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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여행지에서 만난 우리 것] 다산의 후학들이 만든 전통차, 백운옥판차 이야기
[여행지에서 만난 우리 것] 다산의 후학들이 만든 전통차, 백운옥판차 이야기
  • 박상대 기자
  • 승인 2022.03.14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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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남쪽 강진 경포대 인근에 위치한 설록다원
떡차에선 은은한 향기가 난다. 사진/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강진] 다산 정약용의 제자들이 재배하고 제조한 전통 녹차, 그리고 한국 최초로 녹차 브랜드를 개발해서 녹차를 판매한 사람, 뒤이어 선대 어른들의 얼을 잇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한국 최초의 녹차 브랜드를 만든 이한영
월출산 남쪽 강진 경포대 인근에 설록다원이 있다. 규모만 따지자면 보성의 대한다원보다 넓다고 한다. 설록다원 주변은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다. 월출산 남쪽 기슭의 아름다운 풍광과 잘 어우러진 녹차밭은 여행객의 가슴이 뻥 뚫리게 한다.

설록다원 아래쪽에 백운옥판차 이야기라는 조그만 찻집이 하나 있다. 이 찻집은 여행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카페가 아니다. 매우 뛰어난 한 선각자 이한영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한영 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녹차 브랜드를 만들어서 판매하고, 외국에 수출까지 한 분이지요. 당시 만들었던 브랜드가 白雲玉版茶(백 운옥판차)입니다.”

백운옥판차 이야기 이현정 원장의 이야기다. 다산과 초의선사 이래 강진에는 차밭을 가꾼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은 강진과 해남 일대에서 수확한 차를 가져다가 일본 상표를 붙여서 일본과 미주로 수출하고 있었다. 이한영은 우리 땅에서 수확한 차에는 우리 상표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했고, 적절한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했다.

쌉쓰레한 맛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고소한 맛이 난다. 사진/ 박상대 기자
이현정 원장이 백운옥판차의 명맥을 잇고 있다. 사진/ 박상대 기자

그리고 백운옥판차란 이름을 지어냈다. 백운은 알겠으나 옥판은 무슨 뜻일까? 동석한 강영석 강진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월출산 남쪽 능선에 옥판봉이라는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으며, 다산이 이 봉우리에 다녀온 후, “옥판봉에 다녀왔는데 아름다운 경치는 기억에 없고, 아슬아슬한 절벽이라 죽다 살았다.”고 기행문에 썼다고 한다. 이한영이 상표를 개발했을 때가 40대 초반이었고,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했다. 이한영이 생산한 녹차는 ‘白雲玉版茶’라는 자체 상표를 달고 판매되었다.

이한영은 상표만 개발한 것이 아니라 녹차 전문가였다. 그가 시도한 차의 4가지 분류는 요즘 홍차의 분류기준과 거의 일치한다. 잎이 하나 나왔을 때 수확한 차는 맥차, 잎이 둘인 경우는 작설, 잎이 3개일 경우는 모차, 잎이 좀 크고 넓은 경우는 기차라고 분류했다. 차를 분류할 때 수확하는 시기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잎의 개수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이현정 원장은 녹차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선대 어른들의 대를 잇고 있다. 사진/ 박상대 기자
고 이한영이 개발한 상표를 지금도 사용한다. 사진/ 박상대 기자

스승과의 약속을 지킨 선비 이시헌과 후손들
다산 정약용은 18년만에 유배생활에서 해배된 후 양주에 살고 있었 다. 1830년, 다산은 강진에 살고 있는 막내 제자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난번에 보내준 차와 편지는 도착하였네. 이제야 감사를 드리네. 올들어 병으로 체증이 심해져서 잔약한 몸뚱이를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떡차(茶餠)에 힘입어서일세. 이제 곡우 때가 되었으니 다시금 이어서 보내주기 바라네. 다만 지난번에 부친 떡차는 가루가 거칠어서썩 좋지가 않더군. 고루 반죽해서 진흙처럼 짓이겨서 작은 떡으로 만든 뒤라야 잘 쳐서 먹을 수가 있다네. 알겠는가?(중략)” 제자 이시헌은 스승에게 해마다 차를 만들어서 보내드리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은 다산이 사망한 후에도 이어졌고, 훗날 그 후손 들에 의해 100년 동안 계속 되었다고 한다.

이시헌은 다산에게서 녹차 만드는 법을 배웠고, 이시헌은 다시 이흠 (이산흠)에게 전수했다. 이흠은 다시 이한영에게 녹차 제조 기술을 전수했고, 오늘 그의 고손녀 되는 이현정 원장이 백운옥판차의 명맥을 잇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해남에서 이주한 원주 이씨 친족들이다. 이현정 원장은 학교 교사였는데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강진 녹차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진에 다산 선생으로부터 전해지는 녹차가 있으며, 그 줄기가 조부님들이란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교사생활도 좋지만 녹차와 조상님들의 흡인력이 더 강렬했다. 녹차를 더 체계적으로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카페 내부. 사진/ 박상대 기자
차를 마시는 실내의 인테리어 소품이 흥미롭다. 사진/ 박상대 기자

우여곡절 끝에 되살려낸 조부님의 상표
지금 카페가 자리한 곳은 이한영의 생가가 있던 자리다. 생가 자리에는 기념관이 있고, 카페는 그 옆에 있는 셈이다. 그 중간에 지금 한옥두 채를 짓고 있다. 녹차 만들기 체험장과 귀한 손님들을 위한 숙박시 설을 만드는 중이다. 이현정 원장은 강진에 자체 다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서 질 좋은 녹차를 재배하고 생산해서 판매하고 있다.

현재 백운옥판차는 4종류가 있다. 월산 홍차, 월산 떡차, 월산 백차, 월산 청차가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발효차다. 녹차를 마셔본 사람들은 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월산차, 백운옥판차가 어떤 향을 내는지. 알 듯 말 듯 향긋하고 은은하다. 일반 녹차에서 나는 쌉쓰레한 맛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고소한 맛이 난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봄향기같다. 백운옥판차 이야기는 유배지에서 다산 정약용이 뿌려놓은 녹차 재배 기술과 제조법, 그리고 녹차 마시는 법이 여전히 전해지고 있는 현장이다.

백운옥판차. 사진/ 박상대 기자

INFO 백운옥판차 이야기
주소 강진군 성전면 백운로 107
문의 061-434-4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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