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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사찰기행] 괴산 각연사(覺淵寺), 연못에서 건진 깨달음
[사찰기행] 괴산 각연사(覺淵寺), 연못에서 건진 깨달음
  • 이현동 객원기자
  • 승인 2005.09.21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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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괴산 각연사 풍경.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괴산 각연사 풍경.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괴산] 각연사에 이르는 길은 45인승 버스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어디를 가나 그러하지만 물이 별로 없는 그런 계곡을 따라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시멘트 길을 좇아야 도착하는 조용하고 적막한 절이다.

사람소리, 새소리 혹은 바람소리 하나 들릴 법도 한데, 한낮 절은 낮잠에 들은 듯 그저 고요하다. 마르지 않는 감로수 물줄기 소리만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들린다. 소리인지 고요인지 분간이 서지 않을 만큼 절은 적막하기만 하다.

불상이 연못 속에서 나왔다고 하는 절이지만, 절은 아직도 연못 속에 잠겨 있는 듯…. 일찍이 이 절은 연못 위에 세워졌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각연사는 신라 법흥왕 때 유일(有一)대사가 현재의 각연사가 있는 산 너머에 먼저 절터를 정하고 절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날마다 대패질하고 나면 남아야 할 대팻밥이 자꾸 없어지는 것이었다.

대웅전. 중앙 두 기둥에 용이 새겨져 있고, 정면 문 위에는 꽃판이 있다.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대웅전. 중앙 두 기둥에 용이 새겨져 있고, 정면 문 위에는 꽃판이 있다.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대사가 괴이하게 여겨 하루는 유심히 살펴보니 수백 마리의 까마귀들이 나타나 대팻밥을 물고 날아가는 것이었다. 그 까마귀를 뒤쫓아 갔지만 까마귀는 서쪽 하늘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대사가 포기하고 막 돌아서려는데, 대팻밥이 줄을 선 듯 일렬로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를 따라 한참동안 걸어가니 산속 산림이 울창한 곳에 그림 같은 연못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까마귀들이 대팻밥을 물고 와서 이 연못에 떨어뜨리고는 합장이나 한 듯 고개를 숙이며 울어대는 것이었다. 대사는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여겨 이곳에 절을 짓고자 하였다.

각연사의 내경. 왼쪽에 요사채가 있고, 정면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나온다.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각연사의 내경. 왼쪽에 요사채가 있고, 정면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나온다.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그러자 연못에서 환한 광채가 일더니 석불 한 구가 나왔다. 이 석불이 현재 비로전에 봉안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유일대사가 연못 속에 불상이 있음을 깨달았다(覺有佛於淵中)’라는 말에서 ‘각연사(覺淵寺)’라는 사명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이 길이 맞을까? 한낮 졸음에 겨운 듯, 각연사로 가는 길도 엿가락처럼 늘어져 휘었다. 살짝살짝 굽은 길이 보고 또 봐도 시리지 않는 녹음과 또한 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과 어우러져 그저 그림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만 하니.

그림 그리는 붓끝을 쫓아 다다른 각연사는 그림 속에 들어앉았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전설처럼 절은 꼭 연못 같다. 각연사에는 사람들 발길이 거의 없다. 절 마당에 풀이 자연스럽게 깔려 올랐다.

사람보다는 세월과 함께 가는 절, 여느 절과 다른 것은, 제 속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는 그 파편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니 옆으로 널려있는 그 파편 석조물들이 보인다.

맷돌, 기름틀, 석등이나 부도의 지붕돌 혹은 받침돌들. 제 모습을 잃고 서로 모여 살이라도 맞대면 덜 아픈가! 옹기종기 서로 의지하며 모여 있다. 혹여 밤이면 제 자리를 찾아 기어나가지 않을까 안타깝기도 한데, 분해된 석조물들은 더 이상 그만한 기력이 보이지 않는다.

환자 석조물에게 의사가 필요하다. 요사채가 있는 넓은 마당을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의 돌들은 단순한 계단돌이 아니다. 어디엔가 사용되었을 부재들, 분명 그 나이는 짐작컨대 각연사의 역사와 같을 것이다.

대웅전 추녀 아래 네 귀퉁이에 용이 조각되어 있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장엄이다.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대웅전 추녀 아래 네 귀퉁이에 용이 조각되어 있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장엄이다.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천년을 버텨온 돌을 딛고 오르니 약 250년 전에 이전·중수한 대웅전이 눈앞에 나타난다. 대웅전 건물의 네 귀퉁이 추녀 아래의 용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정면 대웅전이라는 현판 옆에도 용이 있지만 말이다. 우리가 대웅전에서 보는 그런 용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정면 문 위에는 꽃판이 장엄되어 있는데, 이 또한 다른 절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것이다. 대웅전 안에도 독특한 장엄이 있다. 코끼리 등에 꽃판을 얹어 놓은!

이 대웅전에는 과거에는 석가모니, 약사여래와 아미타불 등 삼세불을 모셨고, 1982년도에 석가모니 좌우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그래서인지 불상 뒤 탱화는 석가모니, 약사여래, 아미타불 삼존도이다.

유일대사상. 대웅전 불단 옆에 흙으로 빚어 따로 모셨다. 일설에는 달마상이라고도 한다.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유일대사상. 대웅전 불단 옆에 흙으로 빚어 따로 모셨다. 일설에는 달마상이라고도 한다.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이 대웅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미단 옆에 따로 모셔진 ‘유일대사상’이다. 일설에는 달마상이라고도 하나 표현된 것으로 봐서 달마상은 아닌 듯하다. 대웅전을 나와 비로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비로전은 대웅전에 비해 장엄함이 덜하지만 비로전 안에 봉안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단연 각연사 최고의 보물이다. 각연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연못에서 광채를 띠며 떠올랐다는 그 석불. 그러나 이 불상은 조각수법상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인상을 풍기는데 가까이 옆에서 보면 왠지 두 볼이 볼록한 것이 귀엽기도 하다. 불상을 가까이서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 본다는 것이 왠지 조심스럽고 두렵기도 하다.

내 지은 죄가 많아서인지 금방이라도 살아나 ‘이놈’하고 꾸지람이라도 할 것 같다. 어둑하기만 한 법당 안에서는 불상 앞에서 오래 있지를 못한다. 내 스스로 지은 죄가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참회는 수행의 시작인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음은 옛날 비로전 바닥에 깔았던 전돌 만큼 무겁다. 차분히 있자니 비로자나불의 미소가 어둠 속에 보인다. 잘못 본 것일까? 돌아서 나오는 길에 이 법당 어두움의 비밀을 알았다.

각연사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석불로 단아한 느낌을 준다.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각연사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석불로 단아한 느낌을 준다. 2005년 9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비로전 앞에 거대한 보리수나무가 있는 것이다. 한여름 뙤약볕을 부처님 전에 가리기 위함인가? 부처님 법을 깨달았음을 상징하는가? 보리수나무가 연못에 아름드리 그림자 드리운 듯한다. 비로전 어느 현판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깊고 넓은 연못 속에 연꽃이 피었음을 깨달았네(覺蓮花於深廣之淵也).’ 불상을 보고도 부처님을 모르고, 연못 속에 들고도 그 연꽃 피었음을 모르니, 어리석은 나는 또한 누구던가!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다는 생각에 뒤돌아보니 그곳에 감로수가 고운 물줄기로 흐른다. 한 바가지 받아 들이키니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바보다. 물이 무슨 맛인지도 모른다.

어디로 발길을 옮길까? 그래, 통일대사가 있지. 중국에 유학하여 이미 그 명성이 자자했던 대사를 고려 태조가 불러 친히 법문을 듣고 감동받았고. 이후 대사가 입적하자 왕이 통일대사라는 시호를 내렸고 한림학사 김정언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다.

이렇게 대단한 통일대사의 부도와 비가 각연사에 있다. 하지만 그 길은 철통같은 자물쇠로 잠겨 열리지 않았다.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애태우다 마음을 돌려야 했다. 지난 태풍으로 인해 끊어져 위험한 모양이다.

각연사를 돌아 나오는 길에, 또 하나 잊어버린 게 있었다. 비로자나불 광배 뒤편에 새겨진 국내 유일의 ‘불감’.(혹은 가마라고도 한다) 아, 놓쳤구나! 다음을 기약하자. 인연은 절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연사가 여전히 연못 같은 고요로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보개산 각연사에 남겨 둘란다. 연못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물길을 따라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여전히 세상은 후텁지근하다. 그래도 어디 불상이 그 연못에만 있겠는가!

Info 가는 길
중부고속국도 증평IC -> 36번국도 -> 도안주유소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 -> 34번국도 -> 보광산 관광농원 -> 괴산 -> 쌍곡계곡 입구에서 직진 -> 태성차부수퍼식당 삼거리 -> 각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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