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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6월호
[임요희의 소설 속 여행지] 소설 '순이 삼촌'의 무대…'아픔이 묻힌 땅' 제주 북촌리
[임요희의 소설 속 여행지] 소설 '순이 삼촌'의 무대…'아픔이 묻힌 땅' 제주 북촌리
  • 임요희 여행작가
  • 승인 2020.03.10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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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당시 북촌리 학살사태 다룬 소설 '순이 삼촌'
너븐숭이에 남은 잔혹한 그날의 기억
작은 생명을 거둔 무덤과 삼촌의 옴팡밭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봄날의 제주에는 유채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제주] 소설 <순이 삼촌>에 등장하는 제주도 ‘서촌’은 사실 북촌이다. 북촌은 단순히 북쪽 마을을 지칭하는 이름이지만, 그조차 제대로 쓰지 못할 만큼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쉬쉬하며 입을 다물 때, 작가 현기영은 1978년 9월 계간 문예지 <창작과 비평>을 통해 4.3사건 당시 북촌리 학살사태를 다룬 <순이 삼촌>을 활자로 펴낸다.

‘그 누구도 순이 삼촌만큼 후유증이 깊은 사람은 없었으리라. 삼촌네 옴팡진 돌짝밭에는 끝까지 찾아가지 않은 시체가 둘 있었는데 큰아버지의 손을 빌려 치운 다음에야 고구마를 갈았다. 그해 고구마는 풍작이었다. 송장 거름을 먹은 고구마는 목침 덩어리만큼 큼직했다.’ - 소설 <순이 삼촌> 中 

<순이 삼촌>의 화자는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제사 차 오랜만에 고향인 제주도 서촌을 찾은 그는 한 가족처럼 지내던 ‘순이 삼촌(제주도에서 이웃집 아주머니를 일컫는 호칭)’이 얼마 전 스스로 세상을 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작가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 사진제공 / 창비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북촌학살사건이 일어나던 1949년 1월 17일은 어느 때보다 추웠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그녀는 왜 자살했나. 이야기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음력 섣달 여드렛날, 군경들이 들이닥쳐 인근 국민학교 운동장으로 사람을 불러 모은다. 그들은 무장대를 멸절시킨다는 미명 아래 총을 난사해 마을 주민 다수를 학살한다. 순이 삼촌은 요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뱃속의 아이를 제외한 가족을 전부 잃은 채 정신을 놓고 만다. 

너븐숭이에 남은 잔혹한 그날의 기억
제주공항을 출발한 지 30분 남짓 지나 함덕서우봉해변을 지나쳐 북촌리 정거장에 닿는다. 북촌리는 서우봉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 안은 아름다운 포구마을이지만, 4․3사건에 휩쓸리는 과정에서 1500여 명의 마을 인구 중 350명이나 학살되는 큰 피해를 보았다. 그렇기에 음력 섣달 여드레가 되면 북촌리에서는 집마다 제사를 지낸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전시관 안쪽에 희생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전시물이 걸려 있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너븐숭이 4.3기념관 외부 전경.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1948년 6월 16일 우도 지서에서 근무하던 경찰관과 그 가족이 풍랑을 만나 북촌포구로 배를 대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태를 일컫는다. 1948년 4월 3일 봉기를 기점으로 본격화되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7년 7개월간 사태가 이어지면서 30만 도민 가운데 3만 명이 학살되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제주도내에서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없지만 <순이 삼촌>의 배경인 북촌의 피해가 유독 컸다. 북촌리 너븐숭이에 4.3기념관이 서게 된 이유이다.

너븐숭이란 ‘넓은 바위’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로 북촌 주민들이 밭일하러 오가면서 쉬어가던 곳이었다. 너븐숭이 4.3기념관 내부에 들어서면 북촌리 학살사건을 포함해 제주 4.3사건의 발발과 진행, 결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을 볼 수 있다.

전시관 안쪽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이 365일 타오르고 있다. 희생자의 이름과 성별, 나이, 숨진 장소와 상황을 기록한 전시물이 걸려 있어 그날을 상기시켜준다. 연달아 반복되는 ‘북촌교 인근 밭에서 토벌대에게 총살당함’이라는 문구는 그날의 정황을 한 줄로 정리해준다. 화가 강요배의 작품 <젖먹이>에는 어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젖을 빠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INFO 너븐숭이 4.3기념관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4시
주소 제주 제주시 조천읍 북촌3길 3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세월이 흘러 아픈 기억은 북촌초등학교 교정 한쪽 바위 위에 오목새김으로 남았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총부리 앞에서 스러져간 북촌 주민들
너븐숭이 4.3기념관과 인접한 곳에는 북촌초등학교가 자리한다. 1949년 1월 17일, 함덕에 주둔하던 2연대 3대대 군인들이 마을사람들을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집결시켰다. 작가는 당시의 일을, 살아남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증언한다. 

“그날 헛간에 앉아 멕(멱서리)을 잣고 있는디 군인들이 완(와서) 연설 들으레 오랜 하지 안해여.”
“겔세, 마을 호수가 삼백호가 넘어시니까 한 천명쯤 안 돼시까? 병든 할망들까장 부축해연 나와시니까.” 

그렇게 붙들려 나온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순이 삼촌> 문학비 옆 모로 누운 석상이 순이 삼촌이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교문 밖에 맞바로 잇닿은 일주도로에 내몰린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군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우는 할머니들, 총부리에 등을 찔려 앞으로 곤두박질치는 아낙네들. 사람들은 휘둘러대는 개머리판이 무서워 엉금엉금 기어갔다. 가면 죽는 줄 번연히 알면서 어떻게 제 발로 서서 걸어가겠는가. 뒤처지는 사람들에게는 뒤꿈치에 대고 총을 쏘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돼지 떼처럼 교문 밖으로 몰려나간 뒤에는 일제사격 소리가 콩 볶듯 이어졌다. 마을은 불탔고 군경 가족을 제외한 주민 대부분이 북촌초등학교 바로 앞 밭두렁에서 희생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 너븐숭이 4.3기념관이 들어선 것이다. 

INFO 북촌초등학교
주소
제주 제주시 조천읍 일주동로 1481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4.3기념관 앞뜰에 자리한 20여 기의 애기무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애기무덤에 누군가 놓아둔 인형.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작은 생명을 거둔 무덤과 삼촌의 옴팡밭
기념관 앞뜰에는 20여 기의 애기무덤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대대적인 학살이 있었던 직후 이곳에는 시체들이 ‘무를 뽑아놓은 듯’ 즐비했는데 임시 매장했던 어른들은 따로 묘를 옮겼지만 어린아이들은 그대로 그곳에 묻혔다. 무덤들 위에 누가 놓고 간 것인지 모를 장난감과 인형들이 봄볕을 쬐고 있다.

세월이 흘러 북촌국민학교는 북촌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꿔 달았고, 아픈 기억은 교정 한쪽 바위 위에 오목새김으로 남았다. 교정은 평화롭고 고요했지만, 군경의 총칼을 피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던 주민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음성이 환청처럼 귓전을 맴돈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조천공동묘지. 매년 4월 3일이면 마을 주관으로 합동 위령제가 열린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소설 속 순이 삼촌이 쓰러져 있던 곳은 애기무덤 동쪽의 ‘옴팡밭’이다. 지금 그 옴팡밭에는 <순이 삼촌> 문학비가 서 있다. 비석 옆에는 모로 누운 여인의 석상이 조성되어 있는데,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순이 삼촌임을 알 수 있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비석들은 당시 널브러져 있던 시체를 형상화한 것이다. 

북촌초등학교에서 동쪽으로 50m 지점, 북촌교차로 모퉁이에는 ‘당팟’이 있다. 소설 속에서 가장 먼저 총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땅을 파면 아픔의 흔적인 탄피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북촌포구 앞바다에 떠 있는 다려도는 4.3 당시 북촌주민들이 토벌대의 총질을 피해 배를 타고 숨어들었던 곳이다. 해산물이 풍부해 어려운 시절을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북촌초등학교 옆 당팟. 얼마 전까지만 해도 땅을 파면 탄피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북촌포구 앞바다에 떠 있는 다려도.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등명대 비석에 새겨진 총탄 자국이 당시의 참상을 말해준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소설 <순이 삼촌>에서는 ‘달려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토벌대는 주민에게 총질을 가하면서 한편으로 마을 전체에 불을 놓아 주민들의 터전을 빼앗아 버리는데 작가는 당시의 참상을 ‘멀리 달려도섬까지 불빛이 벌겋게 번져나가 마치 들불이 타오르는 형국’으로 묘사하고 있다.

등명대는 그 시절 등대 역할을 하던 돌 구조물로 주민들 사이에 도대불로 불렸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솔가지로 불을 지폈는데 이후 석유등으로 교체되었다. 먼바다에 나갔던 고기잡이배들은 등명대 불을 보고 뱃길을 잡았다. 등명대 꼭대기에는 학살사건 당시 쏘았던 총탄 자국이 깊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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