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안성] 궁예는 신라의 왕자였다. 궁예가 태어날 때 ‘지붕 위에 무지개 같은 흰 빛이 하늘에 나타나고 이가 다 나 있다’ 해서 불길한 아이라 하여 누마루 아래로 던져서 죽이려는 것을 유모가 밑에서 받아 남몰래 키웠다. 그 때 받을 때 손가락이 한쪽 눈을 찌르는 바람에 한쪽 눈을 잃었다고 한다.
궁예의 이야기가 안성 곳곳에 남아있다. 신라시대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칠장사는 궁예가 10살 때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절이다. 절 입구 부도 밭을 지나 올라가면 철당간이 눈에 띈다. 청주 용두사, 계룡산 갑사, 그리고 칠장사. 전국에 세 개 밖에 없는 철당간이다. 철당간은 절의 영역을 표시하거나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꽂는 역할을 했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봉업사 터에서 가져온 석불입상이 있다. 조각이 섬세하고 표정이 온화하다. 그 뒤가 나한전. 일곱 분의 나한전과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전각 뒤로는 나옹선사가 심었다는 6백년이 넘은 노송 한그루가 있다.
나한전에 모셔진 일곱 나한은 원래 사나운 도둑들이었다고 한다. 혜소국사가 암자를 짓고 수행을 할 때 도둑 한 놈이 암자 근처에 왔다가 표주박으로 물을 마시니 표주박이 금으로 변했다. ‘좋아라’하며 가지고 집으로 가니 다시 그냥 평범한 표주박이 된다.
이렇게 도둑놈 일곱 명이 똑같은 경험을 하고 깨달은 바가 있어 머리를 깎고 혜소국사의 제자가 되었다. 그래 절 이름이 그 때부터 칠장사로 불리었다. 또한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무대 배경이 된 곳이다.
임꺽정의 스승 갖바치(병해대사)가 이곳에서 수행을 했고 임꺽정의 의형제 길막봉이가 안성관아에 잡혀가자 구출을 도모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안성에 남아 있는 많은 미륵 중에 궁예미륵이 있다. 국사봉 중턱에 있는 3개의 미륵이다. 예부터 궁예미륵으로 불리었지만 그 유래는 전해지지 않는다.
섬세하거나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큰 갓을 쓴 얼굴에 고뇌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도 하다. 마지막으로 궁예가 죽주의 도적 기훤의 수하가 되는 죽주산성에 올랐다. 일찍이 어덕형은 상소를 올려 ‘죽산 취봉은 형세가 매우 든든하여 참으로 한 명의 군사로도 길을 막을 수 있는 험한 곳이다’라고 했으니 일찍부터 중요했음을 말해준다.
죽주산성에서 바라보는 오른쪽 편 철탑 근처가 당시 몽골군이 쳐들어오기 위해 진을 쳤다는 이전터가 보인다. 죽주산성에서 안성의 들녘과 이곳저곳 사방으로 나있는 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