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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책이 있다] 한강 '여수의 사랑'과 푸른 바다의 낭만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책이 있다] 한강 '여수의 사랑'과 푸른 바다의 낭만
  • 노규엽 기자
  • 승인 2016.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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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旅愁), ‘객지에서 느끼는 쓸쓸함’
어찌 그 파란 물빛을 잊을 수 있을까?
여수앞바다에 ‘여수의 낭만’이 있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어느 곳엘 가도 푸른 바다의 낭만이 가득한 여수를 소설의 시선으로 즐겨보자. 사진 / 노규엽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여수] 누군가는 계절이 바뀜을 냄새로 먼저 알아차린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9월, 여전히 늦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서늘한 가을 공기를 맡아내는 이에겐 천천히 골목을 돌아나온 가을의 냄새가 느껴진다. 그 가을의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책을 들고 떠난다.

2012년 모 밴드가 노래한 여수밤바다와 엑스포로 인해 여수시는 전라남도 관광의 1등 공신이 될 만큼 타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어느 곳엘 가도 푸른 바다의 낭만이 가득한 여수를 소설의 시선으로 즐겨보자.

소설 <여수의 사랑>과 기차에 몸을 싣다
<여수의 사랑>은 고향 여수에 트라우마가 있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정선’과 고향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여수가 고향이라고 믿는 ‘자흔’의 이야기다. 전라남도 여수(麗水)가 중요한 지명으로 언급되지만, 실상은 ‘객지에서 느끼는 쓸쓸함’을 뜻하는 여수(旅愁)가 소설의 주요내용이라 볼 수 있다. 어떻게든 여수를 피하고픈 ‘정선’과 언제나 여수를 가고 싶어 하는 ‘자흔.’ 두 여자의 이야기는 결국 ‘정선’이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았던 여수에 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여수의 사랑>을 들고 기차에 몸을 싣자. 책을 읽고, 때로는 차창 밖 풍경을 즐기는 동안 여수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선’이 여수역에 몸을 내리며 끝나버린 소설의 뒷이야기를 몸소 완성해보자.

여수역은 엑스포공원으로 환골탈태
“여수, 마침내 그곳의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쳤다. …(중략)… 한옥식 역사의 검푸른 기와지붕 위로 자흔의 아련한 웃음소리가 폭우와 함께 넘쳐흐르고 있었다.”

소설 속 두 여인이 지금의 여수에 온다면 도착부터 눈이 휘둥그레질지 모른다.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식 역사는 간데없고, 여수엑스포역으로 이름마저 바꾼 최신식 건물이 있으니…. 역의 위치마저 달라져, 원래의 여수역은 지금의 엑스포 전시장 입구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여수역의 풍경은 너무도 변했지만, 산책을 하며 오동도로 가기는 좋아졌다. 넘실거리는 바닷물 너머로 보이는 엠블호텔을 목적지로 삼아 BIG-O와 여수신항 등을 지나면 오동도 입구에 도착한다.

사진 / 노규엽 기자
최신식 건물로 모습을 바꾼 여수엑스포역.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동백나무가 가득한 오동도. 사진 / 노규엽 기자

“오동도에 가봤어요?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나무껍질 위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아요……”

오동도로 들어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주차장 입구에서 자전거를 대여하거나 30분마다 운행하는 동백버스를 타거나 두 다리를 믿고 걷는 것이다.

오동도는 여수가 관광지로 주목을 받기 전부터 동백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원래는 오동나무가 많은 섬이라 오동도라는 이름이 지어진 거라고. 고려시대에 ‘봉황이 오동나무 열매를 좋아한다’는 설에 따라, 오동도에서 다른 왕이 태어날까 두려워 오동나무를 베어냈다고 한다.

그 후에 동백나무가 가득 들어선 사연은 오동도 전설에 기인한다. 절개를 지키고자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아내의 무덤에서 선혈처럼 붉은 동백이 자라났다는 것. ‘자흔’이 동백나무들은 언제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이유가 이 전설을 언급했던 것은 아닐까?

‘자흔’의 고향은 어디였을까?
“여수항의 밤 불빛을 봤어요?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본 적 있어요? 돌산도 죽포 바닷가의 눈부신 하늘을 봤어요?”

돌산대교를 건너자마자 있는 산봉우리에 돌산공원이 있다. 이순신대교 건너편에 있는 자산공원으로 오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곳이자, 돌산대교로 해가 지는 모습과 여수구항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장소다. 굳이 소설의 내용을 똑같이 따를 필요가 없으니 자산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돌산공원에서 야경을 즐긴 후 내려가는 것을 추천한다.

소설에 언급된 여수항은 현재는 해양공원이 된 여수구항을 지칭한 것일 게다. 여수가 관광지로 각광받으며 이곳의 야경에는 새로움이 더해졌다. 해질 무렵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낭만포차의 존재 때문이다. 바닷물과 맞닿은 휴식처가 된 여수구항해양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정선’의 트라우마도 씻겨나가지 않았을까?

사진 / 노규엽 기자
여수구항의 낭만포차.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돌산공원과 자산공원을 오가는 케이블카. 사진 / 노규엽 기자
사진 / 노규엽 기자
'자흔’의 고향으로 짐작되는 소호동의 밤 불빛. 사진 / 노규엽 기자

“여수 앞바다의 해안을 따라 한없이 동쪽으로 가면 소제라는 이름의 시골 마을이 있어요. …(중략)… 아스라이 보이는 여수항에 빨갛고 노란 불빛들이 켜지고, 마침내 건너편 섬에도 하나둘 불이 밝혀졌어요. …(중략)… 바로 거기가 내 고향이었던 거예요.”

‘자흔’이 고향이라고 주장한 소제라는 마을은 작가가 작품을 위해 임의로 정한 이름일 수도 있다. 풍경 설명을 읽어 본 여수엑스포역 앞 관광안내소의 직원은 “돌산도 초입의 진모마을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지금 소호동의 옛 지명이 소제마을이었다”는 정보도 건네주었다. 소호동으로 가자니 여수앞바다의 동쪽이 아니고, 돌산도로 가자니 소제라는 이름이 걸릴 수밖에….

그러니 아무래도 관계없다. 여수앞바다를 즐기자. 20여 년의 세월이 이미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 않은가. 애초 ‘정선’이 ‘자흔’과 결별한 후 여수를 찾은 이유도, 두 사람이 재회를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소설의 시간보다 세월이 흐른 지금, 여수밤바다의 불빛은 바닷물 위로 아름답게 일렁이고 있을 뿐이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6년 9월호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책이 있다]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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