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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차 타고 세계 여행 ⑧] 포르투갈 포루투에서 로카곶까지, 산 넘고 물 건너 ‘협궤열차’를 찾아서!
[기차 타고 세계 여행 ⑧] 포르투갈 포루투에서 로카곶까지, 산 넘고 물 건너 ‘협궤열차’를 찾아서!
  • 최지웅 기자
  • 승인 2010.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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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산을 개간해서 만든 계단식 밭 사이를 철길이 가로지른다. 사진 / 최지웅 기자

[여행스케치 = 포르투갈] 아직도 신대륙 개척 시대의 갈등이 남아 있는 탓일까.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도 두 나라를 잇는 열차가 매우 드물다. 그나마 스페인 서북부에 포르투갈로 가는 열차가 유일하게 운행을 하고 있어서 그 국제열차를 탔다.  

그래도 명색이 ‘국제열차’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럴듯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리나라의 통근 열차와 비슷한 좌석 구조를 가진 디젤동차 2량 편성이다. 그나마 중간 정차역이 적어서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갈 수 있다는 점과 차내에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외에 영어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협궤와 광궤가 합쳐진 4선 철길. 사진 / 최지웅 기자

열차는 철길을 유유히 미끄러져 포르투갈로 향한다. 포르투갈로 넘어가는 국경에 위치한 투이역에서 다시 승차권 검사를 한 후에 바로 국경을 넘었다. 하지만 포루투갈로 건너왔다는 사실은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저 강을 하나 건넜을 뿐, 창밖 풍경도 달라진 것이 없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시간의 시차가 있으므로 시계를 맞추어놓고 눈을 감았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가끔 눈을 떠서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저 멀리 높은 산지에도 불빛이 밝혀져 있으니 아마도 저렇게 높은 지대에서도 사람들이 사는 모양이다. 

과연 예상대로 포르투갈에 내려 숙소로 향하는 길이 가파른 언덕길이다. 어두운 밤이라 높은 언덕을 오르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낑낑대며 숙소까지 올라가 하룻밤을 곤히 잤다. 

도우루강을 바라보는 언덕은 올리브가 심어진 계단식 밭으로 이루어졌다. 사진 / 최지웅 기자

도우루강을 따라 굽이치는 기찻길 
다음 날 본격적으로 포르투갈 북부 도시인 포르투를 둘러보았다. 포르투의 중앙에는 도우루강이 흐르는데 강 주변으로는 높은 언덕이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강을 연결하는 다리들이 매우 높은 곳에 놓여 있고, 강변에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까지 운행되고 있다. 도시 내에 협곡이 있는 셈이다. 

철도도 이런 지형을 무시할 수 없어서 지하에 놓였던 철길이 강을 건너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와 철교를 건넌 후에 도로 중앙을 가로지르게 설계되어 있었다. 지나가던 일본인 노부부도 이상했는지 “이 철길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지하철인지 아니면 노면전차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딱히 어느 쪽이라 답할 수 없어 단지 “그냥 철도예요”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한동안 생경한 철도 옆을 서성이다가 도우루강을 따라 이어지는 철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르투 소우벤토역에서 열차를 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은 보기 힘든 낡은 디젤동차이지만 의자는 푹신해서 좋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연결하는 국제열차. 사진 / 최지웅 기자

시내를 벗어나니 도우루강이 나타나고 철길은 강을 따라서 굽이굽이 이어진다. 강 주변은 대부분 산지인데 계단식으로 밭을 만들어 농작물을 심어놓았다. 흡사 우리나라 남해의 다랑논과 비슷한 모양이다. 그 사이로는 드문드문 민가가 보인다. 언덕을 오가는 도로도 얼마 전에 놓였다는데 저렇게 높은 지대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도우루강의 풍광을 감상하다가 레구아역에서 내렸다. 노선이 갈라지는 지점이라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승강장 한쪽에는 작은 버스처럼 생긴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선로가 좁은 협궤열차다. 협궤열차는 레일 사이의 너비가 불과 1m여서 ‘미터궤간’이라고도 부른다. 

레구아역에서 출발한 협궤열차는 기존의 광궤와 합쳐져서 선로가 4개나 되는 특이한 구간을 지난다. 협궤열차는 안쪽의 레일만을 이용해서 달리고, 폭이 넓은 광궤열차는 바깥쪽 레일을 이용해서 달리는 것이다. 철교를 하나 지나면 협궤와 광궤의 동침은 끝난다. 

카스카이스로 가는 철길과 타구스강을 지나는 다리가 도로 사이에 놓여 있다. 사진 / 최지웅 기자

이어서 열차는 느릿느릿 언덕을 오른다. 올라가는 중간에는 작은 간이역이 있어서 몇몇 승객들이 타고 내린다. 멈춘 사이에 바깥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았는데, 계단식 밭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른 승객에게 물었더니 이것이 다름 아닌 ‘올리브’란다. 아하, 건강에 좋은 기름의 재료가 이곳에서 생산되는구나! 

열차는 올리브밭 사이의 철길을 느릿느릿 달린다. 커브가 얼마나 심한지 아래쪽으로 이미 지나온 철길이 보인다. 더구나 철길 옆으로는 아득한 낭떠러지가 있어 내려다볼수록 아찔하다. 

도우루강을 따라 이어지는 철길. 사진 / 최지웅 기자

1시간 가까이 이렇게 구불구불한 철길을 달려 종착역인 빌라레알역에 도착했다. 빌라레알역은 선로 몇 개에 좁은 승강장이 서 있는 작은 역이다. 그래도 역 건물에는 개통 100주년을 기념하는 명판이 붙어 있고, 역전 광장에도 개통 당시에 운행되었던 증기기관차를 놓아두어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한다. 

미터궤간을 달리는 낡은 디젤차 
다음날에는 또 다른 미터궤간의 철도가 있다는 에스피노로 향했다. 이윽고 에스피노역에 내렸는데 미터궤간의 열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역 직원에게 물어보니 여기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또 다른 역이 있다고 했다. 원래 두 역이 함께 있었는데 시가지를 지나는 철도가 지하로 이설되면서, 미터궤간 노선 역이 옮겨졌다고 한다. 

미터궤간 노선의 종점인 빌라레알역. 사진 / 최지웅 기자

열차 출발 시각에 맞추어서 헐레벌떡 뛰어갔더니 허허벌판에 작은 역이 하나 있고 두 칸짜리 낡은 디젤동차가 대기하고 있다. 열차는 바로 출발했다. 그런데 열차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역에서 정차하지 않고 중간중간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또다시 멈췄다 출발하는 것이 여러 번 반복됐다. 

객실 안에 안전모를 쓴 직원에 물었더니 도로가 지나는 건널목에 열차가 멈춰서 직원이 손수 차단기를 내린 다음 다시 열차가 지난 후에 차단기를 올린다는 것. 철도 건널목의 차단기를 여닫는 역할을 사람이 직접 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열차는 아무래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인 로카곶의 눈부신 경치. 사진 / 최지웅 기자

이렇게 느릿느릿 달려 세르나다도보우가역에 도착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어 마을 아래로 내려가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날씨가 맑아 강가의 모래가 뜨겁게 달궈졌다. 슬며시 발을 담가보니 그래도 강물은 차갑다.

2시간 남짓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기차를 타러 역으로 갔다. 이곳에서 몇 번이나 열차와 버스를 갈아탄 끝에 리스본을 지나 로카곶에 닿았다. 대서양을 향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솟아 있는 로카곶은 리스본과는 달리 차가운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태평양을 지척에 둔 한국에서 대서양이 보이는 이곳까지 왔으니 ‘참 멀리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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