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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울진 가는 길] 왕피천이 바다를 만나다, 울진 불영계곡
[울진 가는 길] 왕피천이 바다를 만나다, 울진 불영계곡
  • 김정민 기자
  • 승인 2004.1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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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깊은 협곡의 앙상블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울진의 바닷바람에 말리는 오징어.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울진의 바닷바람에 말리는 오징어.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울진]  정말 ‘징하게’ 달렸다. 새벽차를 탔는데도 정오가 되어서야 울진군이라는 푯말과 마주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4시간 30분. 고속도로를 거쳐 꼬불꼬불한 국도를 타고 곡예하듯 넘어가야 울진을 만날 수 있다. 이제 다 왔을까 해서 바라본 바다는 시리도록 파랬다.

원자력 발전소의 고장, 울진
어느덧 방송이 종착지를 알린다. 마침 시골 아지매들을 가득 태운 시내버스도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섰다. 부구,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이다. 이제 이곳에서 숙소인 덕구온천까지 들어가야 한다. 혼자 여행하는 처자의 행색이 궁금했는지 할머니들은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 이참에 잘됐다 싶어서 할머니들에게 발전소에 관해 물었더니 학생들이 갈만한 전시관이 있다고 했다.

원자력 발전소 전시관은 전기에너지, 원자력발전, 핵원료의 사진과 실물모형으로 원자력에 대해 알려준다는데 부구 시내에서 2분 거리다. 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그 곳에 가보려는 학생들이나 외국인이 몰려든다면서 한번 가보라고 귀띔도 한다.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산들도 휘휘 지나가고….

울진의 가을은 더디게 온다. 단풍이 들면 등산을 마친 등산객들이 온천으로 몰려드는데 아직은 시기가 일러 한 두 그루의 나뭇잎만 감질나게 물들었다. 가을에 가보는 울진 여행이라. 설레인다.

불영사가 연못에 비칠 때.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불영사가 연못에 비칠 때.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불영사 계곡에 안긴 불영사
꼬불꼬불 이어지는 36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군인들이 만든 도로. 산허리를 자르는 대공사라서 민간인들은 감히 엄두도 못낸 장한 도로란다. 도로 하나에도 사연이 있는 오지 중의 오지. 수풀이 무섭도록 푸른 ‘한국의 아마존’이 바로 이곳이다.

혹자들은 드라이브하기에 좋다고 하는데 굴곡이 심해서 초보자가 운전하기에는 조금 위험해 보인다. 계곡 길이만 해도 15km에 이르는 불영사계곡을 보는 묘미만큼은 어디에도 견줄 바가 없지만 말이다. 불영사계곡은 명승6호로 지적될 만큼 울진에서도 알아주는 관광지다.

여름에는 텐트족들이 몰려서 맨바닥을 보기가 힘들 정도라는데 날이 쌀쌀한 가을이다 보니 도로 중간에 있는 팔각정에 차를 세우고 경치를 구경하는 관광객만 있을 뿐이다. 잘 생긴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 빽빽한 수풀. 남방계와 북방계의 식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귀한 적송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많다는 불영계곡에는 학술탐사차 들르는 사람들도 많다.

한들한들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불영사.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한들한들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불영사.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사람 손이 그리 많이 타지 않은 지역이라 신기한 식물들도 많고 계곡에서는 온갖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친다. 불영사계곡 초입에서 10km를 달리다 보면 소담스런 불영사가 나온다. 불영사에 들어선 첫느낌이 참 고상한 여인을 보는 것 같더니만 비구니승들이 수행하는 청정도량이라 그랬던 모양이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이 절은 원효대사가 머무르며 수행을 하기도 한 절이다.

산의 맥과 물의 맥이 서로 안고 도는 산태극수태극의 지형에 조용하게 앉은 불영사. 전각 앞에 놓인 아름다운 연못 안에는 또 하나의 불영사가 있다. 연못에 부처의 영상이 비친다고 하여 ‘불영사’라고 한 것처럼 연못은 절을 투명하게 비춘다. 대웅전과 적송, 하늘의 삼각대비가 묘한 매력을 흘린다.

불영사 대웅전에서 오른쪽 산 위를 보면 칼바위가 있는데 이것을 바라보면서 대웅전 앞의 연못을 들여다보면 이 칼바위가 부처형상으로 합쳐 보인다. 챙 넓은 밀짚모자를 쓴 비구니 승이 길을 따라 걷고….   일주문에서 불영사로 들어오는 길에는 드문드문 가을이 찾아들었다. 불자들이 하나둘씩 쌓았을 소망의 탑과 숲속에 숨겨둔 부도탑 위에도, 거침없이 흐르는 불영사 계곡 어귀에도.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붉은 가을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 테다.

영덕에게 이름을 빼앗긴 울진대게. 요즘은 수확량이 저조하여 수입산이 대부분이라고.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영덕에게 이름을 빼앗긴 울진대게. 요즘은 수확량이 저조하여 수입산이 대부분이라고.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경상도 민물고기의 산지 민물고기 전시관.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경상도 민물고기의 산지 민물고기 전시관.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제주도 같이 푸른 가을 바다
불영사에서 나오는 길에는 민물고기 전시관이 있다. 지방의 조그만 전시관인데 경상북도 수산자원개발연구소 민물고기 연구센터에서 운영한다. 민물고기의 생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우리의 하천에서 볼 수 있는 갖가지 민물고기도 만날 수 있다. 계절마다 현장체험거리들이 있으므로 체험여부를 문의해 볼만 하다.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해가 지기 바로 직전 가볼만한 곳은 바로 죽변항이다. 산지는 울산이지만 판로가 없어 영덕에서 팔다보니 이름을 빼앗긴 울진대게들이 어항에 그득한 곳이다. 이제는 울진도 물량이 없어서 수입산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게. 이름을 뺏긴 설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게가 사람을 보고 긴 집게발을 들고 위협을 한다. 죽변항 귀퉁이에는 드라마 ‘폭풍 속으로’촬영지가 있다.

등대와 앙증맞은 작은 어촌마을이 풍경을 그린다. 발 디디면 무너질 것 같은 선착장과 주인공이 수없이 들락날락 거렸을 절벽 위의 집, 아직은 보송보송한 억새 위에 서있는 하얀 등대가 있다. 가을에 들르기에 참 예쁜 곳이다. 이 만큼 돌고 나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배가 출출해지면 죽변항 횟집에 내려가 싱싱한 회와 회밥을 한술 뜨면 된다. 분위기보다 조금 저렴한 맛을 찾는다면 죽변항 회센터에 가는 것도 좋다.

왕피천이 바다와 만나는 순간.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왕피천이 바다와 만나는 순간.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하천이 바다와 만날 때
하루의 일정을 마친 저녁 무렵이면 시원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요즘은 울진군민도 덕구 온천을 이용한다. 24시간 새로운 온천수가 샘솟기 때문에 저녁 늦게 들어가도 깨끗한 온천탕에 몸을 담글 수 있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아침이슬로 피부에 보습효과를 주는 덕구계곡 트레킹에 나서보는 것도 좋은 방법. 간단한 아침을 들고 찾아간 곳은 성류굴이다.

1963년부터 개방됐지만 이제는 카메라 불빛에도 녹아내린다며 극진한 보호를 받고 있는 천연석회암 동굴이다. 가는 길, 오는 길을 수놓은 철제다리와 갖가지 조명들은 인공적인데 온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여야만 돌아다닐 수 있는 동굴의 형태는 지극히 자연적이다. 꼭 인디애나존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피해 수많은 주민들이 숨어들었다가 왜군이 입구를 막는 바람에 굶주림으로 묻힌 인골들이 최근까지 출토됐다는 슬픈 현장이기도 하다. 동굴도 동굴이지만 이곳은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성류굴이 있는 선유산을 1급수인 깨끗한 왕피천이 감아들면서 ‘금강산’과 비슷한 자연경관을 만들어낸다.

관동팔경의 제1경 망양정 올라가는 길.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관동팔경의 제1경 망양정 올라가는 길.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석회암 동굴 성류굴 들어가는 길 아래로 왕피천이 흐르고 있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석회암 동굴 성류굴 들어가는 길 아래로 왕피천이 흐르고 있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성류굴 근처에는 식당들이 즐비한데 칡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칡국수나 산채비빔밥이 먹을 만하다. 성류굴에서 2km 내외에 관동팔경의 제1경이라는 망양정이 있다. 왕피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바로 그 장소. 망양정은 높은 곳에 있지만 이제는 소나무 숲이 앞을 가려 바다가 손톱만큼만 보인다.

시야가 답답하다면 차라리 망양해수욕장을 걸을 것을 권한다. 왕피천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짙푸른 바다, 파란 하늘,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모래. 푸르고 하얀 가을이 드디어 바다를 만난다.

Tip. 가는길
가장 빠른 길 서울 -> 원주 쮝 제천 -> 영월 -> 태백 -> 효산 -> 울진
대중교통 : 동서울버스터미널 -> 울진(하루에 12번, 7:10~15:25)
가는 길은 고역스럽지만 울진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특히 불영계곡과 불영사, 푸른 죽변항의 세트장에는 꼭 가볼 것을 권한다. 대중교통으로 가면 많은 것을 놓친다. 차를 끌고 가다가 좋은 풍경이 보이면 차에서 내려서 마음 속에 담는 것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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