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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여행동호회 따라가기] 아름다운 젊은 대오, 무전여행동호회 '소나기'
[여행동호회 따라가기] 아름다운 젊은 대오, 무전여행동호회 '소나기'
  • 김정민 기자
  • 승인 2004.03.23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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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무전여행동호회 '소나기' 회원들이 산행을 시작했다.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무전여행동호회 '소나기' 회원들이 산행을 시작했다.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대구] 새벽 2시 18분 동대구역. 서울발 열차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더니 손님을 토해낸다. 청사 한 쪽 편에 커다란 배낭과 똑같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총대장 고진혁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를 대하기가 어색한 모양이었지만 어쨌든 인사를 건네며 조끼 하나를 빌려주었다. 태극마크와 무전여행동호회 ‘소나기’라는 문구가 너무 생경해서 함부로 입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여행에 합류하는 일종의의례나 다름없었다.

동대구역에 집결한 회원들.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동대구역에 집결한 회원들.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시계가 30분을 가리키자 모두들 가방을 짊어졌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대구 팔공산. 팔공산 동화사 입구에 새벽 4시까지 집결이다. 모두 모여 출발을 의미하는 구호를 외치더니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씩 구성된 팀별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오늘의 여행을 기획한 총대장과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늘 계획이요? 없어요. 저는 계획 잡고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냥 목적지만 잡았어요. 여기서 팔공산 어떻게 가는지도 몰라요.”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회원.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회원.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아니, 그러면 거기까지 어떻게 갈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희 모토가 무전여행이잖아요. 히치하이킹 해야죠. 모르셨어요?” 아직도 이 땅에 순수한 의미의 무전여행이 남아 있었다는 말인가? 별안간 머리 속에 빨간 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이 여행에 따라온 것이 잘한 일일까?  

인적이 끊긴 대구 시내는 한산하고 바람도 적당해서 걷기에는 정말 좋았다. 어느 누구 하나 지도를 펴들고 위치를 자세히 확인하는 이는 없었지만 이정표를 보고 방향을 감지하는 듯 했다.

“출발은 동대구에서 하지만 어디에서 여행이 끝날지 몰라요. 여행을 기획한 대장 마음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또 무전여행의 묘미인 것 같아요. 자유롭잖아요.” 대원들이 살짝 귀띔해 주었다. 무작정 그렇게 걷고 있자니 어느덧 뒤따라오던 소나기 대원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그즈음 총대장과 같은 팀이던 성일씨 또한 도로 위로 내려섰다. 그들은 지나가던 차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꾸벅 인사부터 했다.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저렇게 예의가 바르다니. 새벽에 커다란 짐을 짊어맨 젊은 청년들에게 겁을 먹었는지 차들이 유난히 쌩쌩 달렸다.

“선배들에게 배운 건데요. 차들이 그냥 지나가더라도 그들을 욕하지 마라예요. 저 사람들이 우리를 꼭 태워줄 의무는 없으니까. 그냥 세워주면 고마운 거죠.” 참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무전여행의 의미를 충분히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의 의심이 사라지자 나도 모르게 도로 위로 내려섰다.

어느 덧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도로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드디어 새벽 5시 30분. 집결지인 동화사에 도착했다. 예정시간 보다 1시간 30분 늦은 시간. 새벽이라 키 큰 사람 셋이 히치하이킹을 하기란 무리였는지 거의 걷다시피 하면서 도착했다. 마지막에 동화사에 오르는 첫 버스가 태워주지 않았더라면 그 먼 동화사 길을 몇 시간 걸려 오를 뻔 했다.  

먼저 도착한 대원들을 찾아갔더니 여자 화장실에서 버너를 켜놓고 몸을 녹이는 중이었다. 평소에는 얼굴 찌푸려지던 화장실이 아늑한 장소로 느껴지다니 참 이상할 노릇이다. 숨도 돌릴 틈 없이 바로 산행이 시작됐다. 이른 새벽에 마주친 동화사 스님들이 새벽부터 올라온 젊은이들에게 친절하게 등산로를 설명해주었다.

하얀 눈밭을 헤쳐가며 시작된 팔공산 트레킹.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하얀 눈밭을 헤쳐가며 시작된 팔공산 트레킹.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2인 1조가 되어서 산을 향해 올랐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걷지 않는 길에 발자국을 새기며 그렇게 전진했다. 오늘의 산행은 동화사를 거쳐 갓바위로 내려오기로 했다. 새해 첫 여행답게 마음의 각오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극기훈련이나 다름없었다. 여자대원들은 제발 이 산행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모양이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겠는가. 그건 대장의 마음이다.  

습기를 먹은 바위들이 오르는 사람들을 약 올리기 시작했다. 주룩주룩 미끄러지는 발 때문에 대원들의 볼들이 더욱 붉게 피어올랐다. 오랜만에 보는 눈이 점점이 쌓여 나무에 눈꽃을 만들어 내기 바빴다. 아스라이 해가 떠오르면서 그동안 지나쳤던 풍경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산행 도중 라면을 끓여 먹는 회원들.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산행 도중 라면을 끓여 먹는 회원들.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환상의 눈세계. 그 신비경에 한참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갑자기 일행이 멈춰서더니 라면을 먹고 가겠다고 나섰다. 화장실에서 끓인 물과 사발면을 하나씩 뜯기 시작했다. 물이 따뜻하지 않아 다들 과자 라면이 됐는데 유독 대구아가씨 애진 씨의 라면만은 맛있게 익어서 인기를 끌었다.

“야야, 이 라면도 지역민을 알아보는 갑다. 와 이리 맛있노” 왕언니 은숙씨가 라면 국물을 들이키면서 행복해 했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새벽부터 올라온 청년들을 보고 한 마디씩 던진다.“이런 새벽부터 청년들이…” 대견했던 모양이다.

처음으로 동봉을 정복했다. 눈에 쌓인 산과 삐죽삐죽 튀어나온 바위가 그림엽서에 나올 정도로 예쁜 모습들이다. 부산에서 온 은숙씨는 연신 ‘너무 좋다’를 연발했다. 갓바위 불굴사에서 점심을 얻어먹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12시까지는 3시간이 남았다. 그런데 정작 난코스는 동봉에서부터였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 위에도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대구 팔공산 갓바위 위에도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가파른 바위와 눈 때문에 바위에 드리워진 밧줄을 타는 타잔과 제인이 되어야 했으니. 아이젠을 찼는데도 엉덩이 썰매는 필수요, 나무에서 쏟아져 내리는 눈뭉치는 옷 속을 파고들었다. 대원들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몸이 지쳐가면서 대원들은 집에서 싸온 간식들을 풀어헤쳤다.

맛있는 소세지, 과자, 귤, 커피. 없는 게 없어서 한데 모아두면 가게 하나는 차려도 될 듯 하다. 지나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음식도 얻어먹었다. 그들의 넉살에 놀란 표정을 지었던 탓인지 대원들은 어디를 가나 사양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미덕이라며 익살을 떨기 시작했다. 드디어 저녁 4시 30분, 겨우 갓바위에 도착했다. 장장 11시간의 고행이었다.

대구 팔공산 설경.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대구 팔공산 설경.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대원들은 산행이 길어 보통 2-3곳을 돌았을 여행을 못했다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산행의 완성은 꽤 뿌듯한 모양이었다. 절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불굴사까지 왔지만 절밥은 얻어먹지 못했다. 대원 8명이 길을 잃어 일찍 하산 했기에 그들을 버리고 먹을 수 없다고 했다. 먼저 내려간 대원들이 와촌에 얻어 놓은 교회 숙소로 가기 위해 군내버스에 올라탔다.

아저씨는 8명이 우르르 짐을 들고 올라서니 당황하신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버스가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돌아가는 사람을 모시는 버스인데 이런 청년들조차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공양이 무신 소용이 있겠습니꺼. 아주머니도 섭섭타고 생각지 마시고 이해 좀 해주이소”

저 청년들은 공짜로 태워주고 왜 나는 돈을 내게 하냐며 차비를 내지 않겠다고 우기는 아주머니를 설득하는 아저씨의 말씀이 참 따사로웠다.

소나기는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의 은혜를 입었다. 그 날 숙소를 내어주신 와촌 교회의 목사부부에서 시작해서 그 다음날 청년들이 눈썰매를 탈 수 있게 도와준 대구 우방랜드와 눈썰매장 직원들, 그리고 소나기를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었을 수많은 운전자들까지. 무전여행이 이렇게 가능했던 것은 이 방법이 획기적이거나 새로워서가 아니다.

그 방법들을 잘 다듬어서 사용했던 소나기 저력과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소나기가 남긴 아련한 기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많은 여행을 떠났지만 참 오랜만의 일이다. 돌아서는 순간부터 그리운 여행, 그들은 마음에 뿌리는 한줄기 ‘소낙비’였다.

눈 내린 바위 위에 새긴 이름, 소나기.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눈 내린 바위 위에 새긴 이름, 소나기.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2004년 ‘소나기’의 첫 여행 코스는 어디로?
1. 대구 팔공산
예로부터 신라시대에는 오악(나라의 중사 때 제사를 지내던 다섯 방위에 위치한 성산)이 있었다. 동쪽에는 토함산, 서쪽에는 계룡산, 남쪽에는 지리산, 북쪽에는 태백산, 그리고 중앙의 팔공산을 꼽았다 한다.

신라시대에는 부악(父岳), 중악(中岳), 또는 공산(公山)이라 했으며, 고려시대에는 ‘공산’, 조선시대에는 ‘팔공산’이라 불렀다. 해발 1천1백92미터.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동봉∼관봉(갓바위), 서쪽으로 서봉∼가산산성까지 뻗은 20㎞의 긴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비로봉은 현재 군사시설이 설치되어 일반인은 통제되어 있는 상태. 그러나 초보자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동봉코스에서부터 전문가를 위한 암벽등반코스까지 12개의 등산코스가 있으므로 선택의 기회가 많은 편이다. 바위들이 가파르고 발을 잘못 헛디디면 바로 낭떠러지로 구를 수 있는 위험도 있기 때문에 등산장비를 잘 갖추고 오르는 것이 좋다.

주요등산 코스는 이렇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수태골 코스. 수태골에서 동봉까지 3.5㎞거리에 산행시간은 대략 1시간 10분. 다음은 동화사에서 조암, 동봉, 염불암으로 해서 다시 동화사로 돌아오는 코스. 길도 험하지도 않고 유물도 구경할 수 있다.

산행시간은 4~6시간, 산행거리는 대략 7㎞. 소나기가 올라갔던 코스는 유명한 동화사에서 갓바위로 내려가는 코스. 동화사, 염불암, 동봉을 거쳐 신령재, 선본재, 갓바위로 내려오는데 총 11시간이 걸린다. 팔공산의 각 봉우리와 골짜기들을 구경할 수 있는 코스로 자신이 있다면 한번 쯤 가볼만한 코스다.  

팔공산은 불교문화의 중심지답게 신라시대의 사찰로 유명한  동화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찰이 산재해 있어 1년 내내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바로 갓바위. 부처가 큰 갓을 쓰고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갓바위의 정식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다.

신라 선덕여왕 7년(638년) 원광법사의 수제자인 의현대사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하는데, 이곳에 불공을 드리고 소원을 지성으로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고. 이 갓바위 아래는 불굴사가 있어 갓바위를 찾는 사람 누구에게나 점심공양을 한다. 특별한 준비는 필요없으나 다만 부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감사히 먹으면 된다.

우방타워랜드.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우방타워랜드. 2004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2. 우방타워랜드
1995년에 개장한 대구의 대표적인 놀이 공원이다. 우방타워랜드 안에 있는 우방(주)이 시공한 우방타워는 해발 312m로 국내 최대의 전망탑이 있다. 도심에 있는 테마파크로서 가족여행과 데이트 코스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소나기는 이 곳의 협조를 얻어 신나는 눈썰매를 즐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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