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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나 다시 돌아갈래! 스무살의 풍경을 닮은 삼탄역
나 다시 돌아갈래! 스무살의 풍경을 닮은 삼탄역
  • 권다현 여행작가
  • 승인 2021.10.15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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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기차여행] 삼탄역
삼탄유원지를 지나는 열차.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삼탄유원지를 지나는 열차.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제천] 기찻길에 뛰어든 사내의 처절한 절규로 시작하는 <박하사탕>은 한국영화사에서 손꼽히는 명작이다. 주인공이 자살을 선택하는 충격적인 오프닝이 촬영된 곳은 충북 제천의 깊은 오지, 진소마을을 지나는 철교 위다. 영화의 인기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기찻길로 사랑받는 이 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웅장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삼탄역을 만나게 된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기차는 주인공의 쓸쓸한 죽음을 암시하는 존재이자 시간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덕분에 오지였던 진소마을을 지나는 철교가 ‘박하사탕 촬영지’란 이름으로 인기를 끌게 됐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야유회 장면은 삼탄유원지에서 촬영됐다. 삼탄유원지의 개발과 함께 전성기를 보냈던 삼탄역은 최근 예능프로그램에도 소개돼 다시금 화제를 모았다. 삼탄역에서 진소마을 철교를 지나 공전역으로 향하면 제천의병전시관도 만날 수 있다.       

영화 '박하사탕'의 강렬한 첫 장면이 촬영된 기찻길.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영화 '박하사탕'의 강렬한 첫 장면이 촬영된 기찻길.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삼탄역 앞마당에 자리한 미니도서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삼탄역 앞마당에 자리한 미니도서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북카페처럼 꾸며진 삼탄역 내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북카페처럼 꾸며진 삼탄역 내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박하사탕 촬영지’로 다시 태어난 진소마을 철교
<박하사탕>은 주인공 영호가 달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는 강렬한 첫 장면을 시작으로 그의 지나온 인생을 역순으로 보여준다. 첫사랑 순임이 건넨 박하사탕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던 순박한 청년이 비극적인 현대사에 휩싸이며 타락해가는 과정이 가슴 아프게 이어진다. 영화에서 기차는 주인공의 쓸쓸한 죽음을 암시하는 존재이자 시간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면 뜨거운 감동만큼이나 회색빛 기찻길과 둔중한 기적소리가 뚜렷한 이미지로 남는다. 진소마을 철교가 ‘박하사탕 촬영지’란 이름으로 인기를 끌게 된 이유다. 

깊은 못이 있어 진소(眞沼)란 이름으로 불리는 마을은 천등산 자락에 숨은 오지였다. 과거엔 일부러 찾아오는 이가 드물었으나 영화 <박하사탕>의 흥행과 함께 제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영호가 뛰어들었던 기찻길은 여전히 충북선 철로로 활용되고 있어 접근이 불가하지만, 철교가 지나는 진소천의 주변 풍광이 빼어나 주말에는 낚시나 캠핑을 즐기는 이들도 꽤 많다. 

INFO 진소마을 철교(박하사탕 촬영지)
주소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57-22

삼탄역을 지나는 열차.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삼탄역을 지나는 열차.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삼탄역 앞마당에 자리한 포토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삼탄역 앞마당에 자리한 포토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인 삼탄유원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인 삼탄유원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순수했던 스무살을 기억하는 간이역과 유원지
진소마을 철교는 충주 삼탄역과 제천 공전역을 잇는다. 특히 천등산을 병풍처럼 두른 삼탄역은 그 맑고 푸른 기운이 마치 스무살의 영호와 순임을 닮았다. 다른 역사와 달리 나무로 만든 역간판과 역명판도 청춘의 풋풋한 감성을 자극한다.   

삼탄역이 자리한 산척면 명서리는 천등산 외에도 지등산과 인등산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이다. 때문에 화전민이나 각종 변란을 피해 숨어 들어온 이들이 땅을 일구던 오지 중의 오지였다. 그런데 충북선 개통과 함께 이처럼 오랜 세월 때 묻지 않은 비경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삼탄이란 지명은 세 개의 여울(灘), 그러니까 소나무여울과 따개비여울, 광천소여울이 만나는 곳이란 의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기암절벽 아래로 물줄기가 시원스레 펼쳐진 곳이니 그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또 물살이 빨라서 송사리나 메기 같은 물고기도 많았다. 삼삼오오 낚시꾼들이 모여들고 여름철엔 물놀이 장소로도 인기였다. 

봄이나 가을엔 야유회를 즐기는 학생과 직장인이 많았다. <박하사탕>의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야유회 장면도 여기서 촬영됐다. 어느 덧 20여년이 흘렀음에도 영호와 순임이 사랑스런 눈빛을 나누던 강변 풍경은 고스란히 남아 영화의 여운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진소마을 입구에 세워진 영화 촬영지 안내석.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진소마을 입구에 세워진 영화 촬영지 안내석.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TV예능프로그램에서 제작한 삼탄역 기념엽서.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TV예능프로그램에서 제작한 삼탄역 기념엽서.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삼탄역의 느린 우체통.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삼탄역의 느린 우체통.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1959년 배치간이역(역무원이 있는 간이역)으로 처음 영업을 시작한 삼탄역은 삼탄유원지가 개발되면서 이용객이 늘어 1967년 보통역으로 승격됐다. 삼탄유원지와 연결되는 유일한 교통편이 기차였던 탓에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도로가 놓이고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삼탄역은 조금씩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다행스럽게도 <박하사탕>의 인기는 삼탄역의 존재를 다시금 알린 계기가 됐다.
 
올해 3월에는 예능프로그램 <손현주의 간이역>에 삼탄역이 등장해 관심을 모았다. 눈 내리는 삼탄역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상은 간이역의 낭만 그 자체였다. 삼탄역에는 편지를 보내면 1년 후에 도착하는 느린 우체통이 자리하는데, 당시 출연진들이 기차역에서 찍은 사진으로 기념엽서도 제작했다. 지금도 역사 한편에 기념엽서가 비치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삼탄역에 들어서면 다른 기차역과 달리 북카페처럼 꾸며진 내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역 앞마당에도 언제든 책 한권과 함께 쉬어갈 수 있는 미니도서관과 나무의자, 삼탄의 우리말인 삼여울 포토존이 자리해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INFO 삼탄역
주소 충북 충주시 산척면 삼여울길 108

공전역 근처에 자리한 제천의병전시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공전역 근처에 자리한 제천의병전시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의암의 영정을 모신 자양영당.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의암의 영정을 모신 자양영당.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자양영당 전경.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자양영당 전경.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이웃한 제천에서 만나는 의병의 역사
삼탄역에서 진소마을 철교를 지나 공전역으로 향하면 제천의병전시관이 자리한다.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의암 유인석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그의 영정을 모신 자양영당과 의병전시관이 이웃하고 있다. 전시관에선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제천의병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의암이 선비들과 함께 의병봉기를 다짐하는 장면이 재현돼 있다. 

여기에서 의암은 상복차림인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 가운데서도 나라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충신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자양영당 뒤편으로는 의암과 그의 정신적 스승인 성재 유중교의 고택도 복원해뒀다.    

제천의병전시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제천의병전시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제천의병전시관
주소 충북 제천시 봉양읍 의암로 566-7
문의 043)641-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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