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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외여행] 네팔트레킹, 포카라 가는 길에 생긴 황당한 사건
[해외여행] 네팔트레킹, 포카라 가는 길에 생긴 황당한 사건
  • 이분란 객원기자
  • 승인 2004.09.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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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네팔의 마을 풍경. 2004년.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네팔의 마을 풍경. 2004년.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네팔] 론니 플레닛의 CEO가 가장 극찬한 나라 네팔에는 영원한 빙설의 땅이자 신들의 거처 히말라야가 있다. 자연과 인간의 원시적 모습 그대로 다가갈 수 있는 대자연의 품 네팔로 떠나 보련다.

빙둘러 보이는 것이라곤 산·산·산
히말라야는 역시 히말라야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네팔은 신비의 세계다. 계단식으로 포개진 논밭은 마치 좁은 땅을 나눠 먹기라도 한 듯 예사롭지 않은 풍경을 자아낸다. 황토색 비포장 길을 따라 군데군데 형성된 마을과 우거진 산꼭대기까지 들어선 농가들에서 좁은 국토를 개간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리 보아도 강이어야 하는 자리인데 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마른 개천. 바싹 마른 황색 바닥만 여기저기 에스자 곡선을 그리며 들판에 얹혀 있다. 굵고 얕은 흙바닥의 곡선 사이사이에도 옹기종기 집들이 보이는 걸 보니 물도 귀하고 식량도 귀하고 모든 것이 풍족하지 못한 네팔의 현실이 보인다. 구름에 덮힌 산꼭대기까지 저렇게 집들이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것인가!

포카라 가던 중간 휴게소 앞쪽에 위치한 호텔. 입구에 매여진 흑염소와 뒤에 보이는 호텔 간판에 웃음이! 간판은 호텔이나 거의 산골 민가 수준이다. 2004년 9월. 사진 / 이분라 객원기자
포카라 가던 중간 휴게소 앞쪽에 위치한 호텔. 입구에 매여진 흑염소와 뒤에 보이는 호텔 간판에 웃음이! 간판은 호텔이나 거의 산골 민가 수준이다. 2004년 9월. 사진 / 이분라 객원기자

네팔의 도시들은 히말라야라는 대, 소 산맥을 따라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역시 해발 1천3백m 높이 이상에 위치한 분지이며 트레킹으로 유명한 포카라 역시 해발 8백84m에 위치한 분지 도시이다. 히말라야의 설산을 하루라도 먼저 보고 싶은 마음에 포카라로 가는 첫 버스를 탔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는 버스로 7시간.

왕궁 앞에서 출발하는 디럭스 버스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배낭객들과 현지인들을 태우고 아침 7시가 넘어서 출발하였다. 산맥의 능선을 따라 에스자 곡선을 그리듯 도로는 아슬아슬하게 닦여져 있다. 중앙선도 없는데 위험천만의 속력을 내는 터프한 운전사의 솜씨 또한 스릴만점이다.

10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던 교통사고의 실체
​​​​​​포카라 1백24km라는 간판이 보이고 나서 채 10여 분을 더 갔나보다. 갑자기 버스가 멈추어 선다. 무슨 일일까 싶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차량이 많아서 막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그냥 잠시 2차선 도로에 차가 엇갈렸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차가 30분, 1시간 이상을 꼼짝도 않고 서있자 하나둘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궁금함에 물었더니 누군가가 어설픈 영어로 앞쪽에서 사고가 나서 차가 밀리고 있다고 말해준다. 씩 웃는 걸 보니 크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듯하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쪽 포카라까지 가는 길이라곤 오직 이 도로 하나 뿐! 그 길도 1천m높이의 산 중턱을 따라서 나 있으니 다른 도로로 우회해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아예 차를 버리고 걸어서 하산을 하는 수밖에 없다. 갓길이라고 해봐야 겨우 소 한 마리 끌고 걸어갈 정도니 그냥 길이 풀릴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인력거꾼들이 모여 네팔식 카드놀이를 하며 뜨거운 오후를 한가롭게 보내고 있다.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인력거꾼들이 모여 네팔식 카드놀이를 하며 뜨거운 오후를 한가롭게 보내고 있다.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점심때가 훌쩍 지나 밤이 시작됐다. 긴 차량 행렬 사이로 먹거리를 팔러 다니는 꼬마들이 보인다. 그때부터 조금씩 버스가 움직이는 듯하다. 마치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온 듯 버스가 속도를 내며 간다. 사고 현장을 지나치는지 사람들이 창으로 일제히 시선을 모은다. 트럭이 중앙선에 어중간하게 서 있고 도로에 질퍽하니 흙더미가 쏟아져 있었다. 언뜻 보기엔 큰 사고 같지 않았는데 평소에 10분이면 달려올 도로를 오늘의 사고로 10시간 만에 왔다고 하니…

몇 개의 영어 단어를 나열하며 상황을 알려주는 네팔 총각의 수줍은 웃음에 너무나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다. 전 세계에서 만년설과 트레킹에 열광하는 많은 트레커들이 히말라야의 명성을 찾아 네팔로 몰려오는데 이렇게 도로 사고 하나 제대로 수습 못해서야 어찌 할 것인가. 이게 바로 흔히 말하는 오지의 현실인 것일까 저절로 각인이 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카트만두의 두르바광장에 모여든 비둘기 떼와 모이를 주는 소녀.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카트만두의 두르바광장에 모여든 비둘기 떼와 모이를 주는 소녀.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네팔 사람들은 신께 물과 곡식, 음식들을 뿌리면서 기도를 하므로 사원입구나 탑 주변이 항상 지저분하다.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네팔 사람들은 신께 물과 곡식, 음식들을 뿌리면서 기도를 하므로 사원입구나 탑 주변이 항상 지저분하다.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역시나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다. 결국은 사고로 인해 예정도착시간보다 10시간이나 연착된 새벽 2시가 넘어서야 포카라에 도착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고에 열은 열대로, 몸은 몸대로 녹초가 되어 숙소에 쓰러지고 말았지만 오히려 잠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먼저 트레킹 예약 사무실에 가서 적합한 코스를 상담하였다. 너무 피곤해서 숙소 가까운 곳에 있는 여행사 총각한테 적당히 흥정하고 가격을 지불하였다.

초보자부터 전문가 코스까지, 그리고 단독 가이드에서 그룹 가이드까지 코스도, 요금도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트레킹을 위해 네팔까지 날아오긴 했지만 트레킹을 위한 충분한 장비를 준비하지는 않았다. 트레킹의 명소답게 일정에 따라 용도에 맞게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 모든 트레킹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노랗고 파란 파카와 빨간색 털 잠바 그리고 파란색 바지에 산초 방수복까지. 준비하는데 미화 15불이 넘지 않았다. 서울에서 겨울옷들을 가져오지 않은 건 확실히 잘한 일이다.

피리 한 번에 코브라 춤 한 번으로 5달러를 챙긴 소년의 처음 모습은 예뻤다.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피리 한 번에 코브라 춤 한 번으로 5달러를 챙긴 소년의 처음 모습은 예뻤다.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무서운 코브라 소년
포카라는 시골이라기보다는 이미 하나의 관광도시로 변모해 있었다. 전 세계 음식 간판이 여기저기 보이는 다양한 메뉴의 식당거리에서부터 요란한 네온사인을 번쩍이며 시야를 자극하는 화려한 술집까지, 여러 가지 네팔식 수공예 물건들을  팔고 있는 가게에서부터 지나가는 여행자를 잡고 먹을거리를 팔려는 거리 음식까지. 바쁘고 요란한 거리를 벗어나 인적 없는 호숫가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멀리 두 그루의 큰 나무 사이에 짙은 주홍색 터번을 한 소년이 피리를 불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도 잘 생긴 미소년이다. 그가 앞에 놓인 대나무 바구니를 열어 젖힌다.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랬다. 피리소리에 따라 춤을 추는 코브라. 가까이 볼 기회는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생긴 뜻밖의 기회에 카메라를 꺼내 소년과 코브라를 정신없이 찍어댔다.

코브라도 한 마리가 아니고 몇 마리를 능숙하게 다루는 소년의 모습에 환호를 연발하면서 박수를 쳐 주었다. 소년의 야릇한 미소를 카메라에 담고 만족스러운 쾌감에 가던 길을 계속 가려던 찰나, 소년이 부르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헤이, 머니” 하며 웃음을 보낸다. 뭐라고! 무슨 돈? 그렇다. 자기가 피리를 불고 코브라가 춤을 추었으니 돈을 내라는 것이다. 결국은 자기들의 연출에 대한 보상을 하라는 것인데 포카라에 도착하기 전 버스 안에서 받은 열보다 더 황당한 에너지가 머리에서 올라온다.

동네에서 제법 살고 있는 고급 주택가 ㅇ비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동네에서 제법 살고 있는 고급 주택가 ㅇ비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사원 앞 마당에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찬불가 정도로 생각된다.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사원 앞 마당에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찬불가 정도로 생각된다. 2004년 9월. 사진 / 이분란 객원기자

그래도 못들은 척 “WHAT?” 이라고 했더니 ‘달러 달러’ 라며 노골적으로 미국 돈을 요구한다. “WHY? NO MONEY.” 라며 그냥 갈려고 하자 조금 전까지 꽃미남 같던 소년의 얼굴이 강도로 돌변하며 필름을 뺏겠다며 내 카메라 주머니를 붙잡는다. 순진한 네팔 소년으로 그냥 넘어가기엔 지금 상황이 장난이 아니다. 아까의 은근한 미소는 어디가고 확연히 달라진 표정에서 나도 모르게 “HOW MUCH” 라고 물었다. 1천루피를 내라고 한다. (1루피=43원).

뭐 1천루피? 이건 완전히 사기다. 기겁을 하고 지갑에서 5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손에 던져 주고는 쏜살같이 뛰었다. 괜한 호기심에 기분만 언짢아진 셈이다. 투덜거리며 숙소로 들어왔지만 영 기분이 개운치가 않다. 호텔 매니저한테 방금 일어난 상황을 얘기하고 이럴 경우 얼마를 주는 게 맞는지 넌지시 물어 보았다. 10루피 짜리 한 장주면 된다고 웃는 게 아닌가!  

첫날부터 평화로운 포카라에서 한방 먹은 꼴이다. 하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으랴. 소년에겐 코브라가 재산이요 생업인데 모델비를 요구하는 것도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웃음이 나오면서도 마음 한편은 씁쓸하다. 그냥 오늘 예쁜 동생한테 용돈 한번 뜯긴 셈 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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