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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힐링 여행] 삶은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더라…​​​​​​​노랫말 속 안동 이야기
[힐링 여행] 삶은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더라…​​​​​​​노랫말 속 안동 이야기
  • 임요희 여행작가
  • 승인 2023.08.17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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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안동] 밤 깊도록 오지 않는 님을 외쳐 부르는 안동역에서는 국민가요급 대접을 받는 노래다. 가수 진성이 불러 크게 히트쳤다. 경상북도 안동역에 도착하면 플랫폼에서부터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만남과 이별에 대한 감성이 가득한 도시, 안동이다.

 

구 안동역 광장에 세워진 ‘안동역에서’ 노래비.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대답 없는 사람아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기차 플랫폼에서 문화 플랫폼으로

202012월 송현동으로 역사가 옮겨 가기 전까지 안동역은 안동 시내 한복판 운흥동에 있었다. 도시는 철컹철컹 하는 기차 소리로 깨어나고, 기차 소리로 저물었다. 도담-영천 구간 중앙선을 복선화하는 과정에서 안동역이 송현동으로 이전했다. 임청각 바로 옆으로 열차가 지나는 아슬아슬한 풍경도, 도시를 관통하는 기차 소리도 더 이상 만날 수 없지만 안동은 여전히 만남과 이별에 대한 감성이 가득하다.

이런 감성은 안동이 지리적 특성상 호남을 제외한 전국 각지로 길이 뻗어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언제든 쉽게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1931년 개통한 운흥동 안동역은 증기 기관차가 도착하고 출발하는 역사였다. 6·25전쟁 때는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동맥 역할을 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수많은 물자와 사람을 실어 날랐다.

복합문화공간 ‘모디684’로 다시 태어난 구 안동역사.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공원이 된 구 안동역사.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열차를 타기 위해 안동역으로 모이던 사람들은 이제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역사를 찾는다. 2021년 구 안동역사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문화 플랫폼 모디684’로 다시 태어났다. 모디란 모두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로 지역 정체성을 살린 이름이며 뒤에 붙는 684는 구 역사의 번지수다.

갤러리·팝업스토어·미디어스튜디오·댄스연습실이 갖춰진 문화 플랫폼 모디684는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문화를 즐기기 위한 손님들로 바글거린다. 그들은 이곳에서 그림을 보고 댄스를 감상하고 사람을 만나며 도시 문제를 이야기한다. 안동역이 이사하면서 역사 광장에 세워진 안동역에서노래비는 두고 갔다.

안동역에서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노래 가사는 이별 노래이기도 하지만 줄어드는 안동 인구에 대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것처럼도 느껴진다. 1980년대만 해도 24만 명에 이르던 인구가 지금은 15만 명을 조금 넘는다. 이 노래는 2008년 지역 출신인 김병걸이 작사했다. 노래를 부른 가수 진성은 안동역을 알린 공로로 안동시 명예시민으로 임명되었다.

2020년 12월까지 임청각 옆으로 열차가 다녔다. 사진/ 안동시
증기 기관차가 다니던 시절의 급수탑.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증기 기관차가 다니던 시절의 급수탑.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구 안동역 플랫폼 구역으로 진입하면 초창기 급수탑의 향수 어린 모습과 만날 수 있다. 증기 기관차가 다니던 시절 급수탑은 역사 내 필수 시설 가운데 하나였다. 보일러에 불을 때 증기를 발생시켜야 하는 증기 기관의 특성상 수시로 물을 공급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1967년 증기 기관차가 퇴역하면서 전국적으로 급수탑이 철거되었지만 안동역을 비롯한 몇몇 역에는 다행히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안동역 급수탑은 외관이 12각형으로 되어 있고, 기계실 천정이 돔형을 이루는 등 그 독특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낙동강변 음악분수. 사진/ 안동시
낙동강변 음악분수. 사진/ 안동시

안동역 뒤편으로는 야경 명소로 소문난 낙동강 음악분수가 있다. 운흥동 낙동강변에 자리한 낙동강 음악분수는 조명과 음악을 곁들인 사계절 야경명소로 기능한다. 음악에 맞춰 10m까지 치솟는 분수는 흡사 물줄기의 군무를 보는 듯 통일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시각적으로 시원할 뿐만 아니라 오색 찬란한 색감으로 보는 이의 혼을 빼놓는 음악분수는 한 타임 25분을 기준으로 5월부터 10월까지 운영한다. 평일에는 오후 81회만, 주말에는 오후 2·82회 가동한다.

고려 시대 처음 세워진 영호루. 사진/ 한국관광공사
고려 시대 처음 세워진 영호루.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별의 아쉬움에 영호루 현판 내린 공민왕

음악분수에서 낙동강 건너편을 바라다보면 고려 시대에 세워진 영호루가 있다. 우탁, 정도전, 정몽주, 이황 등 당대 대표 문인들의 시에도 등장하는 영호루에도 만남과 이별의 서사가 깃들어 있다.

낙동강변 작은 누각에 불과하던 영호루가 전국적인 명소가 된 것은 136112월 홍건적의 난이 발발하면서였다. 개경이 함락되자 안동으로 피난 온 공민왕은 영호루를 자주 찾아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개경으로 돌아간 공민왕은 안동을 그리는 마음으로 친필로 쓴 영호루(映湖樓) 현판을 하사했다.

공민왕이 내린 이 영호루 현판은 홍수로 수차례 유실되었지만 이상하게 되찾기를 반복했다. 1547년 대홍수 때는 영호루 전체가 물에 휩쓸려 사라지는 일이 있었는데 얼마 후 경북 김해에서 현판이 발견되었다. 1934년 대홍수 때도 누각 전체가 사라졌는데 현판만은 그해 가을 경북 구미에서 나타났다.

주변 산세와 어우러 져 환상적인 경관을 만들어내는 월영교. 사진/ 안동시
월영교 일대에서 흥겨운 문화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 안동시

남편을 먼저 보내는 안타까움 월영교

아치 트러스트에 목재 바닥과 난간으로 이루어진 월영교는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어우러져 안동 최고의 경치를 만들어낸다. 밤이면 물 위 아름다운 달그림자를 드리우는 월영교에는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원이 엄마로만 전해 내려오는 여인은 조선 중기 고성 이씨 문중의 며느리다. 원이 엄마는 1586년 남편 이응태가 31세 나이로 세상을 뜨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와 한글 편지를 관 속에 넣었다. 1998년 비로소 햇빛을 본 편지에는 남편을 먼저 보내야 하는 젊은 처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있다.

다리 중간에 서 있는 월영정은 해거름 무렵,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호수와 대비돼 극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안동은 호수가 많다보니 1년 평균 76일 안개가 낀다. 월영교는 야경도 아름답지만 안동호 물안개 너머로 끊길 듯 이어지는 모습도 환상적이다.

 

1974년 오픈한 유서 깊은 빵집 ‘맘모스제과’.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맘모스제과의 시그니처 ‘크림치즈빵’.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까치구멍집’의 헛제삿밥 한 상.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까치구멍집’의 헛제삿밥 한 상.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맘모스제과, 헛제삿밥 까치구멍집

안동 시내에 있는 맘모스제과는 1974년 오픈한 유서 깊은 빵집이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여행안내서 미슐랭 가이드와 론리플래닛에 소개되기도 한 이 집의 시그니처는 고소한 풍미의 크림치즈빵과 향긋한 유자 파운드다. 땅콩 맛 밀크셰이크, 흑임자떡으로 만든 팥빙수도 인기가 많다.

월영교 건너편에 자리한 까치구멍집은 경북 안동의 헛제삿밥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명문 양반가가 즐비한 안동에서는 조상을 기리는 제사가 많다 보니 이웃과 제사 음식을 자주 나누었다. 이때 제사 음식이 빨리 떨어질 때를 대비해 제사 없는 제삿밥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했다고 한다. 양반집에 초대받은 듯 대청마루에 앉아 맛보는 헛제삿밥이 정갈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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