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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걷기 여행] 대통령이 걷고 쉬던 그 길을 따라 청남대 대통령길
[걷기 여행] 대통령이 걷고 쉬던 그 길을 따라 청남대 대통령길
  • 전설 기자
  • 승인 2013.08.20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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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청원]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를 딴 충무로, 을지문덕 장군의 을지로, 퇴계 이황 선생의 퇴계로 등. 사람의 이름을 가진 길은 길 이상의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 충북 청원군 청남대에도 대한민국 최고 통치권자였던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여섯 줄기 걷기길이 있다. 대한민국 역사가 담긴 유물이자 오색 들꽃과 청색 호반이 한데 어우러진 기념비 위를 걷는다.

충북 청원군 대청댐 부근에 자리한 청남대는 1983년 건립된 현직 대통령의 휴가지다. 남쪽의 청와대라 하여 청남대라 칭하였는데 그 끝에는 대통령 전용 별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20여 년 동안은 반경 6km까지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된 ‘비밀의 화원’이었으며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관리권을 충청북도로 이양하면서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나랏일에 지친 대통령이 한숨 돌리려 찾아든 곳이라니 그 경치의 아름다움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더하거나 뺄 필요 없는 풍광도 그만이지만, 여기에 전국 각지의 보석 같은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 대한민국 관광 명소를 축소한 듯한 다채로운 경관이 빼곡하다. 총 2만9000여 평 부지에 대통령이 생활하던 본관, 낚시터, 3홀 규모 골프장, 25m 수영장, 테니스장, 헬기장, 양어장 등 편의시설이 들어차 있어 호화로운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아무렴요. 대통령이면 한 나라의 왕이나 마찬가지인데 풍경이며 시설이며 최고가 아니면 쓰나요. 가는 길도 아주 빙글빙글 돕니다. 대통령이 쉬었다 가는 곳인데 누구나 함부로 들어가는 큰 길에 지으면 안 되죠. 첩첩산중에 숨겨 두고 헬기 타고 왔다 갔다 했지요.”

한 달에 두어 번. 손님을 청남대 입구에 내려준다는 택시 기사 김강희 씨가 연신 돈다, 돌아를 외친다. 그 말처럼 대청호반을 둘러싼 천혜의 요새에 들어서는 길은 빙글빙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신탄진역에서 23km, 청주역에서 35km. 자동차라면 수월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문의면까지 들어가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청남대행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문의행 버스는 3시간에 1대꼴로 다녀서 한번 버스를 놓치면 택시밖에 방도가 없다. 출발에 앞서 신탄진역, 청주역에서 출발하는 문의행 버스와, 문의에서 출발하는 청남대행 셔틀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는 게 좋다. 자칫 길 위에서 시간을 다 써버릴 수도 있다. 접근성이 이렇게 나빠 쓰겠냐고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더니, 그럼에도 관광객이 꾸준히 찾아온다는 답이 돌아온다. 무슨 꿀단지를 숨겨놓았기에 발길이 끊이지 않을까.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역대 대통령의 역사를 한눈에.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청남대의 여섯 꿀단지
청남대가 오늘날 문화 관광지로 자리 잡은 데에는 여섯 갈래 대통령길이 한몫을 했다.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전두환(1.5km)·노태우(2km)·김영삼(1km)·김대중(2.5km)·노무현(1km)·이명박(3.1km) 대통령길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이자 청남대에 숨겨진 꿀단지다. 사람 성격이 저마다 다르듯, 다른 이름을 가진 대통령길도 서로 닮은 듯 다른 풍광을 내어놓는다. 김대중 대통령길은 645개 목재 계단이 산을 휘감아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장관이 일품이고, 노무현 대통령길은 소박한 들꽃 정취에 취해 오솔길을 걸어볼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길은 역대 대통령의 동상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사진을 남기기에 좋은 포토존이며 전두환·노태우 대통령길은 푸른 대청호의 풍경이 쌍둥이처럼 꼭 빼닮았다. 이명박 대통령길은 3.1km의 장거리로 물 위를 걷는 듯한 운치가 그만이다.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노무현 대통령길의 들꽃 정취.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양어장과 맞닿은 메타세쿼이아 숲.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총연장 11.1km 중 풍광이 겹치는 노태우 대통령길을 생략하고 9.1km 코스를 잡았다. 평지라면 3시간 정도면 거뜬히 걸을 수 있는 거리지만 오르막과 내리막 구간이 섞여 있어 넉넉잡고 4시간을 잡는다.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푸른 물빛을 바라보며 걷는 김영삼 대통령길.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숲을 가로질러 걷는 코스
대통령길 입구에서 대통령길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이관용·이장희 부녀와 마주쳤다. 부녀의 목에 두른 수건이 땀으로 축축하다. 30℃까지 오른 불볕더위에 ‘행복의 계단’을 오른 것이 큰 고비였노라 고백하는데, 개운한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김대중 대통령길에는 화장실도, 식수대도 없으니 잘 챙겨서 나서라는 부녀의 당부에 겁을 집어먹고 길을 나선다. 다행히 숲은 가는 길마다 무성한 잎사귀를 드리워 그늘을 만들어준다. 푸른 수목의 풍경에 여러 새소리가 겹쳐 들린다.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산책을 즐기던 배밭을 지나 행복의 계단으로 향하는데 텅 빈 참호가 군데군데 들어차 있다. 청남대가 대통령 전용 시설이던 시절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1년 365일 주야로 감시를 선 참호다. 주인 없는 참호는 곁에 잡초와 산새를 키우며 산길 한 귀퉁이의 고즈넉한 풍경이 돼 있다.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역대 대통령의 동상이 서 있는 대통령광장.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얼마나 걸었을까. 벌써 계단의 첫머리가 보인다. 대통령길의 최대 고비라는 ‘행복의 계단’이다. 목재 데크가 645계단을 넘어 전망대까지 이어져 있다. 기세 좋게 출발했다가 200계단도 채 닿지 못해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새 표고가 높아졌는지, 눈앞에 푸른 수목 멀리 푸른 대청호의 물빛이 닿는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얼마나 더 좋을까. 욕심이 고단함을 이긴다. 구슬땀을 흘리며 전망대에 오르니 청남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이 맑으면 청남대는 물론 멀리 신탄진과 대전까지 내려다보인다는데, 아쉽게도 물안개가 낀 흐린 날이다. 하지만 안개에 한 겹 싸인 풍광도 내륙의 다도해라 불릴 만큼 조화롭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잠시 내려둔다. 이대로 초가정까지 이어진 김대중 대통령길을 완주할 수도 있고 숲을 가로지르는 노무현 대통령길에 들어설 수도 있다. 고민 끝에 한길처럼 서로 닿아 있는 두 길을 모두 돌아보기 위해 온 길을 되짚는다.

행복의 계단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날 수 있는 노무현 대통령길은 등산로와 산책로를 반반씩 섞어놓은 오솔길이다. 잘 닦아놓은 흙길을 따라 소박하고 정겨운 들꽃 경치에 들어선다. 흰 들국화가 엄지손톱만 한 자잘한 봉오리를 한가득 피워놓았다. 풍성한 들꽃 꽃다발 사이로 짙은 보라색의 엉겅퀴꽃이 탐스럽다. 그 위로 검게 익기 시작한 벚나무의 빨갛고 노란 열매가 지천이다. 오솔길 위로 폭죽을 터뜨려 놓은 듯 색색의 열매가 그저 아름답다.

인적이 드물기 때문일까. 작은 새며 다람쥐가 불쑥불쑥 등장했다가 후다닥 사라진다. 쥐고 있는 풍경이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풍광의 숲길이 한없이 평화롭다. 계단을 오르며 진을 뺀 이도 한걸음에 숲을 가로지를 수 있다.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호반 풍경이 빼어난 초가정. 2013년 9월 사진 / 전설 기자

호반과 마주 보며 걷는 코스
앞의 두 길이 숲을 가로지른 코스라면, 나머지 여정은 푸른 호반을 동반한다. 대청호가 보이기 시작하는 노무현 대통령길과 김영삼 대통령길이 맞닿는 지점. 길 오른편으로 아담한 초가가 보인다. 정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경관이 빼어나기로 소문난 초가정이다. 뙤약볕을 피해 모여든 나들이객은 수다도 잊고 경치에 취한다. 솟대 몇 점이 물가에 솟아 있고 새파란 물빛이 찰랑거린다. 풍경에 취했는지 몸이 나른해지면서 스르륵 낮잠이 몰려온다.

졸음을 쫓기 위해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다행히 김영삼 대통령길에는 역대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진 대통령광장부터 찬물에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 선박전시장, 행운의 샘, 초원의 골프장, 골프장 아래 그늘집 등 눈 둘 곳이 많다.

“대통령이 골프 치시다가 휴식을 취한 곳이 바로 이 그늘집입니다. 호반의 물길을 바라보는 경치가 좋아 대통령 오찬 장소로 이용됐지요.”

그늘집에서 목을 축이고 화단에 꽃을 심느라 분주한 본관을 지나 전두환 대통령길로 향한다. 걷기길 초입에 무궁화 모양의 정자 오각정이 있다. 이곳이 20여 년 동안 역대 대통령 내외가 가장 즐겨 찾았다는 청남대 제일 경관이다. 야생화를 눈 아래 두고 낮에는 호수, 밤에는 달 구경을 즐겼단다.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에서 그가 즐기던 경치를 보는 호사를 누린다. 나무 데크로 이어진 전두환 대통령길은 면적 2645㎡의 양어장 주변을 휘감고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나무 그늘 아래를 벗어나면 어느새 다시 본관이다. 역대 대통령의 발자취를 전시해놓은 게시판 앞을 지나는데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온다. “인물은 이 중 노태우 대통령이 가장 좋지?”란 물음에 “아아, 그이는 내 취향이 아니다.” 단호한 거절이 돌아온다. 깔깔깔, 중년 주부들의 웃음소리가 마치 여학생 같다. 일반 시민의 일상에선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대통령이지만 이곳 청남대에서만큼은 벗이 되고 이웃이 된다. 눈에 밟히는 곳 모두가 대통령의 손을 탄 곳이니 자연히 수다의 주인공도 대통령이 될 수밖에.

마지막 여정인 이명박 대통령길은 초입에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날개벽화 포토존이 마련돼 있고, 걸을 때면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마사토 데크 로드가 대청호 물줄기를 건너 숲 사이로 3.1km 이어진다. 물결 위에 길이 나 있어 스르륵 물 위를 걷는 신선이 된 기분이다. 숲을 가로질러 호반을 마주하고 물 위를 걸으며 마무리하는 대통령길의 풍광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대통령의 이름이 붙은 길과 길이 서로 맞닿아 이어진다. 그 길 위에서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이 한길을 걷는다.

INFO.
청남대 관람 안내

주소  충북 청원군 문의면 청남대길 646
매표소  문의파출소 앞, 청남대 매표소, 승용차는 홈페이지(chnam.cb21.net) 입장 예약 입장료  어른 5000원, 청소년·군경 4000원, 어린이·노인 3000원
입장 시간 9:00~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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