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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④ 숨겨진 비경] 화룡점정 봄의 정점을 찍는 흑매화와 올벚나무, 구례 화엄사의 봄
[특집 ④ 숨겨진 비경] 화룡점정 봄의 정점을 찍는 흑매화와 올벚나무, 구례 화엄사의 봄
  • 손수원 기자
  • 승인 2010.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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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화엄사 흑매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 = 구례] 무르익는 봄은 풀과 꽃의 색으로 표현된다. 지리산의 천년고찰 화엄사로 가면 동백보다 더 붉디붉은 단 한 그루의 흑매화와 세속의 번뇌를 벗은 듯 의연하게 서 있는 올벚나무를 만날 수 있다. 천년고찰에서 300살 먹은 두 나무가 들려주는 무르익은 봄 소식을 만나보자.  

여인의 입술처럼 검붉은 흑매화
화엄사 창건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으나 544년(신라 진흥왕 5년)이나 670년(신라 문무왕 10년)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고 보니 지나온 세월만 천 년이 훌쩍 넘는다. 웅장한 건물의 빛바랜 단청, 사람들의 손을 탄 나무기둥의 옹이에서 천 년이란 세월의 진득함이 묻어난다. 

유난히 검은 기운이 돌아 흑매화라 불리는 화엄사의 홍매화. 사진 / 손수원 기자

화엄사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과 국보 제12호이자 우리나라 최대의 석등, 국보 제35호 사사자삼층석탑 등 내로라하는 문화재들이 있는 절이다. 웅장한 건물의 위세에 문화재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화엄사의 봄엔 특별한 ‘문화재급’ 볼거리가 한 가지 더 생긴다. 각황전 앞의 홍매화. 이 홍매화 나무는 조선 숙종(1674~1720) 때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파선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나무의 나이만 300살이 넘으니 화엄사의 역사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인간사에 비하면 신성함마저 느껴지는 오랜 세월이다.  

다른 절에서는 루 밑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지만 화엄사의 보제루는 가람 배치의 조화를 감안해 루 옆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이 홍매화가 특별한 것은 수령뿐만이 아니다. 오랜 불심이 꽃에 깃든 덕분일까, 다른 홍매화들에 비해 유난히 검붉은 꽃 때문에 ‘흑매화’로 불리는 유일한 나무이다. 덕분에 봄이 오면 이 흑매화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린다. 

매화는 나무를 심은 이나 사연, 지명에 의해 그 이름이 제각각 달리 불리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백양사의 고불매와 선암사의 청매화(선암매), 산청 남사마을의 원정매와 단속사지의 정당매 등이 있다. 마치 사람에게 이름을 붙이듯 각각의 나무에게 이름을 붙이고 친근하게 불러주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매화 사랑이었던 것이다. 

곳곳에 국보와 보물이 있는 화엄사 전경. 사진 / 손수원 기자

화엄사 흑매화도 마찬가지다. 장육전 앞마당에 있던 나무라 해서 장육화(丈六花)라 부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의 얼굴색을 보고 별명을 붙이듯 흑매화란 이름이 더 자주 불린다. 

각황전 오른쪽으로 눈길을 주니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진다. 아니, 단지 평면의 수묵화라 하기엔 그 생생함이 훨씬 더해 ‘수묵화보다 더 수묵화’같은 풍경이다. 진득하게 시간과 싸움을 하며 세월의 풍경을 그리는 것이 수묵화라 하지 않던가. 화엄사 흑매화 또한 수려한 수묵화에 붉은 낙인을 찍기 위해 인내의 시간을 보낼 줄 아는 나무다. 섬진강변엔 이미 청매며 백매, 산수유가 지천으로 피었건만 각황전 앞의 흑매는 섣불리 꽃을 틔우지 않는다. 이른 봄 소식을 전해 듣기 위해 흑매 앞에 선 사람들에게 한껏 팔을 펼쳐 ‘조금 더 기다리라’고 말한다.  

화엄사 흑매가 꽃을 틔우는 시기는 금둔사로 가면 알 수 있다. 설익은 봄기운은 금둔사에 먼저 당도해 홍매화를 틔우고 3월 중순 다시 선암사로 옮겨간다. 선암사에서 홍매화가 한껏 봄기운을 담았다 뱉어내면 그제야 화엄사의 홍매화가 꽃을 틔우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인 각황전 석등. 사진 / 손수원 기자

봄기운의 농익은 정도에 비례해 꽃의 붉음도 더욱 진해져 금둔사의 홍매화가 어린 아기의 볼처럼 연분홍의 순수함을 가졌다면, 선암사의 홍매화는 수줍어 발갛게 달아오른 소녀의 뺨처럼 짙은 분홍빛을 띤다. 화엄사의 흑매화는 소녀가 여인으로 되는 순간을 담아내듯 꽃망울마다 여인의 붉은 입술처럼 농염한 기운을 담고 무르익어가는 봄을 표현한다. 
    
꼭꼭 숨은 봄을 틔워내는 지장암 올벚나무
화엄사에서 봄을 틔워내는 것은 흑매화뿐만이 아니다. 화엄사 찻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지장암이란 작은 암자가 있는데 거기에서 조금 더 오르면 흑매화보다 더 오랜 세월 이곳을 지킨 벚나무 한 그루가 있다. 

화엄사와 흑매화를 아는 이는 많아도 350여 년 동안 자리를 지킨 올벚나무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리고 이 올벚나무가 천연기념물 제38호라는 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벚나무라는 사실을 아는 이도 많지 않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서운할 법도 하지만, 올벚나무는 의연하게 봄기운을 흰 꽃에 담아낼 채비만 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지장암 올벚나무엔 시멘트가 덧대어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여기에 올벚나무가 심어진 사연이 재미있다. 이 나무는 조선시대 화엄사를 중창한 벽암스님이 심은 것이다. 병자호란(1636~1637년)이 끝난 후 조정에선 유사시에 대비하여 벚나무를 많이 심게 하였다. 벚나무 껍질은 창이나 칼의 자루를 만드는 귀중한 군수자원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한 벽암대사도 이를 잘 알았기에 화엄사 주변에 올벚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때 심은 나무 중에 3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홀로 살아남은 게 바로 이 나무이다.

“한 100년 전까지는 이 나무 말고도 한 그루가 더 있었는데, 적묵당을 보수할 때 베어서 마루를 깔았지요.”
지나가던 스님은 마지막 남은 올벚나무의 외로움이 안타까운 듯 바라본다. 어쨌든 무기와 건축의 재료로 쓰려던 본디 목적에 맞게 쓰였으니 그 희생이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버티고 지내온 세월이 아깝고, 그 빈자리가 커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장암 올벚나무는 식목일 즈음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스님은 “식목일 즈음이면 우리 피안앵이 하얗게 될 것”이라며 그때도 꼭 오라고 한다. 이때는 흑매화가 지기 직전이자 올벚꽃은 피기 시작하는 시기여서 화엄사가 가장 화려해지는 때란다. 

흔히 올벚나무를 피안앵(彼岸櫻)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세상의 번뇌를 벗어나 열반세계에 도달하는 나무’란 뜻이다. 그 오랜 세월 봄마다 세간의 이목을 모두 받는 흑매화를 언덕에서 바라보면서도 피안앵은 시기하지 않고 묵묵히 서 있었을 것이다. 100여 년 전 유일한 벗이 잘려나가는 광경을 보면서는 마치 자신의 몸이 잘리는 듯 괴로워했으리라. 인고의 세월을 지켜온 올벚나무에게서 해탈한 고승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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