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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농촌체험여행] 강원도 송천 민속떡 마을 이야기
[농촌체험여행] 강원도 송천 민속떡 마을 이야기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3.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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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강원도 송천 민속떡 마을 풍경.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강원도 송천 민속떡 마을 풍경.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양양] 눈이 소복한 산골 마을에 포근한 볕이 들었습니다. 떡메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전통 떡마을이라. 떡 한번 먹으러 가 볼까요.

쑥스러움 많던 설악의 주봉(主峰)도 오늘만은 흰머리 할아버지처럼 차려입고 외출을 나섰나 봅니다. 눈부신 하늘빛이 부르는 손짓에 이끌려 설악이 온전한 제 모습으로 마을에 성큼 다가섰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뵈는 계단식 논은 밭이 되버렸군요. 새하얀 눈밭입니다.

떡 작업장인 민속 떡집 전경.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떡 작업장인 민속 떡집 전경.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마을 옆으로 나지막한 계곡물이 반짝반짝거립니다. 냇물이란 원래는 참 청명한 거군요. 이런 날은 물가의 얇아진 얼음판이 새삼 더 애처롭게 보일 때지요. 마을길과 마을집 뒤로 삼삼오오 모여 있는 감나무도 흰옷을 털어내고 있습니다. 소나무가 빼곡한 봉우리가 앉은키로 한자리씩 차지하고 마을을 둥글게 감싸고 있습니다. 재밌더군요. 그 모양새가 떡시루 같았습니다. 전통떡 마을을 찾았다는 생각 때문인가요.

움푹 들어간 산골마을에 쌓인 새하얀 눈이 시루에 담긴 찹쌀 같았습니다. 눈 사이로 난 마을길과 논두렁은 시루 안에 켜를 안쳐 놓은 것 같았고요. 왜 있잖습니까. 시루떡 만들 때 네모나게 2층, 3층 칸을 갈라 찌던 거요. 햇볕까지 따스하게 내리쬐니 저 큰 떡시루 안으로 찾아들면 찹쌀이 모락모락 쪄지고 있겠군요. 떡 먹으러 갑시다.

시루에 담긴 떡쌀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익어간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시루에 담긴 떡쌀이 모락모락 김을 내며 익어간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강원도 양양군 송천리 민속 떡마을의 아침은 새벽보다 이르다고 합니다. 새벽 3시쯤 되면 마을은 수런거리기 시작합니다. 밤사이 불린 찹쌀을 찌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바빠집니다. 마을 공동 작업장인 민속떡집 이곳저곳 시루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1시간 정도 떡쌀을 찌고 나면 떡판과 떡메가 등장하겠지요. 떡쌀을 떡판에 쏟아 붓습니다.

마을 뒷산도 가깝지만 조금만 걸음하면 설악산. 지난 봄에 캐둔 수리취와 쑥을 골고루 섞습니다. 그러곤 떡메치깁니다. 30분 정도 잘 섞으며 떡쌀이 끈적끈적 찰지게 될 때까지 골고루 쳐야 합니다. 떡메를 치면 허리가 뻐근해집니다. 보통 사람들은 몇 번 치고 나면 금세 지쳐버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을 아주머니는 웬만한 양은 눈도 꿈적 안하고 떡메를 칩니다.

떡메치기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떡메치기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떡메를 치다’, ‘떡메치기’ 라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듭니다. 팽이치기는 팽이‘를’ 치는 거지만, 떡메치기는 떡메‘로’ 치는 거겠지요. 생활 도구를 뭣보다 소중히 모셔 왔던 게 우리네 옛 분들 아닙니까. 산골과 어촌 오지의 삶을 꿋꿋이 버텨올 수 있었던 것도 저 도구들 때문이지요. 떡쌀이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떡쌀을 치는 떡메만은 언제나 그 자립니다.

기계 방앗간과 달리 이 마을을 전통떡 마을이라 부르는 이유. 오랜 세월 저 떡메를 고이 지켜왔으니까, 입김 호호 불며 허리 굽혀 떡메를 쳐왔으니까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닐까요. “인절미 팥고물 묻히듯이”라는 말이 있죠. 이제 적당히 썰어 고물 묻힐 차롑니다.

전통 떡빚기 체험에 나선 가족과 마을 주민이 둘러앉아 고물 입히기가 한창이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전통 떡빚기 체험에 나선 가족과 마을 주민이 둘러앉아 고물 입히기가 한창이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고사리손으로 떡쌀을 굴리며 고물을 입히는 모습.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고사리손으로 떡쌀을 굴리며 고물을 입히는 모습.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동보팥은 팥색이 아니고 하얀색이군요. 쑥색도 있고 갈색도 있고, 쌀과 나물 종류를 구분 못하는 저로서는 색색깔의 고물로 떡을 구분하는 게 편합니다. 널찍하게 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이리저리 떡을 굴리는 새 갖가지 옷을 입은 떡이 빚어졌습니다.

떡 구경 좀 해볼까요. 인절미와 송편, 반달떡에다 바람떡과 찹쌀떡도 있습니다. 고물없이 멥쌀을 쪄서 만들었다는 백설기에다 쑥과 파를 넣은 쑥몽생이와 시루떡까지. 떡에도 향긋한 내음이 나는 줄 몰랐습니다. 흐드러집니다. 세상 떡 여기 다 모였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떡 10말, 그러니까 한 가마니 정도를 빚어 서울로 올려 보냈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풀리면서 눈이 녹기 시작해 마을 트럭에 싣고 배달을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떡 체험을 위해 여행객이 찾아오면 작업은 다시 시작됩니다. 전국에 떡마을로 소문나다 보니 명절이나 결혼 시즌이 되면 마을이 발칵 뒤집힙니다. 떡 만들기에 나서는 17가구마다 온 가족이 출동하니, 40명도 넘게 모여 밤새 20말 정도의 떡을 빚습니다. 이웃 마을 분도 직접 찾아와 이웃사촌을 구실삼아 떡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으니 그 북적거림이 살맛나겠습니다.

떡 작업이 끝나면 작업장은 마을 주민의 사랑방이 된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떡 작업이 끝나면 작업장은 마을 주민의 사랑방이 된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한차례 떡 전쟁을 치루고 나서야 부녀회장님의 본격적인 송천 떡 자랑이 시작됩니다. 소문난 떡 맛의 비결은 좋은 쌀과 직접 손으로 치고 빚는 전통 방식이라고 합니다. 청정한 공기와 깨끗한 물로 직접 지은 쌀농사라 병충해가 없는 무농약 쌀이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마을을 감싸고 도는 송천 계곡은 물 맑고 산수 좋기로 유명한 곳이긴 합니다.

마을 앞개울에는 산천어와 메기 그리고 꺽지가 널렸고, 다슬기는 쓸어 담아도 될 정도로 많습니다. 호박꽃 피는 여름이면 땅강아지와 방개에다 반딧불까지 볼 수 있다하니, 굳이 쌀맛이 아니더라도 쉬어갔으면 싶은 마을입니다. 한참동안 떡 자랑을 듣긴 들었는데,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송천 떡마을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떡.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송천 떡마을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떡.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그렇게 맛있어도 마을 분들은 매일 먹을 거 아니냐, 안 질리더냐 물었습니다. “안 질려요. 좀 안 먹으면 막 먹고 싶어진다니깐요” 한다. 송천 떡, 솔직히 맛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매일 먹고도 또 먹고 싶어진다니 참 신기한 분들일세 하며 작업장을 나섭니다. 소나무가 마을을 둘러싸고 계곡이 흐르니 마을 이름이 송천이겠지요. 바람 많고 눈 많은 산골인 줄 금방 알겠더군요.

지붕에는 눈이 한쪽 사면으로만 쌓였습니다. 고드름은 처마 끝에서 한 20cm는 더 앞으로 나와 있습니다. 마을이 유명해지면서 개량 가옥이 많이 들어섰지만, 바람이 심해 지붕을 낮춘 영동 산간의 초가도 여전히 눈에 띕니다. 집마다 하수 시설이 잘 갖춰졌고 보일러가 들어선 걸 보니 살 만한 마을이 된 것 같습니다. 군데군데 눈 모자를 쓴 장작더미가 남아 있긴 하지만요. 몇 군데 빈집이 눈에 띄는 건 이 마을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송천떡 마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떡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송천떡 마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떡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이장님을 찾아 떡마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70년대 초중반, 21가구 전체가 설악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제각각 인절미 품팔이를 나갔습니다. 산골이라 버스는 들어오지 않는데 아이들 유학비용도 없었던 겁니다. 떡만이 아니라 돈이 되는 거라면 뭐든지 내다 팔던 때였습니다.

야산의 산나물과 송이는 머리에 이고, 나무는 지고, 감자와 옥수수는 들쳐 메고, 오색과 낙산 그리고 설악으로 새벽같이 품팔이를 나갔습니다. 한때 감나무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많이 심었던 감나무도 유실수 겸 해서 감을 팔기 위해 가꾼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관광객 사이에 떡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거지요. 소문이 나고 떡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갈등도 많아졌습니다.

집집마다 떡 맛이 제각각인데다 벌이도 차이가 많다 보니 경쟁이 붙은 것입니다. 다툼도 꽤 있었나 봅니다. 그러다 한 10년 전 공동 생산과 공동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여럿이 하면 성공한다는 일념 하나로 ‘마침내’ 뭉쳤다고 합니다. 그래도 기계가 빚는 게 아니라 사람이 빚으니 떡 맛은 조금씩 틀릴 수밖에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작업조별 인원 배치. 송천 떡에 제일 경험이 많은 아주머니가 한 명씩 각 조를 이끌고, 그 다음으로 잘 빚는 사람을 골고루 한 명씩 배치하는 식으로 해서, 한조에 5,6명씩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렇게 10년을 해왔고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마을 안까지 버스가 들어온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마을 안까지 버스가 들어온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이제는 품팔이를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주문받아 생산하고 택배로 보내주면 그만입니다. 양양 5일장에 나가서도 어엿한 간판 달고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떡을 둘러싼 다툼도 사라지고, 떡 작업장과 마을 회관에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버스도 마을 안까지 들어옵니다.

여름이면 마을 내 야영장을 찾은 여행객에게 받는 청소비만 해도 하루 1백만 원. 계절이 좋을 때 떡 체험장과 송천 계곡, 야영장을 찾는 손님이 하루 1천 명을 헤아릴 정도라고 합니다. 이장님은  깨끗한 산수와 근실한 사람들, 그리고 슬기로운 화합이 송천 마을의 오늘을 만들었다며 뿌듯해 합니다.

마을에 남은 유일한 아이들. 희정이와 동진이 오누이.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마을에 남은 유일한 아이들. 희정이와 동진이 오누이.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우연이었습니다. 마을을 떠나려다 마을의 내일과 마주친 것입니다. 10살 희정이와 8살 동진입니다. 논 위에서 신나게 썰매를 지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입을 열게 하려고 30분을 같이 눈밭에서 뒹굴었습니다. 웬 정신나간 아저씬가 싶었겠지만, 그래도 마침내 터지는 산골 아이 특유의 웃음보!

희정이와 동진이는 송천 마을에 남아있는 유일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겨울 방학이면 학교 친구들을 만날 수 없으니 이 오누이의 제일 신나는 놀잇감은 눈썰매랍니다. 옛날처럼 아이들이 많다면야 눈덮힌 산에서 토끼도 몰고, 설피 신은 어른들 따라 창대 들고 고라니나 맷돼지도 몰러 다녔겠지요. 아무리 잘 되는 마을이라도 젊은 부부가 산골을 떠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마을에 남아 떡을 빚는 아주머니 가운데 가장 젊은 사람이 50대. 기술을 넘겨 받을 젊은 아주머니가 없습니다. 마을 인구수는 2배가 넘었는데, 떡 만드는 가구 수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송천 떡 맛보고 싶으시면 서둘러야겠습니다. 떡 매일 먹어도 안 질린다는 마을 사람들. 맛있어서라기 보단 안타까워 그런 거 같습니다.

송천 가든의 모습.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눈 덮인 송천 가든의 모습.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Tip.
숙박 정보 
민박 가능한 집이 5,6 군데 된다. 송천 가든은 한옥으로 지은 원룸식 황토방으로 시설이 괜찮은 편. 객실 수는 5개. 7월초부터 8월말까지는 마을 내 3군데 야영장이 문을 연다.

가는 길
승용차 : 영동 고속국도 -> 강릉 JC -> 동해 고속국도 -> 현남 IC -> 7번 국도 -> 양양(오색 방면 44번 국도) -> 56번 국도 -> 송천
대중교통 : 동서울 터미널에서 양양까지 고속버스(4시간)로 간다. 양양 터미널에서 송천리까지 하루 두 차례 버스가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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