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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정길화 PD의 남미 여행] 브라질 리우 낭만 여행 리우 해변에서 이파네마의 소녀를 만나다
[정길화 PD의 남미 여행] 브라질 리우 낭만 여행 리우 해변에서 이파네마의 소녀를 만나다
  • 정길화
  • 승인 2013.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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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여행스케치=브라질] 브라질 하면 ‘삼바’라지만 여행 첫날은 삼바 리듬에 재즈의 낭만과 여유를 더한 보사노바풍을 추천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대서양을 바라보는 리우의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이파네마의 소녀’를 만날 수 있다.

직항 노선을 타도 26시간이 걸리는 브라질은 비용 면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마음 먹고 작정해야 떠날 수 있는 꿈의 여행지다. 필자가 과거 주상파울루 중남미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금요 와이드>라는 MBC 매거진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했는데 MC였던 남희석은 내가 나올 때마다 “나는 저분이 제일 부러워요”라고 말하곤 했다. 부럽기도 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 꿈의 여행지를 수시로 들락날락하니 말이다. 하지만 안방에서 TV로 보는 사람에게나 로망이지,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브라질은 저치안, 고물가의 쓰디쓴 현실뿐이었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리우의 빈민가 파벨라의 모습.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코파카바나 해변. 브라질 국기가 그려진 비치 타월을 파는 노점상과 함께.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특파원으로 만 2년, MBC 시사 프로그램 <김혜수의 W>에서 중남미 이슈를 다룬 기간까지 거의 3년. 라틴아메리카에 빠져 살다가 이제는 돌아와 지나간 날들을 회고한다. 눈을 감으면 열정과 낭만의 나라, 브라질에서의 한때가 미소로 되살아난다.


주재원으로서 또 생활인으로서 지내기가 쉬운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추억 속의 브라질이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순간에는 나조차도 브라질에 있었던 내가 제일 부럽다. 이제는 나 또한 누군가 브라질에 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그대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요.”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리우의 해안선. 설탕빵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볼 수 있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예수상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려면 날씨부터 보라
PD 특파원 정길화의 ‘브라질 육탄전’은 리우(Rio, 브라질 현지에서는 포르투갈어 발음인 ‘히우’라 발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남미 최대 도시 상파울루를 제치고 리우를 먼저 찾아가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유네스코는 2012년 1월 세계 3대 미항 리우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도시 전체가 영감을 주는 곳’이라고 했다.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든 예수상(Cristo Redentor 구세주 그리스도)은 어떤가. 하다못해 도심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빈민가 파벨라(favela)조차도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리우의 정신과 문화를 보여준다.

리우에 도착하면 어디부터 갈까. 숙련된 여행자들은 보통 여행 첫날 예수상을 바라보고 여행 루트를 짠다. 예수상이 육안으로 잘 보이면 맑은 날. 당연히 코르코바두(Corcovado) 언덕을 향한다. 그러나 예수상이 흐릿하게 보이는 흐린 날에는 팡지아수카르(설탕빵산 혹은 빵산으로 불린다)으로 가거나 도심과 해변을 돈다. 보통 오전에는 예수상, 오후에는 설탕빵산이 좋다고 하는데 날씨가 수시로 변해 이 작전이 잘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올라가든 아름다운 해안선이 시야에 들어찬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든 예수상은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빈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리우가 아름다운 것은 이 해안선 때문이다. 특히 대서양이 깊숙이 들어오는 구아나바라 만을 보고 있노라면 마라빌료사(maravilhosa)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리오의 시가(市歌)에서도 ‘시다지 마라빌료사(cidade maravilhosa)’라고 반복되는데 이는 바로 리우 시의 별명이기도 하다. 갈 길이 바쁜 관광객들은 예수상과 빵산을 둘러보고 해변에서 사진 촬영을 한 다음 필경 보석 가게를 거친 후 리우를 떠날 것이다. 여유가 있다면 시립극장, 대성당, 식물원, 마라카냥 경기장 정도를 더 돌아볼 수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리우의 해변과 바다에 꼭 들어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전형적인 리우의 해안 풍경. 리우는 도시 전체가 영감을 주는 곳이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브라질의 모든 해안은 대서양을 바라본다. 리우에는 그 유명한 코파카바나(Copacabana)와 이파네마(Ipanema) 해변이 있다. 사진만 찍을 것이 아니라 꼭 수영복을 입고 모래사장을 거닐고, 바닷물에 몸을 적셔보길. 

해변 산책을 마치면 관광 가이드는 해변 도로에 연해 있는 중국집에서 식사를 권하겠지만 나는 이파네마 해변 안쪽에 있는 ‘가로타 지 이파네마’ 식당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로타 지 이파네마? 어디서 듣던 얘기인데 하는 이는 뭘 좀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바로 보사노바(bossa nova)의 전설적 명곡 ‘이파네마의 소녀’와 동명의 식당이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리우의 한 보사노바 전문 서점.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17세 소녀 훔쳐보던 중년 남성, 결국…
1950년대 말 브라질은 월드컵 우승, 쿠비체크 대통령의 근대화 정책 등으로 자신감이 한껏 고양된다. 이 시기 리우의 자유분방한 음악 청년들은 전통 예술에 반기를 들고 그들의 이상과 동경이 담긴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다. 그 결과 탄생한 보사노바는 격렬하고 과장이 심한 삼바에 식상해 있던 브라질 백인 중산층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1962년 겨울, 리우 이파네마 해변의 한 식당가. 브라질의 국민 시인 비니시우스와 떠오르는 뮤지션 톰 조빔이 벨로조(Veloso)라는 이름의 카페에 들어선다. 두 사람은 1958년 ‘그리움은 이제 그만(Chega de Saudade)’이라는 노래로 보사노바 열풍에 불을 지핀 주인공이었다.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은 보사노바 역사상 불후의 날로 기록된다. 두 중년 남성의 앞에 눈과 마음을 빼앗는 아름다운 소녀가 나타난 것이다. 여자 나이 15세에 성인식을 하는 브라질에서 17세면 아름다움이 절정일 때. 소녀 엘루 피녜이루(Helo Pinheiro)는 어머니의 담배 심부름으로 카페에 들렀다가 이내 사라진다. 자신을 보고 휘파람을 부는 중년의 남성들이 소녀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소녀의 방향(芳香)과 중년의 허망함. 그러자 당대의 문인과 뮤지션인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였으니 이것이 바로 ‘가로타 지 이파네마’다.  

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보라.
소녀는 달콤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바다를 향해 가는구나

이파네마의 태양으로 그을린 
황금빛 피부의 여인

내 앞을 지나쳐간 여인 중에 
가장 아름답구나.
아, 나는 왜 이렇게 홀로인지
아, 모든 것이 왜 이렇게 슬픈지.

소심한 중년 남성들의 ‘한눈팔기’는 마침내 이렇게 문학과 음악으로 승화되었다. 아마도 그중 한 명은 당시 유부남이었을 것이나 그들은 이에 구애받지 않았다. 짝사랑은 실정법에 위배되지 않으니 말이다. 얼핏 가왕 조용필의 ‘단발머리’의 가사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있다. 다만 ‘가로타 지 이파네마’는 바로 소녀와의 마주침을 노래로 만든 것에 비해, ‘단발머리’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 ‘그 언젠가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로 추억을 시작하는 시점이 훨씬 지나 있다. 그것이 브라질과 한국의 문화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보사노바 명곡 ‘이파네마의 소녀’ 산실이 된 곳. 카페였다가 지금은 노래와 같은 이름의 식당이 되어 있다. 작사가와 작곡가가 앉았던 자리의 벽면에 ‘이파네마의 소녀’ 악보가 걸려 있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이파네마의 소녀’ 모델이 되었던 엘루 피녜이루. 그녀의 젊은 시절을 그린 초상화 앞에 서 있다. 일세를 풍미했던 미모는 여전하다. 2013년 11월 사진 / 조경혜

어쨌든 ‘가로타 지 아파네마’는 보사노바의 대표적인 노래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1964년에는 미국 재즈 음악의 색소폰 주자 스탠 게츠가 톰 조빔, 주앙 지우베르투 부부와 함께 영어로 취입해 발표했다. 이 노래는 빌보드 핫 100에서 5위를 하고 이지 리스닝 부문에서는 2주간 정상에 올랐다. 불후의 명곡 ‘가로타 지 이파네마’는 전 세계에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 다음으로 많이 취입된 노래로 알려져 있다.

노래의 배경이 된 카페 벨로조는 그 후 ‘가로타 지 이파네마’라는 식당으로 바뀌어 노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세계인들의 필수 순례지가 됐다. 건너편 2층에는 리우 유일의 보사노바 전문 공연장 ‘비니시우스’ 식당이 들어섰고 이 거리는 ‘비니시우스가’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한편 두 중년을 사로잡은 그 소녀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소녀 엘루 피녜이루는 이제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됐다. 지난해 ‘가로타 지 이파네마 소녀’ 50주년 기념 취재를 하던 나는 그녀가 상파울루에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전설 속의 그녀를 찾아 나섰다. 내가 그녀를 찾아가자 노래 50주년으로 자신을 찾아온 취재진은 내가 처음이라며 맞아주었다. 뭇 남성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던 그녀는 이제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추억 속에 살고 있었다.  

노래에 얽힌 얘기를 몇백 번도 더 했으련만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피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그 노래의 주인공인지 몰랐다고 한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고. 아름다운 17세 소녀에게는 당시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약혼자 페르난도는 유명해진 그녀를 놓칠까봐 서둘러 청혼을 했다. 그 정도 유명세에 미모면 연예계에 진출할 뻔했을 텐데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중년과 노년 여성용 의류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파네마의 소녀’를 알고, 듣고, 다시 이파네마 해변으로 나가본다. 태양이 작열하는 약동의 해변에 가득한 ‘물례르 브라질레이라(mulher brasileira 브라질 소녀)’들이다. 소녀 한 명 한 명이 ‘이파네마의 소녀’ 노래의 주인공으로 보인다. 이국적인 브라질 아가씨와의 로맨스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겠지만 그 풋풋하고 생생한 미소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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