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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박물관 여행] 관악산 아래 별빛 내린천에 뜬 달항아리, 호림박물관
[박물관 여행] 관악산 아래 별빛 내린천에 뜬 달항아리, 호림박물관
  • 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20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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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산이 품고 있는 보물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호림박물관을 소개해본다. 사진 / 최보기 작가
서울 관악산이 품고 있는 보물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호림박물관을 소개해본다. 사진 / 최보기 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서울 관악산이 품고 있는 보물 관악4(연주대, 서울대, 낙성대, 신림순대)를 아시나요? 4대를 더 빛나게 하는 호림박물관은 아시나요? 관악산에 가시거든 호림박물관에서 진짜 보물을 만나보세요.

관악산에 숨은 보물
수도 서울 서남부 산소공장 관악산이 품은 관악구는 문무(文武) 겸비 스토리가 풍부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울대는 알아도 고려 명장 강감찬 장군을 배출한 낙성대, 서울대보다 높은 관악산 정상 연주대, 맛의 진리 신림순대는 모른다. 이름하여 관악 4. 이뿐만이 아니다.

() 호림 윤장섭 선생(1922~2016)이 세운 호림박물관에 찐보물이 무더기로 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사립 전시관으로는 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 리움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유명세가 상대적으로 덜한 탓이다. 그러나 도자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호림박물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성지였다. 관악산의 맑은 호수와 울창한 숲, 이곳에 호림(湖林)’이라는 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음이 분명하다.

호림박물관은 신림사거리 별빛내린천 근처에 있다. 사진 / 최보기 작가
호림박물관은 신림사거리 별빛내린천 근처에 있다. 사진 / 최보기 작가
호림박물관에는 모두 4개 전시실이 있다. 사진은 서화전시실. 사진 / 최보기 작가
호림박물관에는 모두 4개 전시실이 있다. 사진은 서화전시실. 사진 / 최보기 작가

걷다, 보다, 생각하다
지하철 2호선 신림역 4, 5번 출구에서 박물관 쪽으로 걷자마자 천()을 만난다. 서울대 쪽 관악산에서 시작되는 도림천인데 관악구 구간을 명소로 키우고자 구청에서 별빛내린천으로 이름을 달리 정해 가꾸는 중이라 천변 풍경이 아름답다. 박물관 방문길에 잠시 잡념을 버리는 힐링에 더할 나위 없다.

별빛내린천 다리를 건너 10분 정도 정면에 보이는 관악산 자락을 향해 걸으면 고요한 숲속에 전통 갓을 닮은, 아담한 호림박물관(신림본관)이 나타난다. 마당에 배치된 연자방아, 초석, 석조 우물 등 유물들이 먼저 관람객에게 마음의 준비운동을 시킨다. (호림박물관은 강남구에 테마 전시회를 주로 여는 신사분관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전시실은 모두 4개인데 중앙 건물 1<고고실>에는 주로 4~5세기 때 제작된 청동기, 철기, 토기, 석기가 전시돼 있다. 2층에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도자기 중심의 <도자실>과 향로, 반가사유상, 여래입상, 사리기 등을 모아놓은 <공예실>, 그림과 서책 중심의 <서화전적실>이 있다.

그리고 2층 전시실 출구에 박물관 설립자 호림 선생의 일대기와 유품을 전시한 <호림실>, 1층 로비에는 목각공예품, 보자기, 나전칠기, 에코백, 명품전 도록 등을 최대 50%까지 할인해 주는 <굿즈샵>이 있다. 혹시 여기서 굿즈를 살 때는 실용성과 통일성 (컬렉션)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미술관을 좋아하게 될 당신에게, 김진혁, 초록비책공방, 2023)

1층에 있는 고고실 전시실 모습. 고대시대 토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 최보기 작가
1층에 있는 고고실 전시실 모습. 고대시대 토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 최보기 작가
5세기 작품인 말장식뿔잔 토기. 사진 / 최보기 작가
5세기 작품인 말장식뿔잔 토기. 사진 / 최보기 작가

토기는 흔히 상상하듯 흙으로 빚어 말린 원시 토기가 아니라 삼국시대 가마에서 1,000고온으로 구운 것들이다. ‘집모양토기5세기 가야 시기 가옥과 창고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 유물인데 풍요와 저승의 복을 비는 농경사회 전통신앙이 깃들어 있다. 같은 시기 토기양파수배는 물동이 모양 양쪽에 새끼줄처럼 꼬인 손잡이가 달렸는데 투박함과 어색한 장식이 서민적이라서 오히려 친근해 당장 꺼내 물이라도 담아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수레바퀴모양토기가 망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유물들이 주로 무덤에서 발굴된 까닭이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짚신모양토기는 종() 모양의 받침대 위에 짚신이, 그 위에 잔()이 올려져 있다. 당시 신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귀한 유물이거니와 여러 토기 중 공예가 뛰어나 욕심이 난다. ‘토기말장식뿔잔은 쟁반 탁자 같은 받침대 위에 짐승 뿔 모양의 잔을 등에 진 말()이 서 있는데 옛 선인들의 풍류와 정취가 물씬 풍긴다.

자기는 1,300고온에서 흙을 구워 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기술의 결정체다. 16세기까지 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조선, 중국, 베트남뿐이었는데 지금의 반도체에 버금가는 고급 기술이었다. (못난 조선, 문소영, 나남, 2013). 교과서가 닳도록 배웠던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더 말하면 식상하니 대신 도자실 정중앙의 18세기 백자대호앞에서 넋을 잃어볼 것을 추천한다.

백자대호는 몸통의 지름과 높이가 약 1:1의 비례를 이루고 있어 달항아리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기술로는 물레에서 한 번에 성형하기 어려워 같은 크기의 사발(沙鉢) 두 개를 위아래로 붙여 만들었다. 그런 탓에 이곳 소장품은 구울 때 한쪽이 조금 내려앉아 좌우 균형이 깨졌는데 그것이 오히려 자연친화적 형태미를 발산한다. 달항아리는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조선 도자의 백미라 현대 도예가에게도 가장 사랑받는 창작 대상이다.

조선백자인 달항아리. 사진 / 최보기 작가
조선백자인 달항아리. 사진 / 최보기 작가
청자음각연화문매병은 고려시대 도자기이다. 사진 / 최보기 작가
청자음각연화문매병은 고려시대 도자기이다. 사진 / 최보기 작가

달항아리로부터 벗어나 공예실로 이동하자마자 이번에는 반가사유상이 또 정신을 혼미케 한다. ‘보살사유상이라고도 불리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크기는 작으나 반가사유상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도금도 잘 남아있어 보존 가치가 크다. 국내 박물관 중 굿즈 맛집으로 통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인기상품이 단연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라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정신을 차리고 국가지정 보물인 고려 수월관음도’, ‘값비싼 조선 3’(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현대 김기창 화백이 공존하는 서화전적실을 지나면 박물관 설립자를 기리는 호림실에 이른다. 이원광 학예실장에 따르면 이 공간은 시청각 자료가 충실해 부모와 자녀가 고풍스런 의자에 둘러앉아 역사문화유산을 보존, 계승, 교류하는 박물관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설립자 개인의 멋진 삶에 대한 교훈을 얻기에 충분한 박물관 속 박물관’”이다.

호림박물관 설립자의 유품들이 전시된 박물관 속 박물관인 호림실. 사진 / 최보기 작가
호림박물관 설립자의 유품들이 전시된 박물관 속 박물관인 호림실. 사진 / 최보기 작가
호림박물관 이운태 관리실장. 사진 / 최보기 작가
호림박물관 이운태 관리실장. 사진 / 최보기 작가

관악의 핫플신사리, 봉사리, 별빛내린천
박물관을 나와 느긋한 힐링이 필요하다면 가까운 별빛내린천이나 서울대 캠퍼스로 향하면 된다. ‘맛집을 찾고 싶다면 신사리(신림사거리)순대타운이나 봉사리(봉천사거리)샤로수길이 있다. 신사리의 신림삼출(신림역 3번 출구)과 신림오출(신림역 5번 출구)은 순대타운 아니더라도 오래전부터 젊은이들에게 핫플로 떴고, ‘배바우 식당은 신토불이 한식 쌈밥 한 상을 정갈하게 잘 차려낸다. 서울대 정문 모양이 한글 를 닮은 것에 착안해 명명된 샤로수길역시 유럽, 동남아 등 세계 각국의 이색 먹거리가 풍부하기로 전국에 소문이 자자하다.

근처에 있는 서울대학교를 산책해보는 것도 좋다. 사진 / 최보기 작가
근처에 있는 서울대학교를 산책해보는 것도 좋다. 사진 / 최보기 작가

 

Interview
가상인터뷰/설립자 호림(湖林) 윤장섭 선생

황해도 개성 출신 고() 호림 윤장섭 선생은 보성전문학교(고려대)를 졸업한 기업가로서 수많은 역사문화유산을 수집, 호림박물관을 통해 사회에 공개, 환원한 공이 크신 분이다. 그의 어록으로 가상 인터뷰를 꾸며보았다.

설립자 호림(湖林) 윤장섭 선생. 사진/ 호림박물관

Q. 호림박물관을 세우신 동기와 보람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A. 내가 수집한 문화재들이 역사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시대의 물질적 증거로서 계속 보존되고, 후손에게 영구히 전달되려면 박물관을 설립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마음에 알알이 새겨두었던 소중한 유물들을 보존하고 전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즐길 수 있는 번듯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약간 흥분되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사용하고 곁에 두었던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통해 옛사람을 이해하며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한평생 살고 떠나는데 혼자 보자고 욕심낼 필요는 없지요.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란 걸 배웠으니 배운 대로 실천한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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