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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호수와 바다 사이 고성 화진포,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이 갈대와 속삭이는 곳
호수와 바다 사이 고성 화진포,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이 갈대와 속삭이는 곳
  • 김상미 객원기자
  • 승인 2006.03.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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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화진포 바다와 백사장.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화진포 바다와 백사장.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고성] 파도와 바람이 잡아당기는 대로 늘어났다 줄어드는 모래사장. 철 지난 겨울바다는 파도와 바람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휘청거리던 바다는 바람을 앞세워 몸 밖으로 포말을 뿜어댄다. 긴 호흡으로 슬픔을 몰아내는 듯하다.

늘씬한 먼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는 파도는 오늘도 열강 중이다. 모래사장에 매일 지우고 쓰기를 멈추지 않는 열정을 어떤 선생님이 따라갈 수 있을까. 내가 화진포 바다에 도착했을 때 여전히 수업은 진행되고 있었다.

텅 빈 겨울바다에 쉬는 날도 없이 계속되는 강의. 듣는 것은 오직 갈매기뿐이다. 오늘은 작은 감정 변화에도 목숨을 거는 나를 가르치려고 더 넓은 칠판을 펼쳐 놓은 듯하다. 나는 여백이 있는 마음 노트 한 권을 가지고 수강중이다.

바다의 말들을 남모르게 해독해서 내 것인 것처럼 기고하려고 준비해 둔 것이다. 화진포는 언제 찾아가도 포근하다.

갈대와 화진포 풍경.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갈대와 화진포 호수 풍경.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정 많은 사람 속내처럼 넓은 백사장, 호수의 고요함과 늘 소란스런 바다가 어우러진 이미지, 한결 같은 빛으로 사는 송림과 한 줌의 모래로 부서질 때까지 경계근무를 서는 해안가 바위들이 소박함을 잘 소화해 내고 있다.

이런 바닷가에 머무르면 나는 가끔 발칙한 꿈을 꾸기도 한다. 떠나간 연인을 마음 속에서 꺼내보기도 하지만 파도 같은 열정으로 마지막 사랑을 불태워 볼 용기를 내보기도 한다. 낭떠러지 아래는 심연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바닷가에서는 이중적인 나를 들여다보고 혼자서도 키득거릴 수 있어서 좋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발버둥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백사장을 걷는데, 바람이 귓불을 너무 세게 때려 얼굴이 불콰해진다. 혼자서 외줄 타는 심정이다.

거북모양을 한 금구도. 축성연대와 목적을 알 수 없는 길이 60m의 돌로 쌓은 성벽과 건축물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때문에 한때 금구도가 광개토대왕의 수중릉이라는 설이 퍼져 화제가 된 바 있다. 고성 지역의 문화를 연구하는 고성문화포럼의 한 회원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낸 고구려 연대기에 ‘서기 394년 광개토왕 3년에 화진포의 거북섬에 왕의 수릉을 축성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주장 한 것. 학계에서는 떠도는 설 가운데 하나라는 입장이다.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언덕 위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옛 김일성 별장이 나와 대칭되는 것 같아 올라가 보았다. 둥근 원을 그리고 있는 해안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겨울 햇발을 받은 바다는 마치 등 푸른 생선이 뛰는 모습 같다. 통일신라시대 수군기지로 이용했다는 돌섬 금구도의 대숲이 유난히 반짝인다.

상큼한 해풍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아 코를 벌름거린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바닷가의 평화를 박제해본다.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여행은 이런 맛에 떠나는 것이리라. 바다는 해안가 깊숙이 잠들어 있는 바람소리뿐만 아니라 마음 속 울음소리까지도 헤아린다.

화진포에서는 호수의 모습이 더 매력이다. 호수를 둘로 나누고 있는 아치형 다리가 주변을 은밀히 읽고 있다.  호수는 온통 얼어붙고, 숨통처럼 트인 물 위로 미끄러진 햇살이 조곤조곤 말을 붙이는 듯하다.

백사장에서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백사장에서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세상과 동떨어진 채 물가에서 살기를 고집하는 갈대가 물새들에게 아랫목을 내어주고, 실바람에 백발을 날리며 마른기침을 쿨럭인다. 곧 파란 대궁이 올라오면 떠나려는 모양이다. 사소한 것까지도 배려하는 매너 때문에 여자들이 갈대에 푹 빠지나 보다.

건너편 이승만 별장에서 내려다 본 호수는 파란 하늘이 내려와 하늘정원이 되었다. 난국에 국사를 보느라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큰 위로를 얻는 장소가 되었을 듯싶다.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별장.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별장.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빨갛게 여문 해당화 씨방에 햇살이 내려섰다.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빨갛게 여문 해당화 씨방에 햇살이 내려섰다.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호수 주변을 배회하다 해당화 씨앗이 빨갛게 여물어 있는 것을 보았다. 변치 않는 해당화의 붉은 마음이 보석처럼 단단해 보였다. 호수 주변에는 화진포의 8경이 숨어 있다. 숨은그림찾기 하듯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선인들의 풍류를 읽어 보는 것도 또 다른 여행의 의미가 될 듯하다.

근처에 해양박물관도 있어 자연학습에 도움이 된다. 화진포 자랑거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싱싱한 해산물이다. 꽁치, 대구. 방어, 아귀, 임연수 그리고 김이 있다. 김은 11월부터 출하를 하는데 가장 추운 1,2월에 채취하는 김이 제일 맛이 있다.

Info 가는 길
동서울·상봉터미널 → 홍천 → 인제 → 진부령 → 간성터미널(3시간 40분 소요) → 거진 → 화진포(1번 버스가 속초 → 간성 → 거진 → 현내 순으로 5분 간격을 두고 순환 운행한다.) 자동차를 이용해 화진포 호수 일주도로를 이용하면 더욱 운치있다.

화진포 호수 너머 백두대간 줄기가 웅장하다.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화진포 호수 너머 백두대간 줄기가 웅장하다. 2006년 3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Tip. 화진포 8경
하나, 원당리 마을 앞 호수에 비친 반달 그림자와 누런 가을 곡식 그리고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을 월안풍림. 둘, 화포리 찻골의 저녁밥 짓는 연기가 한 폭의 그림이라는 차동취연.

셋, 호수 주변 모래밭에 피는 해당화 모습이 영롱하여 평사해당. 넷, 장평 부근에 찾아오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청명하여 장평낙안. 다섯, 화진포 앞 바다에 떠 있는 금구도의 모습이 한가로워 금구농파.

여섯, 바다로 빠지는 호수물의 모습이 물을 치는 용 같아 구용치수. 일곱, 풍암 별장에서 보는 돛단배의 한가로운 모습을 풍암귀범. 여덟, 모화정리 모래밭에 아름다운 정자가 있어 모화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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