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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숨겨진 여행지] 경남 사천 대방진 굴항 “찾을 수 있으면 찾아봐” 
[숨겨진 여행지] 경남 사천 대방진 굴항 “찾을 수 있으면 찾아봐”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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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숲으로 둘러싸인 대방진 굴항.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사천] 아무리 다녀도 알지 못했다. 이처럼 은밀한 비밀의 장소가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조선시대의 왜적들도 그러했으리라. 사천의 창선-삼천포대교 밑으로 가면 왜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비밀의 항구’를 만날 수 있다. 

대방진은 고려시대 처음 만들어진 항구이다. 당시 남부 해안가는 왜구들의 노략질이 심했는데, 고려는 이에 맞서기 위해 항구를 만들고 수군을 주둔시켰다. 이후 조선시대 순조에 의해 다시 항구가 정비되었고, 상비병 300여 명과 전함 2척을 상주시켜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다. 

흔히 항구라 하면 배의 안전을 위해 바다 쪽에서 잘 보이게 하여 설계하는 게 정석이지만 대방진 굴항은 정반대다. 철저히 숨기고, 눈에 띄지 않게 했다. 이는 침입한 적을 최대한 끌어들여 일침에 격퇴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렇게 입구를 좁게 만들고 섬으로 위장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C자형으로 만들어진 좁은 입구를 지나면 넓은 공간이 나타나는 낚싯바늘 모양 덕분에 바다에서 굴항을 바라보면 하나의 작은 섬으로 보인다. 방어하는 세력이 보이지 않으니 왜적은 마음놓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는 전함에 기겁하고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숨겨둔 정박지로 삼았다는 말이 있으나 역사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다. 하지만 마을에서 굴항 내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워놓아 이야깃거리를 더하고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굴항 주변의 골목길. 사진 / 손수원 기자

대방진 굴항은 하늘에서도 완벽히 감춰진 공간이다. 창선-삼천포대교를 몇 번이나 지나봤지만 여태껏 굴항을 찾은 적이 없다. 바다 쪽에서 보면 작은 섬으로, 위에서 보면 작은 숲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은폐의 정석’이 있다면 이야말로 ‘10점 만점에 10점’짜리인 셈. 

3~4단으로 둑을 쌓은 굴항은 축조 당시엔 굴이 붙지 않도록 민물을 채웠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바닷물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나간다. 덕분에 마치 어항처럼 바닷물고기가 제멋대로 들락날락거리기도 한다. 

콧끝으로 진한 소금기가 전해진다. 바닷물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이 조개며 굴을 따와 손질하고 있어 더 그렇다. 

대방진 굴항은 현재 항구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다. 좁은 입구 쪽에 새로 등대를 세우고 방파제를 쌓아 현대식의 항구를 다시 만들었다. 대신 굴항은 동네 주민들의 쉼터로 탈바꿈했다. 작은 정자에는 아내에게 집안일을 맡겨놓고 온종일 남자들이 모여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람이 부는 날이라 배를 띄울 수 없는 탓이다. 이런 날은 굴항 쉼터가 시끌벅적해진다. 막걸리 한 사발에 ‘재미로 치는’ 화투짝이 춤을 춘다. 항구의 시간은 이미 멈추었지만 항구에 사는 이들의 시간은 하루 24시간 빠짐없이 잘도 흘러간다.  

굴항을 와본 사람이라면 모두들 ‘숨겨진 명소’라며 감탄할 만하다. 세월을 양분 삼아 돌을 뚫고 자란 느티나무며 팽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신비한 분위기가 난다. 가을에는 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고, 겨울에는 고즈넉하다. 

곳곳에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눈에 띈다. 빨간 등대를 둘러본 후 굴항의 나무의자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면 사랑도 더욱 무르익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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