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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녀가 건네주는 제주 바다의 향과 맛!
해녀가 건네주는 제주 바다의 향과 맛!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7.12.07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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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모슬포항
'뿔소라'라는 별칭을 지닌 제주소라의 계절이 왔다.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서귀포] 어린 시절, “파도소리를 담고 있다”는 말에 속 빈 껍데기를 귀에 가져다 대보곤 했던 소라. 따뜻한 남쪽 섬 제주도에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제주의 파도소리를 담은 소라들이 해녀들의 손에 이끌려 뭍으로 올라온다. TAC 어종으로 관리되는 제주소라와의 만남이다.

제주소라는 껍데기에 유난히 삐죽한 뿔들이 솟아있어 ‘뿔소라’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제주 전역에서 잡히는 어종이지만, 겨울철을 맞아 맛보러 가려면 모슬포항을 위시한 제주도 남서부 바닷가를 찾는 것이 좋다. 제주소라와 함께 제철을 맞는 제주도 방어도 모슬포로 모이기 때문이다.

Info TAC란?
총허용어획량(Total Allowable Catch)을 뜻하는 말로, 수산자원의 과도한 어획을 막기 위해 11개 어종을 정해 1년간 어획할 수 있는 총량을 정해놓은 것이다.

해녀들이 손수 잡는 제주소라
다른 수산물들과 달리, 소라를 만나기 위해서는 항구 위판장을 찾지 않아도 된다. 해녀들의 ‘물질(해녀들이 바다 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따는 일)’에 의해서만 어획되는 특성상, 각 마을 어촌계 집하장에서 판매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모슬포 위판장을 담당하고 있는 김준상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조사원은 “오늘은 사계항으로 제주소라가 들어온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오후 2시경에 맞춰 사계리 어촌계로 향했다.

제주소라는 해녀들의 물질에 의해서만 어획된다. 사진 노규엽 기자

사계항은 제주 화산지형의 신비를 간직한 산방산을 바로 앞에 마주한 곳. 지역 관광상품인 마라도잠수함으로 가는 유람선이 출발하는 항구면서, 김준상 조사원이 관할하는 12개 어촌계 중 하나이다. 모슬포 관내 어촌계 중에는 사계리가 가장 크고 제주소라 어획량도 많은데, 2009년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 바다숲 조성 사업을 진행하면서 해조류가 잘 복원되어 먹이가 많아진 영향이 크다고 한다.

“해녀들은 날씨와 물때를 보고 바다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어획시기가 됐다고 해도 각 어촌계마다 소라를 만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이 제각기 다르죠.”

소라의 조업 시기는 조수간만의 차이로 결정된다. 지구와 태양, 그리고 달의 움직임에 따라 조수간만의 차이가 달라진다는 것은 흔히 아는 사실. 그 차이가 가장 큰 시기를 ‘사리’, 가장 적은 시기를 ‘조금’이라고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조금을 기준으로 평균 전후 2~3일, 길게는 전후 4일간 소라 조업을 한다. 물의 움직임이 가장 적은 때를 택하는 것이다.

“조금 전보다는 조금 후 2일 정도에 조업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 해봐야 한 달에 4~6일만 본격적인 조업이 이루어지는 셈이죠. 금어기인 6~8월 외에는 언제든 잡을 수 있지만, 체장도 크지 않고 자원도 보전하기 위해 실제로는 10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조업이 이루어집니다.”

망태기마다 가득한 제주소라, 국내소비량은 적어
해녀들은 능력에 따라 상군ㆍ중군ㆍ하군으로 나뉜다. 능력 차이는 경력과 경험도 연관이 있지만, 나이에 따른 체력 차이도 감안해 구분된다고. 경력이 많으나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진 해녀도 하군에 속한다. 그런 해녀들에게는 수심 얕은 곳에 ‘할망바다’라는 구역을 만들어주고, 물질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모습에서 제주해녀들의 공동체문화를 엿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제주소라 조업도 가까운 연안부터 제법 멀리까지 나가 조업을 하는 해녀군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가까운 바다는 직접 두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촌계에서 배를 이용해 조업할 바다에 해녀들을 내려다주고, 조업이 끝날 무렵 다시 태워오는 방식으로도 진행된다. 해녀들은 한 번 바다로 나가면 몇 시간씩 조업을 할 수 있지만, 안전을 위해 법으로는 4시간 이하로 물질을 제한하고 있다.

망태기마다 가득 제주소라를 담아온 해녀들. 사진 노규엽 기자
김준상 수산자원관리공단 조사원이 제주소라의 체장과 무게를 체크하고 있다. 사진 노규엽 기자

하루의 물질을 마친 해녀들을 실은 배가 들어오면 고요하던 사계항에 활기가 차기 시작한다. 짙은 초록색 그물로 이루어진 망태기마다 가득 담긴 제주소라만큼이나 해녀들의 이야기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제주방언을 사용하는 해녀들의 말을 알아듣기는 어렵지만, 하루 일을 마친 즐거움, 만선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음이 내심 느껴진다.

해녀 1명당 들고 올라오는 망태기마다 가득 담긴 소라는 아쉽게도 이미 임자가 정해져 있다. 보통 어촌계별로 판매업체와 계약이 되어 있어 전량 도매로 처리가 되기 때문. 국내소비량보다는 일본으로 수출되는 양이 80%에 이를 정도로 많은 점이 소매 위판이 진행되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라라는 어종 자체가 횟집에서 메인이 되지는 못하잖아요. 제주도 가정에서는 볶아먹거나 젓갈을 담가 먹기도 하지만, 그 양이 많지는 않고요. 일본 사람들은 회로도 먹고 라면 부재료로 활용하는 등 즐겨 먹는다더라고요. 그러니 수출하는 양이 많은 거죠.”

사계리처럼 큰 어촌계에서는 성수기에 해수욕장을 찾은 사람들을 상대로 갓 잡은 소라를 회나 구이로 팔기도 한다. 반면 관광객이 적은 계절에는 그럴 기회가 없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시장에서 소라를 사서 직접 조리해먹기도 어려운 법. 제주소라를 맛보려면 횟집들이 모여 있는 모슬포항으로 이동하는 것이 정답이다.

소라는 무거울수록 값이 비싸지지만, 크기가 크다고 알맹이도 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진 노규엽 기자
겨울에 제철을 맞는 제주소라회와 방어회. 사진 노규엽 기자

제주소라와 방어 등 다양한 어종이 풍부
‘최남단 모슬포 토요시장’이라 적힌 입구부터 모슬포항까지 이어지는 횟집거리에는 제주소라뿐 아니라 고등어, 방어 등 다양한 수산물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봄에는 멸치, 여름은 한치와 자리돔, 가을 참조기와 겨울 방어 등 모슬포항은 제주도 내에서도 사철 다양한 어종이 잡히기로 유명하다”는 게 김준상 조사원의 설명. 제주소라와 함께 다양한 회나 생선구이 등을 먹기에는 모슬포항만한 곳이 없다.

“소라물회가 가장 대중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여름 한정 메뉴인 경향이 없지 않죠. 겨울에는 회나 구이로 맛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구이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라 특유의 씹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회가 제 맛. 고소하고 쌉쌀한 맛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소라구이나 삶은 소라가 알맞다. 단, 소라를 통째로 꺼내먹을 때는 먹지 말아야 할 부위가 있으니 주의. 몸통에서 이빨은 제거해야하며, 내장 중에서도 버리는 내장과 먹는 내장을 구분해야 한다.

한편, 김준상 조사원은 시장에서 제주소라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소라는 무게가 높을수록 가격이 올라가지만, 크기가 크다고 알맹이 속살도 많은 것은 아니다”라며 “8cm 내외의 소라가 가성비는 가장 좋다”고 추천한다.

하루 물질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사계리 해녀들의 모습. 사진 노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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