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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제주 오름과 숲] 소원 하나를 품고 오름에 오르다. 안돌오름&거슨세미오름
[제주 오름과 숲] 소원 하나를 품고 오름에 오르다. 안돌오름&거슨세미오름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2.01.13 0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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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리 마을에서 출발하는 거슨새미오름과 안돌오름
비자나무와 삼나무, 편백 숲길 오르는 거슨새미오름
억새 무성한 둘레길을 따라 걷는 완만한 안돌오름
안돌오름. 마른 억새풀밭 너머로 우뚝 선 한라산이 한눈에 잡힌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제주] 제주 동부 산간지대에 자리한 송당리 마을은 신화와 오름을 따라 걷는 소원 비는 마을로 통한다. 제주 신화의 모태가 되는 금백조를 모신 본향당이 자리한 이곳엔 가 볼만한 오름들이 많다. 수많은 오름들 중 이름도 독특한 거슨세미오름과 안돌오름을 다녀왔다.

제주는 널리 알려진 설문대할망과 자청비 말고도 수많은 신들이 살고 있는 신들의 고향이다. 그중에서도 금백조는 제주에 깃든 1만 8,000 신들의 어머니로 꼽히는 주요한 신 가운데 하나다. 구좌읍 송당리 마을에는 금백조를 모신 본향당이 자리해 있다. 이곳에는 예부터 새하얀 한지를 가슴에 품고 소원을 빈 후 신목에 걸어두는 풍습이 전해 내려온다. 꼭 이루고픈 소원 하나를 가슴에 품고 본향당에서 멀지 않은 거슨새미오름과 안돌오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숲을 이룬 거슨세미오름.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이름도 독특한 거슨세미오름

거슨세미오름은 송당리 마을을 지나 대천동 사거리 쪽 비자림로를 따라가면 쉽게 찾는다. 오름 입구에 주차 시설과 화장실이 있으며 곳곳에 길 안내 표시가 잘 되어 있어 초행길에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 거슨세미오름은 넉넉한 품 안에 쉼 없이 솟아나는 작은 샘을 갖고 있다. 제주 오름들 중 샘이 있는 오름이 40곳 남짓한데 대부분이 바닷가 쪽으로 흘러가는데 반해 이 샘은 한라산을 향해 거슬러 간다. 거슨세미란 독특한 이름은 이처럼 ‘거슬러 흐르는 샘’이란 뜻을 담고 있다.

거슨세미오름은 높이가 125m이며 탐방로가 여러 갈래로 이어져 있다. 정상까지 언덕진 구간이 여럿 있어 오르락내리락하며 올라야 하는데 다행히 숨을 헉헉댈 만큼은 아니다. 다만 코스가 조금 긴 편이라 구석구석 살피며 완주한다면 땀이 살짝 배어 나온다.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쉬엄쉬엄 다녀온다면 2시간 남짓 소요된다.

거슨세미오름의 전경.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푸른 향기가 흐르는 편백 숲 아래서 잠시 쉬어가보자.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오름 입구를 지나면 바로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비자나무 조림지가 시작된다. 송당리 주민들이 비자나무 열매를 채취하기 위해 조성한 작은 숲으로 비자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 모습이 절도 있는 사열식을 보는 듯하다. 비자나무 조림지가 끝나는 지점에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쪽은 일반적인 오솔길이고 다른 하나는 삼나무와 편백 숲길을 따라 조금 에둘러가는 길이다. 서둘러야 할 일정이 아니라면 숲길로 가보길 권한다.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서로 경쟁하듯 앞 다퉈 자라난 숲길은 햇빛이 잘 들지 않을 만큼 울창하다.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하늘 높이 뻗어 나 짙푸른 그늘을 드리운 곳에 잠시 앉아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았다. 공기에도 색이 있다면 이곳은 투명하리만치 맑고 옅은 초록빛이 흐르고 있지 않을까. 떠나야 하는 시간이 아쉬워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름 입구의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따라가도 되는데 두 길 모두 정상에 닿을 때까지 나무들에 시야가 가려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거슨세미오름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끊임없이 솟는 거슬러 흐르는 샘

숲길에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산불감시초소. 나무가 많은 오름들은 이렇게 작은 초소를 세워 산불을 예방한다. 정상에 서면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구좌읍과 인근에 접한 조천, 성산, 표선 일대 오름들이 두루 보인다. 탁 트인 전망을 볼 순 없지만 그래도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다. 내려가는 길은 비탈진 면에 듬성듬성 나무뿌리들이 드러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오름 중턱까지 내려와서는 샘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좁은 산길을 따라간 곳에 물이 가득 고인 작은 못이 눈에 띄었다. 예전엔 이곳의 물을 식수와 우마용으로 썼다고 하나 지금은 새들만 날아드는 옹달샘이 되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못 안에 물이 마를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는 것이 신기했다. 연못 위쪽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거슨새미가 있기 때문이리라.

좁은 바위틈에서 샘물이 흘러나온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깊고 좁은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가느다란 물길을 이루며 연못으로 향한다. 물이 흐르는 쪽에는 한라산이 서 있다. 거슨세미란 이름이 그냥 붙어진 것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샘물이 솟아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슨세미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흐를 터이다.

주차장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너른 들판과 나란히 걷는다. 한겨울에도 푸른 초지가 펼쳐진 광경은 이곳이 제주임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유난히 짧고 색이 진한 풀들은 말에게 먹이로 주려고 재배하는 것이다. 사유지인 곳들이 대부분이라 탐방길 바깥으로 철조망이 둘러쳐 있다. 겨울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길을 따라 처음 출발했던 지점에 도착했다.

멀리서 바라본 안돌오름의 전경.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마른 억새가 들판을 이룬 안돌오름

거슨세미오름에서 마주 보이는 안돌오름은 높이가 93m인 비교적 낮은 오름에 속한다. 거슨세미오름에서 북쪽 출입구로 나서면 두 개 오름을 연이어 트레킹할 수 있다. 두 개의 오름 사이를 폭이 좁은 농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또는 안돌오름 주차장부터 시작해도 된다. 주차장 건너편에 안돌오름 입구가 안내되어 있다. 안돌오름은 원래 돌이 많아 돌오름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인근에 비슷한 오름이 있어 한라산을 기준으로 안쪽에 있는 오름이라 해서 이와 같은 안돌이란 이름이 붙었다. 안돌오름 뒤편에 밧(밖)돌 오름이 있다.

안돌오름은 지금도 소를 풀어 키우는 목장 역할을 한다. 볕이 좋은 날엔 너른 풀밭에 줄지어서 가는 소 무리를 볼 수 있다. 들판 한가운데에 소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만든 커다란 물통이 있다. 들판을 가로질러 탐방로에 오르면 양 옆으로 마른 억새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서걱서걱 소리를 낸다.

안돌오름은 높이가 93m인 비교적 낮은 오름에 속한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안돌오름에서 바라 본 풍경.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지난 가을에는 솜털처럼 보송보송했을 억새꽃이 얇은 종이꽃처럼 바스락댄다. 그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의연하게 느껴진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이런 풍경의 연속이다. 안돌오름은 나무들이 많지 않은 민둥산에 가까워 탐방길 내내 시야가 확 트여 있다. 조금 황량해 보이는 풍경을 마주하고 있으면 찬란한 슬픔 같은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진달래꽃에서 날려 보낸 소원

안돌오름은 분화구가 북동쪽을 향해 있으며 완만한 계곡 형태로 형성되었다. 분화구 둘레를 따라 돌다 보면 파노라마로 펼쳐진 풍경의 정석을 보여준다. 제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아도 그대로 파노라마 뷰가 완성되니 말이다. 마른 억새풀밭 너머로 구불구불 경계를 이룬 밭들과 우뚝 선 한라산이 한눈에 잡힌다. 한라산이 품은 크고 작은 오름들이 밋밋한 경관에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체오름과 높은오름, 다랑쉬오름, 동거믄이오름 등 동부 지역의 수많은 오름들이 안돌오름이 그려낸 풍경 속에 모두 담겨 있다.

안돌오름에 눈이 내린 풍경.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눈 내린 안돌오름의 풍경.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가장 높은 장소인 북쪽 봉우리에 다다르면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진달래 군락을 만날 수 있다. 며칠간 맑고 푸근한 날씨가 계속된 탓인지 벌써 만개를 이룬 진달래꽃 몇 송이가 보였다. 얼마나 세상이 보고 싶었으면 그새 얼굴을 내민 걸까. 아니면 꽃을 피우고 싶다는 소원을 조금 일찍 이룬 것일까. 탐방 내내 마음에 담아온 소원을 꺼내 들어 불어오는 바람에 실어 보냈다. 봄이 되고, 진달래꽃 무리가 활짝 핀 즈음이 되면 내 소원도 이루어지겠지.

비밀의숲에서 사진을 찍는 여행자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안돌오름 아랫자락에 숨겨진 비밀의숲.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나만 알고 싶은 비밀의숲

안돌오름 아랫 자락에는 비밀의숲이라 불리는 작은 숲이 숨어 있다. 예전부터 사진작가나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이 알음알음 찾던 곳이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인기 있는 명소가 되었다. 아름다운 숲의 정취를 즐기며 아기자기하게 꾸민 소품 등을 활용해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사유지인 비밀의숲은 별도로 입장료가 있다. 하지만 잘 가꿔진 숲길과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들, 이른 봄에 만날 수 있는 유채꽃밭 등 볼만한 거리들이 많아 오름 탐방 후에 한번 들러 봐도 좋다.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2173

입장 시간  09:00~17:00

입장료  3,000원

 

INFO

안돌오름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66-2

거슨세미오름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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