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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간이역의 새로운 미래가 엿보이는 화순 능주역
간이역의 새로운 미래가 엿보이는 화순 능주역
  • 권다현 여행작가
  • 승인 2021.06.15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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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기차여행] 화순 능주역
능주역의 담박한 외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행스케치=화순] 얼마 전 간이역을 배경으로 한 예능프로그램이 선보였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이미지의 배우 손현주를 명예역장으로 내세워,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간이역들을 찾아가 그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남 화순의 능주역도 그 중 하나였다. 아담한 간이역 둘레에 풍성한 문화유적을 자랑하는 이곳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리라 짐작한다.  

지금은 화순군으로 불리지만 그 역사를 되짚어보면 능주가 실질적인 중심지였다. 193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능주역은 마을사람들을 보성과 벌교, 순천은 물론 멀리 부산과 서울까지 연결해주는 귀한 교통수단이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합실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이용객이 많았다. 그러나 도로교통의 발달로 하루 동안 기차를 타고 내리는 승객이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특별한 이정표를 선물하며 조금씩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능주역 주변엔 능주팔경의 하나인 영벽정과 충절을 기리는 삼충각이 자리해 볼거리를 더한다.  

시처럼 아름다운 능주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능주역의 단촐한 열차시간표.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현재 야간과 주말에는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화순 역사의 중심지였던 능주
화순이란 지명은 고려 때부터 등장하지만 능주의 옛 이름인 능성은 통일신라 때도 사용됐다. 능성현에 지금의 군수라 할 수 있는 감무가 파견된 것이 1143년인데, 화순현에는 1390년에야 중앙으로부터 행정관이 내려온다. 조선시대에는 이들을 합치고 폐하기를 반복하다, 1632년 인조가 자신의 어머니 인헌왕후가 능성 구씨라는 이유로 능성을 비단 능(綾)자로 바꿔 능주라 이름 짓고 능주목으로 승격시켰다. 

어머니의 성향(姓鄕)에 대한 이 같은 파격적인 예우는 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늘 정통성에 목말랐던 인조의 콤플렉스에 기인한 것이었다. 조선 말기 화순군이 능주군에 합병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 능주군과 동복군을 통합해 화순군으로 칭하게 된다. 지금은 화순으로 불리지만 그 역사를 되짚어보면 능주가 실질적인 중심지였던 셈이다. 

능주역의 적막한 플랫폼에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제작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배우 이동휘의 손글씨가 적힌 이정표.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시처럼 아름다운 간이역
조선 세조 때 문신인 허종은 자신의 시에서 “풍속이 소박하고 간략하니 종래부터 후했고, 산이 순수한 정기를 감췄으니 발설하기 더디네”라며 능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인심을 칭송했다. 삼각지붕을 얹은 능주역의 담박한 외관을 마주하는 순간, 과연 시처럼 청아한 동네에 잘 어울리는 기차역이란 생각이 든다.

능주역은 193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는데, 한국전쟁 당시 기차역이 소실돼 1957년 지금의 역사가 새로 지어졌다. 녹청색 박공지붕에 상아색 외벽이 전형적인 50년대 기차역의 모습이다. 하루에 상행 4회, 하행 4회의 단출한 열차시간표가 내걸린 대합실은 손님이 없으니 썰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아담한 역사에 쌓인 세월만 60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생뚱맞게 느껴질 만큼 널찍한 역전광장과 우뚝 솟은 은행나무가 한때 이곳이 얼마나 번성했을지 짐작케 한다.

오랜 세월을 짐작케 하는 능주역 간판.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경전선에 속하는 능주역은 마을사람들을 보성과 벌교, 순천은 물론 멀리 부산과 서울까지 연결해주는 귀한 교통수단이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합실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이용객이 많았다. 근처 만수역과 석정리역까지 관리하느라 역무원들도 제법 분주했다. 그러나 도로교통의 발달과 고속열차의 등장으로 경전선은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열차’라는 자조적인 별명으로 불린다. 

대중교통이 열악하기로 유명한 화순이지만 능주역 이용객은 나날이 줄어 하루 동안 기차를 타고 내리는 승객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여행객을 실어 나르던 남도해양관광열차(S-train)마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멈추면서 능주역은 올해부터 야간과 주말에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게 됐다. 승차권 발매 업무도 중단돼 모바일로 예약하거나 열차에 올라 승무원에게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야간시간이나 주말에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노약자께서는 가까운 화순역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능주역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겁다.     

MBC TV예능 <손현주의 간이역>이 능주역을 찾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타고 내리는 이 아무도 없는 플랫폼에서 최선을 다해 수신호를 하고 적막한 기차역을 알록달록 꽃을 심은 화분으로 장식하는 배우 손현주의 모습이 영화 <철도원>을 떠올리게 했다. 간이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 덕분인지 그는 능주역 플랫폼에 이정표가 없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 챘는데, 최근 <놀면 뭐하니?>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배우 이동휘가 나서 세상에 하나뿐인 이정표를 제작했다. 

그의 손글씨를 보고 나오는 길에 기차역 구석구석 카메라에 담는 젊은 연인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 이정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 이 특별한 선물이 능주역의 미래를 환하게 밝혀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됐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제작한 능주역 이정표.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능주역
주소 전남 화순군 능주면 학포로 1896-10

능주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영벽정의 주변풍광.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영벽정을 지나 달려가는 기차를 볼 수 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찻길과 어우러진 영벽정.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영벽정 앞을 흐르는 지석강의 멋스런 왕버드나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능주팔경 영벽정, 충절의 삼충각까지 볼거리 가득
능주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능주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영벽정이 자리한다. 연주산의 짙푸름이 지석강의 맑은 물에 비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들 모두 능주역의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의 정자는 1988년에 복원한 것으로,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 영남학파를 이끈 성리학자 김종직의 시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영벽정에 올라 깊어가는 회포를 시로 남겼는데 “한 무더기 공문서는 볼 필요도 없다”며 그 빼어난 풍광을 노래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영벽정 앞으로 수영장이 개발돼 피서지로 각광받았다. 지금도 멋스런 왕버드나무와 능주역을 오가는 기찻길이 어우러지며 사진동호인들 사이에서 출사지로 사랑받는다. 

절로 우러러보게 만드는 절벽 위 사당.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삼충각도 놓쳐선 안 될 볼거리다. 조선 숙종 때 건립된 삼충각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키기 위한 결사항쟁 끝에 순국한 의병장 최경회와 문홍헌, 을묘왜변으로 해남 달량포에서 전사한 조현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최경회는 옛 화순, 문홍헌과 조현은 능주 출신으로 이 지역의 꼿꼿한 절개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특히 삼충각은 옛 능주 길목 어디서든 바라볼 수 있도록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해 그 앞에 서면 누구든 우러러보게 만든다.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시를 지었던 영벽정.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영벽정
주소 전남 화순군 능주면 학포로 1922-53

최경회, 문홍헌, 조현의 충절을 기리는 삼충각.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삼충각
주소 전남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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