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제주] 80만년 전부터 차곡차곡 새겨진 ‘지구의 지문’을 따라 걸었다. 노란 유채꽃과 푸른 바다, 한적한 마을에 둘러싸인 지구의 지문을 더듬는 내내 시원한 제주 바람이 귓가에 속삭였다. 조들리지 말앙, 느긋이 구경행 갑서.
제주의 지질, 역사, 문화, 생태 깃든 길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은 2010년 우리나라 최초로 유네스코 인증을 받은 제주의 9개 세계지질공원 중 하나다. 이 지역은 지질과 역사 문화, 생태가 깃든 명품 길의 탄생으로 최근 다시 조명받고 있다. 제주의 화산 지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질 자원과 아름다운 풍경, 향토색 짙은 제주의 역사?문화 자원이 어우러진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로 지난 4월 5일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은 2개 코스로 나뉜다. A코스는 14.5km로 사계리와 덕수리 마을을 경유한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형제섬해안도로를 따라 거닐며 붉은색의 퇴적층 하모리층과 사람발자국 화석지, 덕수리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주물공에 ‘불미공예’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지질학적 가치뿐 아니라 제주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풍성히 담긴 길이다. 짧은 탐방을 원할 경우 10.7km의 단축 코스를 이용할 수 있다.
B코스는 15.6km로 사계리, 화순리, 덕수리를 모두 아우른다. 산방산에서 화순리 방향으로 펼쳐진 금모래 해변과 제주 생태의 보고 화순 곶자왈을 즐기며 논농사를 위해 지은 수로와 소금막 등 척박한 환경에서 지혜롭게 살아온 제주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코스다.
함께 새기는 지구의 발자국
어느 코스를 택하든 트레일의 기점 용머리해안을 들러 가는 것이 좋다. 탐방 전 산방산 아래 봉수터 산방연대에 먼저 오르길 추천한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비롯 트레일 코스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특히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용의 풍모가 한눈에 들어와 감탄을 자아낸다. 용머리해안은 화산 분출로 겹겹이 쌓인 화산재가 80만 년 동안 바람과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만들어낸 절경이다. 산방연대와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닷가 옆으로 움푹 팬 해식동굴과 암반에 구멍이 숭숭 뚫린 풍화혈 등 다양한 지질 형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용머리해안의 꼬리와 등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칼로 자른 듯한 절리가 형성돼 있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 진시황이 제주도에 제왕이 태어날 지세를 지닌 용머리해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풍수에 능한 호종단을 파견해 지세를 끊어놓은 흔적이란다. 이때 흘린 붉은 피가 지층에 스며들어 용머리해안이 검은색과 붉은색을 띠게 되었다고.
용머리해안을 거니는 동안 전설의 흔적을 더듬는 재미만큼이나 쏠쏠한 것이 바로 지구의 지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해녀가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삼과 멍게 등을 맛보는 즐거움. 놀멍 쉬멍 걷는 가운데 층층이 쌓인 억겁의 세월 위로 나의 발자국도 한 겹 겹쳐진다.
INFO. 산방산 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 코스
B코스 용머리해안∼소금막∼화순금모래해변∼화순선사유적지∼곤물~화순곶자왈∼군물∼용머리해안 (14.4km)
소요 시간 4~5시간
Tip. 탐방 전 필수 확인 사항
용머리해안 탐방 가능 시간
바다와 바로 접해 있는 용머리해안은 밀물 때나 바람이 심하면 탐방이 제한되므로 탐방 전 입장 가능한 시간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지질 트레일 코스 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지불해야 탐방할 수 있다.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코스별 편의시설 위치
A코스 내 음식점과 매점은 사계포구 일대에 밀집되어 있으며, B코스 내 매점과 화장실은 화순해수욕장 이후부터는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