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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안누리길 여행] 신라 화랑과 조선 선비의 흔적을 따라, 경북 울진 관동팔경길
[해안누리길 여행] 신라 화랑과 조선 선비의 흔적을 따라, 경북 울진 관동팔경길
  • 노규엽 기자
  • 승인 2023.03.14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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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여행스케치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망양정. 사진/ 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울진] 울진의 관동팔경길은 약 25km의 길이로 해안누리길 노선 중 가장 긴 코스에 속한다. 망양해수욕장 남쪽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망양정부터 신라 시대 화랑들이 달맞이를 즐겼다는 월송정까지 걷는 내내 푸른 절경과 초록 비경이 번갈아 펼쳐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바닷길 대장정을 하다 보면 때 묻지 않은 어촌의 풍경도 만나게 된다.

완연한 봄을 맞이하는 계절,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갈라지는 중심축에 위치한 한반도의 허리 울진에 조성된 관동팔경길을 찾아간다. 우리 선조들이 동해안 일대의 빼어난 여덟 명승지를 이름 지어 붙인 관동팔경 중 울진에 속한 2경을 시작점과 종착점에서 만나게 되는 코스다.

바다 풍경과 숲을 지나는 풍경이 번갈아 나오는 코스다. 사진/ 여행스케치

왕도 반했던 망양정의 풍경을 찾아가다
울진읍에서 국도를 따라 망양정으로 향하다 보면 지나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은어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다리는 바다로 나갔던 은어가 왕피천 줄기를 타고 돌아오는 곳에 세워진 것으로, 바다를 향해가는 맑은 물줄기와 잘 어우러진 풍경을 보여준다. 소박한 지역 명물을 눈에 담고 해안가로 움직여 망양해수욕장에 이르면 남쪽 해안 언덕 위로 우뚝 솟은 망양정이 보인다. 울진 관동팔경길의 출발점이다. 걸어서 야트막한 언덕 위에 닿으면 높은 산에 오른 것처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로 나갔던 은어가 돌아온다는 은어다리. 사진/ 여행스케치

조선 시대 숙종은 강원도 관찰사가 보낸 관동팔경 그림을 보고 망양정의 빼어난 경치에 감탄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직접 써서 하사한 바 있고, 정조는 직접 망양정을 찬탄하는 시를 내리기도 했다. 여러 시인 묵객들도 수많은 시상을 남겼는데, 그중 한 명이 우리가 잘 아는 가사 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이다.

 

텬근을 못내 보와 망양뎡의 올은말이
바다 밧근 하날이니 하날 밧근 므서신고
갓득 노한 고래, 뉘라셔 놀내관대
블거니 쁨거니 어즈러이 구난디고.

-정철 <관동별곡> 中

그러나 망양정은 원래 이곳에 있지 않았다. 기성면 망양리에 있던 것을 1860년에 옮긴 것이다. 조선의 왕과 선비들이 사랑했던 망양정은 옛 위치의 망양정인 것이다. 그래도 현재의 망양정에서의 비경이 예전만 못할 것 같지는 않다.

울진 관동팔경길은 망양정을 둘러보고 시작한다. 사진/ 여행스케치
망양휴게소에 들르면 바다 풍경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기성망양해변 끝쪽에서 망양정 옛터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INFO 망양정 
주소 경북 울진근 근남면 산포리 716-1

 

아름드리 해안길의 끝에서 만나는 대풍헌
망양정에서 내려와 해안길을 감상하며 남쪽으로 향한다. 거북바위, 촛대바위 등 여러 해안 암벽들을 보며 지나는 길인데, 촛대바위의 모습이 이목을 끌만하다. 동해 추암의 촛대바위와는 많이 다르게 생겼지만, 바위 꼭대기에 자라난 소나무가 마치 초의 촛불 같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촛대바위를 지나 917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해안선을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동해의 풍경을 감상하며 걷게 된다. 저 멀리 뻗어있는 수평선과 해안가 암석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면서 중간중간 한적한 어촌마을들의 풍경도 몇 번 지나다 보면 오산항에 닿는다. 오산항은 조업하던 배들이 악천후에 피항할 수 있는 항구로, 울진에서는 세 번째로 큰 항구다. 

높은 곳을 지날 때면 겹겹이 파도치는 울진의 바다를 볼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아름드리 해안길. 사진/ 여행스케치

오산항을 지나면 또 하나의 망양 해수욕장을 만날 수 있다. 망양정 옛터가 있는 기성망양 해수욕장이다. 이곳에서 망양정 옛터를 알려주는 이정표를 찾아가면 복원된 정자가 자리 잡고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 도달한다. 앞서 보았던 현재의 망양정보다 낮은 위치에 있지만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뒤처지지 않는다.

도로와 전봇대 등의 현대적인 모습이 조금 거슬리지만, “뭇 멧부리들이 첩첩이 둘러 있고 놀란 파도 큰 물결 하늘에 닿아 있네 / 만약 이 바닷물을 술로 만들 수 있다면 어찌 한갓 삼백 잔만 마시랴”라고 숙종이 절찬했던 풍경이 얼추 납득이 간다.

이 구간은 자전거 코스로도 애용되는 길이다. 사진/ 여행스케치
바다와 가까이에서 힘찬 에너지를 느껴 볼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다시 길을 이어 사동항과 기성항을 지나면 구산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독도와 관련된 사적인 대풍헌을 찾아가볼 만하다. 겉모습은 흔히 볼법한 전통 건축물이지만, 우리 선조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한 사연이 남아있는 장소다.

대풍헌은 ‘바람을 기다리는 집’이라는 의미로, 조선 시대에 편찬된 <수토절목>에 따르면 당시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기 위해 3년에 한 번씩 삼척진에서 파견 나온 수토사와 100여 명의 군사들이 울릉도로 출항하기 위해 순풍이 불기를 기다리던 곳이라고 한다.

INFO 대풍헌
주소 경북 울진군 기성면 구산봉산로 105-2

화랑들이 달밤에 소나무숲에서 놀던 월송정
구산항을 지나면 이제 코스 막바지에 이르러 종착점인 월송정으로 향한다. 관동팔경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월송정은 입구에서부터 빽빽하게 들어찬 금강송과 해송숲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솔숲을 지나면 모습을 드러내는 월송정. 사진/ 여행스케치
달밤에 화랑들이 솔밭에서 놀았다던 월송정. 사진/ 여행스케치

옛 군지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때 영랑ㆍ술랑ㆍ남석ㆍ안상 등 네 화랑이 달밤에 솔밭에서 놀았다고 하여 월송정이라 불렀다고 하고, 중국 월나라에서 송묘(松苗)를 가져다 심었다 하여 월송정이 되었다고도 전한다. 유래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울창한 솔숲과 드넓은 백사장 사이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월송정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숙종은 이곳에서도 시를 남겼다.

화랑들이 놀던 자취 어디 가서 찾을 건고
일만 그루 푸른 솔이 빽빽하여 숲일런데
눈앞 가득 흰모래는 백설인 양 방불코나
한번 올라 바라보매 흥겨웁기 그지없다.

- 숙종 <어제시> 中

월송정에서 백사장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월송정은 조선 중기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하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낡아서 무너지자 1933년 이 고을 사람인 황만영 등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어 터만 남았다. 그 후 1969년에 현대식 건물로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너무 달라 해체하고 1980년에 지금의 정자로 복원했다고 한다. 시조 속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한 현재의 모습이지만, 관동팔경 끝자락의 정취는 길을 걸은 이에게 두고두고 남을 것만 같다. 

걷는 시간을 조정해 일출로 시작해도 좋은 코스다. 사진/ 여행스케치

INFO 월송정 
주소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로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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