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영월] 오는 4월 26일부터 열리는 영월 단종문화제. 벚꽃 만발한 시기와 겹쳐 단종과 충신들의 슬픈 넋을 기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 문화축제다. 봄 향기 가득한 영월, 단종의 애절한 이야기가 담긴 여행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영월에는 의미와 재미를 담은 축제도 열려 찾아가는 재미를 더한다. 벚꽃 활짝 피는 4월에 성대하게 열리는 ‘단종문화제’, 물놀이하기 좋은 7월에 전통 방식의 뗏목 문화를 계승하는 ‘동강 뗏목 축제’, 세계 거장들의 사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동강 국제사진제’, 시로 세상을 풍자한 김삿갓을 재조명하는 ‘김삿갓 문화제’ 등이 열려 지역의 문화를 풍성하게 한다.
뿌리 깊은 나무들의 풍경, 비운의 왕이 잠든 장릉
매년 4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단종문화제는 1967년 시작돼 57년을 이어오며 숙부인 세조의 왕위 찬탈로 짧은 생을 마감한 단종의 넋을 기린다. 처음에는 ‘단종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돼 1990년 제24회 때부터 ‘단종문화제’로 명칭을 바꾸며 다양한 체험과 즐길 거리가 함께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단종문화제의 백미는 둘째 날 단종이 잠들어있는 장릉에서 올리는 단종 제향이다.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1457년 노산군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예로서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으로 인해 누구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시 영월호장 엄흥도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라는 충정으로 몰래 시신을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묻었다. 이후 중종 36년(1541)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단종 제향은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영월 군민이 선보이는 육일무 공연과 강원도립국악관현악단의 제례악 연주 등이 더해져 한껏 예를 갖춘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서울과 경기에 있지 않고 강원도에 있는 장릉은 충의가 깃든 유적들이 눈에 띈다. 정조 15년에 건립한 장판옥이라는 건물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들과 그와 관련된 268인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또 단종역사관과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은 엄흥도 기념관도 함께 만들어 영월의 단종으로 보듬고 있다.
단종역사관에는 단종의 탄생부터 17세에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를 기록한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창덕궁을 지나 영월에 이르기까지 유배 경로를 표시해 둔 사진을 통해 단종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참도와 단종비각, 장판옥에 모신 이들의 제사를 지내는 배식단, 제향을 지내는 한식 때 물이 많이 차는 우물인 영천 등을 둘러보며 ‘단종애사’에 깃든 다양한 소회를 느낄 수 있다.
장릉은 자연경관도 무척 아름다워 산책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가늠이 힘든 우람한 나무들이 능의 다정한 풍경을 만들고 은은한 솔향이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려준다. 또 능으로 오르는 언덕에는 9월이면 하얀 부추꽃이 피어난다. ‘무한한 슬픔’인 부추꽃의 꽃말이 어린 단종의 슬픔을 대변하는 듯하다.
비운의 어린 임금과의 인연으로 오랫동안 함께 슬픔을 나누었던 영월은 장릉을 영월 제1경으로 정성껏 가꾸며 따뜻하고 역사적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시민의 공간으로 선보이고 있다.
가장 아프지만 가장 아름다운 유배지, 육지 속의 섬 청령포
단종의 흔적이 여러 곳에 있는 영월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을 들라면 청령포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절벽과 강으로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곳이라 유배지로 최적인 곳, 가장 아프지만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단종문화제 기간 동안 청령포에서 열리는 행사는 없지만 꼭 들러서 짧은 생을 마감한 어린 왕의 유배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단종은 문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으로 즉위했지만, 계유정난으로 숙부인 세조에 왕위를 물려주고 15세에 상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를 복위하려는 움직임이 발각되면서 노산군으로 강봉된 뒤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나머지 한쪽은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오갈 수 없는 섬이었다. 밤이면 산짐승 소리와 바람 소리에 놀란 단종의 가슴을 진정시키든 단종을 지극히 보살피든 한 사람 또한 엄흥도였다. 엄흥도는 단종의 어소에 출입하지 말라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이면 군사들의 눈을 피해 단종에게 찾아와서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청령포에서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단종어소와 담장을 사이에 둔 행랑채 등을 만날 수 있다. 어소를 나와 육육봉으로 향하면 단종이 매일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그리워했던 노산대와 그리움을 돌로 쌓았던 망향탑이 있어 애절했던 단종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2008년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청령포의 또 다른 볼거리는 크고 오래된 소나무가 많은 ‘수림지’이다, 천연기념물인 ‘영월 청령포 관음송’을 비롯하여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힐링 공간을 만들어준다. 청령포를 상징하는 600년이 넘은 오래된 소나무 ‘관음송’은 천연기념물로 지상 1.2m 높이에서 두 가지로 갈라져 있다. 고독한 유배지에서 친구삼아 관음송의 갈라진 사이에 앉아 쉬던 단종의 애끓는 삶을 지켜보고 슬픈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여 ‘관음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짧은 생을 마감한 영월 객사의 관풍헌
청령포에서 두 달간 유배 생활을 하던 단종은 홍수를 피해 영월 객사의 동헌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다. 자규루(당시 매죽루)에 자주 올라 시를 지으며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어린 임금의 비통함과 애처로움을 달래던 단종은 이곳에서 17년 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영월읍의 중심에 있는 관풍헌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문화 수준을 알 수 있는 문화재로 태조 1년에 건립되었을 만큼 유서 깊은 건물이다. 단종문화제의 야간 하이라이트인 단종 국장 재현행사가 열리는 곳이기도하다.
조선의 임금 중에서 유일하게 국장을 치르지 못한 단종. 그의 혼을 달래고 기리기 위해 단종 복위 이후 270년이 넘는 동안 제향만 지내오다 1967년 단종문화제를 시작으로 영조 국장도감의궤를 참조하여 옛 국장 방식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동강 특설무대 행사장에서 ‘견전의’를 시작으로 관풍헌을 거쳐 장지인 장릉에 이르는 ‘발인 반차’ 행렬, 그리고 장릉에서의 ‘천전의’까지 많은 군민과 관광객들이 참여하며 큰 성황을 이룬다. 장릉의 잔디밭에서 말을 타고 승천하기를 기원하며 흰말을 태우는 의식인 제구 소지는 영월의 밤을 환하게 밝힌다.
‘단종의 옷자락을 따라’ 체험하고 즐기는 축제
올해 단종문화제는 영월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공연부터 다양한 가족 단위 프로그램 등 전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로 열린다. 특히 ‘단종의 옷자락을 따라’라는 올해의 주제에 걸맞은 체험 행사가 눈에 띈다.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한 단종과 정순왕후에 관련된 지역인 서울 동작구와 종로구, 정읍시, 영주시, 남양주시의 체험 부스를 거쳐 옷자락에 소원을 적어 소망 터널에 매달고 영월에 도착해 정순왕후 인증사진을 찍는다. 또 이들 지역의 주민이 참여한 가장행렬도 기획되어 있다.
어린이들에게도 큰 재미를 선사한다. 도깨비 마당에서 열리는 부루마블 게임인 ‘깨비마블’과 전통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영월 전 지역이 참여하는 칡 줄다리기, 단종비 정순왕후 선발대회, 단종의 사랑을 주제로 한 창작뮤지컬, 한시 백일장과 학술 심포지엄 등도 단종문화제의 전통을 든든하게 받치는 알찬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