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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차 여행] 목포에서 부산까지, 전라도와 경상도 잇는 기차여행
[기차 여행] 목포에서 부산까지, 전라도와 경상도 잇는 기차여행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4.01.16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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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부산까지.. 버스보다 더 오래 걸리는 기차로 느린 여행을 떠나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목포에서 부산까지.. 버스보다 더 오래 걸리는 기차로 느린 여행을 떠나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목포, 부산] 목포에서 부산까지 가기로 한다. 버스로 약 4시간, 기차는 그보다 3시간쯤 더 걸린다. 하루에 딱 한 번뿐인 데다 객차도 겨우 두 량. 부러 이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는 이들이 있다. 전라도에서 경상도까지, 남도의 끝과 끝을 잇는 짧고 느린 기차. 넓은 차창 밖으로 펼쳐질 풍경에 벌써부터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길을 떠나는 건 같지만 기차와 버스는 느낌이 다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이상하게 기차를 탈 때는 마음이 설렜다. 아니, 버스에서도 그런 기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터미널 근처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나는 막연히 차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들이 무슨 이유로 어딜 가는진 중요하지 않았다. 서울을 떠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게 부러웠다. 그때는 길을 떠나는 일이 직업이 될 줄 몰랐던 시절이다.

깇 여행의 낭만은 어딜 가는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깇 여행의 낭만은 어딜 가는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호남지역엔 눈이 내렸고
목포에서 부산 부전역까진 얼추 7시간이 걸린다. 임성리~일로~몽탄~무안~함평~다시~나주~광주송정~서광주~효천~화순~능주~이양~명봉~보성~득량~예당~조성~벌교~순천~광양~진상까지 23개 역이 전라권이고, 하동~횡천~북천~완사~진주~반성~군북~함안~중리~마산~창원~창원중앙~진영~한림정~삼랑진~원동~물금~화명~구포~사상~부전까지 21개 역이 경상권이다. 무려 44개 역을 지나지만 정차 시간이 짧아 7시간 동안 먹고 마실 간식은 목포에서 미리 챙겨야 한다.

1913년 약 33의 바다를 매립한 대지 위에 처음 지어진 목포역은 호남선의 시종착역이자 대한민국 가장 서남단에 위치한 역이다. 1979년 지어진 역사에 KTX 운행을 위해 2004년 증축한 것이 지금의 건물인데, 대합실 안에 카페와 빵집, 편의점 등이 들어서 있다. 보온병과 비스킷 몇 개를 챙겨오긴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샌드위치와 음료,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플랫폼 안으로 들어선다.

약 7시간 정도의 긴 여정이므로 먹고 마실 것을 미리 준비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약 7시간 정도의 긴 여정이므로 먹고 마실 것을 미리 준비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부전이나 창원 등의 지명은 적혀 있지 않다. 광주 방향 계단을 내려서 미리 도착한 기차에 들어가 앉는다. 승객은 많지 않다. 오전 923, 주황색 기차는 한반도 서쪽 끝에서 동쪽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속 140km 안팎, 무궁화호는 빠르지 않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조용하고 한산하다. 임성리, 일로, 몽탄, 다시처럼 지역인이 아니면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볼 일 없거나 여행 올 일 없는 지역들이 창밖으로 서서히 멀어져간다.

기차 여행의 출발지 목포역. 사진은 목포해상케이블카.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기차 여행의 출발지 목포역. 사진은 목포해상케이블카.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전라도의 흙은 붉다. 그 흙 위에 하얀색 눈이 내려 쌓였다. 나주를 지나면서 오른쪽 멀리 산이 보였다. 혹시 무등산?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기차는 광주송정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전라권에선 출발지 목포와 순천을 포함해 이곳 광주송정이 가장 큰 역이다. 보성과 화순 등에도 역 인근에 카페와 식당이 있다. 이양이나 다시처럼 무인역도 있고, 남평처럼 역이 있어도 무궁화호조차 서지 않고 무심히 지나치는 곳도 있다.

하필 예약한 좌석이 진행 방향 우측이라 남쪽의 볕이 그대로 창으로 쏟아질 판인데, 다행히 날이 흐렸다. 기찻길 옆엔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에서처럼 낮은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영산강 자전거길도 있고, 광주 시내를 낮게 나는 비행기도 보인다.

사계절 내내 초록빛을 자랑하는 보성 녹차밭.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계절 내내 초록빛을 자랑하는 보성 녹차밭.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문득 목이 말랐다. 순전히 색깔이 예뻐서 구입한 음료 뚜껑을 열려는데, 참치캔처럼 동그란 고리만 뚝 떨어진다. , 아직 부전까진 4시간쯤 남았는데. 누군가 플랫폼에서 커피를 들고 기다린다면 또 얼마나 낭만적일까. 커피를 받아쥔 채 손을 흔들며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풍경 말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나. 보온병 뚜껑을 열어 홀짝홀짝 물을 마신다. 부전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목포로 가는 기차를 이양역쯤에서 엇갈려 보낸다. 기차는 낭만 그 자체다.

INFO 코레일톡
한국철도공사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 앱이다. 설치 후 회원 가입하면 노선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기차표 예매와 취소가 가능하다. 별도의 매표와 발권 절차가 없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20241월 기준 부전에서 목포로 가는 기차는 0617, 목포에서 부전으로 가는 기차는 0923, 각각 한 번뿐이다. 요금은 24500. 버스의 경우 티머니GO’버스타고를 깔아두면 편하다.

INFO 순천양조장
목포~부전 구간의 중간인 순천역 부근에 있다. 순천을 테마로 한 수제맥주(7,500)와 수제버거(9,000) 등을 판매한다. 매주 월요일 휴무. 순천양조장 바로 옆에 연중무휴 카페 브루웍스가 있고, 길 건너편에 복합문화공간이자 푸드코트인 청춘창고가 있다. 순천역 앞에선 시티투어버스를 탈 수 있다.

주소 전남 순천시 역전길 57
문의 0507-1351-2545

순천역과 가까운 탐매마을. 1월 중하순부터 꽃이 피는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순천역과 가까운 탐매마을. 1월 중하순부터 꽃이 피는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기차 여행의 낭만 간이역.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기차 여행의 낭만 간이역.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영남지역엔 비가 내린다
순천을 지나면서 보이지 않던 눈은 섬진강을 건너 하동으로 접어들자 완전히 사라졌다. 광양의 진산 백운산이 등 뒤로 멀어지고 지리산의 기운이 내려앉았다. 기차는 코스모스축제로 유명한 북천과 사천 완사를 지나 진주에 정차한다. 진주에서 승객이 많아진다. 오전 내내 한산했던 객차 안에 빈자리가 드물다. “17번이 어디 있당가?” 차표를 들고 자리를 찾던 전라도 할머니는 어딘가에서 내렸고, “여기 아이가?”, “아니라예.” 아지매들의 경상도 억양이 가득했다.

차창 밖으로 올챙이 같은 빗방울이 흘렀다. 꼬리를 늘어뜨린 모습이 쏜살같이 달리는 태초의 경쟁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1등의 대가로 얻은 생명인 셈이다. 조그맣게 속삭이는 기차의 소음과 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듣기 좋은 오후였다. 중리역을 중심으로 마산, 창원, 창원중앙도 이용자들이 많다. 젊은 학생들이 대다수다.

진주의 대표 관광지 진주성. 인근에 국립진주박물관이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진주의 대표 관광지 진주성. 인근에 국립진주박물관이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진주시 이반성면 반성역에선 경상남도수목원이 멀지 않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진주시 이반성면 반성역에선 경상남도수목원이 멀지 않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진영~한림정 사이의 화포천습지가 장관이다. 고니, 기러기, 원앙 등이 먹이잡이에 여념이 없다. 다음엔 한림정역에 내려 저 새들을 가까이서 봐야겠다(한림정 대신 진례역에서 정차하는 경우도 있음).

삼랑진역엔 경전선 기점기념비가 있다. 경전선은 광주송정에서 삼랑진까지 300km의 철길이다. 삼랑진과 광주송정 포함 순천, 진주, 창원, 물금 등에선 서울 혹은 대구를 오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하여 굳이 부전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 지나온 곳곳이 이미 여행명소다. 원동역은 3월 매화로 유명하고, 물금역엔 맛집이 많은 서리단길이 있다.

무등산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하동읍 전경. 우측 다리가 철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무등산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하동읍 전경. 우측 다리가 철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함안 여항산(770m). 함안역에서 7km만 가면 초입 마을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함안 여항산(770m). 함안역에서 7km만 가면 초입 마을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밀양부터 불어나기 시작한 낙동강이 합천 황강 쪽에서 흘러오는 또 다른 줄기와 어우러지는 삼랑진부터 자못 위용을 갖추니 여기부터 물금까지 도도히 흘러내리는 모습은 차라리 장중한 교향악 같다고나 할 일이다.”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에서 작가는 삼랑진에서 물금에 이르는 철길을 가장 아름답다고 적고 있다. 강물이 기차를 따라 함께 내달리는 길이다.

물금은 양산이고 화명은 부산이다. 화명역에서 구포와 사상을 지나 드디어 종착역 부전. 6시간 40분의 긴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다. 부전에선 다시 포항 등으로 갈 수 있는 동해선을 탈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지쳤다. 부전시장을 지나 지하철역으로 간다. 집으로 돌아갈 땐 우등버스를 타야겠다. 불 꺼진 버스 좌석에 몸을 눕힌 채 화려한 부산 야경을 보는 맛이 쏠쏠하다.

부전역 앞 부전시장. 여기서 직진하면 부산지하철 1호선 부전역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부전역 앞 부전시장. 여기서 직진하면 부산지하철 1호선 부전역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부산 부전역에선 포항 등을 오가는 동해선도 탈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부산 부전역에선 포항 등을 오가는 동해선도 탈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그리고 매번 그런 것처럼 돌아가는 이는 다시 떠날 계획을 세운다. 물금이 내내 눈에 밟혔다. 화포천습지도 마찬가지다. 덩그러니 역만 있는 곳은 난감하지만 역을 나선 순간부터 설레는 곳들도 수두룩하다. 기분 좋게 눈을 감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푹 자둬야겠다.

INFO 진주역
전라권은 물론 서울과 대구를 오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진주 대표 간식인 운석빵 판매점을 비롯 역전에 카페와 식당이 많아 여행하기에 좋다. 택시로 진주성까지 갈 수 있고, 망진산 등을 지나는 도보여행 코스 진주에나길을 걸을 수도 있다. 진주중앙시장 꿀빵과 수복빵집 찐빵, 하연옥냉면과 황포냉면, 진주비빔밥 등이 맛있다. 인근 사천 시티투어버스를 진주역 앞에서도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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