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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동호회 따라가기] 우화(羽化) 고문화답사회, "너는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
[동호회 따라가기] 우화(羽化) 고문화답사회, "너는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4.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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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강경 미내다리.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강경 미내다리.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논산] 강경천에는 둥근 무지개가 떠 있다. 작은 무지개 셋이 그린 커다란 무지개가 하늘보다 더 눈부시다. 하지만 쓸쓸하다. 염라대왕에게 답했다. “그 눈부신 쓸쓸함이 막 시리더이다.”

호남과 충청이 갈리고 다시 영남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는 충남 논산의 채운면 삼거리. 금강의 지류인 강경천 둑을 10분 정도 따라가면 ‘강경 미내다리’를 만난다. 강경천의 옛 이름인 ‘미내’는 잔잔한 시내라는 뜻.

서른 아홉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니, 건넌다기보다는 구름을 헤치고 푸르디푸른 하늘로 오르는 것 같다. 시간을 멈춰 세운 고즈넉한 다리는 오랜 만에 손님을 맞았다. 옛 백제 영토 내의 전통 조경과 건축을 찾아다니는 ‘우화고문화답사회’ 회원이 그들.

미내다리의 홍예를 버티고 있는 장대석. 홍예 정상부에는 호랑이 머리가 조각돼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미내다리의 홍예를 버티고 있는 장대석. 홍예 정상부에는 호랑이 머리가 조각돼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미내다리는 3개의 홍예(虹霓, 무지개)로 이뤄진 석조 홍예교다. 완벽에 가까운 비례와 곡선이다. 홍예 사이에 장대석이 가지런히 쌓였다. 돌로 쌓아 맞춘 홍예 하나하나가 받침축 하나 없어도 매끈하고 튼튼하게 반원으로 버티고 있다. 가운데 홍예는 볼록 솟아 전체가 무지개를 이룬다. 정교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가운데 홍예와 왼쪽 홍예 이맛돌은 호랑이 머리와 여의주를 문 용머리다. 무섭지만 어수룩한 표정이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구수하고 따뜻한 맛을 간직한 듯 친근하다. 각기 다른 초능력을 지녔다는 아홉 마리의 용 가운데 한 마리가 여기 웅크렸으니, 다리를 떠받치고 강경 평야의 비바람을 관장하는 용이었으리라.

1731년 충청과 경상, 그리고 전라 삼남을 연결하는 조선 최대의 석교로 놓여졌다. 강경 옛 장터 역시 금강의 수운을 통해 산물이 모인 곳으로 19세기 말까지 2~3만 명의 상인이 북적댄 곳이다. 그러니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 길에 나서는 유생, 낙향하거나 귀향 떠나는 관리는 물론, 상공인의 번화한 발길로 닳고 닳았을 돌다리였을 것이다.

죽어 염라대왕을 만나면 “너는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 고 물었다 한다. 여한이 없으려면 미내다리를 보고 죽으라는 뜻일 게다. 미내다리는 강경의 석설산과 송만운이 나서 모금을 벌여 지은 것으로, 관의 힘을 빌지 않고 완성됐다고 전한다.

불가에서는 다리를 놓는 것을 복의 씨를 뿌리는 여덟 가지 밭(福田) 가운데 하나로 친다. 당시에는 다리가 없어도 나라에서 놓지 못하고 독지가를 기다려서야 다리를 이루었던 것이다. 지금 강경천의 물줄기는 미내다리와 평행하게 흐른다. 근대화의 물결은 물길을 바꾸고 다리를 폐교시켜버렸다.

원목다리. 자연석이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하면서도 홍예를 이루며 버티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원목다리. 자연석이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하면서도 홍예를 이루며 버티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미내다리 위에 올라 유심히 관찰하는 동호회 회원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원목다리 위에 올라 유심히 관찰하는 동호회 회원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강경천을 건너는 철교와 고속도로에다 국도까지 놓였으니, 다리 없는 괴로움은 사라졌으되 옛 원형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내친 걸음에 비슷한 시기에 놓인 것으로 짐작되는 ‘원목다리’까지 찾기로 했다. 하지만 큰일이다. 주민 가운데 누구도 그런 다리를 모른다는 것이다.

겨우 찾아낸 원목다리의 모습을 보고서야, 그들이 정말로 몰랐던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쓸쓸한 모습에 무심히 스쳐버렸을 뿐일 것이다. 원목다리는 미내다리와 달리 계산되지 않은 멋스러움이 있다. 홍예 사이에 장대석이 따로 없고 자연석을 얼기설기 쌓아 홍예를 유지하고 있다.

원목다리의 소박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원목다리의 소박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규모도 작거니와 그 투박함 앞에, 서민들이 마음 편히 넘었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홍예 머릿돌인 용머리와 귀면의 섬세함만은 미내다리에 뒤지지 않는다. 다리와 그 다리를 건너는 이의 귀천을 막론하고 그들의 원이야 다를 리 있겠나. 논산 양촌면 쌍계사(雙溪寺)로 향한다.

절의 쌀뜨물을 큰 길까지 흘려 보냈다는 두 개의 시내 가운데 하나는 말라 조촐해져 버렸다. 하지만 절을 감싼 전설은 천일야화를 무색하게 한다. 중생 속에 깊이 뿌리내린 사찰이었다는 증거다. 굵은 칡덩굴로 만든 대웅전 내부 기둥에 관한 전설이 재밌다. 윤달에 동아줄 같은 이 기둥을 안고 돌면 병을 오래 앓지 않고 일찍 저승에 간다고 한다.

보물 408호 쌍계사 대웅전. 지붕이 장중하면서도 날아갈 듯한 맵시를 지녔다.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이뤄져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보물 408호 쌍계사 대웅전. 지붕이 장중하면서도 날아갈 듯한 맵시를 지녔다.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이뤄져 있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대웅전 천정에 용과 봉황과 연꽃이 만발하니 거기가 극락정토요, 고단한 삶을 버티자니 그도 못할 짓이라 병을 고쳐달라 비는 것은 어리석다 했을 것이다. 정면에서 본 대웅전 지붕은 날개를 펼친 듯 팔작으로 유려하더니, 기둥 앞에서 올려다본 지붕은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장중하다.

겹처마에 다포양식까지 더해졌으니, 궁궐에서나 본다는 목조건물 지붕 구조의 진수가 여기 있다. 공포가 밖으로는 4출목이요 안으로는 5출목이나 되니, 올려다보는 눈이 어질어질 압도된다. 쌍계사 대웅전에는 꽃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쌍계사 대웅전의 지붕과 공포. 겹처마에 돌출된 공포가 4단이다. 우리나라 불전 가운데 출목 수가 가장 많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쌍계사 대웅전의 지붕과 공포. 겹처마에 돌출된 공포가 4단이다. 우리나라 불전 가운데 출목 수가 가장 많다.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화려한 문살의 모습.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화려한 문살의 모습. 2005년 4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대웅전 문살마다 국화와 작약, 모란과 연꽃과 무궁화가 조각돼 그 피고 짐이 화려만발하다. 부안 내소사 꽃창살이 이에 비할까. 범속의 나라에서 불국정토로 드는 입구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니, 중생이 바치는 헌화요 부처님의 은혜가 아닌가. 대웅전이 유독 북쪽을 향하니 부처님의 공덕으로 호국하려는 꽃비다.

‘우화고문화답사회’는 대웅전을 둘러보면서도 별로 말이 없다. 그냥 자기 관심 분야에 맞게 조용히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다. 자연석을 그대로 쌓은 초석 앞에 쭈그리고 앉은 이, 자연스럽고 시원하게 뻗은 민흘림 기둥 앞에 선 이, 절 주변의 조경을 둘러보는 이, 안정감과 화려함을 주는 대웅전의 안쏠림 양식에 관심있는 이….

어디서나 전통 조경이라 자랑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전통조경을 별로 못 봤단다. 돌 하나, 목조 하나에 담긴 조상의 심성에 젖어보는 감수성이 먼저라고 말한다. 그것을 얻고서야 비로소 우리의 자연스런 조경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다리를 놓았던 사람과 다리를 건넜던 사람, 그리고 기둥을 세우고 나무를 심었던 옛 사람의 심성에 대한 상상의 나래가 밤늦도록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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