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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황소영 작가가 본 드라마 지리산⑧] 권선징악의 평범함... '지리산' 가볍게 쓰기엔 너무도 큰 이름
[황소영 작가가 본 드라마 지리산⑧] 권선징악의 평범함... '지리산' 가볍게 쓰기엔 너무도 큰 이름
  • 황소영 여행작가
  • 승인 2021.12.14 0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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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드라마도, 산악 드라마도 아닌... 드라마 ‘지리산’
이강과 현조가 1년 만에 두 발로 걷는, 해피엔딩... 옛날식 권선징악
한겨울 천왕봉 일출은 합성... 남원 광한루원, 지리산의 여러 장면 등장
휠체어를 탄 이강과 식물인간이었던 현조가 지리산에 오른 장면으로 드라마는 끝을 맺는다. 이미지 / tvN 드라마 '지리산' 갈무리
휠체어를 탄 이강과 식물인간이었던 현조가 지리산에 오른 장면으로 드라마는 끝을 맺는다. 이미지 / tvN 드라마 '지리산' 갈무리

[여행스케치=지리산] 드라마 ‘지리산’을 쓴 김은희 작가의 남편 장항준 감독이 tvN 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럭’에 나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김은희 작가님 너무 잘 되고 계시지만 반드시 한 번은 삐끗한다. 아무리 천재 작가고 아무리 시대를 풍미한 작가도 언젠간 저물 때가 있고 잠깐 삐끗할 때가 있는데….” 

일부 시청자들은 그 말이 ‘지리산’을 두고 한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더 나아가 ‘장항준 대필설’ ‘장항준 범인설’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분명히 재밌게 본 시청자도 많지만 “잠깐 삐끗”이 ‘지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개운치 않은 결말
검은다리골 마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은 15화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졌다. 그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지만 그마저도 완벽한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도시로 나가 외롭게 산 김솔(이가섭 분). 어떤 이는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모르는 사람을 때리거나 죽인다. 그러니 김솔이 미치광이 살인자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아하, 그렇구나!” 무릎을 탁, 칠 만큼 설득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15화에 등장하는 산동면 일대.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15화에 등장하는 산동면 일대.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구례 종복원센터에선 살아있는 반달곰을 직접 볼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구례 종복원센터에선 살아있는 반달곰을 직접 볼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잡지마라, 캐지마라, 하지마라” 검은다리골 주민들은 산에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자 보상금이라도 받고 떠날 생각이지만 이장 재경은 이미 한봉 지원금을 받은 데다 고향인 검은다리골을 버릴 생각이 없다. 이장의 아내를 찾아간 최일만 일행은 의도치 않게 그녀를 죽이고, 재경과 함께 한봉을 치는 세욱의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죽는다. 사고의 범인은 경찰 웅순의 아버지, 그는 최일만 등의 회유로 증거물을 땅에 묻고 케이블카 사업에 동의한다.

초등학생이던 솔은 우연히 어른들이 주고받는 사건 전모를 듣는다. 우물에 동물 사체를 버리고, 물을 긷고 오던 솔의 어머니를 죽이고, 세욱의 아버지를 차로 쳐 죽였으며, 재경의 한봉 통에 농약을 친 건 동네 사람들이었다. “지옥 같은 인생”을 산 솔은 자살하기 위해 산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난 김현수 중사를 죽이고, 세욱과 함께 남은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죽이기로 작당한다.

솔은 왜 현수까지 죽였을까. 현수는 공단직원 남식의 아들이다. 드라마 상 남식은 마을의 주민이었을 뿐 마을 파괴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4년 후 발생한 도원계곡 수해로 죽은 사람이다. 

솔은 어째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현수와 양선과 웅순(전석호 분)을 죽이거나 죽이려 했을까. 웅순의 아버지가 세욱 아버지를 뺑소니 사고로 죽인 건 맞지만 그 죄의 값이 자식에게 대물림 될 순 없다. 어쩌면 현수가 재경의 안부를 묻자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 살인 충동을 느꼈을지도….

지리산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길.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지리산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길.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지리산 반야봉. 주능선에서 벗어나 있어 오르는 이들이 많진 않지만 어디서든 잘 보인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지리산 반야봉. 주능선에서 벗어나 있어 오르는 이들이 많진 않지만 어디서든 잘 보인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솔과 세욱은 노란 리본을 묶어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지만 따지고 보면 검은다리골 출신들은 객지에서 성장한 솔 일당보다 지리산을 더 많이 다닌 약초꾼들이다. 그들이 산에서 길을 잃을 확률은 적다. 길을 잃더라도 제 길을 찾을 확률이 더 높다. 물론 요구르트를 먹거나 폭탄으로 죽기도 했지만.

이강(전지현 분)의 추락사고도 그렇다. 당시 이강은 배낭을 메고 있었고,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배낭은 산행에 필요한 옷이며 간식을 담는 용도지만 추락 시 허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이강이 추락한 곳엔 돌출된 바위가 없다. 바닥엔 하얗게 쌓인 눈만 있었을 뿐 위험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부상은 당하겠지만 도대체 이강은 어디에 부딪혀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고, 어떻게 하반신까지 못 쓰게 되었을까.

어디 그뿐인가. 이강은 파출소 문을 잠그고 마음대로 경찰의 사건 파일을 뒤진 것도 모자라 공문서를 외부로 유출한다. 돌멩이에 작대기 몇 개 꽂아두고 어디를 가리키는지 안다는 건 실소를 금치 못하는 장면이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현조(주지훈 분)의 부모는 하나뿐인 아들을 지방 병원에 입원시킨다. 지방에 사는 사람도 큰 병에 걸리면 서울로 가는데, 그들은 왜 현조를 지방에 맡겼을까.

가상의 산으로 했더라면
드라마 장르는 미스터리지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생령이 돼 지리산을 떠도는 현조도 아니고, 연달아 발생한 조난 사고도 아니다. 2019년 겨울에 다쳐 2020년 가을까지, 적어도 1년 동안 휠체어를 타고 있던 이강과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던 현조, 두 사람이 동시에 멀쩡해진 것. 그것이 이 드라마의 최대 미스터리다.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지리산 정상.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지리산 정상.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산행은 물론 사진 여행으로도 인기가 많은 지리산자락.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산행은 물론 사진 여행으로도 인기가 많은 지리산자락.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정말 다행”이란 시청자도 많지만 지리산이라는 무거운 이름을 너무 가볍게 쓴 건 분명하다. 시청자를 속이기 위한 장치가 아닌 이상 이강과 현조가 1년 만에 두 발로 걷는 설정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범인은 벌 받아 죽고, 두 주인공은 기적적으로 벌떡 일어나 레인저로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옛날식 권선징악이 되어버렸다.

현재 지리산국립공원엔 드라마 같은 별도의 레인저(산악구조대)가 없다. 사람들은 조난을 당하면 본능적으로 119에 신고한다. 국립공원 직원이 조난자 구조에 나서는 건 맞지만 그보다 많은 활동은 119산악구조대가 하고 있다. “근데 웃긴 게 지리산 구조는 119에서 신고받고 119산악구조대 산청 함양 인월에서 다 하는데, 여기서는 레인저가 날아다니더라구요.” 현직 119대원의 이야기다.

한국의 대표적 육산에서 암벽등반을 하고, 피켈을 사용하는 등 리얼리티는 진작에 포기한 드라마지만 해도 너무 한 설정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제목만 가상의 산으로 했어도 이런 비난은 충분히 피해갈 수 있었다. 설리산(설악산+지리산)이든 지악산이든, 현실에 없는 산이라면 그 산에서 등반을 하든 눈사태가 나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작가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산 하나를 창조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왜 지리산인가.

지리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이고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민족의 영산이다. 이 산은 삼한시대 이래로 수많은 전설과 역사의 장이 되었다. ‘설악파’ ‘지리파’란 말이 있을 만큼 마니아층도 두껍고, 그 아래 기대어 사는 산민들도 무수히 많다. 드라마는 그 너른 품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역사 드라마도 아니고 산악 드라마도 아니라면 ‘지리산’이라는 이름엔 의미가 없다. 드라마 속 지리산은 한낱 살인사건 장소일 뿐이었고, 스토리와 연기 또한 뒷받침 되지 못했다.

그게 꼭 지리산이어야만 했는가? 마치 프리미엄인 것처럼? ‘지리산 산나물’ ‘지리산 공기’ ‘지리산 약초’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고, 지리산이 붙은 상품은 다른 산보다 신뢰를 준다. 드라마도 지리산의 이점을 얻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태백산맥(조정래)> <지리산(이병주)> <빨치산의 딸(정지아)> <남부군(이태)> 등 묵직한 작품에 길들여진 시청자에게 이번 드라마는 가볍고 허무했다. 심지어 40년 전, 이 산을 배경으로 김성종이 쓴 청소년 추리소설 <죽음을 부르는 소녀>보다도 긴장감이 덜했다.

드라마가 아쉬운 사람들
드라마 제작진과 접촉한 몇몇 이들은 SNS를 통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8화에 나왔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쓴 이원규는 “야생화 장면의 헛발질과 어설픈 CG 등 수준 미달” “300억 원짜리 이상의 조악한 귀신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특히 무상으로 내어준 시가 막상 드라마 안에선 하품을 유발하는 지루한 소재로 설정된 것에 대해 “시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고사하고 예의조차 없으니, 모욕 그 자체”라고 분노했다.

지리산 철쭉은 5월 말에서 6월 초에 만개한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지리산 철쭉은 5월 말에서 6월 초에 만개한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지리산자락엔 다양한 둘레길 코스가 있다. 사진/ 황소영 여행작가
지리산자락엔 다양한 둘레길 코스가 있다. 사진/ 황소영 여행작가

단지 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A사진작가를 찾은 제작진은 “제작진이 담을 수 없는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달라” 부탁하곤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다. 제작진은 B작가에게도 찾아갔다. SNS에 올라온 B의 글에 의하면 그는 제작진에게 “마니아가 워낙 많아 심하게 왜곡되면 악플이 도배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작가의 유명함을 너무 믿은 듯하다”고 아쉬워했다. 심지어 C작가는 “시청자를 개 돼지로 아는 드라마”라고 혹평했다. 물론 지리산을 잘 아는 이들의 평이다. 애정이 깊은 만큼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리산을 전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드라마 출연진과 제작진, 그 산을 직장으로 둔 공단직원, 지리산이 좋아 수십 번씩 오르내린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무겁고 묵직한 산을 제목으로 쓴 만큼 제작진이 감내해야 할 채찍은 어쩔 수 없다.

인기와 작품성이 비례하는 건 아니다. 작품성이 뭐가 중요해? 시청률만 높으면 되지, 식의 안이한 생각은 위험하다. 시청자의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작품을 대하는 잣대도 까다로워졌다. 이름값으로 승부를 보려면 그 이름에 걸맞은 책임이 따른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지리산만 아니었어도, 제목 앞에 ‘15주년 특별기획’이란 수식어만 붙지 않았어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후한 평가를 얻었을 것이다.

TIP. 오늘 나온 장소는 어디?
구영(오정세 분)이 승진시험 합격 문자를 받은 곳은 남원 광한루원이다. 우리나라 4대 누각 중 하나인 광한루(보물 제281호)는 1419년에 지었지만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고, 1626년 복원해 지금에 이른다. 광한루원 앞에는 동서 100m, 남북 59m에 이르는 정방형의 호수와 3개의 섬, 그리고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가 있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남원의 대표 관광지인 광한루와 오작교.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남원의 대표 관광지인 광한루와 오작교.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최종화여서 영상으로 지리산의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구영이 사원증과 꽃을 둔 곳은 지리산 바래봉이다. 노고단의 돌탑과 그 너머 반야봉이 보였고, 장터목과 천왕봉 사이의 통천문이 잠시 나왔다. 지리산 전 구간은 야영 금지다. 화면에 나오는 텐트 이용자는 아마도 촬영을 위한 제작진들 같다. 지리산 내의 대피소에선 취사와 숙박이 가능하지만 현재 코로나19로 숙박은 금지된 상태다.

장터목과 천왕봉 일대를 오르내리는 등산객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장터목과 천왕봉 일대를 오르내리는 등산객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16화 마지막 천왕봉 일출 장면은 합성이다. 한겨울에 장갑 없이 천왕봉에 서기란 쉽지 않고, 출연자 그 누구의 입에서도 입김이 나질 않는다. 천왕봉은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해가 뜨기 전의 천왕봉은 여름에도 춥다. 15화 1/3 지점, 장면 전환용으로 등장하는 드론 샷은 온천지구가 있는 구례 산동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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