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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테마여행 ①]지친 그대 이젠 꽃길만 걸으시라
[이달의 테마여행 ①]지친 그대 이젠 꽃길만 걸으시라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2.04.12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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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수고로움으로 천상 화원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봉화산.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잠깐의 수고로움으로 천상 화원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봉화산.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남원]우리나라에는 봉화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여럿 있다. 모두 옛날 봉화대가 있던 산들이다. 봉화대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피워 긴급한 소식을 전했던 일종의 군사 통신시설로 봉수 대라고도 한다. 이곳에도 옛 봉수대의 유적이 남아 있어 옛날 치 열했던 백제와 신라의 국경분쟁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매봉에서 봉화산 구간은 철쭉이 가장 아름답다.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매봉에서 봉화산 구간은 철쭉이 가장 아름답다.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분홍빛 화원에 파묻히는 오감만족 등산로 

봉화산이 봄철에는 철쭉으로, 가을에는 억새로도 멋지지만 같은 지 역에 있는 지리산 바래봉의 명성에 가려진 감이 있다. 그러나 바래봉 과는 다른, 아담하면서도 강렬한 매력을 지녔으니 이를 알아보고 알 음알음 찾는 사람들이 많다. 백두대간이나 철쭉 산행을 목적으로 한 전문 등산객들은 보통 남원과 장수의 경계인 복성이재(550m)를 산행의 들머리로 잡는다.

반면 철쭉나무가 대규모 군락을 이룬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온 관광객들은 남원 성리마을 쪽 봉화산주차장이나 반대편 장수 봉화산주차장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오른다. 산보다는 꽃놀이에 관심이 더 많은 관광객들은 주로 치재에서 매봉 (712.2m) 구간을 선호한다. 치재에서 매봉이나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남원과 장수의 경계선을 아슬아슬 줄타기하는데 ‘천상화원’ 이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분홍빛 철쭉나무 군락과 후련 하게 펼쳐지는 조망이 압권이다. 

사람은 꽃이 되고 속계는 선계가 되는 철쭉 터널.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사람은 꽃이 되고 속계는 선계가 되는 철쭉 터널.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높이 2m가 넘는 산철쭉 군락은 사람 키를 삼킬 정도의 터널을 이루 는데 그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사람은 꽃이 되고 속계는 선계가 된다. 몇 년 째 이어진 역병으로 지칠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어지러운 세상의 시름을 잊기에 더없이 좋다. 세상인 듯 아닌 듯 사람인 듯 아닌 듯 꽃에 취하다보면 함께 동행한 사랑하는 이의 손을 놓칠 수도 있으니 꽉 잡아야 할 일이다. 그렇게 들어간 철쭉 꽃 터널을 빠져나오면 어느새 봄은 저만치 달아나고 길목에선 여름이 기다린다. 

4월말에서 5월초에 절정을 이루는 봉화산 철쭉.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4월말에서 5월초에 절정을 이루는 봉화산 철쭉.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양쪽으로 탁 트인 산 아래 풍경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남원에서도 동북부 끝자락에 해당되는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소재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산하를 내려다보면서 비로소 백두대간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여백을 가지고 사는 농촌의 사람들과 그들이 가꾼 삶의 터전인 농지를 발 아래로 내려다볼 땐 천상화원의 선인이 된 느낌이다. 더욱 감사한 일은 이런 선물 같은 풍경들을 오랜 산행이 아닌 잠깐의 노고만으로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부담이 없는 가벼운 오름이다. 

천상화원을 연상케 하는 봉화산 산줄기 철쭉 군락.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천상화원을 연상케 하는 봉화산 산줄기 철쭉 군락.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한편, 봉화산 치재에는 최근에 세운 ‘봉수왕국전북가야’라는 이름의 낯선 비가 하나 있어 눈길을 끈다. 기원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하 류 지역에 존재했던 가야 세력들 중에서 전라북도 내에 존재했던 나 라들을 하나로 묶어 ‘전북가야’로 명명하고 그들이 가진 봉수대라는 통신 문명에 전북도민들의 자긍심과 미래비전을 담아낸 기념비이다. 전북가야 세력 내에서만 106개소의 봉수유적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많은 봉수대를 운영한 가야는 발달된 제철문화와 더불어 선진 통신 문화를 가진 문명국이었다. 

성리는 흥부가 복을 얻은 흥부마을이다.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성리는 흥부가 복을 얻은 흥부마을이다.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꽃길 따라 이야기 따라, 봉화산 자락 흥부마을 

남원은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춘향가>와 <흥부가>의 무대이다. 특히, 봉화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성리마을은 흥부마을로 알려져 있다. 판 소리 <흥부가>에는 ‘성현동 북덕촌을 당도허여 고생이 자심헐 제’라며 놀부에게 쫓겨난 흥부의 새로운 정착지 이름이 등장한다. 아영면 사 람들은 사설 속에 등장하는 북덕촌이 복성이재 넘어 복성리이며 오늘날 성리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성리는 해발 500m의 산간마을인데 마을 진입로에 흥부 부부가 박타는 모습을 비롯한 다양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흥부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성리의 박춘보묘.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흥부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성리의 박춘보묘. 사진/김수남 여행작가

특히, 흥부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박춘보의 묘도 마을에 있어서 호 기심을 더한다. 박춘보라는 사람은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삶을 살았는 데 하루는 마을 고개에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고 이를 발 견한 마을 사람이 업어다 죽을 먹여 살려주었다고 한다. 그 뒤 춘보 는 도승이 잡아준 집터로 옮겨 큰 부자가 되었고 훗날 자신을 구해준 마을 사람에게 논 아홉 마지기를 사주었으며 이웃들에게도 선덕을 베풀었다고 한다. 춘보가 죽은 뒤, 마을사람들은 매년 정월 초삼일에 그를 기리는 망제를 지냈다고 하니 사실은 어디까지이고 전해지는 이야기는 또 어디까지 인지 모를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남원에 흥부마을이 둘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아영면 성리 뿐만 아니라 멀지 않은 곳의 인월면 성산마을도 흥부가 태어난 마을이라고 주장하며 두 마을 간 때 아닌 흥부마을 싸움이 일어났다. 두 마을 모두 흥부와 관련된 지명들이 남아 있고 아영에 박춘보가 있다면 인월에는 박첨지가 있는 등 그 설화적 배경도 그럴싸하다. 결국 남원시에서는 인월 성산마을은 흥부가 태어난 마을, 아영 성리는 흥부가 이사한 뒤 복을 받은 발복지로 정리하여 두 마을의 손을 모두 들어주었다. 성리 박춘보묘 인근에는 약 1500년 전 고성인 아막산성이 있는데 신라와 백제 간 격전의 현장으로 당시 하루 지나면 주인이 바뀔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다고 한다. 지금은 산성터 일부만 남아 있으며 꾸준히 신라시대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여행쪽지

  • 봉화산 철쭉 절정기는 4월 말에서 5월 초로 예상되며 북쪽인 장수 쪽이 약간 늦을 수 있다. 
  • 남원 쪽 들머리는 봉화산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철쭉식 당슈퍼민박을 끼고 시멘트 포장된 임 도를 따라 올라간다. 약 1km쯤 올라가면 작은 주차장이 나오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철쭉 군락이 시작된다. 작 은 주차장까지는 길이 좁아 자동차끼리 교행이 어렵다. 
  • 장수 쪽은 남원 봉화산주차장을 지나쳐 3km 더 진행하 면 넓은 장수 봉화산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바로 철쭉을 감상하며 올라갈 수 있다. 입구에 봉화산민박이 있다. 
  • 주요 등산코스 
    남원 주차장(철쭉슈퍼) - 치재 - 매봉, 1.3km 
    장수 주차장(봉화산민박) - 치재 - 매봉(전망대), 0.8km 
    장수 주차장 - 치재 - 봉화산 정상, 3.6km 
    복성이재 - 매봉 - 치재 - 봉화산 정상, 4.2km 
  • 아영면사무소 앞에 위치한 우돈가는 매운갈비찜이 대표메뉴인데 달달하면서도 매콤한 맛 이 별미이다. 국물이 많은 갈비찜이어서 산행의 피로를 덜어주기에 그만이다. 원래 인월에 있었는데 주인장의 고향인 아영으로 이사하였단다. 
  • 남원에는 ‘관광택시’ 프로그램이 있다. 개인 및 가족단 위 소규모 여행에 적합한데 남원 곳곳을 안내하며 구수 한 이야기보따리도 풀어놓는다. 경비의 일부를 남원시 에서 지원하여 관광객은 4시간에 5만원, 9시간에 10만 원(4인 기준)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예약은 남원시 누 리집에서 받고 있으며 이용일 기준 하루 전까지 예약해야 한다.
  • 남원역 앞에는 남원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자전거대여 소 ‘자전거RO’가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들에겐 요긴한 프로그램으로 남원종합관광안내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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