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여행 ③ - 월봉서원
[여행스케치=광주] 고봉 기대승의 학덕을 기리며 호남 유생들이 세운 월봉서원에서 의(義), 예(禮), 미(味)로 상징되는 광주의 3향(三鄕)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열린다.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선비의 일상생활을 경험하며 오늘날 나의 생활도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다.
조선시대 대학자를 만나는 여행
오른편으로는 백우산, 왼편으로는 황룡강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너브실마을이 나온다. 걸어 들어갈수록 넓은 품으로 포근하게 반겨주는 마을을 지나 대숲 길을 따라가면 멀리 양지바른 언덕에서 월봉서원이 여행자를 반겨준다. 문을 열고 월봉서원 안으로 들어가 보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조선시대의 대학자 고봉 기대승 선생님을 만나는 여행이 시작된다.
외삼문에는 황룡강을 바라보는 문이라는 뜻의 ‘망천문(望川門)’이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한 걸음 더 들어서면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경관이 좋은 빙월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양쪽으로 동재와 서재, 장판각이 있는 빙월당은 월봉서원의 강당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고봉 기대승은 누구일까? 광주 출신으로 16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퇴계의 주리설과 색다른 주기설을 정립하였고 선비로서의 곧은 정신과 실천을 중히 여긴 그는 호남 정신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선현을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
이른 시간에 도착해 광주 8경 중 하나인 월봉서원을 돌아보았다면 이제 하나 둘 도착한 여행자들과 함께 ‘기세등등 여유만만’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자. 첫 순서는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약해진 자아의 정신적, 신체적 보강을 위한 의기(義氣)여행으로 선비 옷을 갈아입고 봉심을 시작한다. 고봉 기대승 선생께 드리는 봉심은 배례를 통해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는 기회가 된다.
봉심을 마친 후에는 푸른 소나무와 대숲으로 눈이 시원한 백우산 자락을 따라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철학자의 길을 걸어본다. 내려오는 길에 무양서원으로 이동하여 틀어진 몸을 쉽게 바로 잡을 수 있는 몸 살림 운동을 활기차게 배워 본다. 팔법 운동 또는 활인심방이라고도 하는 몸살림 운동은 퇴계 이황 선생이 정리한 선비 체조이다. 선비라고 하면 책을 읽느라 운동은 전혀 안했을 것 같은데 올곧은 정신과 함께 몸 관리에도 소홀하지 않았던 옛 선비의 삶을 체험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이어지는 체험프로그램으로는 한국화 액자 그리기, 나만의 옛날 책 만들기, 탁본체험 중 하나를 선택해 진행한다.
광주 5味 특식으로 떠나는 맛의 여행
월봉서원에서 머무는 동안 광주의 대표음식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먹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준비된 ‘광주 5味’는 송정떡갈비, 한방오리전골, 광주백반&김치, 광주한정식, 너브실마을 밥상으로 월봉서원에서 오래 오래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특별히 인기가 있는 메뉴는 너브실마을 밥상이다. ‘너른 계곡’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너브실마을답게 마을 분들이 직접 농사지은 식재료로 차려 주는 넉넉한 밥상은 여행자의 마음까지도 부자로 만들어 주는 건강한 밥상이다.
혹시 깊은 숲속에 조용히 자리 잡은 서원이라 밤에 심심하거나 출출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면 쓸데없는 생각이다. 월봉서원에서 잊을 수 없는 가장 특별한 순서는 밤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서원에서 펼쳐지는 디너 콘서트, ‘詩가 있는 저녁’은 남도요리전문가의 진행으로 이뤄지며 저녁 식사와 시 낭송 등으로 서원 뜰에서 수준 높고 풍요로운 남도문화를 즐길 수 있다.
식사 후에는 광주 특산품 무등산 춘설차가 있는 ‘별밤지기와 함께하는 자경야담’이 펼쳐진다. DJ가 아날로그적 감성을 한껏 돋우는 LP로 음악을 들려주고 대금 연주 등 가슴을 울리는 공연이 이어진다. 고봉선생의 자경설을 바탕으로 마련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나에게 족자쓰기를 한 후 옛 선비들이 밤나들이 때 쓰던 초롱을 들고 달빛걷기로 이어진다. 고즈넉한 운치를 한껏 즐기는 자경야담은 월봉서원에서만 즐겨 볼 수 있는 판타지 여행이다.
풍영정에서 남도풍류 ‘시 한 수 한마당’
서원스테이 둘째 날에는 광주에 있는 무등산 역사길을 걷는다. 무등산은 호남사학의 중심이며 의병활동의 중심지로 조선시대 시가문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무등산 역사길은 무등산 무돌길 장원삼거리에서 환벽당의 구간 후반부 길까지 총 6km를 걷는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흔적을 느낄 수 있으며, 원효계곡, 풍암정, 환벽당 등 수려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일반적인 트레킹과 다른 점은 길을 걷다가 풍영정에서 ‘시 한 수 한마당’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남도의 풍류에 젖어보는 풍영정의 주인은 조선 후기 문인 김언거(1503-1584)이다. 1560년 명종 때 그가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낙향을 하자 그를 아끼던 이들이 서로 정자를 지어주겠다고 나섰으며 그 바람에 이 일대에는 모두 12채의 정자가 들어섰다고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고 풍영정만 남아있게 되었다. 당대의 최고 명필이었던 한석봉(1543-1601)의 ‘제일호산(第一湖山)’이라는 현판과 하서 김인후, 퇴계 이황, 고봉 기대승 등의 학자들이 이곳을 들러 학문을 논하고 시를 나눴던 자리로 70여 편의 편액들이 정자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남도 선비 문화를 재현한 풍영정 옛 시조 낭송과 남도 소리 공연은 메말라가는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는 여행이 된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7년 11월호 [국내여행]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