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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하루를 걸어 민족의 정기를 받아오다
하루를 걸어 민족의 정기를 받아오다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8.01.02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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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사진 노규엽 기자

[여행스케치=산청] 지리산은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육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모두가 보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볼 수는 없다는 천왕봉 일출이며, 바쁜 일상 탓에 2박3일이 걸리는 종주산행을 떠나기 어려운 현실 등이 ‘산꾼’들로 하여금 늘 지리산을 그립게 만든다. 그래서 하루 만에 정상을 다녀올 수 있는 경남 산청의 중산리 코스는 귀하디귀할 수밖에 없다.

‘겨울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십중팔구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설경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오를 때에는 힘이 들기도 하지만, 사방이 온통 하얀 풍경 속에 들어서면 흘린 땀과 근육의 고통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더구나 그 끝에 ‘민족의 영산’으로 불리는 지리산 천왕봉이 있다면 산행을 망설일 이유는 사라진다.

시간, 체력 고려한 산행 계획 세워야
지리산 동남부의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천왕봉으로 오르는 가장 짧은 길이면서, 아주 심한 악천후만 없다면 통제되는 경우도 거의 없어 짧은 일정으로 지리산을 오르고 싶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길이다. 그러나 해발 600m 대에서 1915m의 정상까지 1200m 이상을 곧장 올라야 하기에 경사가 심한 코스로 악명이 높기도 하다.

지리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는 중산리에서 산행을 시작해 다시 중산리로 내려오는 코스를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중산리탐방안내소에서 장터목대피소를 거쳐 천왕봉을 오른 후, 로타리대피소로 내려와 중산리로 돌아오는 길이다. 장터목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많이 찾는 코스지만, 미리 대피소를 예약해놓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다른 하나는 칼바위 코스라고 소개되는 길로, 중산리에서 칼바위와 망바위를 거쳐 로타리대피소까지 간 후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다. 이른 새벽 일출 볼 생각만 포기한다면야 두 코스 모두 하루에 올랐다 내려올 수 있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산행시간이 8~9시간에 이르므로 평소 체력을 잘 관리한 사람들에게만 권한다.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바위 구간이 대부분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겨울산은 해가 짧다. 그러므로 일찍 산행을 시작하여 해가 지기 전에 하산까지 마치는 것이 안전한 산행의 기본이다. 더구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입산시간지정제 때문에라도 시간 계획을 넉넉하게 잡는 편이 좋다. 칼바위 코스를 따라 천왕봉으로 향할 경우, 오후 1시 전까지는 로타리대피소를 통과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중산리에서 로타리대피소까지 산행시간만 2시간 이상이 걸리므로, 휴식시간까지 생각한다면 늦어도 오전 9~10시 사이에는 중산리탐방안내소에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Tip 지리산국립공원 입산 가능 시간은 동절기(11~4월) 오전 4시부터 오후 3시까지이고, 하절기(5~10월)에는 오전 3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다. 중산리~천왕봉 구간 중 통제시간은 로타리대피소 오후 1시, 장터목대피소 오후 3시이다(동절기 기준). 단, 대피소 예약자는 통제시간이 2시간 연장된다. 하산은 오후 6시까지 완료를 권장하고 있다.

지리산 풍경을 벗 삼고 하늘로 향하는 길
탐방안내소를 지나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중산리 야영장 부근에서 등산로를 만난다. 이정표를 따라 천왕봉 방면으로 향하면 이내 ‘통천길’이라 적힌 작은 문을 지나며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통천길’은 장터목~천왕봉 능선 사이에 있는 통천문에서 이름을 따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천왕봉을 오르는 길이 곧 하늘로 통하는 길이니 이 또한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겠다.

하늘로 향하는 길인만큼 어렵사리 올라야 하는 길이다. 초반 구간은 경사가 많이 가파르진 않지만 암석이 많은 길이라 일정한 보폭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발목의 염좌를 조심해야함은 당연. 겨울산행인 만큼 발목까지 감싸주는 중등산화와 등산스틱 등을 갖추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

칼바위는 달리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름이 칼바위 임을 눈치챌 수 있는 비주얼을 지녔다. 사진 노규엽 기자
중산리 코스 유일한 갈림길에서 로타리대피소 방면과 장터목대피소 방면을 결정해야 한다. 사진 노규엽 기자

계절이 겨울인 탓에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팔을 벌리고 있는 숲길이지만, 지리산에서는 등산로 주변으로 조릿대들이 밭을 만들어 푸르름을 뽐낸다. 겨울에도 윤기 있는 초록빛을 유지하는 덕분에 ‘산죽’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겨울에도 쓸쓸하지 않은 자연색을 보며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지리산이다.

돌계단과 바위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해발 800m 지점에 이르러 칼바위를 만난다.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게 솟아있는 바위의 모습에서 굳이 유래를 묻지 않아도 칼바위임을 알아볼 수 있다. 칼바위를 지나면 이내 흔들다리를 건너게 되고, 장터목대피소와 로타리대피소로 나눠지는 갈림길을 마주한다. 하루짜리 산행시간의 촉박함을 생각한다면 로타리대피소로 향하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로타리대피소~천왕봉 구간 난이도가 매우 어려우므로 시간 여유가 있다면 장터목으로 돌아가는 편이 무릎 건강에 좋을 수 있다.

Tip 지리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는 중산리~로타리대피소~천왕봉을 왕복하는 코스를 8시간 소요, 중산리~장터목대피소~천왕봉~로타리대피소~중산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9시간 소요로 안내하고 있다. 등산로 대부분이 급한 경사를 지녔다는 점을 인식해 개인 산행능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더 오를 곳이 없는 천왕봉 정상
곧장 로타리대피소로 향하는 코스에 들어선다. 시작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은 계단이 이어지는 길이다. 조릿대와 겨울나무를 제외하고는 볼 풍경도 딱히 없어 하염없이 오름짓에만 주력하게 되는 구간이다. 해발 1117m에 이르면 망바위에 도착하는데, 큰 암석이 크기 순서로 쌓아져 있어 망을 보는 경계병처럼 보인다. 이 자리에서 북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보이기 시작해 조망이 좋다는 의미도 있다고 하고, 지리산에 같은 이름을 가진 장소가 많은 점을 들어 ‘빨치산’들이 지리산에서 활동할 때 망을 보던 곳이라는 설도 있다.

등산로에 눈이 쌓여있으면 아이젠을 착용하는 등 대비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 사진 노규엽 기자
천왕봉에 오르는 도중 마주치게 되는 개선문. 사진 노규엽 기자

망바위를 지나면 로타리대피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 30분 정도 오르면 헬기장으로 쓰이는 듯한 공터가 나오며 천왕봉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이내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한다. 로타리대피소는 도시락 등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쉼터인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인 법계사가 있어 잠시 둘러보며 휴식을 취하기 좋다.

법계사 이후로도 까마득한 오르막 경사가 이어진다. 중간중간 조망이 트이며 중산리 방면과 주변 능선들을 내려다볼 수 있지만, 대부분 바위 구간이므로 실족에 주의해야 한다. 눈이 쌓여있다면 로타리대피소에서 아이젠 등을 착용해 대비를 확실히 하는 것이 좋다. 편안히 지날 구간이 전무하다시피 오르막이 계속 이어지니, 간간히 평상 쉼터가 나타날 때마다 쉬어가며 산행을 이어나가는 것이 좋다.

돌계단과 철계단을 번갈아가며 계속 오르다보면 해발 1700m에서 개선문을 만난다. 개선문은 큰 자연석 두 개가 우뚝 서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관문 역할을 한다는 설명 외에는 명칭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전쟁에 승리를 하고 돌아오며 지난다는 개선문의 의미처럼 이곳을 지나면 천왕봉 능선이 부쩍 가까워지며 힘겹던 여정의 클라이맥스가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

천왕봉 주변은 사람들의 발길로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기 위해 죽대를 꽂아 출입을 못하게 해놓았다. 사진 노규엽 기자

개선문 이후로도 계속 이어지는 오름길. 쉼터 한 곳을 더 지나면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철계단으로 이어지고, 이내 눈에 뒤덮인 천왕봉 능선에 도착한다. 짧은 능선에서 가장 높은 바위 위로 한 걸음 더 옮기면 마침내 지리산 천왕봉 정상이다. 어느 산이나 높은 산 정상에 오르면 주변 경관이 장난감처럼 조그마해 보이지만, 그 중에서도 천왕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주변 산세는 더 오를 곳이 없음이 더욱 실감난다. 가까운 산들의 능선이 주름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내려다보이고, 멀리로 첩첩산중 이어지는 ‘산으로 이어진 바다’는 천왕봉에서 느낄 수 있는 호연지기 그 자체다. 그리고 천왕봉 정상석 뒤에 적힌, 언제 들어도 넘쳐 들어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한국인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되다’라는 문구.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까지 흘러온 백두대간의 정기를 온 몸으로 받는 듯한 정서는 천왕봉에 올라보지 않는다면 평생 알지 못할 그런 감정이다.

등산로에서 마주친 작은 눈사람. 힘든 겨울 산행일수록 여유를 가지고 쉬어가는 것이 즐겁고 안전한 산행의 방법이다. 사진 노규엽 기자

Tip 천왕봉은 겨울에 특히 칼바람을 피할 방법이 없다. 조금 귀찮더라도 천왕봉을 오르기 바로 전에 패딩 점퍼 등을 껴입고 올라가는 것이 천왕봉에서의 절경을 1분이라도 오래 감상할 수 있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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