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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시골 집밥 여행] 자연과 정성을 담은 유기농 밥상 전남 장흥 신덕행복마을
[시골 집밥 여행] 자연과 정성을 담은 유기농 밥상 전남 장흥 신덕행복마을
  • 주성희 기자
  • 승인 2014.05.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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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여행스케치=장흥] 펑퍼짐한 어머니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은 아이처럼 완만한 곡선을 이룬 산등성이에 평화로이 처마를 기댄 한옥 마을. 해거름이면 지붕 위로 모락모락 하얀 연기와 함께 구수한 밥 냄새가 피어오르는 곳. 장흥 신덕행복마을 ‘외갓집’에서 마음이 살찌는 집밥을 먹고 왔다.    

서울에서 5시간, 솔찬히 먼 거리를 달려 전라남도 장흥 유치면 신덕행복마을에 닿았다. ‘모든 결혼한 여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는 유부녀 친구의 말에 힌트를 얻어 먼 거리 마다않고 찾아온 길이다. 결혼과 동시에 그저 남이 해준 밥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맛있게 느끼도록 변한 기혼녀들의 입맛은 물론, 식구들 챙기기에 바빠 뒷전으로 내몰린 그들의 애처로운 영혼까지 되살릴 수 있는 남의 집밥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말이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단 하루만이라도 그들이 식구들에게 그러하듯 정성을 다한 밥상을 내고 몸과 마음을 편히 뉘일 수 곳이면 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는 비단 기혼녀만 아닐 터. 결혼 여부나 나이, 성별을 떠나 지쳐 있는 모두에게 편안한 환경에서의 휴식과 건강한 식사는 심신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활력소가 된다.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신덕행복마을 ‘외갓집’ 방문을 열면 초록 잔디가 깔린 마당 앞으로 가지산 자락이 물결친다.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하늘 아래 옹기종기 처마를 맞댄 한옥마을

가지산 자락 400여m 고지에 위치한 신덕행복마을은 이에 맞춤인 곳이다. 산중 표고버섯 재배지를 사이에 두고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뉘는데, 산 위로 더 깊숙이 올라간 윗마을이 바로 천혜의 휴식처. 봉긋이 솟아오른 산등성이에 나란히 처마를 맞댄 한옥 24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툭 터진 하늘 아래 사방으로 부드럽게 물결치는 산줄기와 유려한 처마 곡선이 한 폭의 동양화를 이루는 곳. 윗마을에서의 시간은 느리지만 특별하게 흘러간다.

“마을이 처음 생기면서부터 화학농약이나 화학비료, 화학제초제를 쓰지 않고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었어요. 유기농법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부터죠. 마을 경작지의 90% 이상이 유기농 경작지고 밥상에 오르는 음식도 전부 유기농이에요.”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외갓집 객실 내부. 안락한 침실과 거실, 주방, 욕실을 갖춰 내 집처럼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다.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정병택 이장과 부인 배용숙 씨가 인상처럼 푸근한 외갓집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신덕행복마을은 1994년 아랫마을이 먼저 생기고, 2009년 전라남도 행복마을로 선정되면서  도의 건축 지원을 받아 윗마을에 한옥 단지가 조성됐다. 위아래 통틀어 90가구 190여 명이 모여 사는데, 주민 대부분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삶을 원해 이곳을 찾은 이주민이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유기농법을 실천하며 친환경 마을을 유지해 왔다고. 1995년 아랫마을에 정착한 정병택 이장도 각박한 도시 생활보다는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사는 삶이 자신과 맞기에 귀촌을 택했단다. 윗마을에 새로 둥지를 틀면서부터 집 이름을 ‘외갓집’이라 짓고 집의 절반을 뚝 떼 민박 손님에게 내어주고 있다.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외갓집 안주인이 마을에서 난 재료에 온갖 정성을 담아 차려내는 유기농 채식 밥상.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저 어렸을 때는 방학만 기다렸어요. 시골 외갓집은 방학 때만 갈 수 있었거든요. 버스에서 내려서도 몇 시간을 더 걸어가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지요. 할머니의 푸근한 품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신덕행복마을 ‘외갓집’ 안주인 000 씨가 할머니가 손주를 맞듯 환한 미소로 객을 반긴다. 아직 젊은 안주인이건만 건강한 식재료에 정성을 담는 음식 솜씨가 할머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신덕행복마을은 유기농법과 순환농법으로 표고버섯, 콩 등의 유기 농산물을 생산한다. 마을에 소나무 숲이 울창해 표고버섯의 맛과 향이 특히 빼어나다.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천혜의 자연을 식탁에 담다   
외갓집 밥상에는 잡곡밥과 국 그리고 10여 가지 반찬이 오른다. 찬은 고기에 나물, 김치, 전 등 육류와 채소가 고루 섞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 고기는 단 한 점도 없다. 철저히 유기농 채식 식단으로 차려진다. 불고기, 닭강정, 햄으로 보인 것들은 사실 밀이나 콩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이용해 고기의 질감과 맛을 낸 것이란다. 밀고기는 밀의 식물성 단백질 글루텐에 현미밥과 호두, 잣, 콩, 호박씨 등 견과류를 섞어 구우면 불고기, 바삭하게 튀겨내 달콤한 소스를 바르면 닭강정과 비슷한 반찬이 된다. 고기 좋아하는 아이들도 깜박 속아 넘어가는 채식 반찬이다. 글루텐 가루를 사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데, 0 씨는 밀가루를 물에 넣고 주물러 글루텐을 추출하는 것부터 직접 한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외갓집’을 찾은 이들의 건강을 생각해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신덕행복마을 외갓집에서 바라본 풍경. 배불리 먹지 않아도 속이 든든, 마음이 충만해진다. 2014년 6월 사진 / 주성희 기자

나물 반찬은 철에 따라 달라지지만 청정 자연이 기른 향과 맛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만은 변함없다. 정 이장이 아침 산책길에 따온 것을 받아 곧바로 조물조물 무쳐 상에 올렸다는 취나물은 짙은 향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자석처럼 젓가락을 끌어당기고, 부추와 방아잎을 섞어 얇게 부쳐낸 전은 방아잎 특유의 시원한 향이 입안에 맴돌아 청량감을 더한다. 봄에 문밖만 나서면 발길에 채는 게 질경이고 곰취, 머위, 두릅, 죽순, 더덕 등 먹을 게 지천이라 부지런만 떨면 철철이 자연이 주는 음식으로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단다. 자연이 기른 신선하고 훌륭한 재료에 시간과 노력을 깃들이니 이 집 부엌에 조미료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화려한 치장도 하지 않았건만 외갓집의 밥상은 시선을 붙든다. 반찬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고 맛을 음미하는 사이 혹시 국이 식었을까봐 새로 떠다주는 안주인의 마음 씀씀이에 진짜 외갓집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해진다. 감자와 양파를 쑹덩쑹덩 썰어 넣은 뜨끈한 버섯 된장국을 호호 불어 입에 넣는데 구수한 향기에 클래식 선율이 올라타 오감을 자극한다. 저녁을 먹으며 클래식을 들어본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도시 소음을 덮기 위해 늘 더 시끄러운 음악으로 틀어막았던 귀가 뻥 뚫리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외갓집 저녁 식탁에는 TV가 없다. 식구들의 단란한 대화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음악이 잔잔히 흐를 뿐이다.  

후식으로 내온 빵과 과자도 안주인이 직접 만들었단다.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은 모두 빼는 것이 그의 제빵 제과 원칙.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거나 바삭한 식감을 주는 첨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거칠거나 밋밋하지만 투박한 그 맛에 반해 밥을 배불리 먹고도 자꾸만 손이 간다.


“푹 주무시고 조금 일찍 일어나보세요. 산자락에 운무가 깔리는 새벽이면 하얀 구름바다 위로 붉은 해가 솟아오르는 장관이 펼쳐져요. 그 광경을 지켜볼 때는 진짜 신선이 된 기분이지요.”

정 이장의 귀띔에 새벽잠을 물리치고 일어나 산책에 나선다. 깨끗한 공기 탓인지 마을을 깨우는 새들의 지저귐이 유독 청아해서인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는데도 머리가 개운하다. 어쩌면 때 묻지 않은 산골의 한옥에서 건강한 음식을 먹고 편히 하룻밤을 보낸 효과를 톡톡히 보는지도. 소나무 숲속에 자리한 효조공원을 거쳐 아랫마을 입구까지 이어진 왕복 2km 산책로를 따라 거니는 동안 한층 맑아진 머릿속에 이런저런 기분 좋은 상상이 이어진다. 아쉽게도 바다 같은 운무는 없었지만 앞산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금연, 금주,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신덕행복마을의 청정 자연이 변함없기를 바라는 기도도 잊지 않는다. 여행객이 드나들며 마을 분위기를 흩트리면 어쩔까 하는 노파심에서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외갓집으로 되돌아오니 지붕 위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정성껏 아침상을 보는 안주인의 분주한 손길에서 자식들 나가서 하는 일마다 잘 되라고 꾹꾹 눌러 담아주던 엄마의 고봉밥이 겹친다. 영혼을 살찌우는 그 특효약 말이다.  

INFO.
숙박료 4인 기준 10만원
식사 1끼 1만원
주소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신덕길 474-237

Tip.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장흥까지 왔다면 꼭 들러봐야 할 힐링 명소. 억불산 기슭에 조성된 국내 최대 편백나무 숲 속에 들어서면 상쾌한 나무 향기가 물씬 풍긴다. 편백나무 톱밥이 깔린 산책로를 맨발로 거닐거나 그늘 밑 정자에 몸을 누이면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걱정 근심이 싹 날아간다.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우산리 우드랜드길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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