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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익산 시간여행... “만경교를 기억합니다”
익산 시간여행... “만경교를 기억합니다”
  • 박정웅 기자
  • 승인 2021.08.09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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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 익산 구간을 걷다 ② 춘포-만경2교
뒤바뀐 물길, 쓰라린 우리의 역사
김제 마산천 수문에서 바라본 만경강. 이곳은 일제의 직강화 사업 여파로 전주, 익산, 김제 땅이 혼재한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전북 김제 마산천 수문에서 바라본 만경강. 맞은편은 익산이다. 이곳은 일제의 직강화 사업 여파로 전주, 익산, 김제 땅이 혼재한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익산시 석탄동 우각호에 핀 연꽃. 사진 / 박정웅 기자
익산시 석탄동 우각호에 핀 연꽃. 사진 / 박정웅 기자

[여행스케치=익산(전북)] 만경강의 물줄기는 서해로 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 중류에 해당하는 곳이 익산 쪽이다. 강 양쪽, 익산과 김제의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물길을 가로막는 수문이 없었다면 강모래 찜질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을까. 뒤바뀐 물길은 시간의 흐름 속에 많은 것을 바꿔 놨다. 모래톱이 있던 자리는 덤불이 뒤엉켰다. 강과 맞닿은 둔치의 논들은 자취를 감췄다. 그럼에도 쓰라린 역사의 흔적은 역력하다. 

지난호(봄이 드나드는 물가, 일제가 자리를 폈다)에 이어 만경강 익산 구간을 걷는다. 지난 종착지인 춘포면이 새로운 출발지다. 제방길에서 춘포행 발걸음을 되새긴다. 호소가와(細川·세천) 농장과 관련한 근대문화유산이 유독 많았다.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가옥’(에토가옥·등록문화재 제211호), 대장도정공장, 일명 김성철가옥, 간호사 숙소 등이 들어온다. 일제의 쌀 수탈사를 담은 춘포역(폐역·등록문화재 제210호)도 빼놓을 수 없다. 제방길에 서면 춘포가 왜 살아있는 근대문화유산 박물관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김제 백구제 수문. 유속이 느려져 상류 방향의 모래톱이 사라졌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김제 백구제 수문. 유속이 느려져 상류 방향의 모래톱이 사라졌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익산시 석탄동 간리 우각호. 만경강 일대에는 일제의 직강화 사업 일환으로 이 같은 우각호가 곳곳에 생겼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익산시 석탄동 간리 우각호. 만경강 일대에는 일제의 직강화 사업 일환으로 이 같은 우각호가 곳곳에 생겼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일제가, 또 우리가 건드린 만경강 물길
땡볕에 숨을 곳 없는 제방길이나 벚나무 터널이 그늘을 내어줬다. 춘포에서 만경2교까지는 약 8km 거리다. 이번에는 만경강의 양쪽을 찾기로 했다. “양쪽에서 살펴보는 것이 만경강을 보다 잘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유칠선 전라북도 문화관광해설사의 추천에서다.

강 건너편의 행정경계는 뒤섞여 있다. 이쪽이 분명 익산 땅 아니던가. 강 건너, 김제 쪽 마산천 수문 일대에 익산(춘포면) 땅이 있다. 오른쪽 전주(덕진구)와 왼쪽 김제(백구면) 땅 사이에 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경강 직강화 사업의 영향이다. 익산 땅의 일부가 강 건너편으로 떨어져 나간 것. 하류 방향의 목천포 수문 쪽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김제 땅이 익산 쪽에 붙어있다. (구)만경교(옛 만경교)와 조성 중인 물문화관 일대가 그렇다. 지도를 살펴보니 직강화에 따른 이 같은 사례는 이번 여행에서 총 5군데나 됐다.         

‘만경강 조류 살펴보기’ 안내도. 제대로 된 설명이 아쉽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직강화 사업은 말이 좋아 만경강 개수공사(1925~39년)이지 본질은 일제의 수탈에 있다. 구불구불한 사행천이었던 흔적은 또 있다. 제방 밖에서 물줄기가 막힌 우각호(쇠뿔 모양의 호수)가 그것이다. 익산 석탄동의 우각호(간리 구강)가 대표적인데 총 길이는 900미터가 넘는다. 

물길을 건드린 건 일제만이 아니었다. 김제 쪽 백구제 수문은 1970년대 만들어졌다. 밀물 때 바닷물이 상류 방향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설치한 것이다. 새만금방조제가 없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유속이 바뀌면서 모래톱이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오염된 강은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이 일대에서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고방오리 등이 관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소개한 ‘만경강 조류 살펴보기’ 안내도는 순 엉터리였다. 왜가리부터 참새까지 총 12종을 사진으로 설명했는데 이중 4종만 제 얼굴과 맞았다. 엉터리 안내도로 생태여행이라니…. 국가기관이 사전에 전문가 검증을 받았거나 조류 도감이라도 참조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쉬운 점은 또 있다. 만경강 전체의 조류를 설명하는 것보다는 앞서 언급한 이 일대에서 관찰되는 특별한 조류에 한정했으면 하는 지적이다.   

최근 발견된 호소가와 은덕비(왼쪽). 오른쪽은 그의 밑에서 일한 일본인 관리인을 기리는 은덕비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최근 발견된 호소가와 은덕비(왼쪽). 오른쪽은 그의 밑에서 일한 일본인 관리인을 기리는 은덕비다. 사진 / 박정웅 기자

김제에서 발견된 호소가와 은덕비
김제에서 최근 호소가와의 흔적이 발견됐다. 호소가와 농장에서 일한 조선인들이 자신들을 수탈한 호소가와를 기리는 은덕비(侯爵細川護立公恩德碑·후작세천호립공은덕비)다. 이 같은 아이러니는 은덕비 뒷면에 적혀 있다. 1917년 제작된 은덕비는 백구면 득자부락경로회관 맞은편 26번국도변에 있다. 은덕비는 지난겨울 주택 철거 과정에서 발견됐다. 유 해설사는 “울타리 안에 있던 선정비의 존재를 듣고 찾아간 건 지난 봄이었다”고 말했다. 뼈아프거나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것이다. 은덕비에 대한 해설 안내도가 곁들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제 땅에서 호소가와 은덕비가 발견됨으로써 호소가와 농장은 춘포 일대에 머물지 않고 김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탈의 범위가 더 넓었다는 것이다. 또 김제 농장의 쌀은 춘포와 백구를 잇는 옛 다리(현재는 철거됨)를 통해 대장도정공장으로 들여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옛 만경교를 엿볼 수 있는 시각 조형물. 사진 / 박정웅 기자
다리 일부가 남겨진 옛 만경교. 사진 / 박정웅 기자
만경교를 잇는 전군도로는 여전히 제방길로 쓰이고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만경교를 잇는 전군도로는 여전히 제방길로 쓰이고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시간의 흐름 속에 만경교를 기억합니다”
만경강에는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옛 다리가 있다. 익산과 김제를 이었던 (구)만경교(1928.2~2015.6)다. 이 일대의 쌀을 수탈하려는 일제의 계략에 따른 것으로, 옛 만경교는 전주-군산을 잇는 신작로(전군도로)의 주요 기점이었다. 또한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른 윤흥길의 <기억 속의 들꽃>의 배경이다.

전군도로는 일명 ‘잣대도로’였다. 주변에 세천농장을 비롯해 금촌농장, 전판농장, 대교농장, 불이농장, 미쓰비시계열농장 등 일본인 농장이 많았다. 농장주들은 설계 과정에서 전군도로가 자신의 농장 영역으로 놓이도록 했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를 나눠가질 때처럼 잣대로 신작로 노선을 죽죽 그었다. 잣대도로의 명명 배경이다.

2014년 다리에 대한 철거 계획이 수립됐다. 이 과정에서 만경교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철거와 존치의 기로에서 교량 일부 보존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강 복판 방향의 교량은 철거하면서 익산과 김제 쪽 시작점 일부를 각각 남겨두기로 한 것.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경교를 기억합니다’ 콘셉트였다. 남은 교량에는 목재 데크길이 덧대져 있다. 

문용기 선생을 기리는 3·1독립운동기념공원. 사진 / 박정웅 기자
3·1독립운동기념공원 뒤편의 일본식 가옥. 대교농장이 있던 자리로 당시 건물들이 몇몇 남아 있다. 사진 / 박정웅 기자

“우리의 역사, 익산의 근대문화유산 관심 필요”
목천대교를 조금 지난 오산면에는 독립운동가인 문용기 선생(1878~1919)이 다녔다는 교회가 있다. 현재 새로 지은 교회에서 문 선생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문 선생은 남부시장(구시장) 인근 3·1독립운동기념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1919년 4월 4일 이리장날을 이용해 주도한 만세운동 당일 일제의 총칼에 산화했다. 

과거 남부시장 일대에는 춘포보다 훨씬 많은 근대문화유산이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 무관심 속에 사라졌다. 문 선생이 계신 공원 뒤편은 대교농장이 자리했던 곳이다. 건물 일부가 남아 있으나 근대문화유산으로 쓰이지 않는 실정이다.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도시에 새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에 대해 유 해설사는 “군산은 일제강점기 근대문화유산 외에 익산처럼 다른 고대유산이 없다. 익산은 백제의 고도여서 그동안 미륵사지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문화에 집중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익산의 브랜드 가치를 드높이는 차원만이 아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적 관점에서도 남아 있는 다양한 근대문화유산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정웅 기자 sutr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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