행 피로를 풀기에 그만이다. 입장료 6000원. 
주소 경북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 31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