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서민음식에서 유명 대표음식으로 대구 안지랑 곱창거리
서민음식에서 유명 대표음식으로 대구 안지랑 곱창거리
  • 노규엽 기자
  • 승인 2022.10.17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 안지랑 곱창거리의 곱창.
대구 안지랑 곱창거리의 곱창. 사진/ 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대구]토박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입소문이 난 것을 시작으로, 점차 외지인들의 발길을 끌어들여 국내 최고 외식거리 중 한 곳으로 선정된 안지랑 곱창거리.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인 돼지곱창이 메인임에도 이를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구의 맛이다. 지금은 새로운 메뉴들도 유행시키며 젊은이들의 입맛도 사로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곱창이라고 하면 소의 내장이 먼저 떠오르지만, 지인이 “곱창 먹자”라는 제안을 하면 돼지곱창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부담되는 가격의 소곱창보다는 저렴한 돼지곱창이 마음 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테다. 그런돼지곱창 요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구의 안지랑 곱창거리는 그런 일이 가능한 동네다.

곱창거리는 안지랑시장 내에 위치한다.
곱창거리는 안지랑시장 내에 위치한다. 사진/ 여행스케치

안지랑 곱창거리의 시작

안지랑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현지인들은 ‘안지랭이’라고도 부르는 이 지명은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곳이라서 안지랑이, 또는 남쪽의 앞산 계곡에서 아지랑이가 가득 피어나 안지랑이가 되었다는 등 여러 속설이 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설로는 공산 전투에서 패한 왕건이 앞산까지 도망쳐 와서 편안하고 안일하게 지냈다는 역사 이야기에서 기인한 것이라 한다. 이처럼 앞산의 수려한 경치를 함께 하고 있는 이곳에 대구의 대표 곱창거리가 형성돼 있다. 안지랑 곱창거리의 시작은 1979년 김순옥 할머니가 안지랑시장 인근에서 운영하던 충북식당이었다. 원래는 생선구이를 주메뉴로 하던 곳인데, 한 손님의 말을 듣고 양념곱창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의 돼지곱창은 한 바가지 가득 담아도 단돈 1,000원이었다니 저렴한가격에 가성비 좋은 메뉴를 시도해봤을 뿐일 텐데, 곱창 특유의 쫀득한 식감에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곱창볶음이 뜻밖의 호응을 얻어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한다. 창시자 김 할머니는 결국 시장에서 구입하는 곱창으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어 도축장에서까지 곱창을 사들여가며 양념곱창을 팔았다고 한다. 값 싸고 맛도 좋은 양념곱창은 어른들이 소주 한 잔 걸치기 딱 좋은 메뉴였던 것이다.

안지랑 곱창거리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전국 5대 음식테마거리로 선정된 바 있다.
안지랑 곱창거리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전국 5대 음식테마거리로 선정된 바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그렇게 식재료로 잘 사용하지 않았던 돼지곱창이 재조명되었고,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1990년대에 들어서 충북식당 인근에 곱창집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안지랑 곱창거리가 자리를 잡아갔다. 그 이면에는 1997년 IMF 외환위기도 영향을 끼쳤다. 어려운 시절에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도 찾을 수 있는 식당들이 인기를 끌었던 것. 당시 안지랑시장은 사라질 위기를 맞았지만, 시장 내 곱창거리는 배고픈 서민을 다독여주는 고마운 음식으로 더욱 알려지며 자연스럽게 번성했던 것이다.

곱창거리의 시작은 김순옥 할머니가 만든 양념곱창에서 시작되었다.
곱창거리의 시작은 김순옥 할머니가 만든 양념곱창에서 시작되었다. 사진/ 여행스케치

상인들이 힘을 합쳐 이뤄낸 개성의 맛

안지랑 곱창거리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먹거리촌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상인회(당시 번영회)의 적극적인 노력도 큰 몫을 했다. 호객 행위를 하는 식당에는 벌금을 물리고, 인근 주민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새벽 2시 이후에는 야외테이블을 철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가게 앞 통행로에도 흰 선을 그어 야외 테이블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등 질서 있는 골목을 위한 상인회의 결정이 혜안이었다. 날이 갈수록 번성해 곱창 삶는 냄새로 민원이 발생하자 2008년부터는 직접 곱창 가공 공장까지 세웠다. 곱창거리에 자리 잡은 여러 곱창집들의 주재료를 한 공장에서 같은 가격으로 일괄 공급하니 바가지요금이 발생할 일도 사라졌고, 결국 상인들과 손님들 모두에게 이득으로 작용했다. 이후로는 채소와 음료 등도 공동으로 구매해 치솟는 물가속에서도 서민의 옆자리를 지켜주는 곱창거리를 유지해왔다.

곱창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양껏 먹을 수 있다.
곱창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양껏 먹을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안지랑의 상인들은 부쩍 생겨난 인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전국의 이름난 먹거리촌을 답사하고 맛과 서비스를 배우는 노력을 했다. 채소와 함께 들들 섞어 볶아낸 곱창볶음과 곱창ㆍ막창ㆍ염통ㆍ볼살 등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게 만든 모듬 메뉴 등 다른 지역 유명 곱창 전문점을 방문해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안지랑 곱창거리의 또 다른 특색은 가게마다 비법 소스로 차별을 둔다는 것. 어느 집은 화끈하게 매운 불곱창이 인기이고, 어느 집은 아이들을 타깃으로 만든 치즈곱창을 개발해 단골층이 두터워졌다. 빨간양념이 매력적인 기본 곱창볶음과 ‘겉바속촉’으로 구워 쫄깃하고 고소한 생막창도 빠질 수 없다. 실파와 고추 등을 넣어 만든 대구 스타일 막장에 찍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을 정도다. 막장이 맛있는 집이 곱창 맛집이란 말은 대구 사람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쫄깃하고 고소한 생막창도 빠질 수 없다.
쫄깃하고 고소한 생막창도 빠질 수 없다. 사진/ 여행스케치
곱창거리 내 가게마다 비법 소스로 차별을 둔다.
곱창거리 내 가게마다 비법 소스로 차별을 둔다. 사진/ 여행스케치
쫄깃하고 고소한 생막창도 빠질 수 없다.
양념곱창과 막창 등 다양한 곱창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이면 대구 지하철 1호선 안지랑역에서부터 곱창볶음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앞산공원으로 나들이 나온 행랑객들이나 케이블카를 타고 시내 풍경을 즐긴 관광객들도 더러 섞여있을 것이다. 대구 현지 사람들은 “이모~” 하며 제 단골집을 찾아 속속 자리를 잡고, 타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공들여 검색한 맛집을 찾아 골목을 누빈다. 대구의 얼굴에서 우리나라의 얼굴로, 장사를 넘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해낸 안지랑. ‘타닥타닥 지지직’거리며 움츠러드는 곱창 냄새가 지독히도 매력적인 곳이다. 


쭈욱 늘어나는 치즈에 찍어먹는 치즈곱창.
쭈욱 늘어나는 치즈에 찍어먹는 치즈곱창. 사진/ 여행스케치

치즈에 돌돌 말아 먹는 이색 곱창 성주곱창

“사람 사는 생동감이 넘쳐나잖아요. 대구에서 몇 년 살았지만 이런 거리가 있는 줄도 몰랐고, 충격이었어요. 근데 무슨 용기였는지 여기서 곱창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라고요.” 안지랑의 곱창거리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이정연 사장. 젊은 열기로 가득한 안지랑의 풍경은 생소했고, 충격적인 경험이 이내 동경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여러 곱창 전문점을 둘러보며 어깨너머로 ‘이모’가 되는 연습을 해왔단다. 그리고 마침내 성주곱창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역사는 짧지만 단골 명단은 길다. 성주곱창의 인기 메뉴는 곱창을 볶아 살살 녹인 치즈를 찍어 먹는 치즈곱창으로 서양의 ‘퐁뒤’ 문화를 접목한 퓨전 요리다. 죽 늘어지는 치즈를 빨간 곱창에 돌돌 말다보면 저도 모르게 입안에 군침이 돈다. 이색 메뉴로 화제가 되니 치즈를 따라 사용하는 가게가 늘었지만, 여전히 원조의 맛을 즐기러 오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