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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제주 오름과 숲] 은빛 억새가 출렁이는 가을날의 서정
[제주 오름과 숲] 은빛 억새가 출렁이는 가을날의 서정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1.10.13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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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별오름과 따라비오름
눈이 내린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억새 군락.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눈이 내린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억새 군락.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제주] 제주의 가을은 억새꽃들의 잔치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꽃무리가 은빛 물결을 쏟아 놓는다. 억새를 만끽하기 좋은 장소는 역시 오름이다. 새별오름과 따라비오름이 각각 서쪽과 동쪽을 대표하는 억새 명소로 꼽힌다.

살랑대는 바람에 억새꽃 군락이 사방에서 물결친다. 이 맘 때면 섬 전체가 억새 군락으로 뒤덮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억새꽃이 만발한 오름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펼쳐내느라 하루 종일 분주한 모습이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억새 명소 가운데 새별오름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서부 지역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힐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무엇보다 중문고속화도로에 인접해 찾아가기 쉽고 주차도 편리하며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활짝 핀 억새꽃 사이를 걷는 관광객.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활짝 핀 억새꽃 사이를 걷는 관광객.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제주도 대표 억새 명소인 새별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제주도 대표 억새 명소인 새별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제주 억새 여행 일번지, 새별오름
반듯하게 뻗은 도로가에 우뚝 선 새별오름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동화 속 언덕 같다. 여름 내내 반지르르 윤기 나는 푸른 슈트를 뽐내더니 가을 한복판에 접어들면서 복슬복슬한 은빛 털옷으로 갈아입었다. 바람이 한 번씩 불때마다 은빛 물결을 일으키며 오름 전체가 반짝반짝 빛난다.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새별오름을 올랐다. 

새별오름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봉긋 솟아오른 거대한 언덕처럼 보인다. 멀리서 볼 때는 아담해 보이지만 산체가 꽤 큰 오름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름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름 규모에 비해 탐방로는 단순한 편이다. 오름 자락과 맞닿은 양 끝에서 정상부까지 탐방로가 곧게 이어져 있다. 어느 쪽을 먼저 올라도 상관없지만 보통은 왼쪽에 남향 탐방로를 이용해 정상에 오른 뒤 반대쪽으로 내려온다. 

오름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소요된다. 남향 탐방로를 이용하면 오름 능선을 따라 비탈진 언덕을 곧장 올라가기 때문에 한 두 번은 쉬어가야 한다. 억새가 핀 사잇길을 지나면 금세 언덕진 탐방로가 나타난다. 탐방로가 경사가 급한 편이라 노약자나 아이들은 반대쪽 북향 탐방로를 이용하면 오르기가 조금 더 수월하다. 대신 시야가 탁 트인 전망을 갖고 있다. 탐방로 부근에 나무가 별로 없는 탓이다. 

잠시 걸음을 멈춘 곳에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다보니 주변 경치가 한 눈에 훤히 잡힌다. 길게 이어진 도로 뒤편으로 한라산 자락 아래 옹기종기 모인 오름 군락과 드문드문 작은 숲이 형성된 들녘이 한 폭 유화처럼 단정히 걸려 있다. 마치 민둥산처럼 보이는 새별오름은 나무들이 무성한 숲길 대신 하늘거리는 억새꽃 무리로 가득하다.

가을이 되면 오름 전체가 은빛 억새로 물든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가을이 되면 오름 전체가 은빛 억새로 물든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노을까지 아름다운 풍경
정상에 한 발 내딛는 순간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콧잔등에 송알송알 맺혀 있던 땀방울들을 옷소매로 훔치고 나니 더욱 상쾌한 기분이다. 이리저리 불어오는 바람결을 따라 한껏 피어난 억새꽃들이 흔들흔들 춤을 쳐댄다. 아래에서 볼 때는 정상부가 봉긋해 보였는데 막상 올라서니 탐방로가 함몰된 분화구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탐방로 전체에 걸쳐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걷기가 편하다.
 
정상부 가운데에는 새별오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새별오름은 표고가 519m에 달할 만큼 높은 고지에 위치해 이곳에 서면 주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맑은 날이면 앞쪽에는 한라산이, 뒤쪽으로는 비양도가 또렷하게 잡힌다. 노을이 지는 풍경도 근사해 해가 질 무렵이면 표석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모두 서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다. 억새 군락 너머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얼굴도 따라서 발갛게 상기된다. 

분화구 능선을 따라 난 길은 북향 탐방로로 이어진다. 이쪽은 약간 지그재그식 탐방로가 조성되어 오르내리기가 조금 더 편하다. 더구나 억새꽃도 훨씬 풍성하고 촘촘한 편이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억새꽃 군락에 햇빛이 비치니 은빛 솜털들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새별오름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사람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새별오름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사람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봄이면 새별오름에서 제주들불축제가 펼쳐진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봄이면 새별오름에서 제주들불축제가 펼쳐진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봄철 붉게 타오른 불꽃은 은빛 물결을 이루고
새별오름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처럼 보이지만 정상에 올라 반대편을 바라보면 키 작은 나무와 덩굴이 빽빽하게 뒤엉킨 수풀림이 형성되어 있다. 마치 앞뒤가 다른 느낌이다. 새별오름이 이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해마다 봄이면 펼쳐지는 들불축제 때문일 것이다. 

매해 3월 개최되는 제주들불축제는 제주에서 가장 큰 축제 가운데 하나다. 새별오름에서 열리는 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오름에 들불을 놓는 것이다. 제주도의 목축문화인 들불 놓기를 재현한 것으로 어두운 밤에 오름 사이를 횃불을 들고 다니다 짚불을 놓는다. 오름을 대형스크린 삼아 펼쳐지는 미디어 파사드쇼와 어우러져 마치 오름 전체가 불꽃이 일렁이며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장관이 연출된다. 예전에 들불축제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직접 눈으로 본 광경은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대단한 광경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들불축제가 끝나고 난 뒤의 새별오름은 시커먼 잿더미처럼 보인다. 오름 앞쪽에만 불을 놓기 때문에 이곳은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환경이 된다. 대신 봄철에 활활 타오른 잿더미를 거름 삼아 여름에는 푸른 풀밭을 이루고, 가을에는 억새꽃이 손짓하는 명소로 거듭난다. 새별오름을 보고 있으면 자연의 생명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에 새삼 놀라게 된다. 봄이면 붉은 불꽃으로 타오르고, 여름에는 푸른 융단을 깔아 놓으며, 가을이 되면 은빛 물결을 출렁이는 새별오름은 변신의 귀재다.  

분화구를 3개나 품고 있는 따라비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분화구를 3개나 품고 있는 따라비오름.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따라비오름 정상까지 이어진 계단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따라비오름 정상까지 이어진 계단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겹겹이 둘러싼 억새의 향연 따라비오름
서쪽에 새별오름이 있다면 동쪽에는 따라비오름이 손꼽힌다. 따라비오름은 굼부리를 3개나 품은 오묘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정상 부근에서 탐방로가 여러 갈래로 이어져 어느 쪽을 향하든 억새의 향연에 빠질 수 있다. 따라비오름은 중산간 마을인 표선면 가시리에 위치하며 입구까지 외길을 따라 차로 약 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정상까지 이어진 탐방로는 한 쪽을 나무 계단길이고 다른 쪽은 흙길을 따라 올라간다. 왼쪽에 나무 계단을 이용해 정상에 오른 뒤 반대쪽 길로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따라비오름은 비고가 100m 남짓한 높이로 경사가 급한 편은 아니어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계단을 따라 오르는 길은 양옆에 나무와 수풀들이 빽빽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데 집중하게 된다. 

정상 부근에 닿으면 시야가 트이면서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건너편에 우뚝 선 큰사슴이오름부터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풍력발전기들, 멀리까지 보이는 크고 작은 오름 군락들이 답답한 가슴을 확 풀어준다. 

억새꽃이 하늘거리는 가을 정경.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억새꽃이 하늘거리는 가을 정경.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가을철 오름 트레킹은 억새 군락을 따라 걷는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가을철 오름 트레킹은 억새 군락을 따라 걷는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따라비오름 정상에서 탐방로가 여러 방향으로 갈라진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따라비오름 정상에서 탐방로가 여러 방향으로 갈라진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분화구에 펼쳐진 억새꽃밭
따라비오름은 마치 하나의 큰 분화구 안에 3개의 분화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다. 이로 인해 정상 부근에서 탐방로가 각 분화구 능선을 따라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그래서인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오름 형태가 달리 보여 오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탐방로는 분화구 안쪽까지 이어져 있다. 분화구마다 억새꽃이 가득해 각기 다른 꽃밭에 들어온 듯 기분이 무척 색다르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트인 시야 덕분에 억새 군락 너머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전경을 맘껏 누릴 수 있다. 억새꽃과 함께 피어난 작은 들꽃들은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오름 트레킹을 하는 동안 눈개쑥부쟁이 등 여러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룬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키 큰 억새풀만 바라보다 허리를 굽혀 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났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억새로 둘러싸인 쉼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억새로 둘러싸인 쉼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탐방로 계단길 사이로 자라난 풀꽃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탐방로 계단길 사이로 자라난 풀꽃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각 봉우리마다 놓인 벤치에 앉아 내리쬐는 가을 햇살을 맞으며 잠시 시간을 흘려보낸다. 바람이 살랑댈 때마다 억새풀들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른한 일상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듯하다. 멀리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 수풀소리…. 자연이 들려주는 하모니가 내려가는 발걸음을 자꾸만 붙잡는다. 오름을 내려온 뒤에도 억새의 향연은 계속된다. 주변 들녘에도 억새꽃들이 가득해 가을날의 서정을 한껏 만끽할 수 있다. 

INFO 새별오름 
주소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산59-8

INFO 따라비오름 
주소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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