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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일상이 예술을 만날 때 마음의 등불이 켜진다,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
일상이 예술을 만날 때 마음의 등불이 켜진다,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
  • 김정민 기자
  • 승인 2005.02.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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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파주] 상큼하면서도 쌉쌀한 맛. 무심코 찾아왔다가 하나둘씩 가슴에 등불을 달고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이 묵직하다. 언제고 다시 한 번 찾아와야지. 어둠 속에 젖어드는 마을을 바라보며 속으로 되뇌어 본다.

헤이리의 탄생
토요일 오전의 헤이리는 조용하다. 차도 한 대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길. ‘공사중’이라는 표지판도 있어서 가끔씩 갈 길이 헷갈릴 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헤이리는 모두 완공된 상태가 아니다. 앞으로도 3년동안 더 지어야 마을이 완전하게 만들어진다. 헤이리는 1997년 한길사 대표와 출판인, 지인들이 뭉쳐 첫출발을 열었다.

문화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작가, 공연과 화랑을 경영했던 전문가 등 3백70명이 마을 회원으로 참여했다. 자연이 살아있는 땅에 둥지를 틀고 어떻게 마을을 지을 것인가 논의했다. 집의 형태는 자연 친화적으로, 3층 이상의 건물은 노을과 산을 가리므로 금지, 건물의 안과 겉은 똑같이 하되 인공 페인트는 피하고 나무 재질 그대로의 느낌을 살려서 짓자 등등의 의견이 나왔다.

헤이리의 밤을 밝혀주는 멋진 조명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헤이리의 밤을 밝혀주는 멋진 조명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헤이리 건설위원회가 엄선한 국내 37개 팀이 시공을 시작했고 문화예술타운이 최종목표인 관계로 마을 내 60%가 문화공간으로 꾸며졌다. 그렇게 시작된 헤이리가 2004년 문을 열었다. 해가 떨어질 무렵 마을에 하나 둘 불이 켜지면서 저녁 풍경이 시작되듯이 헤이리 예술마을에도 제법 불이 들어오는 집들이 많아졌다.

마음을 따뜻하게 여는 마을의 불빛. 마을은 작은 도시를 여행하는 묘미를 준다. 지도 하나를 얻어서 마을을 걷고 있노라면 이국의 작은 마을에 서 있는 느낌이다. 헤이리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혹 다리가 튼튼하다면 차는 놓아두고 마을을 천천히 걸어볼 것을 권한다. 좁고 넓은 마을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자연 풍경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헤이리는 한정된 공간만 관람객에게 개방한다. 잘못 들어갔다가는 예술가의 생활공간을 침범할지도 모르니 주의가 필요하다.

'식물감각'의 1층 전시장. 3층은 이곳에서 운영하는 고급 식당이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식물감각'의 1층 전시장. 3층은 이곳에서 운영하는 고급 식당이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재미있는 일상 탈출
헤이리의 공간들은 획기적이다.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이 건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계속 일어난다. 건축가인 남편은 건물을 설계하고 부인은 그 지하에 조그만 갤러리를 운영하는 모아 갤러리. 건물과 지형이 일심일체를 이룬다.

네모난 컨테이너 박스 같은 살림집 아래 아담한 연못과 창포꽃들이 어우러져 있다. 1년에 한두 번 건축전을 열기는 하지만 모아 갤러리에서는 실험적인 전시들이 연속으로 이뤄진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 누가 빨간 소쿠리와 지퍼가 근사한 조명탑이 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창을 통해 바라보면 갤러리 앞의 풍경들이 눈앞에 다가온다.

'모아갤러리'에서 펼쳐지는 실험적인 전시회. 바구니와 지퍼를 ㅣㅇ용한 조명탑을 세운 이상징의 '일상의 일상적이지 않은'전.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모아갤러리'에서 펼쳐지는 실험적인 전시회. 바구니와 지퍼를 ㅣㅇ용한 조명탑을 세운 이상징의 '일상의 일상적이지 않은'전.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모아 갤러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식물감각’이라는 전시관이 있다. 우리꽃 연구가 마숙현 씨는 우리 꽃을 통해 일상을 표현한다. 우리 꽃이 그려진 도자기를 둘러보고 꽃으로 장식된 멋들어진 식사를 하고 주인이 손수 가꾼 정원에 앉아 자연을 이야기 한다.

식물감각의 대각선에 있는 비대칭적 건물에는 북카페 ‘반디’가 산다. 북카페 벽면 전체는 3천여 권의 책이 진열되어 있다. 주인이 정성스럽게 내오는 맛있는 차를 마시며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낼 수 있다. 카페 가득 퍼지는 은은한 허브향,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사각거리는 종이의 질감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북카페 '반디'의 외부 모습. 외부에 있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북카페 '반디'의 외부 모습. 외부에 있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북카페 '반디' 내부 모습. 아담하고 따뜻한 느낌에 인기가 많은 북카페. 책장을 가득 채운 3천권의 책들이 눈길을 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북카페 '반디' 내부 모습. 아담하고 따뜻한 느낌에 인기가 많은 북카페. 책장을 가득 채운 3천권의 책들이 눈길을 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북하우스'의 야외 테라스에서 바라본 헤이리의 풍경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북하우스'의 야외 테라스에서 바라본 헤이리의 풍경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헤이리에는 유독 북 카페가 많은데 좋아하는 공간을 찾아서 힘든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보자. 찾아간 김에 책을 한권 살 요량이라면 ‘북하우스’에 들러보는 것이 좋다. 한길사가 살아온 길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공간. 멋진 정장을 차려입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근사한 저녁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단, 한사람 몫이 3만원에서 5만 원 선이므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

사선으로 긴 복도를 따라 이어지는 서점은 3차원의 세계로 향하는 문. 길 끝에는 이곳의 북카페가 있다. 야외테라스에 서면 헤이리 아트밸리가 한 눈에 잡힌다. 북하우스가 있는 골목에는 재미있는 전시관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미술체험공간 ‘아트팩토리’, 황인용 전 아나운서의 음악감상실 ‘카메라타 음악감상실’이 있다. 가는 길에 발을 멈추고 한번쯤 들어가 볼 것.

세계의 모든 악기가 총집합 된 '세계민속악기박물관'.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세계의 모든 악기가 총집합 된 '세계민속악기박물관'.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이곳은 꼭 들러보세요
다른 나라의 악기들은 어떤 소리를 낼까?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는 동아시아, 인도,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관장이 70여 개국을 여행하면서 수집한 2백50여개의 악기가 전시되어 있다. 맑은 유리관 밖에 세워진 악기는 관람객들이 직접 두드리고 만지면서 악기소리를 들어볼 수 있으므로 직접 흔들어 보시길. 원통의 긴 막대를 위에서 아래로 옮겨드는 순간 맑은 별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트팩토리'의 다락방에서는 미술체험이 한창이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아트팩토리'의 다락방에서는 미술체험이 한창이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아트팩토리의 다락방에서는 미술체험이 한창이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아트팩토리의 다락방에서는 미술체험이 한창이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아이들에게 예술은 바로 생활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아트팩토리’. 황성옥 관장은 시립미술관에서 10여 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한 베테랑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예술세계를 추구하고 싶었다는데 그 말대로 ‘아트팩토리’의 예술은 그대로 가슴에 들어와 박힌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용적인 전시를 기획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부담이 없다.

전시를 했던 소재를 가지고 아이들이 직접 작가가 되어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이 펼쳐진다. 항상 체험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미리 ‘아트팩토리’의 홈페이지를 찾아 확인해 보아야 한다. ‘카메라타 음악감상실’은 말 그대로 음악감상실이다. 따뜻한 차향과 아름다운 음악이 감돌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건물 외벽에 요즘은 보기 힘든 분필로 알림글을 적어놓은 것이 정겹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해서 안에 들어가면 굉장히 깜깜할 것 같은데 막상 안에 들어가면 넓은 실내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밝은 창을 만날 수 있다.

어린이 전용 서점 '동화나라'. 부모의 손을 잡고 놀러온 어린이 손님이 가득하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어린이 전용 서점 '동화나라'. 부모의 손을 잡고 놀러온 어린이 손님이 가득하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이 음악감상실 뒤 쪽 골목에는 어린이들 전문서점 ‘동화나라’가 있다. 국내에서 출판되는 도서만 취급한다. 넉넉하고 푸짐한 사장님께 책을 직접 추천받을 수도 있다. 곳곳에 아이들 키 만한 의자가 있어서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은 동화를 읽어주기에도 마음 편한 곳. 가끔씩 사장님께서 주최하는 이벤트도 펼쳐진다.

이곳에서 3번 게이트 방면으로 걸어가다 보면 ‘93뮤지엄’이 있다. 사장님의 존함을 딴 93. 관장님은 오랫동안 청담동에서 갤러리를 했었는데 유독 인물화만큼은 팔리지 않고 항상 남아 있었단다. 그 김에 본격적으로 모았던 것이 현재와 같은 재산을 모았다고. 소장품만 해도 2천점이 넘는다. 삶의 희로애락, 세계인의 여러 가지 표정을 사진과 그림으로 살펴볼 수 있다.

삶의 희로애락을 전시하는 인물전문박물관 '93뮤지엄'.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삶의 희로애락을 전시하는 인물전문박물관 '93뮤지엄'.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꿈 속의 나라가 현실이 되는 공간 '딸기가 좋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나는 장소.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꿈 속의 나라가 현실이 되는 공간 '딸기가 좋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나는 장소.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이곳에는 꽤 짓궂은 공간이 있는데, 에로틱 아트전이다. 세계의 진귀한 춘화와 에로틱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18세 이하는 입장할 수 없다. 93갤러리에서 대각선으로 보면 의류회사 쌈지에서 경영하는 ‘딸기가 좋아’가 있다. 쌈지의 대표적인 브랜드 ‘딸기’의 브랜드숍이지만 아이들의 놀이공간을 함께 꾸며놓아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자주오자고 아이들이 조를지도 모를일이다.

헤이리를 스쳐가듯 소개하긴 했지만 헤이리는 몇 번을 가 봐도 꼼꼼하게 둘러보면 좋을 곳들이 많다. 하루정도 여유를 두고 가까운 사람들과 산책삼아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아무생각 없이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가슴에 감동이 꽉 차오른다.

헤이리 맛집, 크레타의 스파게티.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헤이리 맛집, 크레타의 스파게티.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Tip.
헤이리 맛집
크레타
 : 파주에서는 양식이 먹고 싶은 날이면 이 집을 찾는다. 레스토랑 경영 8년차의 베테랑 주인장은 서글서글한 인상덕분에 단골들을 많이 만들었다. 음식이 눈에 띄게 맛있는 것도 아니지만 주인의 인심에 다시금 찾게 되는 집. 아이들을 데리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역. 어린이 돈까스를 비롯해 아이들 식성에 맞는 돈까스, 스파게티가 제일 잘 나간다. 여행지 치고는 그리 비싼 가격도 아니라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헤이리 마을 가는 길 : 자유로를 타고 성동 IC 방향으로 나간다. ‘예술마을 헤이리’표지판을 따라 우회전 한 다음 성동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헤이리 1번 게이트와 2번 게이트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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