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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통 시장 탐방] 노포들이 지키고 있어 든든하다, 순창5일장
[전통 시장 탐방] 노포들이 지키고 있어 든든하다, 순창5일장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2.09.15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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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째 노점에서 찹쌀꽈배기를 만들고 있는 서명순 씨.
30년째 노점에서 찹쌀꽈배기를 만들고 있는 서명순 씨.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순창] 내년으로 개장 100년째라는 순창시장은 한때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큰 시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손가락 안에 든다는 우시장이 있었고, 부녀자들이 틈틈이 만든 자수 작품을 가지고 나와 거래했던 자수난전 ‘처녀시장’도 있었다. 모두 인구가 10만 명 정도 되던 때 이야기다.

지금의 순창 인구는 3만 명도 안 되니 시장의 모습도 자연스레 변할 수밖에 없으리라. ‘전라도는 오전장이요 강원도는 오후장’이라고 했던가. 전라도의 소도시 5일장들은 오전에 성행하고 오후 일찍 파하는 경우가 많다. 순창 5일장 역시, 아침부터 북적북적 붐비더니 점심 먹고 오후로 넘어가니 한적해진다. 시장 구경을 겸한 쇼핑이라면 서둘러야 할 이유다.

전라도는 오전장. 오전이 더 시장스럽다.
전라도는 오전장. 오전이 더 시장스럽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고구마 줄기 까기 대회

과거의 영화를 말해주듯 판매시설인 장옥도 많이 만들어 놓았고 시장 안길도 널찍널찍하다. 그러나 장날임에도 문을 열지 않은 장옥들이 많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시장 상인들은 번듯한 상가 건물이 아니면 시장 내 장옥, 그것도 아니면 좌판을 하나씩 펼쳐놓고 물건을 판다. 영세한 좌판은 지역의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초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어서인지 여기저기 보따리 가득 고구마 줄기를 가져와 팔고 있다.

고구마는 뿌리인 고구마를 먹지만 그 줄기도 무쳐놓으면 아삭아삭 별미다. 그 옛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고구마 줄기는 먹을 게 부족했던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낸 구황식품이었다. 먹을 것이 풍족한 지금까지 사랑을 받는 건 기성세대들을 자극한 추억과 향수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좌판을 깐 할머니들 입장에선 원래 버리는 줄기를 따로 베어서 수확한 것이니 돈 한 푼 안 들이고 만들 수 있는 상품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용돈벌이 전선에 나설만하다. 그런데 고구마 줄기를 파는 할머니들의 양손이 고구마 줄기의 껍질을 벗기느라 분주하다. 억센 껍질을 벗겨 놓아야 상품으로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좌판마다 고구마 줄기를 까느라 여념이 없다.
좌판마다 고구마 줄기를 까느라 여념이 없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보따리 가득 싸들고 온 고구마 줄기.
보따리 가득 싸들고 온 고구마 줄기.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둘레를 살펴보니 여기저기 사방에서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마치 고구마 줄기 까기 대회가 열린 듯한 모습이다. 여행자의 상상력은 내친김에 시장 상인회에서 고구마 줄기 까기 대회 이벤트를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뻗어 나간다.

보통의 할머니들은 좌판에서 농산물을 팔고 있지만 어물전 앞에 자리를 잡은 서명순(69) 씨는 찐빵과 꽈배기를 만들어 판다. 옹색하게 펼쳐놓은 좌판에 업소용 가스버너를 놓고 혼자서 튀겨내고 쪄내고 돈도 받지만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찹쌀로 빚은 꽈배기가 별미다. 허술한 그 모습을 가볍게 보고 슬쩍 경력을 물었더니 ‘30년’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장날에 맞춰 옥과, 담양 그리고 순창시장으로 돌아다니며 파느라 번듯한 가게만 없을 뿐이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지정하는 ‘백년가게’급 업력이다.

50년 넘게 건어물을 팔고 있는 부부.
50년 넘게 건어물을 팔고 있는 부부.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기본 업력이 50년, 70년!

오래 전 문 닫은 듯한 장옥들 사이에서 간판도 없이 건어물을 팔고있는 부부는 이름대신 ‘황금건어물’이라는 상호를 알려주는데 십대시절부터 장사를 시작해 올해 54년째란다. 장터에 나가지 않는 날에는 여수나 목포 등으로 찾아가 직접 물건을 해온다. 내륙지방 특성상 건어물에 대한 수요가 바닷가마을처럼 많진 않아서 어려움이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건어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인들 또한 없어서 꾸준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가다보니 ‘고속기름집’이라는 빛바랜 간판의 방앗간을 겸한 기름집이 나온다. 마침 참깨를 수확한 중년의 손님이 찾아와 참기름을 짜고 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 좀 맡는다고 성 내진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고소함을 즐기며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니 “순창에서 제일 오래 된 집이에요!”하고 아는 척 한다. 무뚝뚝한 기름집 여주인 머리 위로는 찌든 때 가득한 가훈 액자와 함께 1972년의 군수 표창장이 보인다.

사이좋게 나란히 자리한 부부의 노포.
사이좋게 나란히 자리한 부부의 노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갓 짠 기름을 소줏병에 담고 있다.
갓 짠 기름을 소줏병에 담고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볶은 참깨로부터 기름을 얻고 있다.
볶은 참깨로부터 기름을 얻고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글쎄요, 3대째니깐 총 70~80년 되었어요. 제가 한 것만 37년째네요!” 시집오면서 자연스레 방앗간을 물려받아 운영하게 되었다는 박영숙(62) 대표는 당시엔 시부모님뿐만 아니라 시할머니까지 모시면서 기름집 살림을 꾸렸다고 한다. 지금은 힘들어서 떡은 하지 않지만 그 외 방앗간 일은 모두 하고 있다. 주말마다 아들들이 와서 일을 도와주고 남편도 일손을 거들어주는데 남편의 본업은 방앗간 바로 옆에 붙어있는 모터 전문점이다. 부부가 사이좋게 나란히 지키고 있는 노포의 모습이 정겹고 사랑스럽다.

순창전통한과 김대표 부자.
찹쌀로 만든 인절미떡을 연탄불로 구워내는 모습.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순창시장을 지키고 있는 노포로 순창전통한과를 빼놓을 수 없다. 순창전통한과는 연탄불에 구워서 유과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즉, 찹쌀로 만든 넓적한 인절미떡(바탕)을 기름에 튀기는 것이 아니라 불로 구워서 크게 부풀리고 그런 다음에 조청이나 물엿을 발라 쌀가루를 묻혀내는, 아주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곳이다.

대를 이어서 운영하고 있는 김광영(59) 대표는 본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가 하셨던 일이라고 자랑스레 말한다. 햇수로는 7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부모님 때는 장작불로 숯을 만들어 구웠습니다. 연탄 나오면서 연탄으로 바꿨죠.” 옆에서 작업과정을 지켜보니 100% 수작업이다. 말이 좋아 수작업이지, 많이 가는 손길만큼 생산 효율이 나오질 않는다. 게다가 연탄불냄새하고도 싸워야 하는 참 힘든 작업이다. 왜 이렇게 힘들게 옛 방식을 고수할까 했는데, 불로 구우면 고소하고 담백할 뿐 아니라 오래두어도 기름 찌든 냄새인 ‘쩐내’가 안 난다고 한다.

연탄불로 구워내 만든 순창전통유과.
연탄불로 구워내 만든 순창전통유과.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작업이 힘들다 보니 부모님 돕다가 얼떨결에 가업을 잇게 된 김 대표와 달리 젊은 세대인 아들은 경영에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 김 대표의 고민거리이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명절 비중이 높긴 하지만 결혼식 폐백이나 이바지 등으로 꾸준히 한과 수요가 있어서 젊은 아들이 도전하기엔 충분히 매력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은 시간을 갖고 아들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순창전통한과 김 대표의 고민과 희망은 오늘날 지방 소도시의 전통시장이 안고 있는 고민과 희망이기도 하다. 노포들이 희망을 잃지 않는한 우리 전통시장은 여전히 와글와글할 것이리라.

 

<여행쪽지>

시장 맛집

순창시장은 순댓국밥이 유명하여 시장 안에서만도 여러집이 성업 중이다. 그중 원조 격은 연다라전통순대와 2대째순대로 모두 60~70년 전통을 자랑한다. 특히 순창장의 순대는 돼지 대장에 선지를 넣어 수작업으로 만든 피순대이다. 찹쌀이나 당면이 들어가지 않고 옛날 시골에서 동네 잔치할 때 돼지 잡아서 만들 듯 그렇게 신선한 선지에 갖은 채소 양념을 섞어 속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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