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자전거 여행] 보이는 건 풀과 비닐하우스 뿐 청정지역 창릉천
[자전거 여행] 보이는 건 풀과 비닐하우스 뿐 청정지역 창릉천
  • 김대홍 기자
  • 승인 2008.08.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8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아이들이 한가롭게 그물낚시를 즐기고 있다. 2008년 8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서울 수계 내 한강 지류 하천 중에서 가장 색다른 곳을 꼽으라면 창릉천(昌陵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높은 빌딩은 찾아볼 수 없고, 보이는 것은 비닐하우스와 논밭이다. 그나마 가끔씩 보이는 집도 띄엄띄엄 있을 뿐이다. 게다가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구역으로 들어서면 하천 주변 길은 대부분 비포장이다. 창릉천 여행은 완전히 도시를 벗어난 비도시 여행이다.

그 모습이 참 평화롭다
창릉천 여행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지하철 6호선 마포구청역이나 망원역에서 내려 한강 망원지구(성산대교 쪽)로 들어선 뒤, 가양대교를 지나 방화대교까지 가서 창릉천 하류에서 시작하는 방법, 지하철 3호선 지축역에서 내려 창릉천 상류에서 하류를 보고 시작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여기서는 하류 쪽에서 시작하는 길을 소개한다.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 북한산 기슭에서 발원한 창릉천은 길이 22.5km의 긴 강이다. 원래는 덕수천이었으나 조선조 성종(1457~1494)대에 서오릉에 창릉이 들어서면서 창릉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창릉엔 조선 9대 왕인 예종과 계비인 안순왕후가 묻혀 있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아들로 14개월 동안 재위했고, 29세라는 이른 나이에 죽었다. 다음 왕이 바로 세종과 함께 조선시대 최고 중흥시대를 열었던 성종이다. 올해 방영한 드라마 <왕과 나>에 예종과 성종이 등장한 바 있다.

2008년 8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창릉천을 즐기는 산악자전거인. 2008년 8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성산대교에서 방화대교까지는 7.5km 정도 된다. 방화대교에서 한강 옆으로 바쁘게 흐르는 천이 창릉천이다. 여기서 상류쪽으로 2km 남짓 자전거전용도로가 이어져 있다. 짧은 구간이지만 꽤 운치가 있다.

주변은 한가하고 조용하다. 숨 막히게 만드는 끝없는 건물의 행렬, 시끄러운 자동차들의 질주 같은 것은 없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비닐하우스와 나무, 풀 정도다. 방화대교 옆에서 한 자전거인이 풀밭에 자전거를 눕히고 신문을 보고 있다. 그 모습이 참 평화롭다.

근처 다리엔 중화요릿집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여기 와서 자장면을 시켜 먹는 사람이 꽤 된다는 뜻인데,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서 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마 일행이 있었다면 시켰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자전거길이다. 중간 중간 파도가 넘실대는 것처럼 길이 아래로 푹 꺼졌다가 올라간다.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튼 재미있다. 멀리서 가만히 보니 자전거를 탄 사람 몸이 반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빨간 바닥과 주변의 파란 풀과 참 잘 어울린다. 원색 가운데를 달리니 시원한 느낌이다.

자전거길이 끝나는 곳에 바리케이트가 쳐 있다. ‘차량 진입금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길의 끝을 알린다. 하천 옆길을 따라 달리니 비닐하우스촌이다. 하천 옆길은 차선도 없는 1차선길. 자동차가 다니긴 하지만, 그 숫자가 적어 다닐 만하다.

2008년 8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재미있는 이름의 달걀뿌리길. 웬지 더 정겨운 느낌. 2008년 8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창릉천엔 배수펌프장이 많다. 강매배수펌프장, 현천배수펌프장, 도내배수펌프장 등을 봤다. 배수펌프는 물을 뽑아내는 데 쓰는 장치다. 창릉천 안에 있는 물을 뽑아내는 것일까, 아니면 창릉천 지류 물을 뽑아내는 것일까. 어쨌거나 창릉천 물은 무척 적은 편이다. 일부에서는 은평뉴타운 건설, 삼송지구와 행신2지구 택지 개발사업 등으로 인해 물이 말랐다고 비판하고 있다.

비포장길을 달리다   
산악자전거를 탄 사람이 많이 보인다. 비포장길이 대부분이라 산악자전거를 타면 제 맛이 날 것 같다. 미니벨로로 돌길을 달리며 산악자전거 흉내를 냈다.

길 오른쪽에 보이는 가게 이름이 주막상회다. 가게 이름이 재미있다. 

화전제방길을 달리다보니 눈에 띄는 간판이 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 연속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되었다는 간판이다. 주소지는 고양시 화전동 10통인 서화촌. 우리가 꿈꾸는 게 바로 범죄 없는 마을 아닌가. 공해 없고, 범죄도 없는 마을.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오염이 없는 지역을 떠나 그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환경은 우선순위가 아닌 셈이다.

창릉천을 따라 많이 보이는 일터는 재활용 공장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고철, 폐지 등을 처리하는 곳들이 많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공장들이 모두 이런 곳에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 쓰레기를 만드는 곳 따로, 처리하는 곳 따로이니 말이다.

다시 길을 달린다. 길에 돌이 많다. 어린 시절 외가에 가서 자주 타본 길이다. 외가에서 읍내까지 나가는 길은 모두 비포장길이었다. 잔돌도 있었지만 큼직한 돌도 많았다. 외삼촌이 타던 큰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달리면 자전거가 통통 튀었다. 이 정도면 그나마 좋은 길이었다. 

2008년 8월. 사진 / 김대홍 기자
저 멀리 보이는 주막상회. 세월이 정지된 것 같다.  2008년 8월. 사진 / 김대홍 기자

풀이 무성하게 자라 바닥이 잘 안 보이는 길도 있었다. 창릉천을 따라 달리면서 그런 길도 만났다. 불편하기보다는 오히려 재미있다. 잘 닦인 길을 달리다가 가끔은 이런 길을 달리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길이 좁아지다가 마침내 사라진다. 이젠 강 건너편으로 가야 한다. 마침 돌다리가 있다. 건너편엔 돌계단이 있지만, 이쪽엔 없어서 내려가기가 불편하다. 먼저 자전거를 내리고 나도 뛰어내렸다. 순간 따끔거렸다. 느낌으로 봐선 벌에 쏘인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 벌에 한 번 쏘인 적이 있는데, 딱 그 느낌이다. 통증은 있지만 자전거를 타는 데 무리는 없다.

돌다리를 지나면서 물을 봤다. 아주 맑다. 다슬기가 돌 틈을 기어다닌다. 무엇이 사는지를 보면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슬기는 1급수 물에 사니, 적어도 이 일대 물은 깨끗한 것이다.

돌계단을 타고 길 위로 올라갔다. 길 이름이 달걀뿌리길이다. 달걀에 뿌리가 있다니 재미있다.
머지않아 지축동이 보인다. 이곳은 줄곧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가 얼마 전 자연녹지로 풀렸다. 택지개발지구로 지정이 되면서다. 정부는 여기에 임대아파트 단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곳 주민들은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주변 지역이 모두 일반택지로 풀렸는데, 자연녹지 상태의 보상가론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설명이다.

주민 중에는 이 한가하고 조용한 동네가 좋다면서 개발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그곳에서 만난 어르신 세 분은 이곳이 개발되면 갈 곳이 없다면서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쳤다.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동네를 돌았다. 하천 옆에 대형 크레인이 여러 개 보인다. 은평뉴타운 공사 현장이다. 주변의 한가로운 풍경과 뉴타운 공사 현장의 높다란 크레인이 참 어색하다. 다리 옆에 식당이 하나 있다. 보신탕과 냉면을 파는 집이다. 

2008년 8월. 사진 / 김대홍 기자
한 자전거인이 풀밭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고요하다. 2008년 8월. 사진 / 김대홍 기자

비가 오는 날인데 동네 어르신 몇 명이 안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다리 아래선 술을 마시는 또 다른 사람 둘이 있다. 돌이켜보면 다리 아래서 종종 놀고 먹고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에선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다. 한강이야 워낙 강폭이 넓고, 물이 많으니 다리는 많아도 그럴 만한 장소가 없다. 다른 강도 마찬가지다. 항상 물이 흐르니 다리는 항상 잠겨 있기 때문이다.

창릉천은 강폭은 넓지만 정작 물이 흐르는 곳은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래와 수풀더미다. 이렇게 물이 적은데도, 강 가에선 수풀과 온갖 농작물들이 자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보이는 물은 적어도 땅을 적시는 물은 제법 되는 모양이다.

밭을 찬찬히 살피다보니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지하철 한 구간만 남으로 내려가면 서울인데,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니. 표지판을 보니 우리나라가 아직 남북으로 총부리를 맞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계속 북쪽으로 올라갔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은평 뉴타운을 지나, 길목슈퍼에서 우유를 하나 사서 마셨다. 상류로 많이 올라왔지만, 강폭은 여전히 비슷하다. 곧이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은 기자촌, 왼쪽이 창릉천이다. 기자촌은 과거 기자들이 떼로 살았다고 해서 붙은 마을 이름이다.

여기서부터 창릉천 자전거길은 더 이상 하천과 나란히 달리지 않는다. 상류를 보려면 좀더 가야 하지만, 천이 보이지 않는 자전거길이 무슨 매력이 있을까. 은하교에서 천 상류와 하류를 살펴본 뒤, 자전거에서 내렸다. 아쉬움이 남아 개발을 앞두고 빈집투성이인 기자촌으로 발길을 돌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