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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듀 2015, 웰컴 2016] 마지막 일몰을 만나러 떠난 익산
[아듀 2015, 웰컴 2016] 마지막 일몰을 만나러 떠난 익산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5.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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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낙조 여행, 전북 익산
3대 종교 성지와 낙조 명소를 엿보다
사진 / 박지원 기자
일년의 마지막에 바라보는 낙조는 특별한 감상을 선사한다. 사진 / 박지원 기자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익산] 서해 낙조 5선 중 하나인 웅포 곰개나루의 낙조를 눈에 담을 수 있는 익산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여행지로 제격이다. 게다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미륵사지, 김대건 신부의 채취가 밴 나바위성당, 9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두동교회. 이른바 3대 종교 성지도 둘러볼 수 있으니 마다할 까닭이 없다.

백제 숨결 오롯이 깃든 ‘미륵사지’
100년 된 한옥 성당 ‘나바위성당’

호남고속도로 익산나들목을 벗어나 국도로 접어든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미니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다.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음을 실감한다. 스산함이 느껴지지만 안면으로 내리쬐는 볕이 콧잔등에 두어 개의 주름을 만들어주니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그렇게 겨울 초입의 풍경을 만끽하다 보니 어느덧 익산시 금마면에 자리한 미륵사지에 닿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된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이 세운 동양 최대의 사찰이다. 애석하게도 임진왜란 이후 폐사됐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커다란 규모의 석탑인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 당간지주 등은 남아있다.

안타깝지만 미륵사지 석탑의 온전한 모습은 볼 수 없다. 보수 작업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 마련된 관람로에 들어가면 점차 옛 모습을 되찾아가는 석탑을 볼 수 있다. 탑을 지탱해주는 중앙 기둥 주춧돌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올라가는 석탑을 보고 있노라니 보수가 마무리될 날이 기다려진다. 비록 지금은 망치를 든 석공의 돌 깨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보수가 끝나면 그 옛날 미륵사지가 그랬던 것처럼 승려의 목탁 소리가 짱짱하게 울려 퍼질 게다.

사진 / 박지원 기자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 중인 석공들. 사진 / 박지원 기자
사진 / 박지원 기자
1993년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 사진 / 박지원 기자
사진 / 박지원 기자
금동제사리외호와 금제사리내호. 사진 / 박지원 기자

석탑 보수 현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물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석탑 해체 당시 출토된 여러 유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리를 모셔놓은 그릇인 금동제사리외호와 금제사리내호 등 백제의 찬란했던 과거의 모습을 말없이 전하고 있는 유물이 한가득이다.

미륵사지를 둘러본 후 익산시 망성면 방면으로 30여 분을 달리니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18호 나바위성당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쇠파이프 비계가 설치돼 있다. 내년 1월까지 진행될 보수공사 탓이다. 낙심할 필요는 없다. 내부는 맘껏 엿볼 수 있으니까.

Info 미륵사지
주소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문의 063-290-6799

우암 송시열 선생이 ‘아름다운 산’이란 뜻으로 이름 붙였다는 화산. 나바위성당의 ‘나바위’는 이 화산에 있는 너럭바위에서 따온 마을 명칭이다. 처음에는 ‘화산’의 이름을 따 ‘화산성당’이라 불렀다가 완주군 화산면과 혼동을 피하고자 1989년부터 나바위성당으로 부르고 있다. 나바위성당의 겉모습은 신비롭다. 서양의 고딕양식과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목조건축 기법이 조화를 이룬 까닭이다.

성당 내부도 독특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 통로 한가운데 우뚝 솟은 8개의 목조 기둥이 눈에 띄는 덕분이다. 남녀유별이란 관습에 따라 남녀가 앉을 자리를 구분한 일종의 칸막이인 셈이다. 커다란 천도 아닌 기둥을 숫제 세웠다는 게 특이하다.

사진 / 박지원 기자
우측 제대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 사진 / 박지원 기자
사진 / 박지원 기자
오랜 역사를 품은 성전 제대와 촛대. 사진 / 박지원 기자
사진 / 박지원 기자
목조 기둥이 눈에 띄는 성당 내부. 사진 / 박지원 기자

나바위성당은 우리나라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얽힌 성지다. 1845년 중국에서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가 조국에 들어와 첫발을 디딘 곳이 화산 언저리다. 이를 기념해 건립한 게 다름 아닌 나바위성당이다. 성당 뒤로 난 ‘십자가의 길’을 따라 바지런히 발품을 파니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비’가 나온다. 바로 옆에는 금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망금정’이란 정자가 버티고 있으니 화산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자연스레 길어진다.

Info 나바위성당
주소 전북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
문의 063-861-8182

남녀유별·평등 예배당 ‘두동교회’
낙조의 황홀경 ‘웅포 곰개나루’

나바위성당을 나와 23번 국도를 달리다 711번 지방도에 올라탄다. 자동차 유리창 너머 세상은 잎을 모두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와 바싹 마른 풀로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을씨년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 쓸쓸함 쯤은 겨울을 탐닉하고자 여행길에 오른 여행자의 본능을 잠재우지 못하리라. 이런저런 상념에 휩싸여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두동교회 앞이다.

박 씨 집성촌이었던 익산시 성당면에 두동교회가 생긴 건 1923년이다. 당시 마을의 아낙네들은 “예수를 믿어야 자식을 얻는다”며 10리 밖에 떨어진 부곡교회에 다녔다. 마을 남자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불임인 줄 알았던 박재신 씨의 아내가 임신하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싹텄다. 박 씨는 급기야 자기 집 행랑에 예배 처소를 만들었다. 기도를 드리고자 멀고 먼 밤길을 걸어야 했던 이들을 위한 배려였고, 두동교회의 시작이었다.

“‘ㄱ’자 모양으로 2개의 공간이 존재하지요. 남자와 여자가 앉을 공간을 나눈 건 남녀칠세부동석의 전통을, 각 공간의 크기가 같다는 건 기독교의 평등사상을 녹여 넣은 것이랍니다.”

사진 / 박지원 기자
1923년에 지은 두동교회의 모습. 사진 / 박지원 기자
사진 / 박지원 기자
1964년 두동교회 성가대의 사진. 사진 / 박지원 기자
사진 / 박지원 기자
'ㄱ’자 모양의 두동교회 내부. 사진 / 박지원 기자

이정완 목사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내부를 둘러본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낡은 풍금, 장마루가 촘촘히 깔린 마룻바닥까지 옛 모습 그대로다. 앞뜰에 우두커니 선 통나무 종탑도 덩달아 두동교회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괜스레 전라북도 지방문화재자료 제179호이자 대한예수교장로회 한국교회사적 제4호로 지정된 게 아니란 생각이 뇌중을 파고든다.

이 목사에게 1964년에 지은 본당에 관한 이야기까지 듣다 보니 어느 틈에 해가 저물 시간이 다가온다. 슬슬 서해 낙조 5선 가운데 하나를 목격할 수 있는 웅포 곰개나루를 향해 달릴 때다. 교회에서 20여 분만 가면 닿기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에 웅포 곰개나루 구석구석을 누비고픈 욕심은 액셀 위에 얹은 발에 한껏 힘이 들어가게 한다.

사진 / 박지원 기자
눈부신 일몰을 볼 수 있는 덕양정. 사진 / 박지원 기자
사진 / 박지원 기자
잘 정비된 웅포 곰개나루 자전거길에 해가 넘어가고 있다. 사진 / 박지원 기자

곰이 금강의 물을 마시고 있는 듯한 포구의 지형 덕에 ‘곰개나루’라 일컫는 이곳은 흔치 않게 강에서 일몰을 볼 수 있는 명소다. 덕분에 매년 12월 말일이면 익산 최고의 축제로 알려진 해넘이 축제가 열린다. 브라운관을 통해서나 볼 수 있었던 황포돛배에 몸을 싣고 30~40분간 금강을 유람할 수도 있다. 게다가 수려한 금강을 배경으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오토캠핑장과 일반캠핑장도 들어서 있어 연중 캠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페달을 밟는 라이더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자전거길도 있다.

웅포 곰개나루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덕양정이란 정자가 있는 언덕길을 오른다. 시간대를 잘 맞춘 덕택일까. 발아래 금강 변이 빨갛게 물든다. 잔잔한 수면 위로 선명하게 뻗어 나가는 붉은 빛줄기가 넉넉하고 따뜻한 기운을 내뿜는다. 눈과 마음이 한꺼번에 사로잡히는 순간이다. 세상의 갖은 잡소리가 붉은 해와 함께 수평선 아래로 파묻힌다. 금강 변이 삼킨 저 해는 내일 다시 말갛게 씻은 고운 모습으로, 병신년의 새로운 희망을 안고 힘차게 떠오를 게다.

Info 두동교회
주소 전북 익산시 성당면 두동길 17-1
문의 063-862-0238

Info 웅포 곰개나루
주소 전북 익산시 웅포면 강변로 25
문의 063-861-7800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5년 12월호 [특집]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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