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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통시장 탐방] 일 년 열두 달이 대목, 대전 유성5일장
[전통시장 탐방] 일 년 열두 달이 대목, 대전 유성5일장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2.12.1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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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대전] 5일마다 하루씩 장이 선다는 5일장이 시골에만 있는 건 아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각종 신식 유통센터가 즐비한 대도시에도 5일장은 살아 숨 쉰다. TV 홈쇼핑과 온라인 쇼핑, 모바일 장보기에 익숙한 정보사회 문명인들이 좁은 장터 골목을 찾아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녁에 주문하면 새벽에 문 앞에 갖다 놓는 그런 배송 시스템도 없고 흔한 쇼핑카트조차 없는데, 5일장의 맛깔스러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국토 한복판 대전, 150만에 육박하는 든든한 소비시장을 둔 이 대도시에는 상설시장도 많지만 5일마다 열리는 정기시장도 2곳이나 있다. 서부권의 유성5일장과 동부권의 신탄진5일장이 그 주인공이다. 유성5일장은 4·9장이고 신탄진5일장은 3·8장이다.

두 곳 모두 대도시의 특성을 기본으로 하고 인근 지방 소도시에서 나오는 다양한 산물들이 더해지면서 성황을 이루고 있다. 특히 유성5일장은 골목골목 이어진 탓인지 항상 북적이고 있어 일 년 열두 달이 명절을 앞둔 대목처럼 느껴진다. 

시골장터의 단골 품목 모종.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중부권 최대 규모 5일장
원래 유성은 온천으로 유명한 고장이었다. 국내 무수한 온천들 중에서 이용률 1위(2018, 2019년 기준)를 달성했을 정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는 과학도시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국립과학박물관을 비롯하여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대전시민천문대, 엑스포과학공원 등이 유성에 몰려있다. 첨단을 달리는 과학의 도시에 중부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통 5일장이라니, 흥미로운 일이다. 원래 유성장은 매 5일과 10일에 열렸는데 장날마다 비가 온다고 해서 하루 전인 4일과 9일로 바꿨다고 한다.

이것이 유성다운 과학적인 결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을과 겨울 사이의 어느 날에 찾은 유성장은 비도 눈도 없는 맑은 날이었다. 장날이면 대전뿐 아니라 좌우에 산재한 내륙의 여러 소도시에서도 부지런한 상인들이 그 지역 특산물을 들고 몰려든다. 그 소도시들은 대부분 금강을 젖줄로 삼고 있어서 산과 들녘의 산야초와 농산물 외에도 다슬기, 참게, 민물고기 등이 많이 보인다. 젊은 상인들이 많다는 것도 대도시 5일장의 큰 특징이다. 

사진/ 김수남 기자
각종 버섯을 들고 나온 버섯전문점.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귀한 산삼도 어쩔 수 없이 길바닥 좌판 신세.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마늘이 많이 나왔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무릎 아픈데 좋다는 우슬뿌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민물에 사는 참게.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금강에서 나오는 민물고동과 조개.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히잡을 두른 외국인 아가씨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강정을 만들어 파는 노점을 바라보고 있다. 이영성(52)·최미니(50)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강정가게다. 장터의 강정가게들은 견과류와 다양한 곡류를 활용해서 만든 전통과자를 팔 뿐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만드는 퍼포먼스를 펼쳐 주변 시선을 휘어잡는 게 공식처럼 굳어졌다. 점잖은 노부부가 깨와 땅콩을 가지고 와서 깨강정을 만들어 달란다. 옥천의 주말농장에서 직접 농사지은 깨라고 하니 어떤 재료보다도 건강하고 맛도 좋을 것이다. 

이 대표는 원래 직장을 다니다가 ‘내 장사’를 하고 싶어서 7년 전에 지인의 가게를 인수했다.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서 노점을 펴야 하고 끝나면 또 거둬야 하는 일들이 번잡하고 힘들지만 내 사업이니 자유롭고 편하단다. 좋은 재료를 고집하는 요즘 소비자들의 트렌드에 맞춰 손님이 가지고 온 재료에 실비만 받고 만들어 주기도 하니 장사 수완도 좋은 셈이다. 

김수남 객원기자
히잡을 두른 외국인 아가씨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강정을 파는 노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강정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이영성 대표.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골목 한복판 모퉁이에는 생선구이 노점이 보인다. 다른 장터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품목이다. 장어, 고등어, 갈치, 가자미, 조기 등의 생선을 즉석에서 구워 잘 어울리는 소스까지 발라서 판매한다. 고추장양념과 간장양념, 소금구이로 다양하게 내놓는 바다장어구이는 최고 인기 품목이다. 요즘 국산 찾아보기 어려운 도토리 열매와 밥그릇에 직접 쑨 홈메이드 도토리묵, 야생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약효 좋다는 돌배, 가지런히 꿰어진 민물의 참게, 철판 위에서 맛나게 구워진 메추리구이 등 웬만한 작은 도시 5일장에선 만날 수 없는 이색 품목들이 장터 골목 여기저기에서 눈에 띈다. 

장어구이를 비롯해 다양한 생선을 구워주는 곳.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국산을 찾아보기 어려운 도토리열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달걀 말고 ‘닭알’을 아시나요?
여러 노점들 중에서도 가장 흥미를 끈 곳은 단연 닭집이다. 닭고기의 수요가 많아서인지 여기저기 생닭을 파는 가게가 많은데 장날에만 찾아오는 닭집만 해도 세 곳이나 된다. 귀한 손님이 오면 키우던 닭을 잡아 내놓던 전통적 환대문화가 알고 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유성장의 닭집들은 생닭만 파는 것이 아니라 닭의 여러 부속물들을 함께 팔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근위·닭발·간·염통·닭목·닭알(알집)….

닭의 여러 부산물 중 닭알과 알집.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상인들 말에 따르면 닭 부속물 가짓수가 14가지에서 16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흔히 ‘닭똥집’이라고 부르는 닭근위는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편이고 살이 별로 없을 것 같은 닭목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닭알만큼은 생소할 것 같다. 보통 닭알은 달걀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향토음식에 있어서 닭알은 달걀이 되기 전에 닭의 몸속에 있는 노른자 상태를 말한다. 닭알을 넣어 만든 대표 요리가 닭알탕인데 인천에는 닭알탕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향토음식점들이 밀집된 ‘닭알탕거리’가 있을 정도다.

닭의 수요가 많아서인지 유독 생닭집이 많다. 신흥닭집과 서문효진 대표.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닭알은 보통 알집이랑 같이 파는데 겨울에 찬 바람이 불면 많이 팔리고 여름에는 덜 팔려요.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는데 경상도 지방에서 인기가 더 좋아 구미에 가면 많이 팔리더라고요.”
시장 안 농협사거리 모퉁이에 노점을 펼친 신흥닭집 서문효진(38) 대표는 올해 8년째 생닭을 다루는 이 바닥 베테랑이다. 닭을 손질하는 그녀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유성장과 신탄진장은 물론이고 옥천과 구미 선산장까지 내려간다고 하는데 몰려드는 손님들을 상대하는 직원들이 4명이나 되니 노점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유성시장에는 가게에서 파는 상설 닭집도 여러 곳인데 장날에만 찾아오는 노점 닭집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신선도가 다르죠. 회전이 빠르니 물건들이 모두 싱싱합니다. 그리고 가격도 싸죠. 노점은 가게보다 쌀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살아남죠!” 

서문 대표의 닭집 건너편에는 농협 건물이 있다. 농협마다 딸린 작은 하나로마트가 이곳 유성농협 장대점에도 있는데 주차장에 좌판을 펼쳤다. 각종 농산물과 과일들을 평소보다 싼 가격에 팔고 있어서 알뜰 주부들의 줄이 길게 늘어졌다. 보통의 농협들은 지방 도시 중심부에 위치하고 5일장도 그 농협 주변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장날에 시장을 찾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판매활동을 펼치는 농협을 이제껏 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유성농협의 마인드는 놀랍기만 하다. 언제나 대목을 방불케 하는 유성5일장의 활황이 농협까지 춤추게 한 것일까. 관행적 영업에 안주하지 않고 공격적 영업을 펼치는 농협이 유성5일장의 활황에 일조를 한 것일까? 일 년 열두 달이 뜨거운 유성5일장이다. 

명자네전집 도토리 묵국수.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명자네전집 도토리 묵국수.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쪽지 / 시장 맛집
‘유성장옥’으로 알려진 청천광장(042-825-1894)은 2002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제법 역사를 간직한 서민들의 맛집이다. 겨울에는 팥죽과 선짓국이 인기인데 장날에는 초창기 메뉴인 김밥도 취급한다. 그 옆의 명자네전집(010-9723-1388)은 장날만 영업한다. 유성장과 신탄진장을 오가며 영업을 해서다. 간판은 ‘전’이지만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 30여 가지를 취급한다. 전 한 접시, 막걸리 한 사발에 요즘 살기 어렵다는 서민들의 하소연이 사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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