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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休 여행] 사색으로 짙어지는 가을 여행
[休 여행] 사색으로 짙어지는 가을 여행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6.08.29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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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도서관에서 시인의 언덕까지

[여행스케치=서울] 가을이면 떠오르는 몇몇 단어들이 있다. 문학, 단풍, 사색 같은 것들. 고루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쩌면 가을은 이러한 단어들이 몰고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풍이 가득한 숲속에서 책 한 권을 읽고 사색을 즐기러 가보자.

삼청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도서관, 숲속도서관. 사진 제공 / 종로문화재단

삼청동 골목의 끝자락에 있는 삼청공원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도서관 하나가 보인다. 마치 숲속 새들의 집 같은 아기자기한 모양의 숲속도서관이다. 2013년 개관한 이곳은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숲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어 가을 산책을 떠나기엔 그만이다.

숲 속 추억 책갈피
삼청공원 숲속도서관

간이매점을 헐고 그 자리에 지은 이 도서관은 그래서 가을 산책을 오는 이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만나는 선물 같은 공간이기도 하고, 종로의 작은 도서관 중 하나로 지역 사회의 커뮤니티 역할이 되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창밖 숲속 풍경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창문이자 동시에 책을 읽는 공간이 되어주는 곳. ‘숲속도서관’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특히나 이 공간은 온돌로 되어 있어 가을겨울이면 인기자리. 이곳 외에도 삼청공원 쪽으로 난 커다란 창가를 곁에 두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아이 손을 잡고 찾은 가족이 “예전 데이트 할 때 자주 왔던 곳에 이런 게 생긴 줄 몰랐다”고 말하자 정정아 삼청숲속도서관 관장은 “이곳은 추억의 도서관”이라며, “삼청공원을 다시 오시는 분들이 전에는 이러한 공간이 없어 그저 스쳐갔지만, 지금은 숲속도서관에 들어와 차 한 잔과 함께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러 오는 분들이 많다”고 전한다.

도서관 앞 삼청 공원에서 빨갛게 익은 단풍 하나를 주워 책 사이에 몰래 끼워본다. 잘 마른 낙엽이 기억 속 하나의 책갈피가 되어 새로운 추억이 되기까지, 숲속도서관 역시 우리의 추억 속 책갈피 하나로 자리 잡는다.

백악 구간은 북악산을 지나 더욱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사진 제공 / 한양도성도감과

성곽길 따라 사색의 길
한양도성 성곽길, 백악 구간

삼청공원 숲속도서관을 나와 숲을 걷다보면 산책로 하나가 보인다. 서울 조망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말바위 전망대’를 지나는 길이다. 한양도성 성곽길 중 2007년에야 개방된 이 길은 숙정문에서 창의문을 지나는 길로 서울 경치를 조망하기엔 더없이 좋다.

북악산에서 창의문 방향으로 내려오는 등산객. 사진 / 김샛별 기자

울긋불긋한 절경과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성곽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절로 사색의 길로 떠나게 된다.

한양도성은 세종 때 축성한 부분에 숙종·순조 때 축성한 부분들이 섞여 있다. 전체를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부분적으로 보수를 하여 각 시대별로 쌓은 구간이 섞여 있다.

그러니 길게 이어지는 성곽, 그 시간의 켜를 곱씹으며 생각 역시 깊어지기 마련이다.

TIP
백악 구간은 경치가 좋은 만큼 난이도가 있다. 창의문에서 숙정문 방향으로 걸을시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숙정문에서 창의문 방향으로 걸을 것을 추천한다.

한양도성 성곽길 중에서도 백악구간은 군사작전지역이라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며, 사진 촬영 금지 구간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창의문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는 윤동주 문학관. 사진 / 김샛별 기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시인의 언덕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우리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흔적이 부암동에 있다. 윤동주를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우리의 아픈 시절, 더없이 아파했고 그 고뇌의 흔적을 시로 남긴 이였다.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그가 살아온 삶과 그간 쓴 친필원고 영인본들을 볼 수 있으며, 시인의 일생과 시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다.

이명숙 윤동주 문학관 해설사는 “연희전문대에 다닐 때 기숙사 생활을 하던 윤동주는 4학년, 종로구 누성동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하였다”며, “그는 아침마다 인왕산에 오르고 시인의 언덕을 산책하며 시정을 다듬었다”고 전한다. 우리가 잘 아는 <서시>, <별 헤는 밤> 등이 이 시절에 쓰인 시다.

윤동주 문학관 왼쪽에 있는 계단에 오르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오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윤동주 문학관을 둘러본 뒤 뒤편 계단으로 오르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서시>가 적힌 시비(詩碑)를 볼 수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어쩐지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 시절 그의 깊은 사색과 상심이 더해져서가 아닐까.

시계방향으로 카페 '느닷' 외관과 '느닷'의 인기메뉴인 인도식 요거트 바나나라씨와 애플 스파클링, 데미타스 입구와 클럽 에스프레소. 사진 / 김샛별 기자

잃을수록 발견하는 즐거움
부암동 산책

윤동주 언덕을 넘어 내려오면 작지만 개성 있는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부암동은 느긋하게 사색을 즐기기 좋은 동네. 자하문(창의문의 또 다른 이름)이 있는 곳에서 서울미술관이 있는 곳까지 큰 길을 따라 걷는 것보다 중간중간 사잇길로 들어가 마음껏 길을 잃어보길 권한다.

자하문 바로 앞에 위치해 오랜 시간 사랑을 받은 ‘클럽 에스프레소’와 맞은편 정성 가득한 가정식을 표방하는 ‘데미타스’, 느닷없이 나타나 마음을 홀리는 카페 ‘느닷’까지.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는 작은 가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길을 잃어야만 만날 수 있다.

‘느닷’이라는 이름에 끌려 들어간 가게는 작지만 반가운 카페. 직접 사과청을 담고 수제 요거트를 만들어 내주는 곳에서 잠시 나른함을 느낀다. 

드라이플라워로 장식된 카페 '느닷'의 모습. 사진 / 김샛별 기자

‘느닷’ 곳곳에 장식된 드라이플라워들을 보며,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처럼 가을 역시 너무나 짧다고, 그러니 가을 한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그리움에 잠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총천연색으로 곱게 물든 가을의 냄새가 짙어질 때, 어느새 말없이 떠나버릴 가을을 또 다시 그리워하기 전에, 걷기 좋은 가을바람에 몸을 싣고 매일을 온전히 즐기는 것 역시 가을을 지나는 우리의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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