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독자여행기 ⑥] 속도를 늦출수록 아름답던 타이베이 여행
[독자여행기 ⑥] 속도를 늦출수록 아름답던 타이베이 여행
  • 안재현 독자
  • 승인 2019.01.21 14: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친 현실, 안식을 찾아 떠난 타이베이 여행
도시 인근 얼얼바 공원을 시작으로 주말에만 여는 지엔궈 꽃시장까지
현실의 속도에 치일때면 생각나는 타이베이의 여유
아내와 오랜만에 대만으로 여행을 떠났다. 첫날 아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관광명소 대신 타이베이의 공원과 그 인근을 둘러보았다. 사진 / 안재현 독자
아내와 오랜만에 타이완으로 여행을 떠났다. 첫날 아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관광명소 대신 타이베이의 공원과 그 인근을 둘러보았다. 사진 / 안재현 독자

[여행스케치=타이베이] 정말 오랜만에 아내와 타이완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결혼 후 힘겨운 날들을 통과했던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고 항상 안식을 가져다줄 여행을 갈망했다. 여행을 결정하고 나니 기대감으로 우리를 가로막았던 현실의 힘든 기억을 잊을 수 있었다. 

공항에서 타이베이 메인역의 숙소까지는 너무 술술 풀려 불안할 정도였다. 시간을 쪼개가며 중국어 학원에 다닌 덕에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었고, 타이완 여행 커뮤니티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갈무리한 여행 팁과 정보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얼얼바 공원의 낯선 열대 수목이 만들어낸 신선한 공기 덕에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사진 / 안재현 독자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얼얼바 공원의 낯선 열대 수목이 만들어낸 신선한 공기 덕에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사진 / 안재현 독자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다. 타이완 날씨는 예상보다 너무 더워서 숙소로 가는 동안 이미 우리는 체력이 바닥났다. 게다가 리뷰를 꼼꼼하게 살피고 예약한 호텔은 환기에 문제가 있었고, 아내는 첫날부터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어쩔 수 없이 관광명소 대신 타이베이의 공원과 공원 인근을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가까운 얼얼바 국립 공원으로 걷던 도중에도 땀은 계속 났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얼얼바 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낯선 열대의 수목이 만들어 내는 신선한 공기로 더위를 잠시 씻어낼 수 있었다. 옆 벤치에서는 젊은 연인이 더위와 모기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청춘에 질투가 나기 전에 서둘러 근처의 훠궈집으로 향했다. 

둘째 날, 더위에도 불구하고 '푸홍뉴러우멘'에서 늦은 아침으로 뜨거운 우육면 한 그릇을 비웠다. 사진 / 안재현 독자
둘째 날, 더위에도 불구하고 '푸홍뉴러우멘'에서 늦은 아침으로 뜨거운 우육면 한 그릇을 비웠다. 사진 / 안재현 독자
호텔로 돌아가던 육교에서 만난 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학생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묻자 흔쾌히 자세를 취해주었다. 사진 / 안재현 독자
호텔로 돌아가던 육교에서 만난 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학생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묻자 흔쾌히 자세를 취해주었다. 사진 / 안재현 독자

여행 책자에서 극찬하던 훠궈집은 너무 맵고 얼얼했으며 향신료가 너무 강해서 후각과 미각을 동시에 마비시켰다. 아내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다음날 아침 몸살을 앓는 아내를 남겨두고 홀로 타이베이 최대 번화가인 시먼을 돌아다녔다. 더위에도 불구하고 ‘푸홍뉴러우멘’에서 늦은 아침으로 뜨거운 우육면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기운이 살아나는 듯했지만 이내 밥도 못 먹고 누워 있을 아내 생각에 마음이 바빠졌다.

그때 눈에 띈 것은 ‘쯔주찬(自助餐)’ 가게였다. 반찬을 골라 먹는 곳이라 몇 가지를 흰 쌀밥 위에 듬뿍 담아 포장 했다. 호텔로 돌아가던 육교에서 코스튬 플레이를 하는 학생들을 마주쳤다. 무슨 용기였는지 불쑥 아이들에게 사진 한 장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안될 이유가 있겠냐며 흔쾌히 포즈를 취해준 아이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드디어 아내는 쯔주찬 도시락으로 만족스런 첫 끼니를 해결했다. 

다음날은 주말 아침에만 열리는 다안삼림공원 근처의 지엔궈 꽃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꽃과 화분을 사러 나온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이국적인 색깔과 향기가 넘쳤다. 너무 달았던 거리표 ‘동과차(冬瓜茶)’로 목을 축인 후 건널목 신호가 바뀌자마자 서둘러 공원의 나무 그늘 속으로 피신했다. 

주말 아침에만 여는 다안삼림공원 근처의 지엔궈 꽃시장. 사진 / 안재현 독자
주말 아침에만 여는 다안삼림공원 근처의 지엔궈 꽃시장. 사진 / 안재현 독자

우리는 나뭇가지를 뛰어다니는 청설모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한국의 청설모들과 달리 녀석들의 몸짓이 한결 느릿느릿하다는 점을 알아챘다. 나는 문득 어제 쯔주찬 가게를 나오다 자동문에 머리를 받을 뻔했던 것이 기억났다. 문에 닿기도 전에 열리던 한국의 속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재촉하고 재촉당하는 삶에 익숙해진 나는, 한걸음 정도 느긋했기 때문에 무더위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타이완 사람들을 닮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 ‘애정만세’에 등장했던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급히 옮기는 아내의 손을 끌어당겼다. 


“우리 조금 천천히 가자. 빨리 가면 덥잖아.”


여행 내내 울상이던 아내가 드디어 미소지었다. 타이베이 도심 속 나무 그늘만 찾아다녔던 여행이 끝나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현실의 속도에 채일 때면 타이완에서 사 온 아리산 우롱차를 우려내고 마주 앉는다.

속도를 늦출수록 여행이 향기로워지고, 각박한 현실일수록 함께 쉬어 가는 게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여행이었다. 그리고 겨울이 성큼 다가온 지금은 타이베이의 더위가 그리워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