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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철새 탐조 여행②] 고성 철새 여행, 3000km를 날아온 몽골 독수리
[철새 탐조 여행②] 고성 철새 여행, 3000km를 날아온 몽골 독수리
  • 민다엽 기자
  • 승인 2022.01.13 0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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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독수리 월동지 '고성', 매년 600마리 독수리 날아와
24년 동안 독수리 보살핀 '독수리 할아버지' 김덕성 선생님
고성독수리생태체험관에서 먹기주기 등 체험 프로그램 진행
고성에 날아온 독수리 무리가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여행스케치=고성] 한적한 시골 마을의 하늘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추수가 끝난 황량한 논두렁 위로 검은 물체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드넓은 하늘을 가득 메웠다. 다름 아닌 독수리다. 족히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독수리가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몽골에서부터 3000km를 날아 이곳 경남 고성까지 왔을까?

싸늘한 아침 공기가 채 가시지 않은 오전 10시 즈음, 마치 약속 이라도 한 것처럼 독수리 떼가 땅 아래로 몰려든다. 가까이에서 보니 엄청난 크기의 날개와 뾰족한 부리, 발톱이 한눈에 들어온다. 녀석들의 날카로운 눈빛에선 강인함이 느껴진다.

 

조용하던 하늘에 독수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진/ 민다엽 기자

고성에 독수리가 날아든 사연

경남 고성은 세계 최대의 독수리 월동지다. 매년 11월이면 수많은 독수리 떼가 몽골에서부터 3000km를 날아 이곳 고성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3월 다시 몽골로 돌아간다. 처음 고성을 찾은 독수리의 수는 100마리 남짓이었지만, 일명 독수리 할아버지로 불리는 김덕성 선생님과 환경단체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현재는 그 수가 500~600여 마리로 크게 늘었다.

하늘을 가득 매운 독수리 무리. 사진/ 민다엽 기자
가족 여행객이 조금씩 모여드는 독수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매년 수많은 몽골 독수리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김덕성 선생님과의 인연 덕분이다. 김덕성 선생님은 1999년부터 겨울마다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며 살뜰하게 보살폈다. 과거에는 읍내 정육점을 돌아다니 면서 직접 소나 돼지의 내장, 비계 등을 수집했다고 한다. 다치거나 탈진한 독수리를 구조해 치료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그의 몫이다. 치료를 마친 독수리에게는 GPS나 윙태그(Wing Tag)를 부착해 이동 경로와 특성 등을 연구하는데 이용된다.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독수리를 보살피는 것이 아닙니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는 상호 의존적이기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멸종 위기 생물을 보전하는 일은 어렵고 시간이 드는 행위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독수리 아빠", '독수리 할아버지'로 불리는 김덕성 선생님. 사진/ 조용식 기자

24년간 이어진 독수리와의 인연

김덕성 선생님

1998년 고성군 철성고등학교의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김덕성 선생님은 논두렁에서 농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독수리를 발견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한 지도 어언 24년째. ‘독수리 할아버 지를 자처한 그는 매년 이곳을 찾는 어린 독수리들의 구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한국조류보호협회 고성 지회장을 맡고 있다.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생태관광지도사협회의 박상호 회장. 사진/ 민다엽 기자

고성군 생태관광지도사협회의 박상호 회장은 독수리 보전에 대한 견해를 전했다. 202012월 발족한 생태관광지도사협회는 독수리 보전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독수리를 구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아가 각종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 등 지역 생태계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김덕성 선생님에게는 그야말로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셈이다.

 

매년 고성을 찾는 수백마리의 어린 독수리

독수리는 의외로 사냥을 전혀 하지 못한다. 하늘 위를 매섭게 가르는 맹금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작은 동물 한 마리 사냥 하지 못하고 죽은 동물의 사체만을 먹는다. ‘자연의 청소부라는 별칭이 붙은 까닭이다. 박상호 회장이 소나 돼지의 내장, 비계 따위가 들어 있는 마대 자루를 하나둘씩 풀어헤치니 녀석들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먹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커다란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독수리 무리, 그 속에서 묵묵히 먹이를 던져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치 반려동물을 대하듯 그의 모습에는 거침이 없다.

독수리들은 생긴 거와는 어울리지 않게 한참 동안 먹이를 앞에 두고 주춤거리기만 한다. 이미 먹이는 까마귀 떼가 차지한 지 오래다. 도저히 못 참겠는지 무리 중 한 녀석이 큰 날개로 위협하며 까마귀 떼를 쫓는다. 그제야 다른 독수리 뒤따르며 먹이를 차지한다. 사실 독수리는 엄청난 겁쟁이라고 해설사가 귀뜸 했다. 준비한 먹이는 까마귀 떼가 먹지 못하도록 깡깡 얼린 상태로 제공한다. 강인한 부리를 가진 독수리가 먼저 먹이를 먹고 남은 것을 까마귀가 처리하는 방식이다.

독수리와 까마귀가 친구인듯 경쟁자인듯 서로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독수리 성체의 날개는 최대 3m까지 자란다. 사진/ 민다엽 기자

우리나라에 월동하는 독수리는 태어난지 1~3년생의 어린 개체가 대부분이다. 몽골이나 상대적으로 가까운 지역에서 먹이 경쟁에 밀린 녀석들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것. 생존을 위해 수천 km을 날아 이곳 고성으로 오는 어린 독수리들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우리가 먹이 주는 것을 멈추게 된다면 매년 천 마리 정도의 독수리가 죽을 겁니다. 전 세계 2만 마리만 남았고 그중 우리나라에 2천 마리 정도가 월동합니다. DMZ를 제외하면, 대부분 개발로 인해 독수리가 머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지요. 밀리고 밀려 한반도 끝자 락까지 내려온 녀석들을 잘 먹이고 보살펴 다시 건강하게 돌려보내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약간의 사명감도 가지고 있고요,” 허수연 생태관광 해설사의 말에선 무게감이 느껴졌다.

매년 독수리의 먹이를 챙겨주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전문 강사가 독수리에 대해 설명 중이다. 사진/ 민다엽 기자
독수리 열쇠고리를 만들고 있는 어린이 참가자. 사진/ 민다엽 기자

놀랍게도 고성은 국내뿐만 아니라, 단일 지역으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독수리가 도래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는 20여 년 간 독수리 먹이를 주며 독수리 구호 활동을 펼쳐온 노력의 결과인 셈이다. 처음에는 삶의 터전에 독수리 떼가 날아들고 소와 돼지의 부산물을 논밭에 뿌리는 것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지만, 현재는 지역 주민들이 주도적이고 자발적으로 독수리 보호에 힘쓰고 있다.

INFO 고성독수리생태체험관

매주 화···일 주 8(오전, 오후 2시간씩) 독수리 탐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 가족 단위로 야생 독수리가 먹이를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전문 강사가 들려주는 독수리 생태 이야기와 고성에 독수리가 온 사연도 흥미롭다. 이 밖에도 독수리 기념품 만들기나 생태 놀이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사전 예약은 필수다.

예약 날아라 고성 독수리 홈페이지

주소 경남 고성군 고성읍 기월리 251-4

 

철새들의 보금자리, 마동호

단순히 먹이를 주는 행위를 넘어서, 이제는 사람과 독수리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에도 탄력이 붙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마암면 일대에 있는 마동호를 국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 하기 위한 행정 절차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독수리 뿐만 아니 라, 다양한 동·식물이 제대로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서 다. 박상호 회장은 독수리의 서식지를 마동호 인근으로 옮기려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 중입니다. 워낙 예민한 녀석들이라 쉽진 않겠지 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명 녀석들에게 더 좋은 환경이 되리라 봅니다라고 덧붙였다.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마동호 간사지는 다양한 식생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다양한 종류의 철새가 서식하고 있는 마동호 간사지. 사진/ 민다엽 기자 
하늘에서 바라 본 마동호의 전경. 드론/ 조용식 기자

마동호는 마암면과 동해면 사이 바다인 당항만 일부에 제방을 쌓아 만든 호수.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먹이가 풍부해 다양한 식생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마동호에는 백로와 황새, 저어새, 두루미 등 멸종위기야생동물 14종과 멸종 위기종 214종을 비롯해 총 739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간사지 일대는 습지로써 생태적 가치가 아주 높은 곳으로, 매년 한반도를 찾는 다양한 철새와 멸종 위기 야생동물의 소중한 보금자리다.

나무 위에서 휴식 중인 백로의 모습. 사진/ 민다엽 기자
마동호 간사지는 철새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다. 사진/ 민다엽 기자
오리류 등과 무리를 지어 월동하는 물닭의 모습. 사진/ 민다엽 기자

 

INFO 마동호 간사지

주소 경남 고성군 마암면 삼락리 간사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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