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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차 타고 세계여행] 아일랜드 철도 현대화의 상징, 아일랜드 디젤 열차 알고 보니 “Made in Korea!”
[기차 타고 세계여행] 아일랜드 철도 현대화의 상징, 아일랜드 디젤 열차 알고 보니 “Made in Korea!”
  • 최지웅 기자
  • 승인 2009.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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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블린역의 승강장. 오른쪽이 우리나라 기업인 현대로템에서 만든 디젤 열차이다.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여행스케치=아일랜드] 머나먼 타지에서 우리나라의 과거와 미래를 보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벨파스트 시청의 비석에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고, 아일랜드를 가르는 열차는 우리나라 기업 ‘현대로템’의 것이었다. 

전쟁의 상처와 조우하다 
영국의 브리튼섬을 둘러보고 스코틀랜드의 스트랜레어(Stranraer)에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Belfast)로 가는 배를 탔다. 배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위를 유유히 흘러가 2시간 만에 벨파스트 항구에 닿았다. 

항구의 주말은 한적했다. 컨테이너를 옮기는 기계는 모두 멈췄고, 인적도 드물다. 여기에서 벨파스트 시내까지 운행되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좋아 걷기로 했다. 그렇게 5분쯤 갔을까. 뒤에서 ‘빵’하고 자동차 경적이 울린다. 시내에 가느냐고 묻더니  태워주겠다고 한다. 낯선 이에게 베푼 친절이 고마워 냉큼 올라탔다. 

일요일 오후의 시내는 한적하고 고요했다. 그렇게 얼마간 여유로움을 즐기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5시다. 대부분의 가게가 하루를 마감하고 있는데 다행히 패스트푸드점 한 곳이 영업 중이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벨파스트 시청.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화려하다.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로열 얼스터 군단을 추모하는 비석.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패티가 두툼한 햄버거를 골랐다. 그런데 주머니를 뒤져보니 잉글랜드 지폐는 없고 스코틀랜드의 것만 있다. 점원에게 스코틀랜드 지폐를 내밀었더니, 잉글랜드 지폐와 북아일랜드 지폐로 잔돈을 준다. 한 번의 거래에 영국인들이 사용하는 세 나라의 지폐가 모두 오간 셈이다.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벨파스트의 중요한 관광지 중 하나인 시청으로 향했다. 시청 안의 정원에는 관광객과 현지인이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정원 한쪽에 하얀 비석이 세워져 있어 호기심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비석에 새겨진 ‘KOREA’라는 글자를 보고서 흠칫 놀랐다. 비석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로열 얼스터 군단(Royal Ulster Rifles)의 추모비였다. 

한 아주머니가 “한눈에 한국인인 걸 알았다”며 “참전한 장병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신다. 머나먼 타지에서 한국전쟁의 아픔과 조우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추모비는 벨파스트 시청 앞에 있지만,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는 우리나라 부산의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있다. (훗날 부산의 재한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영국군의 추모비를 보고, 벨파스트 시청을 떠올렸다.)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블러디 선데이 사건을 그려놓은 벽화.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예이츠의 섬, 이니스프리
다음날,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인 데리(Derry)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저녁8시가 넘었지만 아직 어둡지 않다. 평소와 다름없이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사진에 담고 있는데, 한 승객이 다가와 여행을 왔느냐고 묻는다. 

“철도에 관심이 많아서 대한민국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에 왔고, 이곳의 철도문화를 알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 승객은 놀라움을 표하며 북아일랜드 지폐 두 장을 기념으로 선물하고 싶단다. 나 또한 한국 지폐를 주고 싶었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러시아 돈으로 모두 바꾼 것이 후회가 됐다. 

이윽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데리에 도착했다. 데리는 과거 개신교와 천주교가 날카롭게 대립하던 곳이다. 인권을 요구하는 천주교 신자들의 시위를 영국군이 총으로 진압했던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 사건이 유명하다. 시내에는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고, 영국군에게 희생당한 무고한 시민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있다. 

데리에서 버스를 타고 아일랜드공화국의 슬라이고(Sligo)로 향했다. 먼저 슬라이고 근교에 있는 길 호수(Lough Gill)를 찾았다. 적당한 대중교통이 없어 도로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도로 옆으로 돌담과 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마을로 들어섰다. 그러고도 한참을 걸어 길 호수에 도착했다. 그리고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유람선에 올랐다.

호수 주변으로 키가 작은 나무가 촘촘히 박힌 언덕이 있고, 곳곳에 작은 섬이 자리한다. 이 섬 중에서 이니스프리(Innis free) 섬이 예이츠의 시에 소개되어 유명하다. 유람선의 가이드가 호수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더니, 감정을 이입해 예이츠(Yeats)의 시를 읊었다.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숲이 우거진 낮은 언덕이 길 호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 W.B.Yeats <Lake Isle of Innisfree> 

나 일어나 이제 이니스프리로 가리
욋가지를 엮고 흙을 바른 
작은 오두막을 지어 
아홉 완두콩과 벌통을 가지고 
벌떼가 윙윙거리는 숲 속 공터에 
홀로 살리라.
1시간 정도 호수를 둘러보고 배에서 내렸다. 
다시 기차를 타기 위해 슬라이고역으로 향했다.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호수를 둘러보는 유람선.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한국산 열차가 아일랜드 철도를 달린다
슬라이고역에서 드디어 유레일패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역에 대기하고 있는 열차는 언뜻 봐도 반짝반짝한 신차이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역과는 대조된다. 

역 곳곳에 열차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만 봐도 이 열차가 아일랜드 철도 현대화의 상징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것인지 궁금해 차내를 살폈다. 놀랍게도 한국의 ‘현대로템’에서 생산한 차량이다. 승강장에서 보았던 연두색의 안전 복장을 한 차량기술자들도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이들이다.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한국산 열차가 아일랜드 철도 현대화의 상징이다. 2009년 3월. 사진 / 최지웅 기자

타지에서 제몫을 해내고 있는 우리나라 열차가 반갑고 자랑스럽다. 최신 시설을 갖춘 열차에 대한 관심은 나뿐만이 아닌지 종종 승객들이 승무원에게 어디에서 만든 차량인지 묻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Made in Korea! ”

열차는 시원하게 아일랜드 섬을 달린다. 철길 주변으로 밀밭과 목장이 이어진다. 예정된 시각보다 일찍 종착역인 더블린(Dublin)에 도착했다. 아일랜드공화국의 수도인 더블린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각국에서 이민 온 외국인들이 많은 도시이다. 우리나라처럼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에 기를 펴지 못했던 이곳이 어떻게 경제 성장을 이뤘는지 궁금했다. 분명 파란만장한 역사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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