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봉화에서 태백까지, 백두대간을 달리는 협곡열차 V-train
봉화에서 태백까지, 백두대간을 달리는 협곡열차 V-train
  • 민다엽 기자
  • 승인 2022.09.15 09:1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출발하는 분천역과 분천산타마을의 이국적인 전경. 사진/ 민다엽 기자 

[여행스케치=봉화] 스위스에 알프스 열차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백두대간을 누비는 협곡 열차가 있다. 봉화 분천역에서 태백 철암역까지,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숙하고도 아름다운 구간을 달린다.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백두대간의 험준한 협곡 사이를 느릿하게 달리며 아직 때 묻지 않은 대자연의 비경을 만끽했다.

우리나라의 가장 깊숙한 협곡, 백두대간

중부 내륙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으로 알려진 경북 봉화. 그중에서도 분천-승부-석포로 이어지는 봉화의 동북부 지역은 사람의 발걸음이 가장 덜 닿은 산간 오지로 유명하다. 북쪽으로는 강원도 태백, 동쪽으로는 울진과 경계를 이루며 백두대간을 따라 곳곳에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다.

낙동 정맥이 흐르는 협곡을 따라 기차가 움직인다. 사진/ 민다엽 기자
낙동 정맥이 흐르는 협곡을 따라 기차가 움직인다. 사진/ 민다엽 기자
백두대간협곡열차가 협곡 사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과거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에는 차가 다니는 도로는커녕, 사람조차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그야말로 완전한 오지 마을이었다고. 마을을 오갈 수 있는 수단은 태백 탄광촌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영암선이 전부, 간간히 지나는 비둘기호 열차가 외부로 나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분천역에서부터 양원역, 승부역 구간은 차로 접근하기 힘든 오지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청정자연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은 오히려 늘어났다.

 

산타가 사는 마을, 봉화 분천산타마을

산 넘고 물 건너 한참을 달려 도착한 이 작은 산골 마을에서는 뜻밖의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한 편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이국적인 풍경에 어안이 벙벙하다.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분천역은 1956년 경북 영주와 강원 태백의 철암을 잇는 영암선이 개통되면서 생겨났다. 오로지 태백 광산지역의 지하자원을 수송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철도 노선이었던 당시, 분천역의 이용객은 하루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분천산타마을에서는 사계절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분천산타마을에서는 사계절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열차 출발 시간보다 최소 1시간은 미리 도착해, 마을을 둘러보길 추천한다. 사진/ 민다엽 기자
열차 출발 시간보다 최소 1시간은 미리 도착해, 마을을 둘러보길 추천한다. 사진/ 민다엽 기자
지난 2014년 한국·스위스의 수교 50주년을 맞아, 분천역과 스위스 체르마트역이 자매결연을 했다. 사진/ 민다엽 기자

이처럼 조용하던 분천역은 2013년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의 운행으로 조금씩 활기를 되찾더니, 이듬해 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을 맞아 분천역과 체르마트역(Zermatt.St)이 자매결연을 하면서 산타 마을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허름했던 간이역의 외관을 스위스풍으로 단장하고 핀란드 로바니에미(Rovaniemi) 산타마을을 오마주 해 거리 곳곳에 산타 조형물과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 크리스마스 거리 등이 조성됐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사계절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흠뻑 느껴볼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체르마트는 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있는 마을이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알프스의 대자연을 감상하며 산간 협곡을 누비고, 작은 오지 마을에 들러 소담스러운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천역과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여행자가 분천역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묘하게 어울린다. 사진/ 민다엽 기자

INFO 분천역(분천산타마을)

백두대간협곡열차는 코레일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 코레일톡을 이용해 관광상품 - 철도관광벨트열차에서 예약할 수 있다.

운영시간 (분천역 출발) 09:59, 14:25/ (철암역 출발) 12:35, 15:53 / ·화 휴무

주소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길 49

문의 (코레일) 1544-7788, (분천산타마을) 070-7432-779

 

낙동강 따라 대자연 속으로, 백두대간협곡열차

열차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때 이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새빨간 기차에 몸을 싣는다. 정겨운 안내 방송과 함께 백두대간협곡열차가 구불구불 이어진 기찻길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나 어두운 콘크리트 터널을 빠져나오니, 이윽고 차창 밖으로 예상치 못한 백두대간의 숨겨진 비경이 스친다. 자동차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생소한 풍경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백두대간협곡열차에 여행자들이 탑승하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백두대간의 숨겨진 비경이 창 밖으로 스친다. 사진/ 민다엽 기자
백두대간의 숨겨진 비경이 창 밖으로 스친다. 사진/ 민다엽 기자
일반 열차와는 다르게 창문이 넓고 좌석이 세로로 배치되어 있어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사진/ 민다엽 기자
일반 열차와는 다르게 창문이 넓고 좌석이 세로로 배치되어 있어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사진/ 민다엽 기자

분천역에서는 중부 내륙의 가장 아름다운 구간을 왕복하는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가 출발한다. 'V-Train'V는 협곡을 뜻하는 'Vally'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창밖을 향해 세로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 좀 더 편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 추운 겨울에는 기차 안에 마련된 난로에서 군고구마도 구워 먹을 수 있다.

분천역을 출발한 열차는 낙동강 최상류 구간을 거슬러 양원역과 승부역을 거쳐 종착역인 태백의 철암역에 닿는다. 분천역에서부터 경북의 마지막 역인 석포역까지는 시속 30km로 느리게 주행해, 느긋하게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백두대간협곡열차는 분천역에서 오전 959분과 오후 225, 하루 두 번 출발한다. 종착지인 철암역에서는 오후 1235, 오후 353분에 출발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간이역인 양원역. 영화 <기적>의 촬영지로도 활용됐다. 사진/ 민다엽 기자
탑습객들이 10분 간 정차하는 동안 기념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사진/ 민다엽 기자
탑습객들이 10분 간 정차하는 동안 기념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사진/ 민다엽 기자

기차 여행의 낭만, 간이역

느릿하게 움직이던 열차는 첫 번째 간이역인 양원역에 잠시 멈춘다. 양원역은 1988년 산간 오지 원곡마을 주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간이역이다. 여기에는 독특한 이야기가 얽혀 있다. 불과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을 오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영동선(영암선)뿐이었고, 그게 아니면 수 km에 이르는 산길을 돌아서 와야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열차가 서지 않았고, 당시 주민들은 열차가 마을 앞을 지날 때 짐이 든 보따리를 창문으로 던지고는 인근 분천역이나 승부역에서 내려 철길을 따라 되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 마을 주민들은 정부에 지속적인 민원을 넣어 임시 승강장을 만들기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양원역이다. 허나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없어, 주민들이 돈을 모아 대합실부터 승강장, 명판까지 전부 직접 만들었다. 비록 정식 철도역으로 등록도 되지 않은 손바닥만 한 역사이지만, 무궁화호가 오갈 뿐만 아니라 두 개의 관광 열차가 정차하는 특별한 간이역이다.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니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백호'의 모습을 형상화한 백두대간협곡열차. 사진/ 민다엽 기자
승부역에서 잠시 정차하는 10분 동안, 선로 옆 장터에서는 한바탕 진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민다엽 기자
승부역에서 잠시 정차하는 10분 동안, 선로 옆 장터에서는 한바탕 진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민다엽 기자

사람의 인적이 전혀 닿지 않던 깊은 산골의 작은 역사, 승부역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19561월 영암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승부역은 너무 깊은 산속에 있는 탓에 이용자가 없어, 나중에는 무인역으로 격하되기에 이른다. 당시 혼자서 19년간 역사를 지키던 역무원이 담 벼락에 쓴 한 편의 시는 비석이 되어 여지껏 승부역 앞에 남아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 앞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애틋하다. 기차가 잠시 정차하는 동안 기찻길 옆 장터에서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주민들이 직접 채취한 각종 산나물과 약재를 사고, 노릇한 부추전에 시원하게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짧아서 더욱 선명하게 남은 간이역의 낭만이었다. 이 밖에도 낙동 정맥을 따라 조성된 체르마트길(낙동강세평하늘길2코스)을 걷는 오지 트래킹을 위한 거점 역할도 한다.

철암역 바로 앞에 있는 탄광은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영화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 장소다. 사진/ 민다엽 기자
철암역 바로 앞에 있는 탄광은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영화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 장소다. 사진/ 민다엽 기자

시간이 멈춘 빛바랜 탄광촌, 철암역

승부역을 지나 마지막 종착역인 철암역에 도착하니, 빛바랜 탄광촌의 풍경이 무겁게 다가온다. 철암역 일대는 과거 전국에 석탄을 실어 나르던 국내 최대 규모의 탄광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사람이 떠나 흉물스럽게 버려진 잿빛 흔적만이 남았다.

철암역 건너편 철암탄광역사촌에는 당시 광부들의 거친 삶을 엿볼 수 있는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건물 외관은 시간이 멈춘 듯 여전히 그대로지만, 내부는 탄광촌의 열악했던 생황을 보여 주는 전시관이 마련돼 있으니 한 번쯤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INFO 철암탄광역사촌

운영시간 10:00~17:00 (매월 1, 3주 월요일 휴관)

주소 강원 태백시 동태백로 408

문의 033-582-807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강인 2022-10-18 13:37:29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