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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박은하의 감성여행] 추억과 낭만이 깃든 기찻길 산책, 공릉동 경춘선 숲길
[박은하의 감성여행] 추억과 낭만이 깃든 기찻길 산책, 공릉동 경춘선 숲길
  • 박은하 여행작가
  • 승인 2020.04.14 2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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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행 열차가 지나던 서울 노원구 공릉동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경춘선 숲길
감성이 깃든 카페와 아늑한 독립서점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옛 경춘선 철길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철도가 숲길이 됐다. 10년 전만 해도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는 춘천 가는 기차가 지나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신호음이 울려 퍼졌고, 차단기가 내려가면 육중한 열차가 철로를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기적소리는 사라졌지만 기찻길을 따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소소한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 거리가 함께하는 경춘선 숲길을 따라 걸었다. 

코로나19가 말썽이다.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친 요즘.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코로나여행’, ‘#코로나나들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사람들이 밀집한 실내 장소 대신 한적한 야외를 찾아 떠나는 나들이 코스가 주목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경춘선 숲길은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산책하기 좋은 코스다. 

산책의 즐거움, 경춘선 숲길 풍경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곳’

경춘선 숲길을 걸을 때마다 김현철의 노래 ‘춘천 가는 기차’가 생간난다. 지난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되기 전까지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춘천행 기차가 지나갔다. 성북역에서 출발한 춘천행 기차는 공릉동을 거쳐 화랑대역으로 향했다.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알록달록한 벽화는 경춘선 숲길에 생기를 더한다.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경춘선 숲길 표지판. 경춘선 숲길은 1~3구간으로 나뉘며 구간마다 특징이 있다.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 이후 버려진 철로 주변은 쓰레기 투기와 무단주차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경춘선 숲길은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3단계에 거쳐 순차적으로 조성됐다. 기찻길을 따라 이어진 담벼락을 헐어 그 자리에 나무와 식물을 심었다. 아기자기한 상점이 하나둘씩 들어서 활기를 더했다. 경춘선 숲길이 조성되고 마을 분위기도 한결 밝아졌다. 우범지역이었던 장소가 걷고 싶은 길로 다시 태어났다. 

경춘선 숲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기찻길과 신호등, 차단기 등 철도 구조물을 그대로 보존해 향수를 자극한다. 오래된 주택과 전통시장, SNS ‘좋아요’를 부르는 카페 여러 곳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조성 7년 만에 전 구간 단장을 마친 숲길은 월계동 경춘철교부터 시작해 공릉동을 거쳐 육사삼거리 서울ㆍ구리시 경계까지 약 6km의 산책코스가 막힘없이 이어진다. 전 구간을 걸으면 약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걷다 힘들면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면 그만이다. 전 구간을 걸어도 좋지만 일부 구간만 산책해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부터 힘차게 뛰어다니는 어린이, 삼삼오오 친구들과 모여 다니는 청소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지팡이를 잡고 걷는 노인까지. 남녀노소 자신만의 방법으로 경춘선 숲길을 산책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도 정겹다.

TIP 경춘선 숲길
경춘선 숲길은 1~3구간으로 나뉘며 구간마다 특징이 있다. 1구간(경춘철교~서울과학기술대학교 입구)에는 키 큰 나무가 숲을 이루고, 시민이 직접 가꾼 텃밭이 있다. 2구간(공덕 제2철도건널목~육사삼거리)에는 철도 양옆으로 카페, 식당 등이 모여 있고, 3구간(육사삼거리~서울ㆍ구리시 경계)에는 옛 화랑대역 노원 불빛정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산책 후 라라브레드에서 즐기는 브런치.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감성이 깃든 경춘선 숲길 카페투어
경춘선 숲길 중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공트럴파크’, ‘공리단길’등으로 불리는 2구간 (공덕 제2철도건널목~육사삼거리)이다. 철길을 따라 카페 20여 곳이 영업 중이니 취향에 맞는 카페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그중에서 라라브레드 공릉점은 브런치 카페로 유명하다. 4층짜리 벽돌건물 전체를 카페로 써 경춘선 숲길 일대 카페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빵 진열대 안쪽에 제빵실이 있어 시간별로 갓 구운 빵이 나온다. 뱅오쇼콜라, 크루아상, 팡도르, 앙버터 바게트 등 먹음직스러운 빵이 나올 때마다 빵순이의 마음이 설렌다. ‘아보카도 새우의 역습’, ‘계란품은 베이컨’등 메뉴 이름마저 위트가 넘친다. 모양도 예쁜데 맛도 제법이다. 경춘선 숲길이 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브런치를 즐긴다. 

숲길에서 살짝 벗어난 공릉로39길 골목에 3층짜리 흰색 단독 건물이 있다. 간판 하나 없는 밋밋한 건물 1층에 자리한 카페 플랫커피(Flat Coffee)다. 김승민 플랫커피 대표는 2017년 가을, 우연히 경춘선 숲길에 왔다가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자리를 잡았다. 카페 인스타그램에 셀프인테리어 작업 과정부터 메뉴 테스트, 일기 등을 기록하며 손님과 소통한다.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과일 젤리에 탄산수를 붓고 식용 꽃을 올린 플랫커피의 후르츠 젤리소다.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기분 좋은 커피 향과 잔잔한 음악이 함께하는 플랫커피.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플랫커피는 공간마다 다른 분위기를 지녔다.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카페 이름이 왜 플랫커피냐는 질문에 말 그대로 평평한 느낌의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고 답한다. 동네 피아노학원을 리모델링해 만든 카페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분위기다. 카페는 중앙홀, 작은방, 큰방으로 이어져 있는데 공간마다 느낌이 다르다. 큰방은 채광이 좋아 일명 ‘햇살 맛집’이다. 작은방은 아지트 같은 아늑한 느낌이 특징이다. 중앙홀은 커피 바를 중심으로 긴 테이블을 놓았는데 이곳에 앉으면 커피와 음료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장에서 사용하는 원두는 주기적으로 교체한다. 프릳츠, 리브레, 모모스, 베르크 등 유명 로스터리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브루잉커피가 대표메뉴다. 

커피는 기본이고, 음료와 디저트도 훌륭하다. 동글동글한 과일 젤리에 탄산수를 붓고 식용 꽃을 올린 후르츠 젤리소다, 멜론소다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동동 띄운 멜론크림소다, 즉석에서 계란 머랭을 만들어 토스트 위에 올린 플랫토스트 등은 그야말로 시선을 빼앗는다.

INFO 라라브레드 공릉점
주소
서울 노원구 공릉로41길 32

INFO 플랫커피
주소
서울 노원구 공릉로39길 20 1층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경춘선 숲길 동네서점 책人감.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아늑한 독립서점과 구미 당기는 시장까지
경춘선 숲길 2구간에는 동네 책방 ‘책人감’이 있다. 책방 주인장이 큐레이션 한 책을 판매하는 서점이자 다양한 클래스가 열리는 문화센터다. 서점의 첫인상은 마치 사랑방 같은 느낌이랄까. 규모는 작지만 공간 구성이 재밌다. 서가 안쪽에 숨어 있는 혼자만의 서재, 경춘선 숲길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 자리, 손님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사각 테이블 자리 등 곳곳을 알차게 꾸몄다.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 때문일까.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 

책人감은 독립출판물과 일반 서적을 함께 판매한다. 책 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책 제목과 표지가 이렇게 재미있을 일인가 싶다. 곳곳에 붙여 놓은 명언 글귀에도 절로 시선이 간다. 

“특정분야의 책만 선호하지 않아요. 책人감에는 역사, 고전, 심리,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있어요. 단순히 책을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을 좋아해요. 요즘에는 동네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한 책도 가져다 놓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지속 가능한 책방을 운영하고 싶어요.”이철재 책人감 대표의 말이다.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책人감 내부 전경.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그는 18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다가 2018년 1월 경춘선 숲길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 조직 생활을 하며 터득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규모 강좌를 개설했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와인 배우기 등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강좌가 대부분이다. 그는 책방을 운영하며 제주도 여행책과 시 동아리에서 쓴 시를 모아 동인지를 출간했다. 이를 바탕으로 책 쓰기 강좌도 진행한다. 책人감은 경춘선 숲길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보물창고다.

경춘선 숲길 산책을 하며 놓치기 아까운 곳 중 하나가 공릉동 도깨비시장이다. 경춘선 숲길 산책로에 시장 입구가 맞닿아 있는데 방망이를 든 도깨비 벽화가 그려져 있어 찾기 쉽다. 시장은 지난해 노후전선 교체와 아케이드 수리를 마쳐 더욱 깔끔해진 모습이다.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경춘선 숲길 인근에는 공릉동 도깨비시장이 자리한다.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도깨비시장에서 판매하는 나물류.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아케이드를 따라 쭉 뻗은 골목 양옆으로 수십 개의 상점이 늘어서 있다. 값싸고 품질 좋은 농산물, 수산물, 정육은 물론이고, 입맛 당기는 반찬과 시장 음식이 풍성하다. 맛집으로 통하는 홍두깨 손칼국수는 3500원에 푸짐한 칼국수 한 그릇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좋다. 

INFO 책人감
주소
서울 노원구 동일로182길 63-1 2층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옛 화랑대역 건물에 빛을 쏘아 연출하는 미디어 파사드. 사진 / 박은하 여행작가
TIP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 화랑대역
등록문화재 300호로 지정된 옛 화랑대역은 간이역 특유의 소박한 정취가 남아 있어 출사지로 유명하다. 옛 화랑대역 철길에 미카 증기기관차, 일본 히로시마 트램, 체코 트램, 수여선 협궤열차, 무궁화호 등 다양한 철도차량을 전시한다. 지난해 12월에는 옛 화랑대역에 노원 불빛정원이 들어섰다. 빛 터널, LED 조형물, 3D매핑 등 조명 전시물과 프로젝터 등이 깜깜한 밤을 밝힌다. 옛 화랑대역 건물에 빛을 쏘아 상영하는 미디어 파사드 작품도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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