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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색 잠자리 열전] 쉼표와 쉼표 사이에 찍은 느낌표 경북 칠곡 매원마을 진주댁
[이색 잠자리 열전] 쉼표와 쉼표 사이에 찍은 느낌표 경북 칠곡 매원마을 진주댁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5.09.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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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스케치=칠곡] 고달픔을 풀고 휴식을 얻고 싶은 성마른 도시인이여. 지나간 자리에 궤적을 남기는 달팽이마냥 느리게 걷는 맛을 음미하고, 툇마루에 고인 달빛 한 줌을 벗 삼아 사색에 잠기고 싶다면 명품 고택이 있는 매원마을로 가자. 입안이 호사로운 먹거리와 알찬 체험거리는 덤이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매원마을 어귀에서 여행자를 반기는 연밭.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얼마 전 떠난 칠곡 여행길에서 매원마을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마주했다. 호기심이 꿈틀거리긴 했지만 실토하자면 그저 그런 궁금증이었다. 사실 갈증 탓에 구멍가게에서 파는 생수 한 병이 간절하기도 했다. 그렇게 미심결에 핸들을 꺾어 들어간 마을은 시동을 끄고 내릴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구멍가게 때문이 아니었다. 2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고택들, 그리고 연꽃과 연잎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연밭이 어우러져 기막힌 풍광을 뽐내고 있던 까닭이다. 순식간에 발길이 붙들려 셔터를 눌러댔다. 여행하며 글을 쓰고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가 매원마을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인 우연이라고 생각했더랬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별채, 본채, 사랑채가 나란히 자리한 진주댁.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느릿느릿 쉬어가고 싶어라

매원마을에 얽힌 옛 기억을 떠올리며 기차에 앉았다. 여행자의 두근거림을 시샘이라도 하듯 줄곧 따라붙는 가을 햇살이 밉지 않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철로 이음매의 미세한 삐걱거림이 익숙해질 무렵 왜관역에 닿는다. 이내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에게 매원마을까지 얼마나 가야 되는지 묻는다. “쪼매만 가면 됩니더.” 자동차로 10분 남짓 달렸을까. 고요함과 아늑함이 묻어나는 매원마을에 도착한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한옥 숙박 체험이 가능한 진주댁의 별채.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매원마을이 보유한 문화재 중 하나인 해은고택.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마을에서 외지인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세상살이에 시달리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시원하게 훑고 가는 바람이다. 제법 선선하게 불어와 가을 향기를 퍼뜨리니 차츰차츰 자연이 주는 위로에 심신을 맡기고 만다. 한결 상쾌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려 연밭에 시선을 던진다. 연신 하늘거리는 연분홍빛 연꽃과 탐스러운 연잎을 넋 놓고 바라보길 한참. 이러고 있다간 짐도 풀지 못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배꼽시계 알람도 못 끌 것 같아 진주댁으로 향한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자와 어울리길 마다하지 않는 이수욱 어르신.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진주댁은 한옥 숙박 체험이 가능한 고택이다.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음악회가 열릴 정도로 널찍한 마당에 별채, 본채, 사랑채가 나란히 위치했다. 모든 객실은 독채로 제공되는데, 입,퇴실 시간이 자유롭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가령 27일부터 28일까지 머물기로 했다면 27일 아무 때나 와서 28일 아무 때나 비우면 된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만들 수 있는 개수대를 비롯해 화장실과 욕실이 별채를 제외하곤 모두 바깥에 자리했지만,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되니 불편함이 없다.

방으로 들어가니 한국의 미가 물씬 풍기는 전통 소품들이 꿰차고 있다. 적절히 조화를 이룬 냉장고와 에어컨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TV가 없는 게 맘에 든다. 여기까지 와서 무심코 튼 TV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까. 짐을 두고 잠시 숨을 고를 요량으로 창호문을 열어보니 울창한 대밭이 펼쳐진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툇마루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먼발치를 바라보다 놀란다. 연밭, 금무산, 농경지 등 매원마을을 둘러싼 그림 같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묵객이었다면 시 한 수가 절로 나올 경관이요, 붓을 꺼내 들고 풍경화를 그리고픈 풍취다. 문든 잠자리에 들기 전 문창살 사이로 은은하게 새어드는 달빛에 취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뇌중을 파고든다. 뭔가를 먹지 않았는데도 계속 불러있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만 나지 않는다면 입맛보다는 ‘눈맛’을 선택하고픈 경치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연잎밥정식을 맛본 후 이어지는 다도 체험.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짐도 풀었으니 즐거운 한 끼 식사로 미각에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진주댁 코앞에 둥지를 튼 ‘그대가 꽃’으로 향한다. 끝내주는 ‘연잎밥정식’을 맛볼 수 있다는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사전 예약 필수’라는 말을 잊지 않고 진작에 예약을 해뒀다. 이윽고 상 앞에 앉아 가지런히 놓인 음식을 살피며 침을 삼킨다. 먹거리로는 타의 추종을 허락지 않는다는 남도 음식에 비견될 자태다. 이쯤 되니 서서히 맛이 궁금해진다. 이내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맛보다 깜짝 놀란다.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하면서 온갖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입맛이 재발견되긴 했지만, MSG도 안 넣은 게 입안에서 착착 감기긴 오랜만이다. 미성년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술 한 잔을 곁들여도 좋을 맛깔 나는 한 상이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느리게 걷는 맛을 음미하기 좋은 고샅길.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라
“손님이 원하시면 무료로 다도 체험을 할 수 있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앞마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찻자리 예절을 배우며 차담을 나누는 다도 체험이 가능한 덕택이다. 다도 체험 외에도 사전에 예약만 이뤄지면 염색 체험 등도 가능하니 맘이 동한다면 한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거대한 호두나무 아래 펼친 평상에 정결한 마음가짐으로 앉아 보이차를 맛보니 얼룩진 몸과 마음이 깨끗이 정화되는 듯하다. 배운 대로 차 한 모금을 삼킨다. 이어서 숨을 들이쉬었다 천천히 뱉는다. 마음속 언저리에 남아있을 사소한 욕심까지 모조리 끄집어내는 기분이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이수욱 어르신이 건넨 무화과가 신기한 여행자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다도 체험으로 마음을 정갈하게 가꾼 뒤 마을을 돌아보려 길을 나선다. 제아무리 가을일지라도 챙이 긴 모자를 눌러써야 마땅한 시간대다. 하지만 산들바람이 불어와 몸을 적셔주니 구태여 쓰고 있는 모자는 벗어둔다. 그리곤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푸른 하늘을 모자 삼아 고샅길을 걷는다. 쫓기듯 서두르지 않고 끌리는 대로 눈길을 던지면서 타박타박 걷는 맛을 음미한다.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담벼락에 대롱대롱 매달린 호박이, 누군가의 집 앞마당 귀퉁이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석류가 정겹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매원마을 주민들은 외지인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무더운 여름날에는 차가운 보리차 한 잔을, 추운 겨울날에는 따뜻한 아랫목을 내어줄 것 같은 푸근한 인상으로 인사를 건넨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은은한 달빛에 취하는 매원마을 진주댁의 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짧은 구간이지만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길을 걷다가 ‘지경당’에 이른다. 바로 이곳에 이수욱 어르신이 계신다. 시간만 허락하면 여행자를 만나 문화관광해설사 못지않은 지식과 입담을 선보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신다. 매원마을 여행이 더욱 깊이 있어지는 이유다. 어르신을 만난 김에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본다.

“한때 하회마을, 양동마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남 3대 반촌(班村) 가운데 하나였지요.” 풍수 지리적으로 매화가 떨어진 모양을 하고 있어 매원마을이라 일컬은 이곳은 수많은 문인을 배출하는 등 장원급제한 사람이 많아 ‘장원방(壯元坊)’이라 불리기도 했다. 최대 번성기였던 1905년에는 400여 채의 가옥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 사령부가 이 마을에 설치되면서 전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 탓에 대부분의 가옥이 소실됐고, 현재는 60여 채의 고택만이 남았다. 당시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쓰인 지경당에는 포탄과 총알에 의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지경당은 ‘해은고택’, ‘감호당’과 함께 옛 매원마을의 번성을 보여주는 유서 깊은 문화재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찬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린 새까만 밤이 찾아든다. 교교한 달빛이 떨어지는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수놓은 듯 촘촘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며 낭만을 좀 아는 사람이 돼본다. 이름 모를 산새의 지저귐이 정겹고,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부비는 고양이가 귀엽다. 달빛과 별빛을 벗 삼아 사색하며 권태로운 마음을 씻어내기에 더없이 좋은 매원마을의 가을밤이 씨알 굵은 감처럼 잘도 영글어 간다.

INFO. 진주댁 & 그대가 꽃

숙박료 15만원~20만원 
연잎밥 정식+다도 체험 1만5000원 
염색체험 5000원~1만5000원
주소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30-3

한국관광공사 한옥스테이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청연재
북촌한옥마을에 옛 양반집 못지않은 고급스러운 한옥이 들어섰다. 부티크 한옥 호텔을 지향하는 청연재다. ‘맑고 깨끗한,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고 좋은 인연’이라는 뜻을 가진 청연재는 1935년에 지어진 한옥으로, 1년 동안 정성껏 보수하여 2014년에 문을 열었다.
숙박료 15만원~33만원
주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6길 13-2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명재고택
대문도 담장도 없이, 마을을 향해 활짝 열린 명재고택. 뒤로는 산줄기를 병풍으로 두르고, 앞에는 장방형의 커다란 연못을 뒀다. 연못 안에는 자그마한 원형 섬이 있고, 그 안에 고택과 함께 300년의 세월을 보낸 배롱나무가 멋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운치를 더한다.
숙박료 15만원~65만원
주소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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