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거제] 거제는 매년 여름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을 정도로 인기 있는 관광지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몇 곳만 사람들이 몰릴 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데가 더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찾았다. 거제 시민들이 꼭꼭 숨겨놓고 여름에 가는 최고의 휴가지 세 곳을 살짝 공개한다.
1st day
3년 전 여름휴가를 거제로 갔다. 1순위로 외도는 봐야했기에 아침 9시쯤 장승포 유람선 터미널에서 줄을 서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가까스로 마지막 줄을 찾아 섰더니 “오늘 들어갈 인원 5000명의 표가 이미 매진됐습니다. 내일 오세요!” 하며 방송을 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우리까지는 들어가겠지하며 뙤약볕에 꿋꿋하게 줄 서 있는 사람 반, 다음 여행지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 사람 반, 그것도 모르고 꾸역꾸역 들어오는 차량들까지 뒤섞여 그야말로 장승포 유람선 터미널 앞은 초만원이었다.
그렇다면 거제에는 외도 말고는 볼 만한 여행지가 없단 말인가. 그때 일이 한이 되어 거제 시민들이 여름에만 찾는 꼭꼭 숨겨진 여행지를 찾았다. 거제 시민들은 대부분 이 네 곳을 추천해 주었다. 거제의 가장 북쪽에 있는 장목면의 황포해수욕장, 일운면 와현리의 공고지와 내도(內島)섬, 그리고 남쪽 끝의 홍포-여차 전망도로(여차해수욕장) 구간이다. 거제까지 가서 달랑 외도만 돌아볼 순 없지 않은가.
외도와 해금강의 절경을 감상하고 거제의 명물 멍게비빔밥도 맛보고 바람의 언덕에 올라 온몸으로 바람도 맞아보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포로를 수용했던 포로수용소에 들러 전쟁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에게는 교육 효과까지 줄 수 있는 알짜배기 여행. 거제 시민들의 추천 여행지 중 세 곳과 관광과 휴양을 적절히 배분했다. 거제를 1박 2일로 구성해 빡빡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휴양에 조금 더 비중을 둔다면 테마박물관과 홍포-여차 드라이브 구간은 과감히 들어내도 좋다. 그래도 거제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거제 명물 멍게비빔밥과 공고지에서 물놀이
거제시에 들어서면 간판에 멍게비빔밥이라고 쓴 음식점이 많다. ‘그 흐물흐물한 멍게로 비빔밥을?’하고 미심쩍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맛보길 바란다.
원조는 거제시청 옆에 있지만 손님이 많아 얼마 전 포로수용소 오른편에 분점을 오픈했다. 멍게는 주문 즉시 살짝 얼려 네모반듯하게 썰어서 흰 쌀밥에 김가루, 참기름, 깨소금 등이 얹어져 나온다. 뜨거운 밥에 비벼진 멍게는 참기름과 김의 고소함과 멍게의 향긋함이 어우러져 거제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바로 옆의 거제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17만 3000여 명의 포로들이 수용되었던 곳에 세워진 유적공원이다. 당시 포로수용소의 사진 상황과 똑같이 재현한 막사와 기념관, 장갑차, 헬리콥터, 탱크와 폭격을 맞은 건물 잔해가 남아 있다. 전쟁 세대들은 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전쟁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전쟁의 발발부터 폭격 맞은 잔해를 둘러보며 교육 효과도 높일 수 있다.
일운면의 구조라-와현 해수욕장을 거쳐 왼쪽의 산으로 이어진 길을 끝까지 내달리면 오목하고 아담한 예구마을에 도착한다. 예구마을 끝에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새로 지은 유럽풍의 펜션이 있어 이곳에 숙박을 정한다. 펜션 뒤로 공고지로 가는 또 다른 산길이 있고 바다가 훤히 보여 전망이 훌륭하다. 짐만 옮겨놓고 바다에서 놀 채비를 한 뒤 공고지로 오르는 산길로 향한다. 공고지는 거제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 45년 전 이곳에 들어온 강명식 씨 부부가 생계수단이 없어 남해의 특성에 맞춰 특수작물을 재배해 외부에 팔기 위해 종려나무, 조팝나무와 꽃을 많이 심었는데, 40여 년이 지난 뒤 작은 몽돌해변과 어우러진 종려나무 숲이 운치 있어 2005년에 개봉된 영화 <종려나무 숲>의 배경지로도 등장했다.
마을 끝에 공고지가 있고 그 주위가 바다라서 이곳을 가려면 순전히 도보로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흙길을 따라 30여 분을 걸으면 종려나무 숲과 몽돌해변이 나온다. 가는 길에 숲에 파묻혀 삼림욕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 매년 봄이면 노란 수선화가, 겨울이면 동백꽃이 융단을 이루어 꽃이 필 때에 맞춰 오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공짜다. 내도가 보이는 공고지의 아담한 몽돌해수욕장은 텐트 쳐놓고 물놀이하기에 제격이다. 적당히 놀고 펜션에 들어가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자. 예구마을은 식당이 없고 슈퍼도 한 군데밖에 없어 웬만한 먹을거리는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2nd day 거제의 아름다운 절경 Best 5
커튼을 걷으면 물안개 자욱한 바다가 보이는 특별한 아침. 특급 호텔이 따로 없다. 외도를 가려면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 외도를 가려는 관광객은 대부분 장승포로 몰리지만 공고지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와현과 구조라에서도 해금강을 거쳐 외도로 곧장 가는 유람선①이 운행된다. 장승포에서 가는 것보다 이용객 수가 적고 요금도 저렴한 편. 펜션에서 주는 3000원 할인쿠폰을 받아 아침 일찍 티켓을 산 뒤 줄을 서도록 하자. 배 타는 시간이 일정치 않아 인원이 모이면 즉시 출발한다.
유람선 위에서 해금강 최고의 비경인 십자동굴을 비롯해 사자바위, 촛대바위 등 기이한 암석을 돌아보고 외도에 들어갔다 나오면 정오쯤 된다. 학동 몽돌해수욕장의 식당가나 해금강 식당가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 바람의 언덕으로 향한다. 해금강 가기 전 도장포 마을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잔디로 이루어진 민둥산이 바람의 언덕이다.
제주 분위기가 나는 이곳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도장포마을의 위쪽에서 걸어서 언덕을 내려오면서 보는 것이 포인트. 드라마 <로망스>, <회전목마> 등에 나오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언덕 끝에는 초록색 등대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도장포 마을 우측에 주차를 하고 해금강 테마박물관 옆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신선이 내려와 풍류를 즐겼다는 신선대가 나온다. 색색의 큰 바위가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비경이다. 바람의 언덕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초원 같다면 이곳은 해안 경관과 어우러진 웅장한 기암괴석으로 다도해가 보일 정도로 전경이 아름답다.
신선대 바로 옆엔 폐교를 개조해 꾸민 해금강 테마박물관이 있다. ‘테마와 퓨전’을 소재로 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재봉틀을 연상케 하는 팥빙수 기계, 70년대 교실 풍경, 카메라 영사기 등 옛날 물품이 1층, 2층 복도에 꾸며져 있다. 전시장에는 관장이 젊은 시절부터 틈틈이 수집한 세계유명모형범선관, 중세의 기사관, 밀랍 인형으로 꾸며진 칸영화포터전, 프랑스도자기인형관, 세계명화관 등으로 이어져 있어 다양한 문화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
거제시에서 제2의 관광지로 자신 있게 추진하고 있는 홍포-여차 전망도로 드라이브 구간은 거제 여행의 하이라이트. 남부면 여차몽돌해변을 따라 명사해수욕장으로 가는 약 3.5㎞ 구간은 거제의 해안도로 중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대·소병대도 등 6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둘러싸인 한려수도 해상관광의 요람인 거제에서도 그 경관이 단연 백미란 평가를 듣는다. 맑은 날 가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은 가슴 뭉클한 감성을 선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