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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안누리길 여행] ‘해돋는 마을’에서 즐기는 해변 대장정, 양양 해오름길
[해안누리길 여행] ‘해돋는 마을’에서 즐기는 해변 대장정, 양양 해오름길
  • 노규엽 기자
  • 승인 2022.12.16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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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에서 바라본 일출. 사진/ 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양양] 양양의 해오름길은 새해 첫 달을 맞이해 찾아보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유명한 낙산사 의상대 일출로 시작해 낙산항부터 오산ㆍ동호해변을 차례로 지나며 동해의 비경을 고스란히 눈에 담을 수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을 지닌 수산항을 지나 옛 이야기들이 깃들어있는 하조대에서 마무리되는 이 길은 시작부터 끝까지 보물 같은 장소로 채워지는 코스다.

절벽 위에 세워진 낙산사 전경. 사진/ 여행스케치

천년고찰의 역사를 다시 쓰는 낙산사

양양 해오름길은 하루에 걸어야 하는 거리만 13.4km다. 걷는 시간만 최소 서너 시간에 명소와 풍경을 꼼꼼히 즐기자면 꼬박 하루를 다 써야 할 만큼 만만치 않은 일정이다. 그러나 낙산사부터 하조대까지 이 길을 직접 걷다보면 걸을 수 있는 게 너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걷지 않고는 굽이굽이 이어진 절경을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천지 개벽이야! /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 후끈하지 않는가.

<태백산맥> 조정래 작가의 부친이자, 시조시인이고 승려였던 철운 조종현 선생은 <의상대 해돋이>라는 시조를 통해 낙산사의 일출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해돋는 마을’이라 불리는 강원도 양양에서도 예부터 선조들이 “해돋는 모습은 낙산사 앞바다가 으뜸이다.”라고 칭송했다던 일출의 광경.

가슴 속이 데워지는 느낌을 주는 시조 한 자락 내용처럼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일출은 감동을 전해준다. 그렇기에 긴 거리를 걸어야하는 앞선 걱정을 하기보다는 이른 새벽부터 움직여 낙산사 일출을 보는 것으로 여정을 시작하는 선택도 아주 좋다 하겠다.

새롭게 복원된 낙산사는 천년고찰의 역사를 다시 이어가고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일출을 감상하는 여행객들의 모습. 사진/ 여행스케치
높이 16m의 해수관음상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낙산사는 신라 671년에 당대의 고승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설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진신이 바닷가의 바위굴 안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굴 속에서 예불을 하던 중에 동해 용왕이 수정으로 만든 염주를 주면서 “굴 위의 두 대나무가 솟아난 곳이 나의 이마이다. 거기에 불전을 짓고 상을 봉안하라.”고 전해 창건했다고 전한다.

강화도 보문사,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성지로 꼽히는 양양 낙산사는 창건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소실되었다가도 거듭 재건을 해온 천년사찰이다. 2005년에도 양양 대형 산불로 바닷가에 위치한 홍련암과 보타전 일부만 남기고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보물 제479호로 지정됐던 동종마저 불에 녹아버릴 정도로 큰불이었다니 당시 화마의 기세가 전쟁 못지 않았을 듯하다. 다행히 겸재 정선의 <낙산사도>를 토대로 7년여의 복원 불사를 거쳐 현재는 원통보전, 정취전, 설선당, 취숙현 등 대부분의 전각이 조선 전기 가람의 형태로 복원된 상태다.

동해의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기우정. 사진/ 여행스케치
해돋이가 인상적인 낙산사 의상대. 사진/ 여행스케치

길을 걷기에 앞서 낙산사를 둘러보는 여유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즐겨봐야 할 호사다. 화재 당시 검게 타버렸다가도 기적처럼 다시 싹을 틔웠다는 ‘낙산배 시조목’의 건재함도 볼거리가 되어준다. 사천왕문, 빈일루, 응향각, 원통보전을 지나 길을 따라가는 사이, 어느새 높이 16m의 거대한 해수관음상을 마주한다.

세상의 소리를 살펴 듣는다는 관세음보살이 그윽한 미소로 중생을 굽어보는 모습. 그 앞에서 찾아온 신자들이 합장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낙산사에서 만날 수 있는 절경의 일부다.

의상대를 오가는 길목에 지나는 관음지. 사진/ 여행스케치
낙산배 시조목 비석. 사진/ 여행스케치

INFO 낙산사
주소 강원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문의 033-672-2448

 

수산항 방파제를 따라가보면 갯바위를 볼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낙산항에서 수산어촌체험마을까지
해수관음상을 뒤로하고 절을 내려오면 낙산항이다. 원래 명칭은 전진항이었으나 낙산사와 낙산해수욕장의 유명세로 인해 2008년 3월부터 낙산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른편으로 길게 뻗은 낙산해변 백사장을 밟으며 길을 잇는다. 오산해변과 송전해변 등 연이어지는 모래밭을 따라 동해 풍경을 만끽하며 걷다보면 걷기 길의 중간 지점 즈음에서 수산어촌체험마을을 지난다. 

수산어촌체험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에 형성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동해를 끼고 뒤편에는 빽빽한 송림이 둘러 있는데 마을에 살던 어부들이 ‘나무가 많으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풍문을 듣고 심은 것이라 전해진다. 그 덕분인지 지금도 마을 앞바다에서 문어, 닭새우, 도루묵, 가자미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히고, 사시사철 손맛을 보려는 낚시꾼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고 있단다.

수산어촌체험마을의 방문객들. 사진/ 여행스케치
수산 봉수대 전망대도 올라가볼 만하다. 사진/ 여행스케치

소나무 숲 옆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뒷산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수산 봉수대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다. 그 아래 까마득한 벼랑에는 절벽 밑 바다와 맞닿은 곳에 작은 굴이 있다고 하는데, 아주 오래전 사찰 암자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굴암자’라 부르며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요트 하우스를 지나 방파제 앞에 서볼 이유도 있다. 바로 앞에 커다란 갯바위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두꺼비 한 마리가 동해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두꺼비바위’다. 이 바위를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풍경과 이야기가 어우러진 하조대에서
동호해변에서 하조대까지 약 8km 구간은 아쉽게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 길이 이어진다. 대신 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서있는 시골길이라 풍경은 단조롭지 않다. 걷다가 왼편으로 서핑 전용 휴양지 ‘서피비치’가 보인다면 목적지가 멀지 않은 것. 바다를 다시 만난 기쁨과 함께 1km 남짓 걸으면 하조대해변에 도착한다. 그리고 해변 끝에 하조대로 이어지는 고갯길이 보인다.

여러 역사 이야기를 품고 있는 하조대. 사진/ 여행스케치
하조대 등대로 가는 나무데크. 사진/ 여행스케치
하조대로 향하는 초입 풍경. 사진/ 여행스케치

하조대는 고려말 벼슬자리를 물리고 양양으로 내려온 문신 하륜과 조준이 풍류를 즐기던 ‘대(臺·터가 높은 곳에서 아래쪽 풍경을 조망할 수 있게 만든 공간)’를 이르는 말이다. 하조대 자리에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한 전설도 하나 전해진다. 신라시대, 서로 원수 사이였던 호족 하씨와 조씨 문중에 하랑 총각과 조당 처녀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었지만 가문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함께 해안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전한다.

지금도 아찔한 조망을 보여주는 하조대 등대를 돌아 하조대 정자로 향한다. 바다 위 암봉에는 애국가에 등장하는 ‘애국송’이 푸른 바다 너머로 가지를 뻗고 있어 하조대에 서린 이야기들과 현재에 쌓은 걷기 여정의 풍류를 마무리지어준다. 

INFO 하조대
주소 강원 양양군 현북면 조준길 99
문의 033-67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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